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기녀(妓女)에 대한 풍류가객(風流歌客)의 불망곡(不忘曲)-1 본문
LONG
ARTICLE
5. 강원도(江原道)
①강릉기(江陵妓) '홍련(紅蓮)'
엊그졔 이별하고 말업시 안렷스니
알뜨리 못견딀 일 한두 가지 아니로다.
입으로 닛자허면서 간장 슬어 허노라
①강릉기(江陵妓) '홍련(紅蓮)'
엊그졔 이별하고 말업시 안렷스니
알뜨리 못견딀 일 한두 가지 아니로다.
입으로 닛자허면서 간장 슬어 허노라
이리 알뜨리 살뜨리 그리고 그려 병(病)되다가
만일예 어늬 띠가 되던지 만나 보면 그 엇더할고.
응당(應當)이 두 손길 뷔여 잡고 어안 벙벙
아모 말도 못하다가, 두 눈예 물결이 어릐여 방울방울 떠러져 아로롱지리라.
이 옷 압자랄 예일 것셰 만낫다 하고
정녕(丁寧)이 이럴 쥴 알냥이면 차라리 그려 되는이만 못하여라.
만일예 어늬 띠가 되던지 만나 보면 그 엇더할고.
응당(應當)이 두 손길 뷔여 잡고 어안 벙벙
아모 말도 못하다가, 두 눈예 물결이 어릐여 방울방울 떠러져 아로롱지리라.
이 옷 압자랄 예일 것셰 만낫다 하고
정녕(丁寧)이 이럴 쥴 알냥이면 차라리 그려 되는이만 못하여라.
그려 걸고 보니 정녕(丁寧)헌 지다만은
불너 대답 업고 손쳐 오지 아니 하니
야속(野俗)다 조물(造物)의 시기(猜忌)허미여 혼(魂)을 아니 붓칠 쥴이.
불너 대답 업고 손쳐 오지 아니 하니
야속(野俗)다 조물(造物)의 시기(猜忌)허미여 혼(魂)을 아니 붓칠 쥴이.
월노(月老)의 불근 실을 한 발암만 어더 내여
난교(鸞膠) 굿셴 풀노 시운(時運)지게 부쳣스면
아무리 억만년 풍우(風雨)엔들 떠러질 쥴 이시랴.
난교(鸞膠) 굿셴 풀노 시운(時運)지게 부쳣스면
아무리 억만년 풍우(風雨)엔들 떠러질 쥴 이시랴.
②강릉기(江陵妓) '월출(月出)'
진양기(晋陽妓) '초옥(楚玉)' 참조
진양기(晋陽妓) '초옥(楚玉)' 참조
③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두견(杜鵑)의 목을 빌고 꾀꼬리 사설(辭說) 꾸어
공산월(空山月) 만수음(萬樹陰)의 지져귀며 우럿싀면
가슴에 돌갓치 매친 피를 푸러 볼가 하노라.
두견(杜鵑)의 목을 빌고 꾀꼬리 사설(辭說) 꾸어
공산월(空山月) 만수음(萬樹陰)의 지져귀며 우럿싀면
가슴에 돌갓치 매친 피를 푸러 볼가 하노라.
④칠원기(漆原妓) '경패(瓊貝)'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⑤강릉기(江陵妓) '영월(影月)'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⑥진주기(晋州妓) '화향(花香)'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순창기(淳昌妓) '금화(錦花)' 참조
⑦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백화방초(百花芳草) 봄바람을 사람마다 즐길 테고
등동고(登東皐) 이서소(而舒嘯)하고 임청류(臨淸流) 이부시(而賦詩)로다.
우리도 기라군(綺羅裙) 거나리고 답청등고(踏靑登高) 하리라.
백화방초(百花芳草) 봄바람을 사람마다 즐길 테고
등동고(登東皐) 이서소(而舒嘯)하고 임청류(臨淸流) 이부시(而賦詩)로다.
우리도 기라군(綺羅裙) 거나리고 답청등고(踏靑登高) 하리라.
⑧전주기(全州妓) '연연(姸姸)'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⑨해주기(海州妓) '은향(銀香)'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⑩전주기(全州妓) '향춘(香春)'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대구기(大邱妓) '계월(桂月)' 참조
위에 보인 것이 [금옥총부(金玉叢部)]에 수록된 180수의 작품 중에서 주옹(周翁)이 인연을 맺었던 기녀들을 회상, 또는 못잊어 읊은 작품인데, 42명의 기녀에 대해 60여수의 작품을 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그의 전체 시조 작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그가 기녀와 가연(佳緣)을 맺은 곳은 19개처로 평안도.경기도.전라도.경상도.강원도 등 거의 8도 전역에 이르르고 있음을 보아도 그의 풍류스럽고 호방한 가객으로서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술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기녀와의 가연(佳緣)이 잇달았다. 어느 때는 기녀의 용모에 상찬(賞讚)을 아끼지 않았으며, 어느 때는 저들의 노래에 빠져들기도 하였고, 어느 때는 저들의 추모(醜貌)에 눈을 돌리다가도, 그의 절창에 매료되어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그의 미색의 뛰어남을 탄복하면서도 가무(歌舞)에 어두움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여인을 만났을 땐 질탕하게 유흥에 빠져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녀들을 못잊어 몸져 눕기까지 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술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기녀와의 가연(佳緣)이 잇달았다. 어느 때는 기녀의 용모에 상찬(賞讚)을 아끼지 않았으며, 어느 때는 저들의 노래에 빠져들기도 하였고, 어느 때는 저들의 추모(醜貌)에 눈을 돌리다가도, 그의 절창에 매료되어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그의 미색의 뛰어남을 탄복하면서도 가무(歌舞)에 어두움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여인을 만났을 땐 질탕하게 유흥에 빠져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녀들을 못잊어 몸져 눕기까지 한다.
몰나 병 되더니 알아서 또한 병이로다.
몰라도 병 알아도 병이라면, 병에 치어서
몰라도 병 알아도 병이라면, 병에 치어서
몰 살리로다.
아무리 화편(華扁, 용한 의원)을 만난 들
이 병(상사병)이야 고칠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화편(華扁, 용한 의원)을 만난 들
이 병(상사병)이야 고칠 수가 있겠는가.
