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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백양오양사건

AziMong 2008. 4. 28. 21:21
오양, 백양 ......
본인들이야 열불 나고 뿔딱지 나겠지만서도
적어도 울나라에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엄따고 봐도 됨다.

판단은 자유겠지만 우째떤 그녀들은 일종의 희생양이었슴다.
남녀가 침대에서 그거 하는거 당연한 검다.
머....밤새도록 눈 비벼가며 쌔쌔쌔~를 해야 함까?........아니잔슴까.

근데 일부 점잔+유식한 넘덜이 꼭 이럴때 초치고 나섬다.
그 넘덜은 마치 똥누고 밑 안�은 듯한 심각한 얼굴로 대중매체에 등장해서는
마치 이 시대가 유사이래의 타락한 말세인양 온갖 장진구스러운 말로 비판함다.
자기네덜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덜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흰소리 해댐다.

헐헐헐....."쪼다 육백치는 소리"라는게 이럴 때 쓰라고 맹긴 말임다.
지금으로부터 30 여년전 "클리프 리차드"라는 영국넘이 내한 공연왔을 때
빤스, 브라자 벗어 던지고 발광했던 세대가 바로 그 잘난 세대임다.
영화 "타워링"의 모델이 됐던 대연각호텔 화재 때
날라리 여고생들이 호텔 객실에서 떼죽음 당했던 때도 그 무렵임다.

그 뿐만이 아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경악 할 만한 사건을 찾을 수 있슴다.
이름하여 "조선판 오양, 백양 사건"이 그 대표적인 샘플임다.
조선 초기를 뒤 흔들었던 음풍사건의 쥔공은 "감동" 과 "어우동"임다.

"감동" 사건이 터진 때는 세종 9년(1427)임다.

"감동"이라는 뇨자는 명예서울시장을 지낸 "유귀"의 딸로서
몸의 구조가 잘못됐는지 어쨌는지 엄청나게 밝히는 뇨자였담다.

가문좋은 무안군수인 최중기에게 시집을 간 그녀는
한밤중 남편과 자다가도 음심이 발동하면 화장실에 간다고 나와서
간부와 놀아났다는 소행이 드러 날 정도로 간뗑이 두꺼운 뇨자임다.

남편 하나만으로는 자신의 정욕을 식힐 수가 없었던 그녀......
남편이 평강현감으로 발령나자 병을 핑계로 서울에 와서는
본격적인 엽색행각을 벌이다가 들통나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맘다.
그러자 "아이고... 잘 됐다" 는 듯 아예 창기로 자청하여
서울의 반반하고 지체높은 양반들과의 통정에 몰두하게 됨다.

영의정, 판사, 참판, 목사, 절도사, 왕손등등의 먹물탱이덜은 물론이고
그녀의 조카( 이조판서), 시누 남편(정3품)등과의 근친상간도 서슴치 않슴다.
감동의 끈끈이에 걸려든 넘덜이 무려 총 38명에 달함다.
오양, 백양?.....이들은 감동에게 비하면 순진무쌍한 아이덜임다.

감동의 행각(....감동적인 행각이 아님다 ^^;;)이 드러나자
조정은 광우병 파동 맞은 듯 발칵 뒤집어지지만
맘씨 좋은 우리의 세종대왕은 관대하게 처분함다.

"감동이 음녀이기 때문에 남자덜은 벨 잘못이 엄따.....
뇨자는 환경정화 차원에서 저 멀리 변방의 관비로 보내고
연루된 남자덜은 걍~~ 장형과 파직으로 마무리 혀라"

그로부터 얼마 안지난 성종 11년(1480)에
동방예의지국의 명함에 똥칠을 하는 "어우동"사건이 터짐다.

어우동 역시...... 지체 높은 사대부 집안의 뇨자임다.
승문원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서 종실명문인 태강수 "동(仝)"에게 시집감다.

이거... 왜 터졌다하면 감동, 어우동....."동"자 돌림의 인간덜이 등장하는거야?
"동"자에도 좋은 사람 있다 이거야.......그게 바로 나야 .........강호동 !!!

어우동의 족보는 구체적으로 따지자믄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가 됨다.......왕실 뇨자인 셈이죠.
왕실 출신이면 뭐 함까? 몸은 완전히 따로 국밥처럼 노는데.....

