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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후 The Day After] ‘번개 강사’ 김대중

AziMong 2007. 9. 21. 09:25

[그리고 그 후 The Day After] ‘번개 강사’ 김대중

자장면 배달원에서 대기업 스타 강사로 변신, 청와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수직 상승, 사업 실패 이후 주민등록증 위조 혐의로 입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성공과 추락의 극과 극을 경험한 ‘번개’ 김대중(42)씨가 재기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때 도용했던 ‘조태훈’이란 이름은 예명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김씨. 9월 5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김씨는 명함 2장을 차례로 건넸다. ‘철가방에서 스타 강사로. 김대중’이라고 쓰여진 공식 명함에는 “1965년 광주 출생. 중국집 배달 경력 17년. 저서 ‘철가방에서 스타 강사로’ ‘나의 선택 나의 길’. 1998년 청와대 신지식인 선정. 국내 대기업·전국 대학 다수 강의. 각종 매스컴 활동. 고려대 명예 강사”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명함에는 모 여행사 국내여행 브랜드의 법인영업팀장 직함이 박혀 있었다.



‘번개 강사’김대중씨. 머리에 두른 띠와 주먹으로 움켜쥔 깃발은 중국집 배달원 시절 사용하던 것이다.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배달의 기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김대중씨. (photo 조선일보 DB)
김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한 가지 일만 해서 어떻게 생존합니까. 강연하러 전국에 안 다녀본 곳이 없는데, 확 달라진 재래시장처럼 새롭게 뜨는 혁신 사례를 발굴해서 관련 기관 투어로 연결하는 상품을 구상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요즘도 강연이 많으냐고 묻자 “번개, 아직 죽지 않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에 화성 발안에서 가스공사 관리직원 40여명을 앞에 놓고 변화와 혁신을 주제로 1시간 반 강연했죠. 배달 철학과 서비스 정신이 메뉴인데, 요즘도 일주일이면 두세 건은 꼬박꼬박 합니다. ” 그러더니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3월부터 6월까지 일정표에서 비어있는 날짜를 보기 힘들었다. 대전, 강촌, 무주, 순창, 보령, 분당, 충주, 창원…. 그야말로 ‘전국구 강사’였다. “죽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아직 발딱 선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강연 횟수는 어림잡아 5000번을 넘는다고 한다.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 5건을 소화하기도 했다. 일정을 관리하는 여직원을 따로 둬야 할 정도였다. 1999년에는 1억3000만원을 벌기도 했다. 강연료는 보통 30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인데, 동사무소나 구청 등 관공서에서 초청할 때는 시간당 7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은 초창기부터 지켜온 원칙이라고 했다. “불러주는 것, ‘번개 철학’을 들어보려는 마음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한 미용스쿨에서는 달랑 2명을 두고 강의한 적도 있고, 올 봄 부산시민회관에서는 약사 3500명을 상대로 한 적도 있습니다. ”

몇 년 전 김씨는 ‘번개’ 이름을 내세워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다 사기를 당했고, 모아놓은 돈도 다 날리며 바닥을 경험했다. 얼마나 날렸느냐고 묻자 “한 4억원쯤 된다”고 했다. “살던 집 빼고, 카드빚 갚느라 집사람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은 신월동에서 전세 3000만원짜리 상가 주택에 살고 있어요. 이제 거의 털었죠.”

그의 변하지 않는 강의 주제는 음식점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다. “성격 급한 사람이 중국집에 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빨리 달라고 한다고요? 대부분 들어오시면서 ‘여기 짜장 곱빼기 하나’를 외칩니다. 저는 손님의 액션에 보조를 맞춰 주문을 듣자마자 주방에 ‘짜 곱 하나’를 따라 외쳤습니다. 당신의 급한 마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그게 포인트예요.”

