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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 빼먹으려다 ‘폐지 전쟁’

AziMong 2009. 9. 7. 06:32

벼룩의 간 빼먹으려다 ‘폐지 전쟁’

고려대 청소용역 아줌마들의 ‘용돈벌이’
관리업체서 “직접처분” 항의받자 주춤

경향신문 | 유정인기자 | 입력 2009.09.07 00:24

 




대학내에서 폐지를 수거해 팔아 밥값에 보태 쓰던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에게 시설관리 업체가 폐지를 직접 챙기겠다고 통보했다. 청소 아주머니들은 "벼룩의 간을 빼먹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고려대 폐기물 관리업체인 ㅅ사는 지난 6월 교내 청소용역 업체인 ㄱ사 앞으로 "이제부터 폐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면 고발조치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동안 청소용역원들이 자유롭게 처분해오던 폐지를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등록금 동결로 용역비가 줄어 폐지를 팔아 충당해야 한다는 게 방침 변경의 이유였다.

학교 청소 일을 맡아 온 50~70대 아주머니 200여명은 발끈했다. 아주머니들은 토요일 수당을 포함해 한 달 97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대개 새벽 4~5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마치는 일과다. 폐지는 이들의 부수입원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강의실·연구실에 나뒹구는 이면지와 신문, 종이 상자, 버려진 책을 건물 구석 창고나 지하실에 모았다. 한 달에 1번 정도 폐지 수거업체가 실어가면 1인당 2만~3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돈은 매달 3만5000원씩 지급되는 식사보조비에 보태 사용했다.

13년째 일하고 있는 방전식 할머니(68)는 "내가 맡은 건물은 종이가 적어 6개월 모아서 7만~8만원 받는데 이걸로 쌀과 반찬 사는 데 쓰곤 했다"며 "단 돈 1만원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안 쉬고 모아서 팔아왔는데 이 수입마저 업체가 빼앗아가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21년째 근무하는 최경순 할머니(70)도 "학교가 생긴 이래 103년 동안이나 해오던 폐지 수거를 이렇게 하루 아침에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총학생회도 들고 일어섰다. 학교 본부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항의 방문까지 이어지자 업체가 한 발 물러섰다. 현재는 다시 예전처럼 아주머니들이 폐지를 수거하고 있지만 업체에서 공문 내용을 완전히 취소하지 않아 긴장감은 여전하다.

시설관리업체 관계자는 "공문에 보낸 것처럼 청소용역들을 고발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상태"라고 말했다.

공공서비스노조 고려대분회 이영숙 분회장(64·여)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땀흘려 모은 작은 몫마저 다 내 놓으라는 격"이라며 "또 제지하려 한다면 우리도 끝까지 맞설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