이 시조는 남원기생 '송절(松節)'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나 가무에 어두움을 애석해 한 것이다.
가마귀는 속이 흰 줄을 모르고, 겉이 검다고만 미워하며,
갈매기는 겉이 희다고 사랑하면서도, 속이 검은 줄을 몰랐더니,
이제야 겉이 검으면서도 속이 흰 줄을 깨달은가 하노라.
갈매기는 겉이 희다고 사랑하면서도, 속이 검은 줄을 몰랐더니,
이제야 겉이 검으면서도 속이 흰 줄을 깨달은가 하노라.
이 시조는 이천기생 '은향(銀香)'이 용모는 박색이었으나, 그녀의 애원처절(哀怨悽絶)한 음률을 듣고 오희월녀(吳姬越女)까지를 연상하고는 '나 역시 춘정을 금할 수 없다.'는 마음을 읊은 것이다.
곱기도 하구나 저 꽃이여, 반쯤 핀 저 꽃이여!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매양 그만하여 있어서,
봄바람에 향기를 찾아 헤매는 나비를 웃고 맞아 주려무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매양 그만하여 있어서,
봄바람에 향기를 찾아 헤매는 나비를 웃고 맞아 주려무나.
이 시조는 전주의 '낭대운(囊臺雲)'이 문장을 겸비한 절염(絶艶)에 도취하였던 주옹의 고백이다.
그의 시조에는 위에 보였듯이, 매작품마다 '해설문(解說文)'이 붙어 있는데, '정의교밀(情誼交密)', '상대주정(相對注情)', '상수지정이귀(相隨之情而歸)' 등의 표현이 많이 보여 주옹과 기녀들과의 염정(艶情)을 넉넉히 짐작하게 한다.
주옹의 기생들과의 애정행각은 단순한 유희로서 끝나지 않았다. 한때 술자리에서 지나쳐 가는 여인들로만 생각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가는 곳마다 도처의 뛰어난 갑부, 이름을 날리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또 그는 남방의 제일 가는 명기(名妓)들을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 있었으나 단순한 유희(遊戱)로 끝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그리던 임의 편지를 받고는 기뻐서 말을 잊지 못했으며(喜極無語), 불의(不意)의 이별에는 어찌 능히 그녀를 보내고 견디겠느냐고 눈물짓기도 했고(何能堪遣), 월중선(月中仙)과 옥소선(玉蕭仙)을 이별하고서는 '내 마음이 돌이 아니어늘 어찌 능히 보내고 견디겠는가'(我心非石 何能堪遣)고 비탄을 이기지 못하고는 드디어 구포모로(口圃茅蘆)에 숨어 몸져 줍기까지 했다.
이런 주옹에게는 남모를 사랑의 각축도 많았겠고 이면(裏面) 비화(秘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 많은 기녀들 중에서 특별히 평양의 혜란(蕙蘭), 소홍(小紅)과 해주의 도화(桃花), 옥소선(玉蕭仙), 전주의 낭대운(囊臺雲), 밀양의 월중선(月中仙), 강릉의 홍연(紅蓮) 등이 오래 잊히지 않는 여인들이었다.
평양기생 '혜란(蕙蘭)'을 두고 읊은 시조가 5수나 되는데, 그녀와 이별한 후에 그 슬픔을 이렇게 달래는 주옹이었다.
주옹의 기생들과의 애정행각은 단순한 유희로서 끝나지 않았다. 한때 술자리에서 지나쳐 가는 여인들로만 생각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가는 곳마다 도처의 뛰어난 갑부, 이름을 날리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또 그는 남방의 제일 가는 명기(名妓)들을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 있었으나 단순한 유희(遊戱)로 끝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그리던 임의 편지를 받고는 기뻐서 말을 잊지 못했으며(喜極無語), 불의(不意)의 이별에는 어찌 능히 그녀를 보내고 견디겠느냐고 눈물짓기도 했고(何能堪遣), 월중선(月中仙)과 옥소선(玉蕭仙)을 이별하고서는 '내 마음이 돌이 아니어늘 어찌 능히 보내고 견디겠는가'(我心非石 何能堪遣)고 비탄을 이기지 못하고는 드디어 구포모로(口圃茅蘆)에 숨어 몸져 줍기까지 했다.
이런 주옹에게는 남모를 사랑의 각축도 많았겠고 이면(裏面) 비화(秘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 많은 기녀들 중에서 특별히 평양의 혜란(蕙蘭), 소홍(小紅)과 해주의 도화(桃花), 옥소선(玉蕭仙), 전주의 낭대운(囊臺雲), 밀양의 월중선(月中仙), 강릉의 홍연(紅蓮) 등이 오래 잊히지 않는 여인들이었다.
평양기생 '혜란(蕙蘭)'을 두고 읊은 시조가 5수나 되는데, 그녀와 이별한 후에 그 슬픔을 이렇게 달래는 주옹이었다.
임을 이별할 적에 다리를 저는 나귀를 한하지 마시오.
가노라 돌아 설 때에 나귀가 다리를 절지 않는다면(너무 빨리 가서),
꽃 아래 눈물짖은 임의 얼굴을 어찌 자세 볼 수 있으리오.
가노라 돌아 설 때에 나귀가 다리를 절지 않는다면(너무 빨리 가서),
꽃 아래 눈물짖은 임의 얼굴을 어찌 자세 볼 수 있으리오.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문이 붙어 있다.
[평양의 혜란(蕙蘭)은 색태(색태)가 남보다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란(란)을 잘 치고, 노래와 거문고에 능통하여, 그곳에서 이름이 떨쳤다. 내가 연호(연호) 박사준(박사준)의 막사에 있을 때에, 일이 있어 내려 갔다. 혜란과 함께 7개월 동안 서로 따르고 사귀어 정의(정의)가 밀접하게 교류하였는데, 급기야 작별에 임하여 혜란이 나를 먼 곳까지 따라와 보내면서, 가지 않고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나도 슬픔을 억제할 수 없었다.]
평양기생 '소홍(小紅)'과의 일을 주옹(周翁)은 이렇게 회상한다.
[천리 밖의 고향을 머다 하지 마시오. 아무리 멀다 해도 구름 아래가 아니겠는가.