강의 소재로 밑천이 달릴 일은 없었을까? 김씨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심만 있다면 세상천지가 다 얘깃거리라는 것이다. 그는 서울시 소상공인지원센터 창업강좌도 맡고 있다. 다른 강사들은 유동 인구나 주민의 생활수준 같은 것을 분석해서 강연하지만 김씨는 발로 뛴 결과를 얘기한다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강연 준비를 위해 책을 많이 읽느냐고 묻자, 그는 곧바로 “책은 안 본다”고 했다. “제가 잭 웰치나 피터 드러커 얘기를 주워섬긴다고 누가 고개를 끄덕이겠어요. 많이 배워 머리가 굵어진 분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걸 보여드려야죠. 지식 대신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캐낸 지혜를 얻어가고 싶은 게 제 강연 소비자들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신정아 교수의 학력 위조 파문 등 ‘가짜’에 대해 비판의 날을 곤두세운 요즘이다. ‘가짜 인생’과 무관할 수 없는 김씨다. 그는 2003년 고향 후배의 이름인 ‘조태훈’을 사용하며 ‘2중 생활’을 한 혐의로 입건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배달원으로 가게를 옮겨다니느라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지 못해 주민등록이 말소됐어요. 방송 출연료를 받을 통장이 필요했는데 ‘민증’이 없잖아요. 가게에 있던 고향 후배 것에 내 사진을 올려놓고 복사한 뒤 은행 가서 통장을 만들었죠. 해명할 기회는 있었어요. 하려고도 했고. 근데, 일단 뜨고 나니까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입을 다물고 7년이 지났고, 결국 올 것이 왔어요. 학력 위조 파문도. 세상은 그 사람에게 재능을 원하는데 스스로 ‘포장지’까지 갖추려다 나오는 것 아닐까요. 다 욕심 때문이죠.” 이야기 도중 ‘고교 2년 중퇴’로 알려진 그의 학력 얘기가 나왔다. 김씨는 “아닌데” 하더니 “정확히는 고등공민학교 2년 중퇴”라며 “중학교 2학년 다니다 그만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정정했다.

김씨가 번개로 알려진 것은 ‘주문 전화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남달랐던 스피드 때문이다. 그는 “사실 ‘거품’이 조금 있다”며 웃었다. “당시 고려대 후문 근처에 있던 설성반점에서 정경대나 문과대, 학생회관은 오토바이로 쏘면 한 1분도 안 걸리거든요. 거길 집중적으로 노렸죠. 법대나 사범대, 경영대는 빨라야 4~5분, 공대나 의대는 10분 정도 걸리거든요. 가끔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실력발휘를 하고 입소문을 노렸죠.”

그의 지갑에는 만원짜리 석 장과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박힌 주민등록증, 1종 보통 운전면허증, 은행 체크카드와 도서회원카드가 있었다. 신용카드는 없었다. “미리 당겨 쓰지 않고, 있는 수준에서 맞춰 사는 것! 그게 제 생활에 맞아요.” 그는 ‘철가방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창 돈 많이 벌 때도 강남 가서 술 먹어본 적 없습니다. 아는 분이 쓰라고 준 구닥다리 크레도스 차가 있는데 웬만큼 바쁘지 않으면 놔두고 다닙니다. 요즘도 시간나면 외삼촌 음식점에서 홀서빙 보고 배달 다니고, 주변 분이 운영하는 공장에 나가서 화장품 박스 포장일도 하죠. 잔업까지 하면 일당4만원이 나오거든요.”

김씨는 ‘번개의 인생:2막 2장’을 가제(假題)로 원고지 1000여장 분량의 글을 써 놓았다고 했다. “스타 강사로 뜨고 난 뒤 추락의 아픔을 극복하는 속 얘기라며, 부족한 부분이 많아 출간은 미루고 있다”고 했다. “출세는 했던 것 같은데, 성공은 아직인 것 같습니다. 성공하면 대안 학교를 하나 세워 못 배운 한을 풀고 싶은데, 잘 될까요?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