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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자유주의인가, 반독재인가 본문
<이슈진단>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현안에 대한 짧고 명쾌한 진단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편집자주>
정말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가는가?
지금 우리사회에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20여 년간 느리지만 꾸준히 쌓여왔던 민주주의 결실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다시 6월 항쟁 이전의 파시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각계의 시국선언을 통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등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과거 독재정부 시절 양심적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7월 1일 특강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통치시대는 비인간적,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라며 “짧은 10년이지만 이룩했던 공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불퇴전의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독재정권인가 신자유주의 정권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까지 이명박 정부를 ‘정통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강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오던 데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군부 독재 정부시절에나 있을 법한 각종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제한과 경찰, 검찰, 국세청, 국정원을 동원한 물리적인 국민 탄압을 실시하자 다시 원초적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이슈를 제기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이슈를 앞세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학자인 손호철 교수는 “진짜 중요한 문제는... 반신자유주의 연합과 반이명박 연합의 관계다. 전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좌익 소아병으로 문제가 많다. 반대로 후자만 강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확대,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명박을 위해 무조건 대동단결하자는 것은 역으로 우편향이다. 결국 반이명박 연합과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정세에 따라 적절히 결합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고민의 일단을 풀어 놓았다(한겨레신문 2009.6.17).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한국 진보개혁진영의 좌표는 ‘반신자유주의’가 아니라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그것은 ‘87년 체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민주주의’”라며 정치적 민주화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고원 상지대 교수, 진보의 주제는 ’빵’이나 ’계급’보다 ’가치’, 프레시안 2009.7.2).
모두 현재의 경제위기와 동시에 닥쳐온 정치적 역진 국면을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 속에서 나온 얘기들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정책 파산이 불러온 민주화의 극적인 후퇴
그런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각종 규제완화와 감세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명박 정부이고 4대 강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다름 아닌 현 정부이며 1만 7,000명 시국선언 교사를 징계하는 등 독재정권의 행태를 보이는 것도 역시 동일한 정권이다. 현실구조에서 반신자유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것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70~80년대 독재정부의 모습이 최신의 신자유주의 정부와 중첩되는 복잡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몰리면서 한국정부가 뒤늦게 추진하는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최소한의 성과는 고사하고 국민들에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등 부정적 폐해들이 극대화되는 상황이 연출되자 이명박 정부의 국정 기조가 극도의 혼선 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 효과가 사라지면서 정권 방어를 위해 불가피하게 공권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신자유주의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위세를 떨치면서 주가가 폭등하고 부동산 경기가 뛰어올라 금융자산이 늘어나는 정도의 일정한 실적(?)이 나오던 시절이면 이를 기반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자산이 호황을 구가해야 중산층과 국민들에게 ‘고수익’ 환상을 심어주어 투자자로 만들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주식 사면 1년 내에 부자 된다”는 대통령의 말이 먹히는 것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부동산 경기 부양해서 자산 가치 상승을 심리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도 그럴 처지도 못 된다.
자본시장 통합법의 시행으로 여의도에 투자은행을 세우고 신종 금융상품을 대량으로 풀어내 경기를 부양할 기대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공기업을 신속히 매각하여 M&A시장을 활성화하고 매각대금을 정부재정에 활용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3년 전에 매각한 공적자금 투입기업인 대우건설을 금호아시아나가 다시 토해내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외국 금융자본을 대량 유입시켜 자본시장을 키우고 싶겠으나 지금은 한국자본시장에서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으면 다행인 실정이다.
더욱이 규제완화와 감세로 대기업들이 과거보다 다만 얼마라도 시설투자액을 늘려주어야겠건만 금융위기로 인해 투자는 급격히 위축되고 재벌금고에 이익 잉여금이 쌓여만 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에게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있는 것 역시 문자 ‘호소’ 이상이 아니다. 그 뿐인가. 대대적인 감세조치를 강행해서 얻은 것은 투자 확대가 아니라 경제위기로 인한 대규모 재정지출과 재정적자이다. 최근 정부 여당 내에서 조차 감세유보 얘기가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여당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저항 움직임이 커져가자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정책 전환을 선택하기보다는 국민의 요구를 물리적 폭력으로 억압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리영희 교수가 지적한 70~80년대 파시즘으로의 회귀 현상의 진짜 원인은 도무지 성과가 나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폭력과 시장지상주의는 얼마든지 함께 올 수 있다
일반에게 대표적으로 알려진 신자유주의 정책은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작은 정부와 큰 시장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기업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노동자나 일반 국민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기업만큼은 과거처럼 권력의 힘으로 억누르지 않는다. 단지 ‘호소’를 할 뿐이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도 동일하다. 전두환 정부시절처럼 재벌 총수들을 불러들여 협박하기 보다는 젊잖게 ‘투자 호소’를 할 뿐이다.
사적 기업들에게 국가의 공기업을 팔아서 넘기고 사회의 공적 영역인 교육, 의료, 복지 영역을 시장화해 사적 기업들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바꿔놓는다. 지금도 의연히 ‘서비스 산업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신자유주의 최후의 시장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과 의료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핵심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경제의 금융화와 노동 유연화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최고 정책 과제다.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이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라고 직접 지시하고 노동유연화를 올해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직접 강조한 것을 보아도 이는 분명하다.
위기에 몰린 것은 진보세력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자신
그런데 기업에게는 확실히 ‘작은 정부’이지만 그 대상이 노동자나 국민이라면 더 이상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구호는 무의미해진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정책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구나 ‘작은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갈수록 커지는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론상의 신자유주의는 당초에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특히 선진국이 아니라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이라면 필연적으로 그 국가적 특성에 의해 굴절된 ‘변종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니 아니니 하는 논쟁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원조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할 영국의 대처 정권도 광산 노동조합을 잔인하게 탄압한 바가 있고 미국의 레이건 정부도 공항노조 파업을 공항폐쇄로 맞받았던 사례가 있지 않은가.
결국 이명박 정부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 교육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전두환 정권 시대와 유사한 ‘학원 교습 10시 제한’을 강제로 밀어붙이고 시국선언 교사들을 잡아들이는 정부를 전혀 모순된 모습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정을 정치적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순간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의 국민 지지를 얻을 길은 영원히 막혀버린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는 보수 세력 내부까지도 분열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수습하겠다며 ‘중도’를 선언하고 서민 정책을 쏟아내겠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보수의 분열을 드러내고 있는 데서 입증된다.
원조 보수라고 자임하는 김용갑 한나라당 상임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서민정치’를 하겠다는 데 강력히 반발하고 “보수정당이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건드리면서, 마치 보수가 잘못된 것인 양 말하는 건 불쾌”하다며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한국일보 2009.7.2).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파시즘적 정치행위는 스스로 30년 전의 역사적 시간으로 돌아갔다기보다는 2009년 한국사회에서 밀어붙이려고 했던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시행 시작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문제들을 물리적 폭력으로 수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반신자유주의 의제를 계속 제기해야 하는지, 역사의 기록 속에 묻어 두었던 원초적인 민주화 요구를 다시 들어야 하는지를 선택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할 권리마저 박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당연히 말할 권리를 달라고 해야 하며, 동시에 본래 하려던 말도 계속해야 한다. 상대가 위기에 처할수록 더 폭력적이 되고 잔인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파시즘의 공포를 딛고 일어서는 순간 그 바로 뒤편에 대안으로 향하는 창도 열려 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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