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조선 중종시대 과거시험 모범답안 모음 '동책정수' 본문
"묻는다. 불교의 폐해를 논하라!"
조선 중종시대 과거시험 모범답안 모음 '동책정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 중종 26년(1531)에 치른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서 이런 시험문제가 출제됐다.
"불교의 무리가 해(害)가 된 지는 오래다.…어떤 사람은 '기필코 옛날처럼 중들은 죽이고 절을 헐어버리고 수색하고 단속해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제왕의 정치에 부합하겠는가?"
이에 수험생 조희윤(趙希尹)은 이런 문구가 들어간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했다.
"세금에서 도망치는 길도 불교에 있고, 부역을 피하는 길도 불교에 있어 서로 거느리고 방외(方外. 이 세상 밖)의 가르침에 투신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들 본연의 마음이겠습니까? …어찌하여 오랑캐의 가르침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승려의 무리가 번성하여 무리를 짓고 산속으로 도망쳐 절이 없는 산이 없게 되었습니까? 하는 일도 없이 놀거나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우리 백성의 재물을 좀먹을 뿐만 아니라 산속에 출몰하여 방자하게 독을 품고, 심지어는 무덤을 파내고 집에 불을 사르는 참혹함이 있기에 이르렀으니, 백성의 해악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중종 35년(1540) 실시된 별시문과(別試文科)에서는 "황제(黃帝)가 공동산에서 물었다는 도는 어떤 것인가? 그 술법을 얻어 장생구시(長生久視)한 이는 누구인가?" 등을 거론하면서 신선술(神仙術)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대답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정응(鄭응<雁 밑에 言>)이라는 수험생은 "(사람으로서) 어찌 천지(天地)와 함께 하고 만고(萬古)를 뛰어넘어 혼자 존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는, 신선이 되고자 그렇게 열망했던 진 시황제와 한 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유(韓愈)와 설거정(薛居正) 같은 고아한 유학자 조차도 신선술을 한 번 시험했다가 그 일신을 망친 일을 거론하면서 신선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시국과 관련한 각종 현안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라는 시험지를 책문(策問)이라 하며, 그에 대한 답변서를 대책문(對策問)이라 한다. 현재 주어진 자료에 의거할 때, 이런 전통은 한 무제(漢武帝) 유철(劉徹)에게서 비롯된다.
그것이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그대로 전해져 그 중 하나인 제술(製述)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채택됐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권경상)에는 '동책정수'(東策精粹)라는 제목의 고서 1종이 소장돼 있다.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발행시기나 찬자는 알 수 없으나, 목활자로 찍어낸 상하 2권인 이 책에는 중종 6년(1511)부터 명종 1년(1546)에 이르기까지 36년 동안 실시된 각종 과거시험의 책문과 대책문을 정리해 놓았다.
책문과 그에 해당하는 대책문은 도합 20종. 이 중 중종 6년(1511)에 실시된 별시문과(別試文科)와 2년 뒤인 중종 8년(1513)에 실시된 같은 별시문과 시험에서는 주제가 모두 술(酒)이 가져오는 재앙이었다. 말하자면 기출문제가 다시 출제된 셈이다.
책문과 대책문이 다룬 다른 주제들을 보면, ▲3년상 ▲관혼상제 ▲문자(文字)의 유래 ▲생재(生財)와 이재(理財)의 비교 ▲중국사 저명한 인물들의 비교논평 ▲법의 효용 ▲조선과 명의 관제(官制) 불일치 문제 ▲성인들의 신비한 출생담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책문에 대한 답변서를 잘 써야 합격될 수 있고, 또 그것을 발판으로 관리로 출세할 수 있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이런 글들을 모은 '동책정수'라는 제목에서 동(東)은 중국에 견준 조선, 책(策)은 책문과 대책문, 정수는 그것들을 추린 에센스라는 말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동책정수'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험교재로 편찬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앙도서관의 발주로 이 책을 번역하고 해설한 이정섭(李廷燮) 국립고궁박물관 자문위원 지적처럼 16세기 조선왕조가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자료도 된다.
예컨대 불교의 폐해를 논하라는 책문에 대한 대책문을 검토해 보면, 조선왕조가 두려워한 것은 불교의 교리가 아니라, 실은 탈세와 병역기피 였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이런 지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교와 사찰이야말로 가중한 세금과 병역에 시달리는 이른바 힘없는 민중들에게는 최후의 피난처요 도피처(asylum)였음을 읽을 수 있다.
