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NLL 논쟁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은 유령선이다. 우리의 영해에 기어들어 돌아치고 있는 남조선군 전투함선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남조선군 호전광들은 우리의 인내와 자제력을 오판하지 말고 우리측 영해 침범행위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결국 다시 'NLL 논쟁'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 논평은 북한 인민군 해군사령부 대변인이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김태영 합참의장, 전공을 세우고 싶었나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더니 "NLL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내야할 선"이라면서, 'NLL 논쟁'을 다시 유발했다. 북한의 이 논평은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에 따른 반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NLL'을 언급했을까
여기서 기억을 잠시 더듬어보자.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으로부터 다섯달 전이다. 지난해 10월 중순에,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언급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격렬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일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돌아보자.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인데, 그 안에 줄을 그어놓고 이걸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면 헷갈린다. 이것이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며 많이 다투어서 우리한테 유리할 것 없는 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된다."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으로,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정치권에서 사실관계를 오도하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발언은 '북한 추종 세력'의 발언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남북 문제가 골치아픈 이유다. 첨예한 사안과 민감한 복선이 겹쳐져 있기에 시각에 따라서 상식적인 언급도 '역적'으로 몰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의 당시 반응이 그를 뒷받침한다. 한나라당의 당시 논평을 살펴보자.
"혹시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은 사실상 무력화될 것이니 걱정말라고 몰래 약속한 것은 아닌가. 발표된 내용 외의 물밑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
전형적인 '대북 퍼주기' 발언이다. NLL 논쟁은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혹세무민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다. 그러니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이 이 발언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마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아주 중요한 힌트가 숨어있다. 뭘까?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곧, "북한도 헌법상 우리 영토인데 우리 영토 내부에 줄을 그어놓고 영토선이라고 규정하면 앞뒤가 안맞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 12일에 '[사설] 대통령이 NLL은 영토 선(線)이 아니라니'를 통해 'NLL 논쟁'에 대해 일본과의 독도 분쟁을 거론하는 어이없는 비교론을 내세웠다. 그로써 <조선일보>는 우리 헌법 3조 영토조항을 위반한 셈이 됐다.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라는 말은,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영토선은 '국가와 국가의 영토경계선'이며, 일본과의 독도 분쟁은 엄연한 국가와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다. 결국,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결국 헌법 3조 영토조항을 부정해버린 결과를 연출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부정하면서 헌법상 국가가 아닌 저들을 '국가'로 인정해버린 우를 범한 것이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국가보안법대로라면 이는 명백한 위반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국가보안법 유지'를 주장하려면, 솔선수범하는 의미에서 자신을 결박해 재판을 받고 처벌을 기다렸어야 옳았다.
북한은 결국 NLL을 트집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짧은 언급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북 퍼주기' 운운하는 사람들이야 "NLL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한마디만 한다면야 애국자 노릇 톡톡히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 속에서 "많이 다투어서 우리한테 유리할 것 없는 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론을 돌아봐야 한다.
역시나,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트집'을 잡으면서 '미사일 발사'라는 전통적인 수법을 동원해 또다시 NLL을 거론했다.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 다들 잘 아실 것이다. 문제는, '유령선'이라는 저들의 언급은 나름의 명분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NLL 자체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해양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클라크 사령관 주도의 유엔군이 협정 직후에 일방적으로 설정해 북한 측에 공식 통보한 한계선이다. 그러니, 북한으로서는 그 틈을 활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북한은 1973년부터 서해 5도 주변수역을 자신들의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NLL을 넘나들기 시작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틈만 나면 거론하는 '서해교전'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허술한 역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선동' 소재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그런 비극이 일어난 원인과 그 원인 속에 숨은 함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법 학자들의 상당수도 NLL에 대해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한다고 한다. 유엔사 특별고문을 역임한 이문항씨의 증언은 놀라울 정도다.
"정전협정 상에 어떠한 근거도 없는 선이며 70년대 말까지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는 물론 사령관도 성격을 몰랐다."
이승만 정권도 정전협정과 더불어 NLL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한국군의 단독 북진까지 고려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하길 바란다. 그뿐일까? 한나라당의 전신 신한국당의 김영삼 정권에서,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NLL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도 돌아보자.
"이양호 국방장관이 '북한 함정이 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도 좋다'고 밝혀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장관은 16일 국회본회의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이 '4·11총선 이후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5㎞나 넘어왔는데도 국방부 대응이 미흡하고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도된 경위가 무엇이냐'고 따진 데 대해 '북한 함정이 해상 북방한계선을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과는 관련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 답변에 야당의원들은 '50년 동안 남북이 묵시적으로 인정한 통제선에 대해 장관이 그런 식으로 답변할 수 있느냐'고 일제히 소리쳤고 여당 의원들도 고함으로 맞서 한동안 설전을 벌였다."
