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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입의 비교

AziMong 2008. 4. 23. 23:54
남자는 입이 하나밖에 없지만 여자는 입이 둘이라.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많다
그러면 하나하나 따져보자

그 하나는 있는 곳이 위에 있어 상구(상구)요
아래에 있어 하구며

그 둘은 째진 모양애따라 위의 것은 옆으로 째져 횡개요
아래 것은 위아래로 째져 종구요

그 셋은 주변환경이 위의 것은 털이 없어 무모요
아래 것은 털이 있어 유모이며

그 넷은 위의 것은 입술이 둘이니 양순이요,
아래 것은 소음순 대음순 등 너덜거리는 것이 많으니 다순이요

그 다섯은 입 속으로 살짝 들어가니 위의 입은 이빨이 있어 유치요,
아래의 것은 이빨이 없으니 무치이고

그 여섯은 입속에 길고 커다른 혀가 있어 장설이요,
아래 입에는 콩만큼한 감씨가 있어 단설이요

그 일곱은 위의 입은 물을 마시니 음수요,
아래 입은 오줌을 내 놓으니 토수요.

그 여덟은 그 먹는 것을 보니 위의 입은 아무 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으니 잡식성이 분명한데
아래 입은 고기만 가려 먹으니 육식성이 분명하며,

그 아홉은 위의 것은 소리를 스스로 내니 유성이요,
아래 것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못하니 무성이고,

그 열은 위의 것은 즐거우면 크게 벌리고 웃으니 락개요,
아래의 것은 즐거우면 그것이 꽉조여지니 락폐가 분명하다
 

 

조선시대의 예술 "춘화(春畵)" / 춘화로 보는 성이야기

얼마 전 모 여성지가 별책 부록에 조선시대의 춘화를 원본 그대로 게재했다.
‘에로틱 스타일, 에로틱 섹스’ 라는 제목이 달린 이 부 록엔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가들이 담아낸 ‘진한’ 성풍속도 10점이 실렸다.
여기에 현대미술계의 거장 피카소가 그린 춘화까지 최근 선보여 그 어느 때보다 춘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이에 따른 논쟁이 일고 있다.

여성지에 게재된 춘화들은 모자이크 처리없이 남녀의 은밀한 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대 부분이다. 심지어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 남녀 두 쌍이 각각 그룹섹스를 벌이는 그림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 춘화의 역사가 시작된 건 조선시대다.
조선시대 관리나 역관들이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몰래 갖고 들어온것이 춘화 의 주된 유통경로다.
당시 북경의 책방에서는 우리나라 사신들이 책 을 고르는 척하면서 미적미적 시간을 때우면 은밀히 소맷자락을 끌 어당겨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춘화를 내밀었다고 한다.
밀수된 춘화는 사대부를 포함한 양반사회에 빠른 속도로 널리 퍼졌고, 그 영향으로 화가들이 춘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춘화는 흔히 포르노그라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물화나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옛사람들의 문화나 질병까지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얼굴에 담긴 반점이나 낯빛으로 춘화의 모델들이 어떤 질병에 걸렸 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춘화를 단순히 포로노물이라고 죄악시하고 단죄하기보다는 옛 조상들의 성문화를 엿보는 역사자료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도 한 번쯤 시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조선시대 춘화의 성격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하다는 점이다.
우수한 조선시대 춘화의 어디에도 변태적이거나 부조화적인 성은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성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된다.

모든 춘화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원 김홍도의 도장이 있는 춘화첩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자연 경물에 음양적 성격을 부여해놓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한국 춘화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예이며, 그것은 바로 도교적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춘화의 성격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하다는 점이다.
우수한 조선시대 춘화의 어디에도 변태적이거나 부조화적인 성은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성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된다.

