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매창시비 본문
매창시비
변산반도에 가서 자기로 하고, 가는 길에 부안군청 뒷산의 공원에 세워진 이매창(李梅窓)의 시비를 보고 가기로 했다. 조선시대 삼대명기(三大名妓: 황진이, 김부용, 이매창) 중의 하나요, 이름난 여류문인의 유적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내가 무슨 백호 임제(白湖 林悌)라도 된다고 기생무덤을 찾아 다닐까 만은 황진이 무덤이야 개성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천안 광덕사 뒷산에 있는 김부용의 무덤도 일찍이 답사한 바 있으니 이매창의 시비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공원에 들어서니 얼마 안 올라가서 호젓한 길섶에 아담한 시비가 매창의 모습인양 단정하게 서 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시비에 적힌 이 시에는 어느 가을날 그의 마음이 고적하게 흐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매창은 조선 선조 때 부안현 아전의 서녀로 태어나서 기생이 되었고, 이름은 계생(桂生) 또는 계화(桂花)라고 했으며, 매창은 그의 호이다.
얼굴이 예쁘거나 교태가 흐르는 타입은 아니었고, 시와 글, 노래와 거문고, 그윽한 품성으로 날리 알려져 많은 시인 묵객들이 그를 만나려고 부안을 찾았단다.
그와 깊이 사귀었던 사람 중에는 천민출신이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천민의 신분을 벗어났던 시인 유희경이 있었고,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도 있었다.
부안을 멀다 않고 자주 찾던 허균은 아예 한 때 이곳에 눌러 살면서 이곳에서 홍길동전을 쓰기도 했다. 스승도 서얼, 애인도 서얼이었기에 서얼의 한을 토해내는 홍길동전을 썼고, 끝내는 서얼출신들이 주도했던 역모에도 연루되었었나 보다.
매창시비의 또 한 면에는 한시 오언절구 한 수가 새겨져 있다.
술 취한님 내 옷자락 잡으니 醉客執羅衫
능라 저고리 덧없이 찢어지네 羅衫隨手裂
한 벌 비단옷 아깝지 않으나 不惜一羅衫
깊은 정 함께 끊어질까 두려워 但恐恩情絶
술기운을 빌어 집요하게 잡고 늘어지는 정인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돌아서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기생으로서의 숙명을 엿보게 한다.
다만 나의 어설픈 번역이 시인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여 아쉬울 뿐이다
그토록 이름 높은 기생이면서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가 40도 채 못살고 떠난 후에 그의 주옥 같은 시 60여수가 세상에 전해지고 있으며, 부안면 봉덕리에 그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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