마음은 너를 따라 줄다름치건마는, 몸은 어이하여 못 가고 머물러 있는가.
이제사 마음은 가건만 몸이 따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한다오.]
마음은 너를 따라 줄다름치건마는, 몸은 어이하여 못 가고 머물러 있는가.
이제사 마음은 가건만 몸이 따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한다오.]
이 시조 역시 다음과 같은 해설문이 붙어 있다.
[내가 기영(기영)에 있을 때에 소홍(소홍)으로 더불어 7개월간 서로 정(정)을 주며 지내다가, 헤어져 돌
아온 후에도 이따금 그녀의 생각이 난다.]
이토록 주옹은 기녀라고 해서 한 번 만나 인연을 맺고는 곧 잊거나, 다른 기녀를 택하지 않았다.
이토록 주옹은 기녀라고 해서 한 번 만나 인연을 맺고는 곧 잊거나, 다른 기녀를 택하지 않았다.
북풍은 눈보라를 몰아 주렴을 칠 때에
긴긴 밤 잠 못 자며 지새우는 이 내 마음
죽어서 무덤 가를 찾는 이 없다 할량이면
불쌍타 이 몸은 이 세상의 마른 꽃송이.
긴긴 밤 잠 못 자며 지새우는 이 내 마음
죽어서 무덤 가를 찾는 이 없다 할량이면
불쌍타 이 몸은 이 세상의 마른 꽃송이.
{북풍취설타렴파(北風吹雪打簾波) 영야무안정약하(永夜無眼正若何)
총상타년인부도(塚上他年人不到) 가인금세일지화(可燐今世一枝花)}
총상타년인부도(塚上他年人不到) 가인금세일지화(可燐今世一枝花)}
소홍(小紅)을 보내고 주옹이 그녀를 못 잊고 있을 때, 소홍도 주옹을 못 잊어 부른 '절구(絶句)'다.
해주기생 '도화(桃花)'가 주옹을 보낸 그리움을 하소연한 애절한 작품이 이렇게 전한다.
해주기생 '도화(桃花)'가 주옹을 보낸 그리움을 하소연한 애절한 작품이 이렇게 전한다.
낙동강 언덕에서 처음 만난 그대를
보제원(普齊院) 앞에서 다시 보내야 하는가요.
이 몸은 복사꽃처럼 자취없이 스러지나.
달 밝을 땐 언제나 그대 생각 잊으리오.
보제원(普齊院) 앞에서 다시 보내야 하는가요.
이 몸은 복사꽃처럼 자취없이 스러지나.
달 밝을 땐 언제나 그대 생각 잊으리오.
{낙동강상초봉군(洛東江上初逢君) 보제원두경별군(普齊院頭更別君)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 명월하시불억군(明月何時不憶君)}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 명월하시불억군(明月何時不憶君)}
주옹에게 있어서 가장 잊히지 않는 기녀는 해주의 '옥소선(玉蕭仙)'이었다. 옥소선을 두고 읊은
시조만도 무려 9수나 된다. 한 여인, 그것도 흔히 생각하는 일개 기녀를 두고 9수의 시조를 쓰고
있음을 보면 그녀에 대한 애정은 보통을 넘는 사이였다.
|
|
희고 흰 살결은 눈과 같으니, 그 옛날 옛날 서시(西施)의 후신이던가.
곱기가 꽃 같으니, 옛날 당명황(唐明皇)을 눈물짓게 했던 양귀비의 넋이던가.
지금에 눈 같은 살결, 꽃 같은 용모를 너는 정말 갖췄구나.
곱기가 꽃 같으니, 옛날 당명황(唐明皇)을 눈물짓게 했던 양귀비의 넋이던가.
지금에 눈 같은 살결, 꽃 같은 용모를 너는 정말 갖췄구나.
해주의 옥소선은 색태(色態)가 비범하였으며, 당세의 이름난 기녀여서 같은 무리들 중에서 추종을
불허하였다.
[석파대노(石坡大老,大院君)가 더욱 총애하여 그녀의 이름을 '옥수수(玉秀秀)'라 붙여 주었는데,
옥수수(玉秀秀)는 흔히들 '강냉이'라고도 부르는 바 그로부터 사람들이 다 '옥수수'라고 불렀다. 내가
화산(華山) 손오여(孫五汝), 벽강(碧江) 김군중(金君仲)과 더불어 축일연몌(逐日連袂)하는 사이였다.
옥수수(玉秀秀)로 더불어 낮부터 밤까지 정의(情誼)가 두터워져 서로가 지난 일을 능히 버릴 수 없었다.
그 후 계유년(癸酉年) 봄에..... 병자년(丙子年) 겨울에 또 일이 있어 삼증(三憎)과 같이 올라왔는데,
그 용모가 초췌하고 여위였으며 목소리가 실낱 같아서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과 같았다. 일견 놀랍고
아연하여 나로 하여금 더욱 하랑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 모습은 오히려 지난날의 성장한 차림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보다 더 아름다왔다.]
이 해설문에 따르면 옥소선(玉蕭仙)은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김군중(金君仲)의 사랑을 받던
가기(佳妓)이기도 하였으나, 주옹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옥소선과 헤어진
후의 보고픈 심회를 주옹은 이렇게 읊는다.
이 어인 급한 병이길래 마음은 빻는 듯 아프고, 눈물은 빗물처럼 흐르는가.
지는 달 지새는 밤에 울며 가는 외로운 기러기를 아무나 멈출 사람 있다 하면은,
너를 그리는 이 소식을 기러기편에 붙여 보내고 싶구나.
지는 달 지새는 밤에 울며 가는 외로운 기러기를 아무나 멈출 사람 있다 하면은,
너를 그리는 이 소식을 기러기편에 붙여 보내고 싶구나.
담양기생 '능운(凌雲)'의 죽음을 듣고, '담양'의 능운(凌雲)이 이미 죽었으니 호남의 풍류는 이로
인해 끊어졌다고 한탄하고는 그녀의 죽음을 주옹은 이렇게 슬퍼한다.
슬프다! 능운(凌雲)이 영영 가니, 가을 소리 밝은 달빛이 임자 없이 되었구나.
아침 구름 저녁 비에 네 생각 그리워 어이할고,
묻나니 너의 그 맑은 노래와 미묘한 춤을 누구에게 전하고 갔느냐?
