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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25명 자살한 죽음 부르는 일터
시사IN | 파리·최현아 해외편집위원 | 입력 2009.10.24 10:53
지난 9월28일, 24번째 프랑스 텔레콤 직원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10월14일에는 마르세유에 거주하는 50대 중반의 프랑스 텔레콤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맸다. 그는 자살 시도 전 주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이를 알렸다고 한다. 다행히 소방관들이 그를 구해내 죽음을 막았다. 그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는 7월14일 자신과 가까웠던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자살로 인한 심리적 충격 때문이다. 그리고 10월15일 25번째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테제베(고속전철)·요리·프랑스 텔레콤은 프랑스인의 자부심이었다. 특히 프랑스 텔레콤은 공공 서비스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민영화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최근 직원 2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비극의 근원지가 된 것이다.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자살 도미노 현상은 민영화 13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2008년 2월부터 시작된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자살 현상은 프랑스 도처에서 일어났다. 스트라스부르의 기술팀에서 일하던 마크 씨는 자살 전 동료에게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기술팀에 근무하던 장 미셸 씨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 자신이 오랫동안 담당하던 위성통신 업무에서 판매 업무로의 전환이 직접 원인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되풀이하는 두 단어, 발전과 적용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근무하는 42세의 간부인 소피 씨 역시 더 이상 회사 근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죽음을 선택했다.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잇단 자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프랑스 텔레콤 측에서는 직원들의 자살 이유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려 시도했지만 그러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프랑스 정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텔레콤 내 자살 도미노 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정부는 경영진에게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회사 대표인 디디에 롬바르드를 소환하기도 했다.
통신회사 선두주자인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연속 자살이라는 비극적 드라마는 왜 일어났을까? 휴대전화·인터넷의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직원 3분의 2가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프랑스 텔레콤에서 왜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선택했을까?
이 문제의 해답은 이반 디 호아 기자가 최근 출판한 < 오랑주 스트레스 > 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랑주(Orange)는 프랑스 텔레콤의 브랜드 이름이다. 이 책은 2007년부터 노동조합들이 설립한 '스트레스에 대한 관찰' 협회 회원들의 인터뷰에 기초해 작성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프랑스 텔레콤의 시스템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매니지먼트에 대해 설명한다.
프랑스 텔레콤은 국영 전신 전화국이었다. 그러나 통신 시장에서의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민영화가 결정되었다. 1996년부터 민영화는 본격화한다. 민영화는 프랑스 텔레콤 내부에 오랫동안 스며 있던 공공 서비스 문화를 폭력적으로 포기하게 했다. 나아가 기업 이윤을 목표로 조직을 운영한다. 이때부터 직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영화 후 가장 큰 변화를 감당해야 했던 진영은 기술팀이었다. 이들은 1975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일반 전화 설치에 참여했던 세대로, 자신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나 자부심은 민영화와 함께 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명예퇴직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회사는 명퇴와 그 대가로 15개월에서 30개월치 월급을 제안했다.
비인간적인 조직 문화가 비극 불러
명퇴의 칼바람에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업무가 부과되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기술진 13%는 상업과 정보 쪽으로 업무가 전환되었다. 또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기술진의 반 이상이 완전히 업무를 바꾸었다. 당시 사장이던 미셀 봉의 말은 모든 것을 결정했다. 결국 2008년 기술직의 12%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잦은 자리 이동을 감수해야 했다.
민영화 이후 프랑스 텔레콤의 기업 운영은 경쟁 개념을 바탕으로 기업 이윤을 상징화한 숫자에 의해 움직였다. 장년층 직원이 명퇴로 떠난 자리를 20대 계약직 직원이 채웠다. 또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조직 문화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예로 2000년부터 직원들은 27개월마다 부서 및 자리를 이동해야 하고 30개월마다 근무지를 바꾸어야 한다.
결국 비인간적인 조직 문화는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일부는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05년 4.4%가 회사를 떠났다면 2008년 15.3%가 직장을 버렸다. 회사에 남은 이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직원 한 명이 일년에 평균 한 달 동안 병가를 냈다. 프랑스 텔레콤 노조 대표인 자비에 마조르는 "직원 한 명이 일년에 20일 이상 병가를 내는 빈도는 타 기업의 두 배에 해당된다. 이것은 기업이 전체적으로 기능장애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연속 자살에 따른 파장이 커지면서 회사 대표인 디디에 롬바르드는 처음으로 노동조합과 모임을 가졌다. 회사가 직원에게 부과하는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직원의 자살을 막기 위해 인간적인 조직 운영방식을 놓고 노동조합과 의견을 나누었다.
