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대표 법정진술 전문 본문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대표 법정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이른바 삼성 x파일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였다는 이유와 그 허위사실로 인해 개인의 명예가 훼손 당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 x파일 사건의 본질은 불법도청에 있지 않습니다.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이 바로 삼성 x 파일입니다. 불법도청은 되풀이 되어선 아니 될 위법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x파일에 담긴 진실이 훼손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은 대화의 당사자인 홍석현, 이학수씨나 이들의 대화과정에서 등장하는 몇몇 개인에 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삼성 x파일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강을 뿌리 채 뒤흔드는 범죄의 현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유수의 언론사 사주와 최대 재벌그룹의 최고위직 간부가 일년여에 걸친 기간동안 수십차례 만나서 범죄를 모의하고 집행을 확인하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뇌물을 건넬 전현직 검사리스트를 놓고서 ‘누군 얼마 누군 또 얼마’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선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범행을 지시하면 다른 한사람이 복창하며 받아 적는 대목에선 귀를 막고 싶은 심경이었습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온전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할 대통령선거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가 하면 국가의 수사 및 소추권을 전담하고 있는 검찰의 고위간부뿐 아니라 소장검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불법뇌물을 제공하거나 그 계획을 모의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이 현저하게 훼손당하는 참담한 현실을 x파일에서 목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려한 거대 자본의 불법행위와 횡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5년 7월 중순부터 각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삼성 x 파일의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7월 21일 KBS가 홍석현, 이학수씨의 실명을 보도했고 7월 22일 MBC는 세칭 떡값검사의 직책과 성명이니셜을 보도하였습니다. 월요일인 7월 25일 중앙일보는 신문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하겠습니다>는 제목의 사과사설을 실었고 같은 날 삼성그룹 역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x파일이 홍석현, 이학수씨의 대화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26일 홍석현 주미대사가 <이번 일로 많은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다>는 말을 남기며 대사직 사임을 발표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세풍사건등 지난 시기 불법대선자금 사건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들이 삼성 x파일을 통해 퍼즐조각 맞추듯 드러나는데 놀랐고 풍문으로 짐작하던 자본, 권력, 검찰, 언론의 유착관계의 실상이 사실로 확인되는데 국민들은 놀랐습니다. 참여연대와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이건희, 홍석현, 이학수씨와 이니셜로 지칭된 떡값검사들을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하였습니다. 70%의 국민들이 x파일 사건 수사를 검찰에 맡길 수 없다며 특별검사제 도입에 찬성하였고 73%는 x의 내용을 공개하는데 찬성하였습니다. 8월 11일 민주당 이은영의원등 146명은 x파일 내용공개를 위한 특례법안을 제출하면서 그 제안 이유에서 <1997년 제 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대기업의 사주가 언론사 사장을 통해 대선후보들에게 불법정치자금 또는 뇌물을 제공하였고 대기업이 평소 중요한 국가기관인 검찰의 주요 간부들에 대하여 이른바 떡값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음이 드러났다>고 규정하였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강재섭의원 등 141인이 <안전기획부의 불법도청자료 중에 대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검찰의 주요인사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정치권력과 대기업, 언론사의 유착관계가 드러나 국민들의 의혹과 진상규명의 요구가 높다>면서 특검법안을 발의 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참여연대의 고발사건을 수사를 위해 7월 26일 공안2부장을 팀장으로 공안2부 검사 4명, 공안 1부 검사 1명, 특수부 검사 1명으로 수사팀을 구성했다고 발표만 했을 뿐 불법수집증거 운운하며 수사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x파일에 자신의 실명이 거론된 법무부 차관은 국회 8월 22일 법사위에서 <7월 21일 모 방송국 9시뉴스에 떡값 명단 소문이 있던 터에 녹음테이프를 입수한 대검관계자가 자신에게 떡값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법수집된 증거이므로 이를 토대로 수사할 수 없다고 하던 검찰이 정작 수사대상에게는 불법수집된 증거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사실상 수사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바로 이런 상황에서 x파일의 내용을 입수한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x파일 내용을 공개한 날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조차 KBS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의원은 권력비리를 감시 비판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헌법적 의무를 다한 것이므로 헌법의 하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으로는 규제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x파일의 세칭 떡값검사 명단에는 현직 법무부차관과 고등검사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현직 법무부장관이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해 ‘정치권력, 언론, 자본, 검찰, 과거 안기부 등 거대권력 남용의 종합판이자 결정판’이라 평가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겠다고 할뿐 속수무책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법사위원이 제가 어떻게 해야 국회의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까? 명예훼손 등으로 저를 고발한 분은 사실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 하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 14일 발표된 서울중앙지검의 중간수사결과에서도 이 건과 관련하여 <자의에 의한 자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확인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확인에 나서지 않는 검찰을 그나마 나서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삼성 x파일 사건이 나라를 뒤흔든지 이제 4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제가 x파일 내용을 공개하던 당시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거대권력 남용의 결정판이었던 x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단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고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떡값수수의혹 전현직 검찰간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7대 국회의원 거의 전원이 발의했던 특검법도, x파일 공개 특별법도 자동폐기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대사직을 사임한 사람은 이제 x파일 대화 자체를 부인하며 테이프 조작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안개가 걷히면 본래의 풍경이 뚜렷이 드러나듯이 x파일 사건이 지나가면서 남은 것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앞장선 두 사람이 법정에 피고의 자격으로 서 있는 모습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본 법정에서 마지막 진술을 하는 이 순간까지도 제가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법정에서의 재판은 저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결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전범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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