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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의 7차크라

AziMong 2019. 12. 10. 13:49




요가의 일곱 차크라

 

요가에서는 우리 몸의 중심에는 차크라라고 하는 7개의 에너지 센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퀴처럼 회전을 하며, 끊임없이 에너지와 의식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인간과 관련된 모든 의식과 에너지의 종류가 차크라를 통해서 우주와 인체를 소통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공기를 마시듯이 우리는 차크라를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싼 외부환경과 소통한다. 음식과 공기가 부족하면 위기감을 느끼듯이, 차크라가 막혀서 우주의 에너지를 받지 못할 경우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기가 막혀죽겠다는 말은 숨 쉬지 못해서 죽겠다는 말처럼 절박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차크라는 물라다라이다. 항문과 생식기 중간의 피부 안쪽에 위치한 이 차크라는 생존과 관련된 에너지 센터이다. 동물에게 있어서 가장 극적으로 발견되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모면하는데 몰두하는 의식의 형태가 물라다라의 에너지 정체를 가져온다. 에너지 테라피 시술을 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리며, 그들의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양한 다른 욕망의 형태로 드러내는지 보게 된다.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은 흔히 만족을 모르는 심리 형태로 드러난다. 물라다라는 땅을 상징하며, 이 차크라가 충분히 열려 있다면, 그는 분명한 현실의식을 가지고 삶이라는 땅위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소진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차크라는 스와디스타나이다. 기억과 잠재의식(Samskaras)의 저장고로서 개인의 정서와 행위, 사고의 패턴화된 경향성은 이곳의 뿌리로부터 올라온다. 천골 앞쪽, 천골신경총에 위치한 이 에너지 센터는 쾌락의 원리에 지배된다. 스와디스타나 차원의 에너지센터에 고착된 사람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쾌락을 경험하고 유지하려하고 불쾌한 경험을 피하려고 한다. 그는 그에게 쾌락을 주는 대상에 대한 욕망에 의해서 지배되며, 쾌락을 얻지 못할 때 좌절하고, 누군가가 누리는 쾌락에 대하여 질투를 경험한다. 충분한 오르가즘을 통해서 쾌락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방출 하여 내적인 긴장을 긍정적으로 해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에너지센터가 적절하게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스와디스타나는 물을 상징하며, 자기 안의 모든 풍부한 자원을 즐거움을 위해서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스와디스타나의 건강한 에너지 체계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담보하기 어려운 가변적인 쾌락이므로 요가에서는 다시 내적인 쾌락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 방법은 극단적인 이완상태에서 내면의 정묘한 감각에 집중할 때 만나게 되는 내적 황홀경을 통해서이다. 외적 대상을 통해서 경험하던 오르가즘의 경험에서 내적감각으로 시선을 돌리면, 오르가즘의 동일한 에너지는 승화된 의식의 경지로 향하는 새로운 흐름이 된다.

 

세 번째 차크라는 배꼽의 뒤쪽, 태양신경총에 위치한 마니뿌라이다. 마니뿌라는 태양에 비유된다. 여기서 인간은 활력과 힘 그리고 지배력을 추구한다. 타인을 경쟁자로서 인식하여, 성공과 실패, 지배와 복종, 정복자와 정복당한 자 같은 문제에 몰두한다. 소극적이고 불안정하여 세상에서 지지와 격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마니뿌라 차크라의 에너지 시스템이 텅 빈 것처럼 충실하지 못하며, 지배력과 힘을 얻는데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람은 강박적인 에너지의 정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데 실패한 사람은 분노의 억압으로 인한 에너지의 정체가 있다. 위의 세 차크라의 에너지 센터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기 원하는 욕구의 조건이 적절히 충족되고 조절되는 상황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런 상태의 지속적인 유지는 쉽지 않으며, 만약 가능하더라도, 더욱 상위의, 즉 영적인 에너지 센터의 발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네 번째 차크라는 가슴 뒤쪽의 흉선과 관련이 있는 아나하타이다. 공기의 성분처럼 비어있는 듯 자유롭게 흐르는 아나하타는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다. 아나하타의 에너지 체계가 조화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 자신 안에서 결코 고갈되지 않는 만족감을 경험하며, 그의 풍부함을 남과 나누려고 한다. 그들은 그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구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인식하며, 조건 없는 사랑을 이웃과 인류를 향해 실천하고자 한다. 사랑하지만 반향이 없는 사랑은 아나하타의 에너지체계가 아직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상실과 소외의 정서를 키우며, 감정적 집착에 사로잡히게 한다. 아나하타의 사랑의 에너지는 그의 주변에서 마치 사랑의 수신기처럼 좋은 관계들을 풍성하게 형성하게 한다. 설령 아무런 사랑의 대상이 없는 무인도에 고립되더라도, 그리고 누군가의 시기를 받아 고의적인 소외를 경험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평정과 충만함을 잃지 않는다. 그는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외부적 관계에서 더 이상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기 안에서 사랑의 정서로 충만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차크라는 목의 뒷부분에 위치하는 비슛디(Visuddhi)로 갑상선과 관련되어 있으며, 에테르, 또는 아카샤(Akasha)의 성분이다. 정화 센터로 알려져 있는 비슛디의 에너지 시스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아카샤와 같이 마음이 순수해지고 비어지고 생각이 없어지는 상태가 된다. 유해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경험은 이 수준에서 긍정과 행복의 상태로 변형될 수 있다. 또한 비슛디 차크라의 에너지체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차크라는 미간의 깊숙한 곳, 척추위에 위치한 아즈나(ajna)차크라 이다. 아즈나는 이다(ida; , 마음)와 핑갈라(pingala; , 생명에너지)의 이원성이 하나로 녹아드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자기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 즉 개아의식, 에고가 사라지고 진정한 하나 됨 속에서 영적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름과 형태, 주관과 객관의 체험이 사라진 죽음과 같은 정지의 상태에서 아즈나 차크라는 수련자를 진리로 인도하는 스승으로 표현된다. 3의 눈, 지혜의 눈으로 불리 우는 이 차크라는 내면의 초월적 지혜를 듣는 직관과 통찰력의 센터이기 때문이다. 아즈나가 발달하면, 오감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식을 얻을 수가 있으며 여러 가지 초능력은 이 센터의 개발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차크라는 정수리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사하스라라 이다. 천개의 연꽃으로 표현되는 사하스라라는 무한을 의미한다. 관념과 논리를 초월한 모든 것이다. 아즈나차크라에서 에고와 이원성에 대한 초월이 시작되어 사하스라라에 올라가면, 참자기에 대한 깨달음이 일어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각성상태이다. 요가에서는 이를 두고 시바와 샥티의 결합이라 하여 카이발리야(독존)로 표현한다.

 

7개의 차크라는 에너지 센터이며 동시에 심리적 패턴의 중심이다. 에너지적인 측면에서의 일곱차크라의 차이점은 에너지체의 질적 차이와 진동수, 색깔, 형태 등이다. 그리고 심리적 측면에서는 위에 서술한 것처럼 우리의 감각과 의식형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수준의 경험과 성향을 내포한다. 요가는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 심리적인 문제에서조차도, 육체와 심리자체에 대한 접근보다는 에너지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즉 에너지 시스템의 조화를 회복하는 것에 의해서 육체적 문제의 해결과, 정신 심리적 갈등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소개할 8지요가 수련의 중심은 인도에서 프라나라고 부르는 생명에너지에 집중되어 있다. 프라나를 조절하는 것이 요가 수련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에너지테라피에 있어서는 거의 유일한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