"국방부는 17일 이양호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온 것은 정전협정과는 상관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는 정전협정 위반사항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지 북방한계선을 넘어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북방한계선은 미군과 남북한이 묵시적으로 설정한 상징적인 경계선이며 이를 군사적 측면에서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여서 실질적으로 국제법상의 규제를 받도록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 휴전이 성립된 53년 8월30일 당시 주한미군이 육상의 휴전선과 도서지역중에는 강화도 서측의 교동도까지 명확한 군사분계선을 설정했지만 당시 함정이나 해상 선박의 운항이 적어 충돌의 우려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동·서해상은 잠정적인 경계선만을 설정했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후 남북한은 군사적인 충돌을 우려해 잠정적으로 설정된 이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인정해왔다'며 '이 때문에 북한이 남측 영해로 함정을 내려보낸다 해도 국제법상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다만 남북한은 국제법상의 명문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해상 충돌시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해 양측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지는 않고 있다'며 '올들어 북한 함정이 몇 차례 북방한계선을 침범했을 당시 우리 해군이 긴급출동해 경고를 보냈을 때 북의 함정이 쓸데없는 트집을 잡지 않고 복귀한 것도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막으려는 남북한의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발췌 부분은 <국민일보> 1996년 7월 17일자 기사 "'북 함정 북방한계선 넘어와도 무방'/이번엔 이 국방 발언 파문"이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서로의 처지에 따라 NLL에 대해 일관된 대처를 보이지 못했다는 한계도 살펴볼 수 있는 기사다. 당시에는, <조선일보>조차도 '북방해양한계선 파문'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바다의 경우는 남-북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바다에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 30일 유엔사측이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위반 사항이나 국제법상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양호 국방장관의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 사항이 아니다'는 답변은 맞는 것."
그렇다면, 북한이 심심할 때마다 NLL을 거론해 파문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는 무엇일까? 이문항씨의 증언이 새삼 와닿는다.
"서해 5도 영해와 북한 영해가 겹치는 수역에는 중간선을 긋되 중간의 공해는 봉쇄할 게 아니라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함께 사용하는 바다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싶다. 충돌을 막고 군사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인 것 같다. 어차피 공해에는 선을 그을 수도 봉쇄할 수도 없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장도 이 증언과 거의 일치했다. '남북공동어로 및 평화수역'을 만들자던 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라면 "우리 영해를 포기하려는 것이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한반도 전체가 영토라는 헌법을 돌아보면 NLL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명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는 것이 좋겠다.
'서해교전'과 같은 비극을 또다시 유발하고 싶다면 모를까, 진심으로 그게 아니라면 근거에도 없는 선동은 그만두는 것이 좋다. 봐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북한이 심심하면 NLL로 파문을 일으키지 않나. 그러느니 '남북공동어로 및 평화수역'을 해결책으로 삼는 것이 낫다.
'연타' 날리는 북한, 이명박식 '실용 대북정책'은 뭘 보여줄 것인가
현재까지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질적으로 '내용'이 없다. '인내심' 운운하는 네오콘식 화법을 빌렸을 뿐이며, '상호주의'라는 이름 아래, '북핵 포기 이후 경제 지원'에 대한 대책은 있어도 '북핵 포기' 그 자체에 대한 대책은 없다.
그 대책이 없으니 전통적인 수법을 빌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나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한반도 대운하'에 '공천 파문', '땅부자 내각 파문' 등, 한나라당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러니, "총선용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 북한은 미사일도 발사했으며, 개성공단 내 경협 남측 실무자들을 실질적으로 '추방'시켰다. NLL도 다시 거론했다. '북핵 포기' 그 자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허를 있는대로 찔러대며 경고와 함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퍼주기'에 대한 압박을 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다시 네오콘식 수사법을 빌릴까? 설마, 전쟁을 할 생각은 아닐 것이라 믿겠다. '대북 퍼주기' 운운하면서 지지층을 의식한 발언을 내세울 궁리는 많이 했을지는 몰라도, 김영삼 정권 시절의 대북정책에서 발견된 우(愚)를 극복한다는 믿음을 주지는 못한다.
대북정책은 '퍼주기' 운운하는 '혹세무민'으로 해결볼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당장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미 부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잃어버린 10년' 동안 '좌파 정권'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제는 좀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명박식 '실용 대북정책'으로 가정해본 '최악의 상황'
그런 의미에서, 어느 누리꾼의 댓글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오마이뉴스> 28일자 기사 "야당 땐 '좌파 안보불감증', 이제는 '통상 훈련'"에 '선지자(jaywmun)'라는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지켜볼 만한 댓글이지만, 이렇게 되면 큰일난다. 어쩌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은 '선지자'라는 누리꾼이 댓글에서 표현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4자 회담으로 축소할 것을 주장하면서, (북핵 불능화) 신고를 미국이 원하는대로 성실하고 완전한 방향으로 하겠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이런 주장은 의외로 일관성이 있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의 적대정책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돼 핵 보유국으로 지위가 격상되었으니, 6자 회담은 이제 핵 군축 회담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과 한국은 비핵보유국이다. 북한은 그러면서, 내친 김에 이명박 정부를 골탕먹이는 발언을 할 것이다.
'한국은 빠져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미동맹 강화로 한 나라나 다름없게 됐으니, 미국에 대표권을 맡기고 할 말 있으면 미국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느냐?'
이명박의 실용외교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10여 년 전, 북한과 미국의 벼랑 끝 외교전 속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2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건설 비용을 아무 소리도 못하고 내놔야 했던 김영삼 정권 시절이 떠오르는 것, 나만의 과민한 반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