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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코녀 길가에 버린 꽃 본문

.....古典(고전)

가련코녀 길가에 버린 꽃

AziMong 2008. 1. 23. 08:38
서정의 극치는 누가 뭐래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순결무구한 애정이요, 정감의 표현은 뭐니뭐니 해도 사랑을 노래한 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정시는 사랑의 꽃이다. 남녀노소, 귀천을 불문하고 애정의 시편을 감상하노라면 가슴이 뛰고 황홀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오랫동안 교직에 종사하면서, 주로 우리의 전통과 생활문화에 관련된 수필을 묵직한 사상과 재치 있는 기교 속에 담아온 수필가 심영구(68)가 기생 에세이 <조선 기생 이야기>(미래문화사)를 펴냈다.
'기창시화'(妓窓詩話)란 소제가 붙은 이 책은 조선시대 3대 시기(詩妓)였던 송도의 황진이와 부안의 이매창, 성천의 김부용을 비롯한 의기 논개, 일송 심희수를 정승에 올려준 일타홍 등 조선시대 명기 30여 명이 당시의 사대부, 선비들과 시를 읊조리며 나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기생 개개인의 개성과, 지역적 특성, 특기까지 해학적인 필치로 조명하고 있는 <조선 기생 이야기>는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명기의 조건', 제2부 '명기만이 명기를 안다', 제3부 '눈물로 엮은 시편', 제4부 '기생의 치마폭에서 놀아난 사연', 제5부 '여장부 기녀들', 제6부 '기생으로 정승도 되고 패가망신도 하고'
1. 장목려안(長目麗眼):눈매가 길되 고와야 하고,
2. 고비복두(高鼻福頭):콧날이 오독하고 콧망울이 복스러워야 하고,
3. 피윤옥골(皮潤玉骨):살결이 윤택하고 귀골이어야 한다.
4. 견부반원(肩部半圓):어깨는 둥글어야 하며,
5, 유두홍흑(乳頭紅黑):젖꼭지가 검붉고,
6. 둔부광구(臀部廣球):엉덩이는 둥글되 펑퍼짐할 것이며,
7. 운발비황(雲髮非黃):머리가 구름 같고, 검되, 노랑머리가 아니어야 한다.
8. 수족비대(手足非大):손과 발이 커서는 안되고,
9. 체격비거(體格非巨):몸체가 거구여서는 안되며,
10,신장비이(身長非異):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한다.
...
요즈음은 양풍(洋風)으로 노란 물을 들이고, 쌍거풀 시술에, 콧구멍을 좁히고, 광대뼈를 깎아낸다. 이빨을 염색할 뿐만 아니라, 아예 위아랫니를 몽땅 뽑아내고 틀니를 한다. 심지어 허벅지나 뱃살을 도려내는 것도 예사가 되었다. 이러느라 생명을 잃거나 부작용으로 흉한 몰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전쟁이요, 필사적인 과제다.
('명기의 조건' 몇 토막)
저자는 우리의 전통적 미녀의 기준이 여상십구(女相十俱)였다며,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서양이나 중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예나 지금이나 마치 전쟁처럼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결국 아름다운 사랑을 얻으려 몸부림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선비와 기생의 애달픈 사랑을 통해 훑는다.
예쁘게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사귄 지 십년이니 속내 모르랴.
나라고 목석 같은 사내이련만
병들고 늙었기에 사절함이랴.
정든 이, 이별하며 설워한다만
우리는 얼굴만 친했을 뿐,
다시 태어나면 뜻대로 이루리라.
온갖 정욕 삭아진 병든 몸이라
가련코녀 길가에 버린 꽃,
(율곡 이이 '유지사' 몇 토막)
유지는 선비의 딸로 태어나 미모가 출중하고 총명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기적(妓籍)에 올라 율곡의 심부름을 하는 관기가 되는 여인이다. '유지에게 준 율곡의 연서'에 나오는 이 시는 지금도 성현으로 추앙받고 있는 율곡 이이가 끔찍이 사랑했던 어린 기녀 '유지'를 다독이며 쓴 시다.
수필가 심영구는 누구인가?
우리의 전통과 풍습을 되새김질하는 작가

