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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신라미실

AziMong 2008. 4. 28. 21:50
미실은 한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도 고도의 스캔들을 낳은 여인이다.그녀는 아버지 미진부와 법흥왕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옥진궁주이다.그녀의 아비 미진부는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아찬의 벼슬로 있어 거칠부, 구진, 노부와 더불어 고현의 10개 성을 탈취한 공적이 있는 중급의 귀족이다.

미진부에게는 1남 1녀가 있었는데 그 중 딸 미실은 자색이 곱기로 소문이 나 진흥왕의 왕비인 지소태후의 주선으로 처음 황궁으로 입궁을 했다.지소태후에게는 '세종'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세종은 지소태후와 이사부가 서로 통정을 해서 낳은 아들이다.

아들 세종을 위해 귀족 처녀들을 고르던 중 미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녀를 들이게 되고, 세종은 단번에 미실의 자색에 빠져 그녀를 지목하게 되었다.그런데 그 때 큰 일이 벌어졌다.

평소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왕비 사도태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이는 지소태후가 박영실의 딸이기 때문이다.박영실은 일명 영실공으로 불리 우던 자인데 바로 법흥왕의 누이 보현공주의 아들이라 법흥왕과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사이였다.미실의 어미 옥진궁주는 남자를 호리는 방술에 매우 뛰어난 여자라 미실의 아버지 미진부 외에도 법흥왕과 보현공주의 아들인 영실공과 통정을 하였다.
당시 신라 사회를 따지고 본다면 무척이나 가능한 일이라 사료가 된다.왕이 여러 여자를 공식적으로 만나고 다녔 듯 신라사회의 여성들에게 정조라는 개념이 없었다.그들은 언제든지 정부들을 데리고 놀 수 있는 과감한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지소태후의 남편인 법흥왕이 죽으면서 자신의 아내인 지소태후에게 "박영실에게 개가를 하여라"라고 명령을 내렸다.박영실은 법흥왕과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던 자라 진흥왕은 그에게 자신이 사랑하던 왕비를 잘 맡아 사랑해 줄 것이라 믿고 개가를 하라고 했는데 지소태후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박영실을 계부로 맞아들이기 꺼려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의 아들 진흥왕이 사도부인을 맞아들여 왕비로 책봉을 했을 때 그녀는 박영실의 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숙명궁주를 왕비로 책봉하게 하려고 서두른다.하지만 진흥왕은 사도부인을 너무도 깊이 사랑하는 탓에 어머니 지소태후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미실은 지소태후가 미워하는 사도부인의 조카였다.당시 지소태후와 사도부인은 정치적 갈등 때문에 서로 반대의 입장에 선 인물들이었는데 지소태후는 시어머니라는 점을 이용해 사도부인을 끊임없이 옥죄어 왔다.

졸지에 지소태후에게서 버림받은 미실은 그 후 사다함이라는 화랑의 풍월주를 만나게 되는데 역시 미실은 어머니 옥진궁주에게 배운 방술로 사다함을 녹이게 되었고, 미실 역시 사다함의 남자다운 모습에 반해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당시 신라는 가야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터였는데 화랑의 풍월주로서 전쟁에 나가봐야 하는 입장이라 사다함은 눈물로 미실을 내버려두고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하루하루 사다함을 기다리고 있던 중 미실을 잊지 못하는 지소태후의 아들 세종이 상사병이 크게나 죽을 고비에 이르자 아들을 살리려는 지소태후는 하는 수 없이 미실을 다시 입궁 시키기로 하는데 남편 사다함을 전쟁터로 놔두고 어찌 세종에게 다시 갈 수 있겠느냐며 완강하게 버티던 중 가야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사다함의 사망소식이 들려와 다시 세종에게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미실이 다시 오자 세종의 상사병은 완치가 되었고, 그 때 사망한 줄 알았던 사다함이 돌아와 미실을 찾았지만 미실은 세종의 아내가 되어버려 사다함이 그 충격으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미실이 세종의 아이를 임신 할 무렵 미실의 꿈에서 사다함이 나타나 "너와 맺어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너의 뱃속의 아들로 태어나고 말겠다"라고 말하여 하종이 태어났는데 하종은 세종보다는 사다함을 더욱 많이 닮아 있어 세상 사람들은 하종이 세종의 아들이 아니라 사다함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종을 낳은 미실은 그 때부터 색에 미친 미치광이가 되어 남편인 세종뿐만 아니라 진흥왕, 사도부인의 아들인 동륜과 금륜 태자, 진평왕 심지어는 자신의 친동생인 미생에게까지 그 손을 뻗치게 되는데 워낙 색사가 뛰어난 여자이다 보니 남자들이 어찌 할 수 없었다.