아침 구름 저녁 비에 네 생각 그리워 어이할고,
묻나니 너의 그 맑은 노래와 미묘한 춤을 누구에게 전하고 갔느냐?
능운(凌雲)은 시재가무(詩才歌舞)에 뛰어난 기생이었다. 주옹과 헤어지는 아픔이 그녀의
'득랑군(得郞君)'에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동산에 달 오르면 오마신 우리 임은
달은 벌써 떳건마는 임은 아니 오시네.
아마도 생각건대 임 계시는 그곳에는
산이 너무 높아 달이 더디 뜨는가 보오.
달은 벌써 떳건마는 임은 아니 오시네.
아마도 생각건대 임 계시는 그곳에는
산이 너무 높아 달이 더디 뜨는가 보오.
{랑운월출래(郞云月出來) 월출랑불래(月出郞不來)
상응군재처(相應君在處) 산고월상지(山高月上遲)}
상응군재처(相應君在處) 산고월상지(山高月上遲)}
강릉의 '홍련(紅蓮)'을 이별한 후에 주옹은 잊자 잊자 하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를 이렇게 그리워한다.
엊그제 너를 이별하고 말없이 앉아만 있으니,
알뜰히 못 견디게 생각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입으로는 잊자 잊자 하면서도 간장이 끊어지듯 그립구나.
알뜰히 못 견디게 생각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입으로는 잊자 잊자 하면서도 간장이 끊어지듯 그립구나.
주옹이 홍련(紅蓮)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 있다. 홍련의 모습을 그려 벽에
걸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너의 모습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보니, 정녕 틀림없는 너의 모습과 같다마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손벽을 쳐도 오지 아니 하니,
야속하구나 조물주의 시기함인가, 어째서 그림 속에는 혼을 붙일 줄 몰랐단 말인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손벽을 쳐도 오지 아니 하니,
야속하구나 조물주의 시기함인가, 어째서 그림 속에는 혼을 붙일 줄 몰랐단 말인가.
이 작품의 해설문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홍련(紅蓮)의 모습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보다가, 얼마 아니되어 태워 버렸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
그리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주옹의 기녀와의 풍류사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공간적으로는 8도 전역이요, 시간적으로는 전주기생
주옹의 기녀와의 풍류사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공간적으로는 8도 전역이요, 시간적으로는 전주기생
'명월(明月)'과의 사귐이 임인추(壬寅秋)(1842)로 그가 26세 때요, 남방 제일의 전주기생 '설중선(雪中仙)'과의
염정이 29세 때의 일인가 하면, 해주의 '옥소선(玉蕭仙)'과의 못잊을 사랑의 사연이 병자(丙子).정축(丁丑)
(1876-1877)年으로 그때 주옹의 나이 60세 였다. 그런가 하면 전주기생 '낭대운(囊臺雲)'과 너무 기뻐서 말을
못하던(喜極無語) 것이 정축(丁丑,1877)으로 62세 때의 일이다.
이토록 기녀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니던 풍류랑도, 이천(利川)에 우거하고 있을 때에 여염집 젊은 부인과 굳은
이토록 기녀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니던 풍류랑도, 이천(利川)에 우거하고 있을 때에 여염집 젊은 부인과 굳은
약속(桑中之約)을 맺고는 밤새도록 기다리기도 한다.
평양기생 '소홍(小紅)'과의 일을 주옹(周翁)은 이렇게 회상한다.
[천리 밖의 고향을 머다 하지 마시오. 아무리 멀다 해도 구름 아래가 아니겠는가.
마음은 너를 따라 줄다름치건마는, 몸은 어이하여 못 가고 머물러 있는가.
이제사 마음은 가건만 몸이 따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한다오.]
마음은 너를 따라 줄다름치건마는, 몸은 어이하여 못 가고 머물러 있는가.
이제사 마음은 가건만 몸이 따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한다오.]
이 시조 역시 다음과 같은 해설문이 붙어 있다.
[내가 기영(기영)에 있을 때에 소홍(소홍)으로 더불어 7개월간 서로 정(정)을 주며 지내다가, 헤어져 돌 아온 후에도 이따금 그녀의 생각이 난다.]
이토록 주옹은 기녀라고 해서 한 번 만나 인연을 맺고는 곧 잊거나, 다른 기녀를 택하지 않았다.
이토록 주옹은 기녀라고 해서 한 번 만나 인연을 맺고는 곧 잊거나, 다른 기녀를 택하지 않았다.
북풍은 눈보라를 몰아 주렴을 칠 때에
긴긴 밤 잠 못 자며 지새우는 이 내 마음
죽어서 무덤 가를 찾는 이 없다 할량이면
불쌍타 이 몸은 이 세상의 마른 꽃송이.
긴긴 밤 잠 못 자며 지새우는 이 내 마음
죽어서 무덤 가를 찾는 이 없다 할량이면
불쌍타 이 몸은 이 세상의 마른 꽃송이.
{북풍취설타렴파(北風吹雪打簾波) 영야무안정약하(永夜無眼正若何)
총상타년인부도(塚上他年人不到) 가인금세일지화(可燐今世一枝花)}
총상타년인부도(塚上他年人不到) 가인금세일지화(可燐今世一枝花)}
소홍(小紅)을 보내고 주옹이 그녀를 못 잊고 있을 때, 소홍도 주옹을 못 잊어 부른 '절구(絶句)'다.
해주기생 '도화(桃花)'가 주옹을 보낸 그리움을 하소연한 애절한 작품이 이렇게 전한다.
해주기생 '도화(桃花)'가 주옹을 보낸 그리움을 하소연한 애절한 작품이 이렇게 전한다.
낙동강 언덕에서 처음 만난 그대를
보제원(普齊院) 앞에서 다시 보내야 하는가요.
이 몸은 복사꽃처럼 자취없이 스러지나.
달 밝을 땐 언제나 그대 생각 잊으리오.
보제원(普齊院) 앞에서 다시 보내야 하는가요.
이 몸은 복사꽃처럼 자취없이 스러지나.
달 밝을 땐 언제나 그대 생각 잊으리오.