▲심영구/미래문화사
수필가 심영구는 1935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대학 등 교직에 종사하다가 1955년 <월간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수필집으로 <이매망량뎐> <물 아래 뜬 달> <숨겨둔 애인> <자미화를 보러 간다>가 있으며, 고전수필집으로 <本一 찾자> <本二 찾자> <本三 공자도 뭘 몰랐다>를 펴냈다.
그 외, 한시수필집으로 <눈물로 베개 적신 사연>(한국편)과 <그리움에 잠못 이룬 서연>(중국편)이 있다. <노산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 이종찬
하지만 율곡은 유지를 10여 년 동안이나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육체적인 관계를 한번도 맺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율곡은 이미 "온갖 정욕이 삭아진 병든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유지에게 시를 지어 보내면서 "가련코녀 길가에 버린 꽃"이라고 했을까.
이처럼 사대부와 선비들의 여인에 대한 지극하고도 끔찍한 사랑도 실은 그 여인의 눈 부시도록 곱게 빛나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만약 그 아름다운 외모가 없었다면 한 여인이 아무리 총명하고 예의범절이 발랐다 하더라도 사대부와 선비들이 그 여인을 그토록 마음 깊이 사랑할 수가 있었겠는가.
순조 시절, '가련'이라고 하는 함흥 태생의 기생이 있었다. 하고많은 아름답고 예쁜 이름을 두고 하필이면 가련이라 붙였으니, 그 이름대로 외롭고 불쌍하고 슬픈 운명이 그녀의 몫이었을까.
....
가련타 그 행색 가련한 신세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네.
가련한 내 뜻을 가련에 전해
가련은 알 거야 가련한 내 맘.
...
김삿갓이 선창을 한다.
"바지 속에 붉은 몽둥이란 놈이 씨끈벌떡거리는데,"
가련이가 대꾸를 한다.
"분홍치마 밑 고쟁이 속에서 흰 조개는 좋다구나 입이 헤벌어져요."
김삿갓. "뼈없는 장군이 공격을 하면,"
가련이 또 받는다.
"맑은 계곡 조개부인이 흰 기를 드네요."
('김삿갓과 가련의 로맨스' 몇 토막)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삐져 나온다. 김삿갓, 그 자신도 전국을 정처없이 떠도는 가련한 신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김삿갓처럼 가련한 신세에다 이름마저 가련이었으니, 둘은 운명적으로 만난 셈이 아닌가. 게다가 서로 마음에 꼭 드는 시를 주고 받았으니 어찌 첫눈에 반하지 아니하랴.
"가련이가 이 시를 받고는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김삿갓 또한 여지껏 잠자고 있었던 오장육부가 끓기 시작" 할 수밖에. 특히 김삿갓과 가련이가 단 둘이 기방에서 주고 받는 음담(淫談)은 배꼽을 쥐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도 김삿갓의 방랑벽 앞에서 어쩔 수가 없다.
만덕의 나이가 오십 중반에 이르렀을 때 제주에 큰 흉년이 연이어 들었다. 정부에서도 많은 구호미를 보내 굶는 사람을 구제했지만 역부족이었다...그 참상을 보다 못한 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서 목포, 부산, 마산, 여수 등지에서 긴급히 곡식을 사들여 죽을 쑤어 제주도민을 아사에서 구출했다./이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만덕의 공적을 치하하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만덕의 소원이란 게 겨우 '도성에 올라가서 임금님 계신 곳을 우러러 뵙고 이어 금강산 구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도민을 구휼한 만덕' 몇 토막)
이 외에도 '여장부 가녀들' 편에 나오는 '목숨을 바친 논개와 의기들', '소춘풍의 해학' 등과 '기생으로 정승도 되고 패가망신도 하고'에 나오는 '단천기 월매와 암행어사 김우향', '선녀가 된 갈릉기 홍장' 등은 기생이 사대부나 선비 못지 않은 문사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심영구의 기생 에세이 <조선 기생 이야기>는 조선 시대 기생들의 수준 높은 풍류문화를, 때로는 익살로, 때로는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게 짚어낸다. 또한 조선시대 기생들이 관능적 쾌락만을 추구한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를 당당하게 이끌고 나간 문화전위대였다는 것을 새롭게 재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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