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김세환 역사 미스터리] 어우동의 죽음 본문

.....古典(고전)

[김세환 역사 미스터리] 어우동의 죽음

AziMong 2008. 4. 28. 21:48
[김세환 역사 미스터리] 어우동의 죽음
15세기 중엽 조선 성종 때가 되자 겉으로는 문화의 꽃이 피고 모든 것이 바로 잡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세조의 반정에서 비롯된 역사의 여울목에서 안으로 썩어가고 있었으며 특히 풍기문란은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우동의 스캔들이 두드러진다. 어렵사리 처형장이었던 새남터에서 어우동을 불러 세웠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남자를 밝히는 여자라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기록에 보면 수십명의 남자를 가리지 않고 섭렵한 것으로 나온다. 시아주버니까지 관계하였고 유생들은 물론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눈만 맞으면 정을 통했다.
“네. 내가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남자들을 밝힌 여자는 아닙니다.”
어우동은 자신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흐느끼는 모습이 오히려 가련했다.
“그렇다면 진실을 좀 이야기해 보십시오.”
“나는 이미 아시다시피 효령대군의 손주며느리로 출가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집에 칠순 행사가 있어서 손님들이 오셨는데 그중 6촌 시아주버니인 이기라는 자가 저를 은밀하게 부르더군요. 아무도 없는 사랑채로 저를 불러서 겁간을 했습니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있는데 몇 달 뒤 8촌 시아주버니 이난이라고 하는 자가 지난번 일을 가지고 은근히 협박했어요. 그렇게 해서 마지못해 응하니까 그 다음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요. 내가 그들을 끌어들여서 잡질을 했다나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어우동은 자기가 먼저 남자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는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은 남자들의 몸에다 문신을 새겨넣었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렇게 했소?”
“아,그 일 말입니까? 남자들은 나중에 흰소리를 할 것이 뻔하기에 마음에 정표를 새겨두자고 하니 모두 그렇게 하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역시 내가 의금부에 끌려와서 문초를 받으니 그들은 한결같이 나와 관계 맺은 사실을 부인한 것입니다.”
“얄밉게 부인하니까 문신을 새겼다는 사실을 밝힌 거군요.”
“아니에요. 나와 관계한 남자들은 문신한 일을 자랑 삼아 떠들고 다녔어요. ‘정6품의 왕실 여자와 놀았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겠지요.”
수십명의 사내와 놀아난 것으로 되어 있는 어우동은 소문이 나자 참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불륜관계를 맺었다고 실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반 사회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古典(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미실  (0) 2008.04.28
영웅호색군주무치  (0) 2008.04.28
어.심벌  (0) 2008.04.28
어.스캔들  (0) 2008.04.28
역사를 알라~ 어우동  (0)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