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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회계법인 박차고… '신의 직장' 좇는 젊은이들

AziMong 2007. 4. 17. 15:11

삼성·회계법인 박차고… '신의 직장' 좇는 젊은이들

H(여·27)씨는 2004년부터 다니던 삼성전자를 지난해 그만뒀다. 회사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업무량이 많은 데다, 내부 경쟁이 치열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H씨는 “몸이 약한 편인 내가 버티기에는 힘든 직장이었다”면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 몸무게가 10㎏이 넘게 줄어들어 편한 직장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서울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모(여·26)씨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0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가 지난해 한 국책은행으로 옮겼다. 이씨는 “국책은행에서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며 “(현재 다니는 직장이) 시간적 여유가 있고 고용 안정성이 뛰어난 것이 좋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 직장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전자 등 일류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무원·공기업 등 이른바 ‘신(神)이 내려준 직장’으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전력 인사담당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계열사에 다니다가 한전에 입사한 사람이 적지 않다”며 “이들은 무엇보다 고용의 안정성을 위해 공기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 도서관·학원가에 공시족(公試族) 북적

박사 학위자 2명, 석사 48명, 대학 강사, 대기업 직원, 초중고교 직원…. 교육부가 7급 공무원(주사보) 1명을 뽑는데, 이처럼 쟁쟁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대거 지원했다. 지난 9~10일 원서를 낸 사람이 총 226명. 교육부 관계자는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찾아 많이 응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중간에 잘릴 염려가 거의 없고, 보수(報酬)와 사내 복지도 괜찮고, 직장 내 경쟁 스트레스도 덜하고, 주5일제와 공휴일을 확실히 챙길 수 있는 ‘편한 직장’을 좇는 젊은이들이 폭증하고 있다.

16일 낮 12시 서울 노량진 일대 공무원시험 학원가(街). 수천 명의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몰려나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노량진 한복판의 패스트푸드점에도 공시족(公試族·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으로 가득 찼다. 이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식사시간이면 공시족이 자리를 차지한 채 장시간 앉아 책을 보자, ‘낮 12~2시, 오후 5~7시에는 스터디(공부)를 금지합니다’란 팻말을 달아 놓기도 했다.

경희대 서울캠퍼스의 푸른솔문화관은 밤 11시에도 전체 360여 석 중 절반이 차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공무원시험, 공기업 입사,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책상마다 ‘민주 국사’ ‘객관식 행정학’ ‘7급 경제학’ 같은 수백 쪽짜리 시험교재가 수북이 쌓여 있다.

단국대 퇴계기념중앙도서관의 1층 대학원생 열람실도 공시족이 붐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세무공무원을 준비 중이라는 졸업생 정모(29)씨는 “제약회사에서 극심한 실적 압박 때문에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며 “40대에 느긋하게 살 수 있는 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경쟁력에 나쁜 영향 미칠 것”

7·9급 공무원 시험 시장의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할 정도다. 수험생이 책을 사고 학원에서 배우고 온라인 강좌를 듣는 데 드는 비용이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16일 교육업체인 웅진 패스원의 추정에 따르면, 응시생 기준으로 볼 때 공무원 수험생 수는 매년 50만명, 경찰직 수험생은 10만명,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보는 수험생도 10만명이다. 모두 합치면 70만명으로, 작년에 수능을 본 58만명보다 12만명이나 많다. 7급과 9급 국가 공무원 시험을 본 사람은 2001년 약 13만명에서 2006년 약 26만명으로 5년 만에 2배가 될 정도로 증가속도도 빠르다.

공기업 응시자도 급증, 작년 인천항만공사의 입사 경쟁률은 153 대 1이었으며 한국전기안전공사(사무직)는 무려 1066 대 1을 기록했다.

대학교 직원도 ‘편한 직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S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근무하다 사립대 재무처로 이직한 이모(여·32)씨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일찍 퇴근하니 가족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AICPA(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안모(여·29)씨도 서울의 한 사립대 직원으로 취직했다. 안씨는 “대기업이 폼은 더 나겠지만 대학에서는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민간분야를 외면하고, 공공부문에 몰릴 경우 국가 경쟁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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