모든 춘화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원 김홍도의 도장이 있는 춘화첩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자연 경물에 음양적 성격을 부여해놓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한국 춘화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예이며, 그것은 바로 도교적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원의 ‘월하연인(月下戀人)’을 보자.
달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방사(房事)가 아닌 야외 정사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는 운치 있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실제 손으로 벌거벗은 두 남녀를 가리고 보면 아름다운 밤 풍경일밖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경의 정물들도 이 그림의 주제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그림이다.




단원의 ‘월하연인(月下戀人)’을 보자.
달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방사(房事)가 아닌 야외 정사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는 운치 있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실제 손으로 벌거벗은 두 남녀를 가리고 보면 아름다운 밤 풍경일밖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경의 정물들도 이 그림의 주제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그림이다.




스님과 여염집 여인의 정사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아들을 못 낳는 일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깊은 산중으로 부처를 찾아가 백일 치성을 드리고 수태, 대를 잇는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다.
결혼 10년이 넘도록 애를 갖지 못한 여성이 백일 치성으로 아이를 얻는 기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성이 백일 치성을 드리는 동안 이 여성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스님뿐이다.
불공을 드리면서 정담도 나눌 수 있다.
깊은 산속 절간에서의 이들의 만남은 큰 인연이다.
100일은 길다면 긴 시간이다.

배란기를 맞춘 마지막 치성. 탑돌이로 여성의 정신을 뺏는다.
두 손을 모으고 오직 아들 낳기만을 빌면서 수십, 수백 바퀴를 돌고나면 핑하고 어지럼증이 온다.
기를 쓰고 몇 바퀴를 더 돌지만 탑이 있는 절 마당에 쓰러지기 마련이다.
여인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스님의 손에 의해 인기척이 없는 절 방으로 옮겨진다.
이윽고 애를 얻기 위한 숭고한 작업이 시작된다.

여인은 비몽사몽간에 무언가를 느끼고 있지만 노골적인 몸짓은 할 수없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스님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일….
이 긴장감이 출렁이는 순간, 가만히 발을 밀치고 아무도 보아서는 안되는 장면을 동자승이 훔쳐본다.
이것이 ‘스님의 밀교(密交)’를 그려낸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춘화는 스님과 여인의 표정보다도 동자승의 훔쳐보기가 압권이다.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 경관뿐 아니라, 행위가 벌어지는 주변의 경물도 의미 없이 등장하는 법은 없다.
절구와 절굿공이가 있는가 하면, 참새나 개의 교미 장면을 살짝 곁들임으로써 강하게 암시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된다.
‘스님의 밀교’에서 동자승처럼 하녀나 시동이 남녀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그림 보는 재미를 돋워준다.

조선시대 춘화가 외설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춘화는 성 유희 장면을 담고 묘사하면서도 그 장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당대 사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한량과 기생의 관계 같은 것을 묘사한 일반 풍속화로 여겨지는 것이다.
초롱을 들고 기생집을 찾아온 한량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장죽을 물고 누워 있는 기녀에게로 달려간다.
성급히 달려가는 한량의 몸짓도 우습지만 한량의 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반라로 누워 있는 기생의 표정 또한 재미있다.

속고쟁이가 없이 겉치마만 걷어 올려 당장이라도 일을 치를 수 있게 준비를 완료한 기녀의 속셈은 어떤 걸까….
님 오시기만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등불을 들고 오면서 기녀와의 이런저런 정사를 생각했을 한량의 다급함은 얼른 이해가 되지만 좀처럼 기녀의 담뱃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
기녀도 담배를 피우면서 님 오시기를 학수고대했다는 해설이 가능할것 같다.






하지만 18세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나 풍속화가 이룩한 독자성과 마찬가지로 춘화 역시 중국 것과 다른 조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춘화는 중국 춘화의 도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조선의 성풍속을 짙게 반영하고 있어 회화적인 가치를 지닌 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풍속화로 엿보는 선조들의 성 ◈


예술 작품으로 감상바랍니다
그림은 김홍도/최우석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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