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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의 음식,음식속의 역사

AziMong 2005. 2. 7. 23:28
‘그림속의 음식,음식속의 역사’…그림속 음식보면 역사가 보인다

음식의 변화상은 풍속의 그릇에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
2005.02.02

조선 정조때 활동했던 김득신의 풍속화 ‘강상회음(江上會飮)’을 살펴보자. 나루터에 둘러앉은 어부들의 먹거리는 밥과 술에 생선찜 한마리가 고작이다. 김득신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와 최근의 백과사전을 참고하면 이 생선은 몸 길이와 조리법 등에서 숭어일 가능성이 높다.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에는 술이 등장한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무들 사이의 길에서 갓과 두루마기를 갖춰 입은 양반이 술 한잔으로 들병이와 수작을 부린다. 독에 담긴 술은 청명주나 한산소국주 같은 ‘앉은뱅이’ 술임에 틀림 없다. 그래야 객지를 떠돌아 성읍에 다다른 과객의 호주머니를 털어낼 수 있을 테니까.

숙종과 영조대의 화가 조영석의 ‘채유(採乳)’는 내의원 의관들이 임금에게 바칠 타락죽(駝酪粥)의 원료인 생우유를 마련하기 위해 암소의 젖을 짜고 있는 풍경을 묘사했다. 타락죽은 허약한 노인에게 알맞은 영양보충제로 쓰였으니 이 음식을 먹었을 임금은 52년간 재위하면서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로 추측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민속학) 교수의 ‘그림 속의 음식,음식 속의 역사’그림을 통해 음식의 역사를 살펴보고,음식의 역사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엿보게한다. 조선시대의 풍속화 23점에 담긴 음식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서 이면에 숨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추적하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음식의 변화상은 이른바 유행이라는 풍속의 그릇에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책을 썼다고. 김치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한국음식에 고추가 들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설날에 떡국을 먹는 까닭은 무엇인지 등 ‘음식사’를 공부하면서 갖게된 궁금증을 알아보려 풍속화에 매달리게 됐다.

책은 서민,궁중,관리,근대 등 4가지 아이템으로 음식풍속을 소개했다. 그림으로 보는 서민의 음식풍속’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엿장수를 그린 유숙의 ‘대쾌도(大快圖)’,풍년을 기리는 농부들의 마음을 담은 김홍도의 ‘벼타작’이 소개된다. 저자는 이들 그림을 통해 엿과 쌀밥에 얽힌 이야기를 감칠맛나게 들려준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차린 정조의 효심을 그린 김득신의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서양음식이 가득한 안중식의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 기념연회도’ 등으로 궁중의 음식을 짐작할 수 있으며,사대부들의 술자리를 담은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숯불 쇠고기가 등장하는 작자 미상의 ‘野宴’ 등으로 관리의 음식을 알 수 있다.

근대 음식으로는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 ‘두부 짜는 모양’ 등을 통해 한국의 전통음식이라 여겨지던 것이 근대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국수는 대부분 메밀국수였으며 밀가루가 대중화된 것은 1930년대 말 일제가 전쟁에 몰두하기 위해 혼식을 장려하면서였다. 이와관련,주 교수는 일제시대의 외식에 대한 저서를 올해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사계절·1만5000원).

이광형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