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어.심벌 본문
-조선왕조 최고의 섹스심벌 어우동은 효령대군의 손주며느리였다
요즈음 결혼하지 않은 남성들에게 장래 신부감으로 어떤 여성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심심치않게 신사임당의 지성과 어우동의 감성(야성)을 겸비한 그런 여성을 원한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한다.
그 만큼 정신적으로는 사임당을, 육체적으로는 어우동을 닮은 여성을 이상형으로 원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이야기 이다.
물론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여성을 바라는 남성들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일 것이다. 바로 여기 등장하는 제3공화국의 정인숙과 닮은 꼴,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인 어우동, 그는 누구였을까?
어우동은 성종조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나서 종실 명문인 태강수 동에게 출가를 하였으므로,외명부의 품계인 정4품 혜인(惠人)으로 봉작되었다. 원래 어우동의 이름은 책마다 다른데.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송계만록]과 [대동시선]에는 어우동이라 나온다.
어우동의 시댁(종실)은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바로 위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며느리였다. 어우동은 물불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는 즉시 그 자리에서 본능적인 행동을 하였고, 특히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촌 시아주버니가 되는 수산수 기(守山守 驥)-(정종의 고손자)와 간통을 하였고, 다시 육촌 시아주버니인 방산수 난(方山守 蘭)-(세종대왕의 손자)-와 통정을 하였으니, 그녀의 육체적 본능은 활화산 같았던 모양이다.
또한 그녀는 관계한 남자 가운데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팔뚝이나 몸에 먹물로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했다. 이리하여 전의감 생도였던 박강창은 팔뚝에 어우동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게 되었고, 서리 감의동은 등판에다가 이름을 새겨 넣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어우동과 관련된 인사는-3공때의 정인숙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아전인 오종연도 끼어 있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유가길에 올랐던 홍찬은 그녀로 인해 신세를 망친 사내중의 한명이 되었다. 어우동에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번좌라는 딸이 하나있었다고 한다(정인숙이 낳은 아들도 아버지가 밝혀지지 않음) .
하지만 긴 꼬리는 밟히는법, 수많은 실적(?)을 올린 어우동은 도승지 김계창의 줄기찬 탄핵으로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의금부의 문초과정에서 드러난 고위관리 등이 한결같이 어우동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나섰다.
역시 정인숙사건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인숙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에서는 웃지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육박전'이 일어난 것이다. 육영수 여사에 '육'자와 박정희대통령의 '박'자가 합쳐져서 일어난 대통령 부부의 말다툼을 지칭한 것이다.
당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일권 국무총리,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 군장성,다섯개 재벌그룹회장, 장관, 국회의원 등 27명이 연루되었다.
정인숙에게 걸린 남성들은 웬만하면 도망쳐야 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박정의 공화국의 요정정치가 빚어낸 전국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섹스가 뭐길래....
어우동은 결국 왕실과 관계되어 있고,많은 신료들이 연루되어 있는지라 시끄럽고 창피한 일로 치부되어 더 빨리 처형(교수형)을 당했던 것이다.
마치 정인숙이 자기의 오빠에게 총살당했던 것처럼...어우동과 정인숙 그들은 친구였다. 역사의 닮은 꼴이라는 관점에서...
요즈음 결혼하지 않은 남성들에게 장래 신부감으로 어떤 여성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심심치않게 신사임당의 지성과 어우동의 감성(야성)을 겸비한 그런 여성을 원한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한다.
그 만큼 정신적으로는 사임당을, 육체적으로는 어우동을 닮은 여성을 이상형으로 원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이야기 이다.
물론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여성을 바라는 남성들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일 것이다. 바로 여기 등장하는 제3공화국의 정인숙과 닮은 꼴,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인 어우동, 그는 누구였을까?
어우동은 성종조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나서 종실 명문인 태강수 동에게 출가를 하였으므로,외명부의 품계인 정4품 혜인(惠人)으로 봉작되었다. 원래 어우동의 이름은 책마다 다른데.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송계만록]과 [대동시선]에는 어우동이라 나온다.
어우동의 시댁(종실)은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바로 위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며느리였다. 어우동은 물불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는 즉시 그 자리에서 본능적인 행동을 하였고, 특히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촌 시아주버니가 되는 수산수 기(守山守 驥)-(정종의 고손자)와 간통을 하였고, 다시 육촌 시아주버니인 방산수 난(方山守 蘭)-(세종대왕의 손자)-와 통정을 하였으니, 그녀의 육체적 본능은 활화산 같았던 모양이다.
또한 그녀는 관계한 남자 가운데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팔뚝이나 몸에 먹물로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했다. 이리하여 전의감 생도였던 박강창은 팔뚝에 어우동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게 되었고, 서리 감의동은 등판에다가 이름을 새겨 넣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어우동과 관련된 인사는-3공때의 정인숙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아전인 오종연도 끼어 있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유가길에 올랐던 홍찬은 그녀로 인해 신세를 망친 사내중의 한명이 되었다. 어우동에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번좌라는 딸이 하나있었다고 한다(정인숙이 낳은 아들도 아버지가 밝혀지지 않음) .
하지만 긴 꼬리는 밟히는법, 수많은 실적(?)을 올린 어우동은 도승지 김계창의 줄기찬 탄핵으로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의금부의 문초과정에서 드러난 고위관리 등이 한결같이 어우동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나섰다.
역시 정인숙사건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인숙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에서는 웃지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육박전'이 일어난 것이다. 육영수 여사에 '육'자와 박정희대통령의 '박'자가 합쳐져서 일어난 대통령 부부의 말다툼을 지칭한 것이다.
당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일권 국무총리,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 군장성,다섯개 재벌그룹회장, 장관, 국회의원 등 27명이 연루되었다.
정인숙에게 걸린 남성들은 웬만하면 도망쳐야 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박정의 공화국의 요정정치가 빚어낸 전국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섹스가 뭐길래....
어우동은 결국 왕실과 관계되어 있고,많은 신료들이 연루되어 있는지라 시끄럽고 창피한 일로 치부되어 더 빨리 처형(교수형)을 당했던 것이다.
마치 정인숙이 자기의 오빠에게 총살당했던 것처럼...어우동과 정인숙 그들은 친구였다. 역사의 닮은 꼴이라는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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