{낙동강상초봉군(洛東江上初逢君) 보제원두경별군(普齊院頭更別君)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 명월하시불억군(明月何時不憶君)}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 명월하시불억군(明月何時不憶君)}
주옹에게 있어서 가장 잊히지 않는 기녀는 해주의 '옥소선(玉蕭仙)'이었다. 옥소선을 두고 읊은 시조만도 무려 9수나 된다. 한 여인, 그것도 흔히 생각하는 일개 기녀를 두고 9수의 시조를 쓰고 있음을 보면 그녀에 대한 애정은 보통을 넘는 사이였다.
|
|
희고 흰 살결은 눈과 같으니, 그 옛날 옛날 서시(西施)의 후신이던가.
곱기가 꽃 같으니, 옛날 당명황(唐明皇)을 눈물짓게 했던 양귀비의 넋이던가.
지금에 눈 같은 살결, 꽃 같은 용모를 너는 정말 갖췄구나.
곱기가 꽃 같으니, 옛날 당명황(唐明皇)을 눈물짓게 했던 양귀비의 넋이던가.
지금에 눈 같은 살결, 꽃 같은 용모를 너는 정말 갖췄구나.
해주의 옥소선은 색태(色態)가 비범하였으며, 당세의 이름난 기녀여서 같은 무리들 중에서 추종을 불허하였다.
[석파대노(石坡大老,大院君)가 더욱 총애하여 그녀의 이름을 '옥수수(玉秀秀)'라 붙여 주었는데, 옥수수(玉秀秀)는 흔히들 '강냉이'라고도 부르는 바 그로부터 사람들이 다 '옥수수'라고 불렀다. 내가 화산(華山) 손오여(孫五汝), 벽강(碧江) 김군중(金君仲)과 더불어 축일연몌(逐日連袂)하는 사이였다. 옥수수(玉秀秀)로 더불어 낮부터 밤까지 정의(情誼)가 두터워져 서로가 지난 일을 능히 버릴 수 없었다. 그 후 계유년(癸酉年) 봄에..... 병자년(丙子年) 겨울에 또 일이 있어 삼증(三憎)과 같이 올라왔는데, 그 용모가 초췌하고 여위였으며 목소리가 실낱 같아서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과 같았다. 일견 놀랍고 아연하여 나로 하여금 더욱 하랑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 모습은 오히려 지난날의 성장한 차림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보다 더 아름다왔다.]
이 해설문에 따르면 옥소선(玉蕭仙)은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김군중(金君仲)의 사랑을 받던 가기(佳妓)이기도 하였으나, 주옹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옥소선과 헤어진 후의 보고픈 심회를 주옹은 이렇게 읊는다.
이 어인 급한 병이길래 마음은 빻는 듯 아프고, 눈물은 빗물처럼 흐르는가.
지는 달 지새는 밤에 울며 가는 외로운 기러기를 아무나 멈출 사람 있다 하면은,
너를 그리는 이 소식을 기러기편에 붙여 보내고 싶구나.
지는 달 지새는 밤에 울며 가는 외로운 기러기를 아무나 멈출 사람 있다 하면은,
너를 그리는 이 소식을 기러기편에 붙여 보내고 싶구나.
담양기생 '능운(凌雲)'의 죽음을 듣고, '담양'의 능운(凌雲)이 이미 죽었으니 호남의 풍류는 이로 인해 끊어졌다고 한탄하고는 그녀의 죽음을 주옹은 이렇게 슬퍼한다.
슬프다! 능운(凌雲)이 영영 가니, 가을 소리 밝은 달빛이 임자 없이 되었구나.
아침 구름 저녁 비에 네 생각 그리워 어이할고,
묻나니 너의 그 맑은 노래와 미묘한 춤을 누구에게 전하고 갔느냐?
아침 구름 저녁 비에 네 생각 그리워 어이할고,
묻나니 너의 그 맑은 노래와 미묘한 춤을 누구에게 전하고 갔느냐?
능운(凌雲)은 시재가무(詩才歌舞)에 뛰어난 기생이었다. 주옹과 헤어지는 아픔이 그녀의 '득랑군(得郞君)'에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동산에 달 오르면 오마신 우리 임은
달은 벌써 떳건마는 임은 아니 오시네.
아마도 생각건대 임 계시는 그곳에는
산이 너무 높아 달이 더디 뜨는가 보오.
달은 벌써 떳건마는 임은 아니 오시네.
아마도 생각건대 임 계시는 그곳에는
산이 너무 높아 달이 더디 뜨는가 보오.
{랑운월출래(郞云月出來) 월출랑불래(月出郞不來)
상응군재처(相應君在處) 산고월상지(山高月上遲)}
상응군재처(相應君在處) 산고월상지(山高月上遲)}
강릉의 '홍련(紅蓮)'을 이별한 후에 주옹은 잊자 잊자 하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를 이렇게 그리워한다.
엊그제 너를 이별하고 말없이 앉아만 있으니,
알뜰히 못 견디게 생각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입으로는 잊자 잊자 하면서도 간장이 끊어지듯 그립구나.
알뜰히 못 견디게 생각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입으로는 잊자 잊자 하면서도 간장이 끊어지듯 그립구나.
주옹이 홍련(紅蓮)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 있다. 홍련의 모습을 그려 벽에 걸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너의 모습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보니, 정녕 틀림없는 너의 모습과 같다마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손벽을 쳐도 오지 아니 하니,
야속하구나 조물주의 시기함인가, 어째서 그림 속에는 혼을 붙일 줄 몰랐단 말인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손벽을 쳐도 오지 아니 하니,
야속하구나 조물주의 시기함인가, 어째서 그림 속에는 혼을 붙일 줄 몰랐단 말인가.
이 작품의 해설문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홍련(紅蓮)의 모습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보다가, 얼마 아니되어 태워 버렸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 그리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주옹의 기녀와의 풍류사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공간적으로는 8도 전역이요, 시간적으로는 전주기생 '명월(明月)'과의 사귐이 임인추(壬寅秋)(1842)로 그가 26세 때요, 남방 제일의 전주기생 '설중선(雪中仙)'과의 염정이 29세 때의 일인가 하면, 해주의 '옥소선(玉蕭仙)'과의 못잊을 사랑의 사연이 병자(丙子).정축(丁丑)(1876-1877)年으로 그때 주옹의 나이 60세 였다. 그런가 하면 전주기생 '낭대운(囊臺雲)'과 너무 기뻐서 말을 못하던(喜極無語) 것이 정축(丁丑,1877)으로 62세 때의 일이다.
