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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 본문

.....古典(고전)

장녹수

AziMong 2008. 4. 28. 21:51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의 총희(寵姬)로서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제안대군(齊安大君:成宗의 兄)의 여종이었는데 가노(家奴)와 혼인하여 자식까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하여 연산군의 눈에 들어 입궐, 내명부(內命婦) 종4품 숙원(淑媛)에 봉해졌고 많은 금·은·노비·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다.
  왕의 총애를 기화로 국사(國事)에 간여하고 재정의 궁핍을 초래하는 등 연산군 실정(失政)의 한 원인을 만들었다. 즉, 1503년(연산군 9) 종3품 숙용(淑容)에 봉해진 뒤에는 선공감(繕工監)으로 하여금 그녀의 집을 새롭게 단장시켰으며, 1506년에는 오빠와 자녀들을 양인 신분으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척 중에서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면 형부 김효손인데, 연산군 10년 이전에는 겨우 7품 무관직인 사정(司正)을 받았을 뿐이다. 6품과 7품은 질적 차이가 있어서 7품 이하는 정치적 비중이 거의 없는 단순 행정 또는 실무직에 해당하며, 서리 출신들도 여기까지는 많이 진출했다. 그러나 연산군 10년에서 12년 사이에 김효손은 벼락승진을 해서 정3품 당상관까지 올라갔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참형을 받고 적몰(籍沒)되었다.
 
연산군 때 장녹수(張綠水)는 그 직전 성종 때 어을우동(於乙于同. 또는 어우동<於于同>)이나 세종 때 감동(甘同), 숙종대 장희빈(張禧嬪) 등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요부(妖婦)의 선두주자.

실제 이들이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져 페미니즘 운동의 원류라고까지 추켜질 수도 있겠으나 이들을 둘러싼 거의 모든 기록은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한 여인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 요부에게는 한결같은 공통분모가 있다. 뛰어난 가인(歌人)이라는 사실이다.

연산군을 녹였다는 장녹수에 대해 연산군일기 8년(1502) 11월 25일자는 이렇다.

"처음에는 집이 몹시도 가난해 몸을 팔아 생활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다. 그러다가 제안대군(齊安大君) 가노(家奴. 남자노비)의 아내가 되었다. 아들 하나를 낳은 뒤에 노래와 춤을 배워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 불렀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 들을 만했고, 나이는 서른이 되어도 얼굴은 16세 아이와 같았다. 왕(연산군)이 듣고 기뻐하며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가 날로 두터워져 녹수가 말하는 것을 왕은 모두 들어주고 숙원(淑媛. 종3품)에 봉했다."황진이(黃眞伊).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 권24에 수록된 ''성옹지소록''에 의하면,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황진이를 포함한 송도삼절(松都三絶)이란 범주는 진이(眞伊) 스스로 명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진이는 화담을 찾은 자리에서 "송도(松都. 개성)에 삼절(三絶. 세 가지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고 하니 화담이 "뭐냐"고 반문하자 "박연폭포와 선생님과 쇤네입니다"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전하면서 허균은 "비록 농담이기는 하나 그럴 듯하다"는 평을 붙이고 있다. 이 농담을 지금에 와서 우리는 사실인양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일개 기생인 진이가 화담을 비롯한 당대의 도학군자들과 당당히 ''맞짱"을 뜰 수 있었던 비결은 미모가 아니라 뛰어난 가인(歌人)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장녹수 또한 앞서 든 연산군일기 같은 날 기록에 "얼굴을 특별히 예쁘지 않았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런 아양은 견줄 데가 없었다"고 하고 있다.

남모르는 교사나 요사스런 아양에 섹솔로지(sexology)와 함께 가무가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세조실록 12년(1466) 3월 13일자에는 "농민 가운데 농가(農歌)를 잘 부르는 자를 모아 장막(帳幕)에서 노래하도록 했다. 강원도 양양(襄陽)의 관노(官奴. 관에 소속된 노비)인 동구(同仇里)가 노래를 가장 잘 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아침저녁을 먹이고 악공(樂工. 노래 장인)으로 대우해 왕의 행차를 따르게 했다."농요를 잘해 벼락출세를 했으니, 요즘 중요무형문화재 기ㆍ예능 보유자 발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연세대 국문학과 허경진 교수가 편역한 ''악인열전''(樂人列傳. 한길사)은 ''공무도하''(公無度河. 님이여 강을 넌너지 마오. 無는 毋)를 읊었다는 여옥(麗玉)을 비롯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와 관련된 대표적 음악인들의 행적을 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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