사도왕후는 미실에게 "내 아들 동륜 태자와 합하여 아들만 얻게 해준다면 동륜이 즉위를 했을 때 너를 정식 왕비로 책봉케 할 것이다." 라는 약속을 내리고 미실은 크게 기뻐하여 동륜의 침실에 드나들었다.

그렇지만 진흥왕 역시 미실의 색사에 빠져있던 터라 그녀는 동륜을 뫼시고 있는 가운데 진흥왕도 함께 뫼시게 되었다.그녀는 갈문왕의 자손인 설원랑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남편 세종을 설득하여 자신의 정부인 설원랑을 화랑의 풍월 주에 자리에 앉히게 해달라 졸랐다.

아내 미실의 간청을 이기지 못한 세종은 풍월 주 자리에 물러나고 설원랑을 풍월 주 자리에 앉히게 된다.그녀는 진흥왕의 사랑을 미끼로 자신을 폐지된 화랑의 원화 제도를 살려 원화로 봉해달라 조르게 되고, 진흥왕은 미실의 간청대로 원화가 되어 화랑을 좌지우지하고 있던 중 화랑들의 불만이 거세지게 되었다.

미실의 뛰어난 색사를 잊지 못하던 태자 동륜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를 겁간하려고 하던 차에 보명궁을 지키는 큰 개(이 개는 진흥왕이 후궁 보명궁주를 지키려 기른 개)에게 물려 죽자 이 혐의가 미실에게 덮어씌워지게 되어 진흥왕은 불같이 진노를 하며 미실을 밖으로 내보내게 되는데 미실의 뛰어난 색사를 잊지 못한 진흥왕은 몇 일 지나지 않아 미실을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

진흥왕은 576년 지나치게 색욕으로 몸을 혹사한 나머지 성병으로 죽게 되고, 사도태후와 동생 미생과 짜고 진흥왕이 병으로 죽은 것을 비밀로 하던 중 동륜 태자의 동생인 금륜태자와 관계하여 즉위 시켜 줄 것이니 대신 자신에게 모든 권력을 바치라고 흥정을 했다.

그가 바로 진흥왕 다음에 즉위하는 진지왕이다. 하지만 진지왕은 막상 왕위에 오르자 미실과의 약속을 어기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다른 여자들을 가까이 해 미실의 노여움을 사 왕위에서 �겨나게 된다.

이렇게 신라 사회를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주무르던 미실은 문란한 성생활 덕분에 성병을 얻게 되었는데 다 죽어갈 때 즈음 그녀의 곁에 있던 사람은 정부인 설원랑이었다.

미실을 너무도 사랑한 설원랑은 매일 하늘에 대고 "미실 대신 저에게 중병을 내리게 해주소서"라고 빌었다고 한다.그 때문인지 미실은 차츰 회복세를 보이게 되었지만 대신 설원랑은 병을 이기지 못해 죽어버리게 되고, 미실은 자신의 속옷 하나를 설원랑의 관 속에 넣어 "이제 곧 나도 그대를 따라 갈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라며 며칠 후 죽었는데 그녀의 나이 58살이었다.

조선의 요부 장희빈, 장녹수, 정난정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 미실은 그들보다 대단할 정도로 권력과 애욕으로 가득 찬 여자였고, 왕후도 아니면서 나라의 권력을 한 손으로 쥐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대단한 여자임은 분명하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배경은 바로 가족적인 제도를 굳건히 한 덕분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지금으로 보면 신라라는 고대 국가는 삼국을 통일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씁쓸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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