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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적 경청에 관한 주요주장

AziMong 2007. 6. 15. 06:16

나는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데 어떤 영문인지 물고기는 지렁이를 더 좋아한다. 나는 물고기 앞에는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매달지 않고 지렁이나 메뚜기를 매달아 놓고 "자, 맛있게 먹어라." 라고 말한다. 세상사람 모두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성공의 유일한 비결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당신의 입장과 아울러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는 것은 공감적 경청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광고회사가 고객에게 보낸 공문이다. 상대방과 공감적 경청 없이 일방적으로 한 말이다. 광고회사가 고객과 공감적 경청을 했다면 알 수 있는 부분은 ( )괄호 속에 있는 말이다. ( )속의 말들을 보면 공감적 경청이 없다면 얼마나 겉도는 비효율적인 대화가 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저희 회사는 리디오 분야에서 선도적인 광고 대행사의 위치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회사가 바라는 게 무엇이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 나는 내 문제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우리 집은 은행에 저당 잡히고, 마누라와 아이들은 가출하고 병을 도졌고, 먹을 것은 떨어졌단 말이야.)

우리 회사의 전국 광구 구좌는 현저하여 언제나 업계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고 시간을 집계해 보더라도 매년 정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회사가 얼마나 막강한 가가 나에게 무슨 문제란 말이야? 당신의 엄청난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진단 말이오.)

우리는 최신의 라디오 방송 정보를 가지고 우리의 고객에게 서비스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뭘 바라든지 내가 알바 아니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내가 바라는 일에 대해서란 말이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관계에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듣기에 대해서는 거의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커뮤니케이션 훈련은 성격과 기교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반드시 내적 성품에 바탕을 둔 공감하며 경청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당신이 나의 독특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내게 어떻게 충고하고 조언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이 좋고 훌륭한 것일지 몰라도 나의 생활에 꼭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사람들은 대답할 의도를 가지고 듣고 있다. 듣지만 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심어 주고자 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다룬 영화를 계속 투사해준다. 자신의 안경을 쓰라고 처방해주고 있는 셈이다.

"예, 당신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압니다.""나도 똑 같은 일을 경험했어요. 자, 내 얘기를 들어봐요."

공감적 경청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공감은 동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감정적으로는 물론 지적으로 완전하고 깊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토사하고 생각, 느낌, 동기, 해석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내부에 어떤 실체가 들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은 감정은행계좌에 막대한 예입을 시켜주는 비결이 된다. 이것을 또 상대방에게 "심리적 공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상당한 치료효과도 가지고 있다.
"저는 정말로 그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내용을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이 우려하는 것, 또 그가 예상하고 있던 결과에 대해 더 많이 파악하고 더 정확하게 표현할수록 그는 마음을 더욱 활짝 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아들의 고민에 아버지가 공감적 경청을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고 있은 경우이다.
아버지가 공감적 경청 반응을 함에 따라 아들은 아버지를 대화를 상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마음을 떨어 놓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아버지가 처음부터 거부, 명령의 자세로 나왔다면 대화를 곧 끝나고 말았을 것이고 아버지는 아들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을 것이다.

-아빠 난 지쳤어요.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해요.(난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어요.)
-너 정말로 학교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구나.(됐어요. 그게 바로 내가 느끼는 거예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해요. 학교는 도대체 실용적이지 않다고요. 난 거기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너는 학교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구나.(자. 생각해보자. 이게 내가 말하려는 것인가?)
-그럼요, 나는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조를 보세요. 그 애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어요. 돈도 벌고 있어요. 그게 실용적인 거예요.
-너는 조가 정말로 잘 생각했다고 여기는구나.(글쎄)
-아마 자기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될 게 확실해요.
-너는 조가 잘 못 결정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요, 그가 포기해버린 것이 뭔가를 보세요. 제 예기는 만일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교육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지.

 

아내가 남편에게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은 남편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남자라는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존 그래이 박사의 주장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느끼는 불만은 그가(남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여자가 상심해 있을 때 남자는 여자가 느끼는 문제의 중요성을 극소화하는 말을 함으로써 위로보다는 오히려 더욱 화나게 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말을 꺼내자 말자 해결책을 제시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썽을 부리고 야단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 이젠 피곤하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여자들이 자기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남자들은 자꾸만 해결책을 제시하고 강의를 하려든다는 것이다
나의 우울한 기분을 간단히 무시하거나 나의 말을 막고 급조한 해결책을 강요한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조목조목 자기가 왜 옳은지 열거하기 시작할 때 정말 싫어요.
남자들은 나보다 신문을 좋아해요.
"당신 눈에는 신문밖에 안 보이죠"
여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도래하고 있는 탈권위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과 같은 대중사회에서는 더 이상 행동과 실행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말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되었다. 정치인의 경우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연설기회를 통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지 못하면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교사나 교수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이를 전달하는 방법이 미숙하면 무능한 선생이 되고, 학생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토론이나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학생"이 되고 만다. 직장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회의나 프리젠테이션에서 주눅이 들어 더듬거리게 되면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말을 다루는 능력 즉 스피치 능력이다. 우선, 매스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매스 미디어와 컴퓨터가 결합된 멀티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은 안방에 앉아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 간의 개별적 접촉은 더욱 더 어들게 되어 타인에 대한 판단은
미디어를 통하여 전달되는 그 사람의 말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이나 대학교수가 방송에 출연하여 대담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실제 정치행적이나 연구업적보다는 그 사람의 발표력에 기초하여 "똑똑한" 사람이니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니 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매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에도 말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스피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전달되는 정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 사람의 능력은 평가절하된다. 이러한 현상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또는 회사원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동료나 고객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상대는 당연히 제공되는 정보의 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서는 발표자의 능력까지도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발표력이 뛰어난 경우에는 정보 자체도 효과적으로 전달될 뿐더러 발표자에 대한 신뢰도 높아져서 결국 발표자의 능력 자체를 높히 평가하게 된다. 말하자면, 스피치 능력이 그 사람의 전반적인 능력을 대표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