이토록 기녀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니던 풍류랑도, 이천(利川)에 우거하고 있을 때에 여염집 젊은 부인과 굳은 약속(桑中之約)을 맺고는 밤새도록 기다리기도 한다.
주옹의 기녀와의 풍류사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공간적으로는 8도 전역이요, 시간적으로는 전주기생 '명월(明月)'과의 사귐이 임인추(壬寅秋)(1842)로 그가 26세 때요, 남방 제일의 전주기생 '설중선(雪中仙)'과의 염정이 29세 때의 일인가 하면, 해주의 '옥소선(玉蕭仙)'과의 못잊을 사랑의 사연이 병자(丙子).정축(丁丑)(1876-1877)年으로 그때 주옹의 나이 60세 였다. 그런가 하면 전주기생 '낭대운(囊臺雲)'과 너무 기뻐서 말을 못하던(喜極無語) 것이 정축(丁丑,1877)으로 62세 때의 일이다.
이토록 기녀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니던 풍류랑도, 이천(利川)에 우거하고 있을 때에 여염집 젊은 부인과 굳은 약속(桑中之約)을 맺고는 밤새도록 기다리기도 한다.
기녀(妓女)에 대한 풍류가객(風流歌客)의 불망곡(不忘曲)
- 안민영(安玟英)과 혜란(蕙蘭)의 못 다한 사연(辭緣)
안민영(安玟永)은 자(字)를 성무(聖武), 호(號)를 주옹(周翁)이라 하며 서얼(庶孼) 출신의 근조 최후의 제1의 가객(歌客)이다. 고종 13년(1876) 스승 운애(雲崖) 박효관(朴孝寬)과 함께 조선 역대 시조집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 간행하여, 근세 시조문학을 총결산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시조문학사상 최대의 개인 시조집 '금옥총부(金玉叢部)'를 남겼는데, 그의 대표작 [영매가(詠梅歌)] 8수를 비롯하여, 모두 182수를 남겨 시조 작가로는 최다산작가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다. [금옥총부(金玉叢部)]는 표지에는 '금옥총부'라 하고, 그 아래 소자(小字)로 '주옹만영(周翁漫詠)'이라고 쓰여진 시조집인데, 원래 가람 이병기님의 소장을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시조집은 주옹이 70세 되던 고종 22년(1885)에 이뤄진 것으로, [가곡원류]보다 9년 늦게 성책(成冊)되었다. 그는 80세까지 생존하면서 만년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한 정력가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주옹의 작품은 [가곡원류],[청구영언] 등에 수록된 것은 모두 69수 밖에 안 보이는데, 이 [금옥총부]의 출현으로 111구가 더해지고, [금옥총부]에는 없고 [증보가곡원류(增補歌曲源流)]에 수록된 2수를 합하면 주옹의 작품은 모두 182수가 되는 것이다. 이 시조집은 [가곡원류]의 편찬 후에 성책된 것으로서 곡조별로 편찬되었고, 그 체제도 상당히 고려한 흔적이 보이며, 운애(雲崖)에게 교정까지 받았다. 운애는 [금옥총부 서(金玉叢部 序)]에서 '그는 노래를 잘 짓고, 음률에 정통했다.'라고 한 것을 보아도 그의 비범한 역량을 알 수 있다. 이제 안민영의 작품 중에서 기녀와의 염정(艶情)을 노래한 작품을 통해서 그의 풍류 가객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자 한다.
주옹의 작품에 나타난 기녀들과 인연이 있는 작품들을 그 원문과 해설문을 [금옥총부]의 기록대로 소개한다. 1. 평안도(平安道)
①평양기(平壤妓) '혜란(蕙蘭)' 임이별(任離別) 하올 저긔 져는 나귀 한치 마소. 가노라 돌쳐 셜 제 저난 거름 안이런덜 꼿 아래 눈물 Ы? 얼골을 엇지 자세(仔細) 보리요. 옥협(玉頰)이 구는 눈물 나건(羅巾)으로 시쳐 낼 졔
가난 내 마음을 네 어이 모르넌다. 네 졍녕 웃고 보내여도 간장 슬데 하물며 병풍예 그린 매화 달 업스면 무엇하리.
병간매월(屛間梅月) 양상선(兩相宣)은 매불표령(梅不飄零) 월불휴(月不虧)라. 지금예 매불표령(梅不飄零) 월불휴(月不虧)허니 그를 조히 너기노라. ②평양기(平壤妓) '소홍(小紅)'
전천(前川)에 우헐(雨歇)허니 류색(柳色)이 푸르엿고 동원(東園)에 난일(暖一)허니 백화쟁발(百花爭發) 소홍(小紅)이라. 아희야 소차(小車)에 술 실어라 방화수류(訪花隨柳) 허리라. 낙화(落花) 방초로(芳草路)의 깁치마를 끄럿시니
풍전(風前)의 나는 꽃치 옥파(玉頗)의 부딧친다. 앗갑다 쓸어 올지연졍 밥든 마라 하노라. 관산 천리 머다 마라 구름 아래 그곳이라
마음은 가건마는 몸은 어이 못가난고. 지금에 심거(心去) 신불(身不) 치(致)하니 그를 설워 하노라. ③평양기(平壤妓) '산홍(山紅)'
도화(桃花)는 흣날리고 녹음(綠陰)은 퍼져 온다. 꾀꼬리 새 노래는 연우(烟雨)에 구을거다. 마초아 잔(盞) 드러 권하랼 제 담장가인(澹粧佳人) 오더라. ④해주기(海州妓) '연연(娟娟)'
옥질(玉質)이 수연(粹然)하니 해주(海酒) 명희(名姬) 네 아니냐. 섬가(纖歌)는 알운(알雲)하고 무수(無袖)는 등공(騰空)이라. 허물며 옥수농현(玉手弄絃)을 더욱 사랑하노라. ⑤해주기(海州妓) '도화(桃花)'
도화(桃花) 여도화(如桃花)허고 도화(桃花) 여도화(如桃花)허니 도화(桃花)ㅣ 승도화(勝桃花)며 도화(桃花) 승도화(勝桃花)아 두어라 인중도화(人中桃花)와 화중도(花中桃)ㅣ 새워 무삼 허리요. ⑥해주기(海州妓) '삼증(三憎)'
나위(羅위) 적막(寂寞)한대 힘업시 니러 나셔 산호필(珊瑚筆) 빼여 들고 두어 자 그리다가 아셔라 이를 써 무엇하리 도로 누어 조는 듯. ⑦해주기(海州妓) '옥필선(玉筆仙)'
희기 눈 갓트니 서시(西施)에 후신(後身)인가. 곱기 꼿 갓트니 태진(太眞)에 넉시런가. 지금에 설부화용(雪膚花容)은 너를 본가 허노라. 수심(愁心)겨운 임(任) 얼골 뉘라 전(前)만 못하다고. 흣터진 운환(雲환)이며 화기(華氣) 거든 살빗치라. 늣기며 실갓치 하난 말삼 애 끈는 듯 하여라.
