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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안부러운 문화계 거장들

AziMong 2007. 8. 22. 17:26

`박사님` 안부러운 문화계 거장들

 

문화예술인들의 학력 위조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당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견고한 학력사회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간판과 학위라는 벽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이루어낸 승자들이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임권택 감독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17세 때 가출한 뒤 부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상경한 임 감독은 서울 충무로 밑바닥에서부터 영화인생을 밟아와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학력을 숨김없이 드러냈고 오직 영화로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학력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임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영화계 이단아로 불리는 김기덕 감독 역시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공장 근로자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영화로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독학파인 김 감독은 제대 후 그림을 배우러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이 담긴 영화들을 선보이면서 많은 팬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다. 정우성과 류승범 등 젊은 스타들도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이지만 출중한 연기력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이다.

연극계에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서도 맹활약하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 '문화게릴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펴고 있는 이윤택방송통신대학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이씨는 고향 부산에서 경남고를 졸업한 후 1972년 서울연극학교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만에 중퇴하고 부산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도서 외판원, 우체국 서기보, 염색가공 기사 등을 전전하다 경남 밀양에서 1년간 한국전력 직원으로 있을 때 시를 써서 문단에 등단했고, 79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했다. 86년 신문사를 사직하고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했다.

학사 학위는 없지만 문화계 전반에 걸친 그의 활약은 그 어떤 '박사님' 못지않게 눈부시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올렸고, 88년 서울로 올라와 '어머니' '오구' '느낌, 극락 같은' 등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 연극계에 이윤택 바람을 일으켰다.

희곡뿐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을 집필했고 시집과 평론집, 에세이집을 펴내며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해 왔다.

현재 연극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연출가로 꼽히는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 역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1983년부터 부산 가마골소극장 조명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86년 연희단거리패 창단멤버로 참여했고, 92년 이윤택과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94년 극단 청우를 창단한 후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종로고양이' '뙤약볕' '인류 최초의 키스' '프루프' '에쿠우스' 등 굵직한 화제작들을 잇따라 올렸다.

김씨는 연극계에서 이력이 특이한 연출가로 유명하다. 고졸인 데다 90년대 초반까지 부산에서 연극을 한 마이너 출신이라는 점이 그렇고 한때 연극판에서 잘나가는 조명 디자이너였다는 점도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한동안 '고졸 출신' '부산 촌놈'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주류 연극계에 연줄이 닿아 있지 않은 그를 돋보이게 하는 수식어들이다.

유명한 소설가인 장정일 씨의 공식 학력은 성서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언제나 동시대의 상직적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펴낸 '독서일기'나 '공부' 같은 산문집은 학위를 뛰어넘는 지적 통찰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다.

물론 교수와 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문단에서 그의 학력은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장정일은 이 같은 세태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일가를 이루어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이이화 선생도 대학 중퇴자다. 학비가 없어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중퇴한 선생은 동아일보 출판부, 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일하다 한국사 연구에 천착해 이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비 지원 한번 제대로 못 받아 봤지만 선생의 연구 성과는 어느 교수들보다 뛰어나다.

사실 학벌이라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학벌을 통해 그 사람의 전부를 평가해 왔다. 이 같은 경향은 부끄럽게도 문화예술계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작품이 아닌 학력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나라에서 학력을 이겨낸 이들의 건투는 더욱 빛난다.

[허연 기자 / 노현 기자 / 서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