어우동 역시 몸이 대책엄씨 뜨겁고, 질퍽대는 뇨자임다.
어느 날, 남편이 은장 공인을 집에 초청해서 은그릇을 제작하는데
어우동이 빼꼼히 보니 ...허걱?..미남!.....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함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그녀가 여종의 옷을 후다닥 빌려입고 달려가
한 게임하려는 순간 남편에게 발각 돼 그 길로 쫓겨 나고 맘다.

친정으로 쫓겨 온 어우동은 반성과 후회는 커녕
어카면 남자덜을 꼬셔서 몸을 풀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골똘함다.
이런 꿍꿍이를 눈치챈 계집종이 동네의 허우대 좋은 남정네를 소개해 주자
어우동은 그 남정네와 더불어 마치 몸파는 창기처럼 놀아 났다고 함다.
새 맛을 알게 된 어우동은 아예 계집종을 삐끼삼아 음락행위를 전개함다.

어우동의 상대 역시 고관대작과 근친등이 골고루 등장함다.
대사헌, 병조판서, 직제학, 아전등의 나으리들을 녹였고
팔촌 시아주버니(정종의 손자), 육촌 시아주버니(세종의 손자)도 주물렀슴다.

어우동의 특징은 맘에 드는 남자만 봤다 하면
물불 안가리고 즉시 그 자리에서 관계하는 것으로 유명했슴다.
심지어는 외출중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 뜨거운 눈길이 오가자
계집종을 시켜 인근의 초가집을 급히 몇푼 주고 빌려
번개섹스를 가질 정도로 몸이 초절정으로 달아오르는 뇨자였슴다.

그녀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의 맘에 드는 남정네들 몸에
문신을 새겨 넣도록 요구했다는 것이었슴다.
결국 그 문신이 빌미가 되어 그녀의 행각은 꼬리를 잡히게 되고 마는데
그녀가 스스로 자백한 고위급 인간들만 해도 11명임다.

"감동"은 세종때의 온화한 판결때문에 목숨만은 부지했지만
"어우동"이 살았던 성종때는 그런 패륜이 씨도 안 먹혔슴다.
더구나 어우동의 아비인 박윤창 마저도
"어우동은 내 딸년이 아니다...........실은 짬뽕이 내 딸이다" 라고 외면했고
도승지 김계창이 줄기차게 탄핵하여 끝내 교수형에 처해 짐다.

역설적으로 말해 이 방면에서 울 나라 남자덜은 뇨자에 비해 한 수 아래임다.
서양에는 카사노바, 돈환 같은 넘덜이 버젓이 등장하는데
울나라에는 그런 남자가 .......역사적으로 한참 후에나 등장함다.
1955년에 무려 70 여 명의 뇨자덜을 농락한 "박인수"사건이 그거임다.

"감동"에 비해 무려 530 년이나 뒤 떨어진 시대에 홀연히 등장해
겨우 남자들 체면(?)을 세워준 남자 대표선수 박인수는
외국물 먹은 양 사칭해서 젊은 여자덜을 골프장 티 줍듯이 낚았슴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대생이었으며 그중에는 국회의원, 고관의 딸도 있어서
당시 사회에 원자폭탄 폭격 만큼이나 큰 충격을 줬슴다.

당시의 이 사건은 6.25사변 이후의 성개방 풍조에 큰 경종을 울렸었는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박인수의 법정 증언이었슴다.

"내가 건식한 수 많은 뇬덜중 처녀는 미장원 이양...딱 한명 뿐이었다"

"나를 고소하겠다고 나선 뇬은 불과 2~3명 뿐이 엄따.......지덜두 뒤가 꾸리거덩"

"캬바레 가서 춤으로 녹이면서 ,영어 � 마디 지껄이면 안넘어 오는 뇬이 없었다"

"딴스 홀에서 춤 추고 나면 으례 여관 가는 게 상식화 돼 있었다"

어떠씀까?.......45년전이나 요즘이나 뭐가 다름까?

물론 요즘의 방탕이 더 일반화돼있고 후안무치로 흘러 가는건 사실이지만
"옛날의 우리덜은 진짜루 눈처럼 순결했었다" 라는 말은
순~ 아주까리 염소 똥 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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