지금에 설부화용(雪膚花容)은 너를 본가 허노라.
동리(東籬)의 물이 밀고 서별(西別)의 불이 잇다.
수화상침(水火相侵) 두 지음의 나의 간장(肝腸) 다슬거늘 더구나 남로송인(南路送人)하고 북정(北程) 차자 가노라. 풍절력(風浙瀝) 설비비(雪비비)한대 처처행색(悽悽行色) 한유유(恨悠悠)
만옥루 ㅣ 하마 하면 떠려졈즉 하다마는 가슴에 독(毒)한 불꽃 치솟는 물을 금(禁)하더라 차다 져 달이여 설후풍(雪後風) 오경종(五更鐘)을
서령(西嶺)에 거려 잇셔 어늬 곳츨 빗치이노. 져 만일 날갓치 잠 업스면 애 끗칠 듯 하여라. 설진심중(說盡心中) 무한사(無限事)하야 길럭이 발의 굿계 맬 제
장탄타루(長歎墮淚)하며 애긍(哀矜)이 니른 말이 네 만일(萬一) 더듸 도라오면 나는 그만이로라. 푸른 빗치 쪽예 낫스되 푸루기 쪽의셔 디 푸루고
어름이 물로 되야스되 차기 물에셔 더 차다더니 네 엇지 일반청누인(一般靑樓人)으로 빼여나미 이 가트뇨. 이 어인 급한 병(病)고 심여마(心如磨) 누여우(淚如雨)ㅣ 라.
지난 달 새는 밤의 울어 예는 기러기를 아무나 멈츄리 이슬진대 이 병(病) 소식(消息) 부치리라. 2. 경기도(京畿道)
①이천기(利川妓) '금향(錦香)' 가마귀 쇽 흰 쥴 모르고 것치 검다 뮈 무여하며 갈멱이 것 희다 사랑허고 쇽 검은 쥴 몰낫더니 이졔야 표리흑백(表裏黑白)을 깨쳐슨져 허노라. 3. 전라도(全羅道)
①전주기(全州妓) '설중선(雪中仙)' 혈루(血淚)ㅣ 방방(滂滂)하니 옥협(玉頰)이 꼬치로다. 단봉(丹鳳)을 하직(下直)헐 졔 무신(武臣)이 간데 업네. 한도(漢道)야 약(弱)하랴마는 박명첩(薄命妾)을 보내는고. ②전주기(全州妓) '명월(明月)' 길럭이 펄펄 발셔 나라 가스러니 고기난 어이 이 Я?아니 오노. 산 높고 물 기닷터니 아마 물이 산도곤 더 기러 못오나 보다. 지금예 어안(어안)도 빠르지 못하니 그를 슬어 하노라. ③전주기(全州妓) '낭대운(囊臺雲)'
고을사 져 꼿치여 반(半)만 여윈 져 꼿치여 뎌도 덜도 말고 매양(每樣) 그만허여 잇셔 춘풍(春風)에 향기(香氣) 좃는 나뷔를 웃고 마자 허노라. 알뜨리 그리다가 만나 보니 우습거다.
그림것치 마주 안져 영영(영영)이 볼 뿐이라. 지금예 상간무어(相看無語)를 정(情)일련가 하노라. 심중(心中)예 무한사설(無限辭說) 청조(靑鳥) 네계 부치더니
약수(弱水) 삼천리를 네 능(能)히 건너 갈다. 가기사 가고져 허건이와 나래 자가 근심일세. ④남원기(南原妓) '송절(松節)'
몰나 병 되더니 아라 또한 병이로다. 몰나 병 아라 병 되면 병에 얼의여 못 살니로다. 아무리 화편(華扁)을 만난들 이 병(病)이야 곳칠 듈이. ⑤남원기(南原妓) '명옥(明玉)'
바람은 아아 닥친 드시 불고 구진비는 담아 붓드시 오는 날 밤에 님 차져 나선 양을 우슬 이도 잇건이와 비바람 안여 천지번복(天地飜覆)하야든이 길리야 아니허고 엇지 하리오. ⑥순창기(淳昌妓) '봉심(鳳心)'
비오동(非梧桐) 불처(不悽)하고 비행실(非行實) 불식(不食)이라. 남산월(南山月) 깁흔 밤에 울냐 허는 봉심(鳳心)이라. 두어라 비천인(飛千刃) 불축속(不逐粟)은 녀를 본가 허노라. ⑦담양기(潭陽妓) '란주(蘭舟)'
사월(四月) 녹음(綠陰) 앵세계(鶯世界)는 우석상서(又石相書) 풍류절(風流節)을 석상실(石想室) 놉흔 집의 농음(농音)이 영롱(玲瓏)하다. 옥계(玉階)예 난화저(蘭花低)하고 봉명오동(鳳鳴梧桐) 하더라. ⑧담양기(潭陽妓) '능운(凌雲)'
차차능운(嗟嗟凌雲)이 기리 가니 추성월색(秋聲月色)이 임자(任者) 업내. 앗츰 구름 저녁 비에 생각(生覺) 겨워 어이헐고. 문(問)나니 청가묘무(淸歌妙無)를 뉘계 전(傳)코 갓느니. 벽상(壁上)에 봉(鳳) 그리고 머뭇 거려 도라셜 졔
압길을 혜아리니 말 머리에 구름이라. 잇때에 가업슨 나의 회포(懷抱)는 알니 업셔 하노라. ⑨담양기(潭陽妓) '혜란(蕙蘭)'
이슬에 눌닌 꼿과 발암에 부친 입피 춘제(春齊) 옥계상(玉階上)의 향기 놋는 혜란(蕙蘭)이라. 밤중만 월명정반(月明庭畔)의 너만 사랑 하노라. ⑩광주기(광주기) '설향(설향)' 일장청호(一丈靑扈) 삼랑(三娘)은 양산박(梁山迫)의 두령(頭領)되야 축가압(祝家壓) 큰 싸움의 대공(大功)을 일윗나니 지금의 네 무예(武藝) 신통(神痛)한지라 어대 공(功)을 일우엿노.