노조 측에선 근무지 변경을 포함한 인사이동, 직장 압력, 부서 없애기 따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12만 직원의 조직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회사 측에서는 10월31일까지 강력한 인사이동 중지, 자살 현상과 관련된 250여 명 직원에 대한 관찰, 직장 내 스트레스와 관련한 노조와의 협상 개시 등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또 업무 스트레스와 관련해 전문가 100여 명을 모집해 집중 관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 텔레콤은 공공 서비스 문화의 전통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은 스스로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영화 13년의 결과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우체국 역시 민영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민영화의 비극은 어쩌면 프랑스 텔레콤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프랑스 텔레콤 디디에 롬바르드 대표.
↑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잇단 자살과 관련해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 프랑스 텔레콤 본사 정문이고 왼쪽은 프랑스 텔레콤 로고.
2008년 2월부터 시작된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자살 현상은 프랑스 도처에서 일어났다. 스트라스부르의 기술팀에서 일하던 마크 씨는 자살 전 동료에게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기술팀에 근무하던 장 미셸 씨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 자신이 오랫동안 담당하던 위성통신 업무에서 판매 업무로의 전환이 직접 원인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되풀이하는 두 단어, 발전과 적용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근무하는 42세의 간부인 소피 씨 역시 더 이상 회사 근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죽음을 선택했다.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잇단 자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프랑스 텔레콤 측에서는 직원들의 자살 이유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려 시도했지만 그러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프랑스 정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텔레콤 내 자살 도미노 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정부는 경영진에게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회사 대표인 디디에 롬바르드를 소환하기도 했다.
통신회사 선두주자인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연속 자살이라는 비극적 드라마는 왜 일어났을까? 휴대전화·인터넷의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직원 3분의 2가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프랑스 텔레콤에서 왜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선택했을까?
이 문제의 해답은 이반 디 호아 기자가 최근 출판한 < 오랑주 스트레스 > 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랑주(Orange)는 프랑스 텔레콤의 브랜드 이름이다. 이 책은 2007년부터 노동조합들이 설립한 '스트레스에 대한 관찰' 협회 회원들의 인터뷰에 기초해 작성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프랑스 텔레콤의 시스템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매니지먼트에 대해 설명한다.
프랑스 텔레콤은 국영 전신 전화국이었다. 그러나 통신 시장에서의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민영화가 결정되었다. 1996년부터 민영화는 본격화한다. 민영화는 프랑스 텔레콤 내부에 오랫동안 스며 있던 공공 서비스 문화를 폭력적으로 포기하게 했다. 나아가 기업 이윤을 목표로 조직을 운영한다. 이때부터 직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영화 후 가장 큰 변화를 감당해야 했던 진영은 기술팀이었다. 이들은 1975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일반 전화 설치에 참여했던 세대로, 자신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나 자부심은 민영화와 함께 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명예퇴직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회사는 명퇴와 그 대가로 15개월에서 30개월치 월급을 제안했다.
비인간적인 조직 문화가 비극 불러
명퇴의 칼바람에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업무가 부과되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기술진 13%는 상업과 정보 쪽으로 업무가 전환되었다. 또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기술진의 반 이상이 완전히 업무를 바꾸었다. 당시 사장이던 미셀 봉의 말은 모든 것을 결정했다. 결국 2008년 기술직의 12%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잦은 자리 이동을 감수해야 했다.
민영화 이후 프랑스 텔레콤의 기업 운영은 경쟁 개념을 바탕으로 기업 이윤을 상징화한 숫자에 의해 움직였다. 장년층 직원이 명퇴로 떠난 자리를 20대 계약직 직원이 채웠다. 또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조직 문화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예로 2000년부터 직원들은 27개월마다 부서 및 자리를 이동해야 하고 30개월마다 근무지를 바꾸어야 한다.
결국 비인간적인 조직 문화는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일부는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05년 4.4%가 회사를 떠났다면 2008년 15.3%가 직장을 버렸다. 회사에 남은 이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직원 한 명이 일년에 평균 한 달 동안 병가를 냈다. 프랑스 텔레콤 노조 대표인 자비에 마조르는 "직원 한 명이 일년에 20일 이상 병가를 내는 빈도는 타 기업의 두 배에 해당된다. 이것은 기업이 전체적으로 기능장애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연속 자살에 따른 파장이 커지면서 회사 대표인 디디에 롬바르드는 처음으로 노동조합과 모임을 가졌다. 회사가 직원에게 부과하는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직원의 자살을 막기 위해 인간적인 조직 운영방식을 놓고 노동조합과 의견을 나누었다.
노조 측에선 근무지 변경을 포함한 인사이동, 직장 압력, 부서 없애기 따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12만 직원의 조직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회사 측에서는 10월31일까지 강력한 인사이동 중지, 자살 현상과 관련된 250여 명 직원에 대한 관찰, 직장 내 스트레스와 관련한 노조와의 협상 개시 등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또 업무 스트레스와 관련해 전문가 100여 명을 모집해 집중 관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 텔레콤은 공공 서비스 문화의 전통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은 스스로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영화 13년의 결과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우체국 역시 민영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민영화의 비극은 어쩌면 프랑스 텔레콤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