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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본문

.....古典(고전)

루소

AziMong 2008. 4. 28. 21:20
여덟살의 고아였던 어느 소년......
장난을 칠 때마다 가정부로부터 엉덩이를 맞았슴다.
그런데 이 엉큼한 아이는 고통보다는 오히려 쾌감을 느꼈다고 함다.
그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슴다.

"나는 그 아픔과 수치감속에서도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 때문에 다시 얻어 맞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만 갔다........"

급기야 가정부는 이 소년이 그것을 아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았고 경계를 하기 시작함다.

"그 때 까지 나는 가정부의 침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자기도 했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다른 방에서 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쫓겨난 것이다.
그러나 나를 다 자란 어른으로 취급해 준다는 생각에 오히려 으쓱해졌다....."

이 소년이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루소(1712-1778)"입니다.
톨스토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참회록으로 꼽히는 그의 고백록에는
대부분의 참회록 집필자들이 자화자찬이나 관대함에 빠진 것과는 달리
수치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성적인 탈선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등장함다.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루소는 생후 3일 째에 어머니를 잃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채 숙모의 집에서 고달픈 나날을 보냄다.
그는 동판화직공, 시계직공, 음악교사, 악보사보, 작곡자, 비서등
여러직업을 전전하면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공부함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자에 대한 욕망은 숨길 수 없이 솟아 나와
아직인 동정인 16살의 그를 초조하고 안절부절하게 만들어 버림다.

"나는 자꾸 피가 끓어 오른다.
내 머릿속은 소녀들의 모습으로 꽉 차있다..........
흥분이 극에 달하면 나는 이상한 행동을 즐겨 햇다.
여인들이 있는 곳에 살금 가서 나의 엉덩이를 확~~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 때의 짜릿한 즐거움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일종의 "노출증 환자"였던 루소의 첫 여인은 "바랑"이라는 귀부인인데
루소는 그녀의 후원에 힘입어 철학, 문학, 음악 공부에 전념하게 됨다.
열아홉살의 루소는 10년 연상의 그녀와 5년 남짓 동거를 함다.
루소는 그녀를 "엄마"라고, 그녀는 루소를 "작은 아기" 라고 부르며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뒤섞인 오이디푸스적 사랑을 했담다.

"내 나이 24살때 나는 처음으로 여인의 팔에 안겨 있는 자신을 보았다.
난생처음의 즐거움을 맛보았으나 그 즐거움 안에는 가시지 않는 슬픔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두 세번 씩이나 황홀감에 휩싸여 그녀를 품에 안고도
나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마구 눈물을 쏟았다....."
(...아....."어부비토"만이 이런 내맘을 이해하겠지.....)

그 다음의 여인은 "라르나쥬"라는 부인으로
"45세의 미인도 아니고, 젊지도 않으나, 색을 밝히는 이 여인"을 통해
루소는 비로소 남자로서의 관능에 눈을 뜨게 됐담다.

"훗날 내가 백 살 까지 산다고 하더라도
이 매력적인 여성을 생각하면 다시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감미로운 쾌락을 맛 보았으며 거기에 깊이 도취되었다.
내 인생에서 육체의 쾌락이 주는 기쁨을 느끼게 된 것은 라르나쥬 부인 덕분이다....."

얼마 뒤 루소는 다시 방랑 생활을 하면서 많은 여인과 사랑을 하는데
베네치아의 창녀 촌에 가서는 그 도시 가장 유명한 창녀를 만나
"다리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희열을 맛보았노라고 고백함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던 루소는 하숙집 딸 "테레즈"와 결혼함다
육체는 아름다우나, 머리는 "자연이 만든 그대로" 인 똘팍 그 자체인 그녀....
글자도 제대로 몰랐으며, 1년 12개월을 순서대로 말할 수 없었고
루소가 아무리 시계보는 법을 가르쳐 줘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는 여자임다.
그런데도 루소는 그녀를 몹시 귀여워해서 언제나 "우리바보" 라고 부르며
그녀의 때묻지 않은 천성을 사랑해 마지 않았슴다.

당시의 대표적 최고 지식인 이었던 루소가 그런 여자를 택한 이유는
그가 내놓은 저서들이 금서로 처분받게 돼 늘 체포 위협에 시달리고
어느 한 곳에 정착 못하고 항상 도망다니는 신세가 거듭되면서
절친했던 친구들도 외면하고, 다정했던 귀부인들도 등을 돌리자
돈, 학벌, 가문 보다는 힘들어도 자신과 끝까지 있어줄 여자를 택한 검다.

그러나 ........
루소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명의 아이를 모두 고아원에 보냈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신보다는 고아원에서 키우는게 낫다고 판단한 거죠.
어린이의 교육에 유달리 관심을 갖고 "교육론"까지 집필한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교육은 커녕 고아원에 강제로 보내 키운 검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대표적 저서 "에밀"에서 이렇게 역설하고 있슴다.

"부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는 부친이 될 자격이 엄따.
부친이란 가난 또는 직업등의 여러가지 요인을 이유로 해서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의무에서 절대 면제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이중성때문에 루소는 적대관계였던 볼테르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됐고
후세에 "입술에는 꿀, 뱃속에는 칼"을 가진 철학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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