4. 경상도(慶尙道) ②진양기(晋陽妓) '송옥(松玉)'
동장예 갓치 우름 셤거이 드럿더니 뜻아닌 천금서찰(千金書札) 임(任)의 얼골 띄여왓내. 아셔라 간장(肝腸)스는 거슬 보와 무삼 허리요. ③진주기(晋州妓) '비연(飛燕)' 자못 불근 꼿치 즘즣 슘어 뵈지 않네. 장차 차즈리라 구지 헷쳐 드러가니 진실노 그 꼿치여늘 문득 것거 드럿노라. ④진양기(晋陽妓) '경패(瓊貝)'
출자동문(出自東門)하니 녹양(綠陽)이 천사(千絲)ㅣ 라. 사사(絲絲) 결심곡(結心曲)은 꼿고리 말속이라. 벅국새 깁푼 우름예 애끗는 듯 하여라. ⑤진양기(晋陽妓) '초옥(楚玉)'
담 안예 불근 꼿츤 버들 빗츨 새워 마라 버들곳 아니런들 화홍(花紅) 너뿐이어니와 네 겻테 다정(多情)타 이를 거슨 유록(柳綠)인가 하노라. ⑥진양기(晋陽妓) '난주{蘭舟(珠)}'
남포월(南浦月) 깁흔 밤에 돛대 치는 져 사공(沙工)아 뭇노라 너탄 배야 계도금범(桂棹錦帆) 난주(蘭舟)ㅣ 로다. 우리는 채연(採蓮) 가는 길이니 부러 무삼 허리요. 옥반(玉盤)의 흣튼 구슬 임의(任意)로 굴넛거늘
화롱(畵籠)의 잼긴 앵무(鸚鵡) 백설구변(百舌口辨) 가 볼킷? 두어라 인여주(人如珠) 어여앵무(語如鸚鵡)하니 그를 사랑 하노라. ⑦창원기(昌原妓) '경패(瓊貝)'
청춘(靑春) 호화일(豪華日)에 이별(離別)곳 아니런들 어늬덧 내 머리의 셔리를 뉘리치리. 오날예 반(半) 나마 검운 털이 마자 셰여 허노라. ⑧통영기(統營妓) '해용(海用)'
기러기 놉피 뜬 뒤예 서리 달이 만리로다. 네 넷짝 차즈랴구 이 밤의 나랏는야 져 건너 노화총리(蘆花叢裏)예 홀노 안져 우더라. ⑨거제기(巨濟妓) '가향(可香)'
오니(汚尼)예 천연(天然)한 꼿치 연(蓮)꼿 밧긔 뉘 잇느냐. 하추(遐추)예 네 날 쥴을 나는 일즉 몰낫노라. 지금의 떠나는 정(情)이야 엇지 그지 잇스리. ⑩밀양기(密陽妓) '월중선(月中仙)'
청신(淸晨)에 몸을 일어 북두(北斗)에 비난 말이 제 속 내 간장(肝腸)을 한 열흘만 밧괴시면 그제야 날 속이던 안을 알뜨리 밧게 하리라. 동리(東離)이 물이 밀고 서별(西別)의 불이 잇다.
수화상침(水火相侵) 두 지음의 간장 다 슬거늘 더구나 남로송인(南路松人)하고 북정(北程) 차자 가노라. 글려 사지 말고 찰아리 싀여져서
염왕(閻王)께 발괄하야 임(任)을 마자 다려다가 사후(死後)ㅣ 나 혼백(魂魄)이 쌍(雙)을 지여 그리던 한(恨)을 풀리라. ⑪밀양기(密陽妓) '초월(楚月)'
홍엽(紅葉)은 취벽(翠壁)에 날고 황화(黃花)는 단애(丹崖)에 퓐져 초월(楚月)이 발가는데 옥소선아(玉蕭仙娥)ㅣ 무금래(撫琴來)라. 어즙어 대취장가(大醉長歌)하고 농월귀(弄月歸)를 하더라. 연우조양(烟雨朝陽) 비긴 곳에 금화공자(錦花公子)ㅣ 네 아니냐.
백설구변(百舌口辨)이오 류량(瀏량)한 소래로다. 만일(萬一)에 네 안고 졔 잇으면 뉘가 뉜지 모르괘라. 영산홍록(暎山紅綠) 봄바람에 황봉백엽(黃峰白蝶) 넘노는 듯
백화원림(百花園林) 향기 속에 흥(興)쳐 노는 두룸인 듯 두어라 천태만상(千態萬狀)은 너뿐인가 허노라. ⑫내부기(래부기) '청옥(청옥)'
건곤(건곤)이 눈이여늘 네 홀노 푸엿구나. 빙자옥질(빙자옥질)이여 합리(합리)에 숨어 잇셔 만혼(만혼)에 암향동(암향동)하니 달이조차 오더라.
|
'.....古典(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라 말아먹은 경국지색-양귀비 (0) | 2007.04.14 |
---|---|
열아홉 여기(女妓)의 상사(相思)의 단장곡(斷腸曲) (0) | 2007.02.24 |
한 여인(女人)의 그칠 줄 모르는 정한(情恨) (0) | 2007.02.24 |
사랑, 그 끝없는 그리움의 샘 (0) | 2007.02.24 |
북국(北國)의 설풍(雪風)을 녹여 간 첫날 밤 (0) | 2007.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