현재까지는 국내 유일본인 이 '동책정수'가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하는 '한국고전국역총서' 시리즈 두 번째 성과물로 최근 선보였다. 해당 원전을 모조리 영인해 첨부했는데, 무엇보다 도판 상태가 선명해 좋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 중종 26년(1531)에 치른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서 이런 시험문제가 출제됐다.
"불교의 무리가 해(害)가 된 지는 오래다.…어떤 사람은 '기필코 옛날처럼 중들은 죽이고 절을 헐어버리고 수색하고 단속해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제왕의 정치에 부합하겠는가?"
이에 수험생 조희윤(趙希尹)은 이런 문구가 들어간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했다.
"세금에서 도망치는 길도 불교에 있고, 부역을 피하는 길도 불교에 있어 서로 거느리고 방외(方外. 이 세상 밖)의 가르침에 투신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들 본연의 마음이겠습니까? …어찌하여 오랑캐의 가르침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승려의 무리가 번성하여 무리를 짓고 산속으로 도망쳐 절이 없는 산이 없게 되었습니까? 하는 일도 없이 놀거나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우리 백성의 재물을 좀먹을 뿐만 아니라 산속에 출몰하여 방자하게 독을 품고, 심지어는 무덤을 파내고 집에 불을 사르는 참혹함이 있기에 이르렀으니, 백성의 해악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중종 35년(1540) 실시된 별시문과(別試文科)에서는 "황제(黃帝)가 공동산에서 물었다는 도는 어떤 것인가? 그 술법을 얻어 장생구시(長生久視)한 이는 누구인가?" 등을 거론하면서 신선술(神仙術)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대답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정응(鄭응<雁 밑에 言>)이라는 수험생은 "(사람으로서) 어찌 천지(天地)와 함께 하고 만고(萬古)를 뛰어넘어 혼자 존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는, 신선이 되고자 그렇게 열망했던 진 시황제와 한 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유(韓愈)와 설거정(薛居正) 같은 고아한 유학자 조차도 신선술을 한 번 시험했다가 그 일신을 망친 일을 거론하면서 신선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시국과 관련한 각종 현안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라는 시험지를 책문(策問)이라 하며, 그에 대한 답변서를 대책문(對策問)이라 한다. 현재 주어진 자료에 의거할 때, 이런 전통은 한 무제(漢武帝) 유철(劉徹)에게서 비롯된다.
그것이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그대로 전해져 그 중 하나인 제술(製述)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채택됐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권경상)에는 '동책정수'(東策精粹)라는 제목의 고서 1종이 소장돼 있다.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발행시기나 찬자는 알 수 없으나, 목활자로 찍어낸 상하 2권인 이 책에는 중종 6년(1511)부터 명종 1년(1546)에 이르기까지 36년 동안 실시된 각종 과거시험의 책문과 대책문을 정리해 놓았다.
책문과 그에 해당하는 대책문은 도합 20종. 이 중 중종 6년(1511)에 실시된 별시문과(別試文科)와 2년 뒤인 중종 8년(1513)에 실시된 같은 별시문과 시험에서는 주제가 모두 술(酒)이 가져오는 재앙이었다. 말하자면 기출문제가 다시 출제된 셈이다.
책문과 대책문이 다룬 다른 주제들을 보면, ▲3년상 ▲관혼상제 ▲문자(文字)의 유래 ▲생재(生財)와 이재(理財)의 비교 ▲중국사 저명한 인물들의 비교논평 ▲법의 효용 ▲조선과 명의 관제(官制) 불일치 문제 ▲성인들의 신비한 출생담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책문에 대한 답변서를 잘 써야 합격될 수 있고, 또 그것을 발판으로 관리로 출세할 수 있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이런 글들을 모은 '동책정수'라는 제목에서 동(東)은 중국에 견준 조선, 책(策)은 책문과 대책문, 정수는 그것들을 추린 에센스라는 말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동책정수'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험교재로 편찬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앙도서관의 발주로 이 책을 번역하고 해설한 이정섭(李廷燮) 국립고궁박물관 자문위원 지적처럼 16세기 조선왕조가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자료도 된다.
예컨대 불교의 폐해를 논하라는 책문에 대한 대책문을 검토해 보면, 조선왕조가 두려워한 것은 불교의 교리가 아니라, 실은 탈세와 병역기피 였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이런 지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교와 사찰이야말로 가중한 세금과 병역에 시달리는 이른바 힘없는 민중들에게는 최후의 피난처요 도피처(asylum)였음을 읽을 수 있다.
현재까지는 국내 유일본인 이 '동책정수'가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하는 '한국고전국역총서' 시리즈 두 번째 성과물로 최근 선보였다. 해당 원전을 모조리 영인해 첨부했는데, 무엇보다 도판 상태가 선명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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