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분필 교사’ 사라지고 ‘클릭 교사’만 넘쳐나는 교실 본문
분필 교사’ 사라지고 ‘클릭 교사’만 넘쳐나는 교실
시사IN | 김은남 기자 | 입력 2010.03.01 09:59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광주
< 시사IN > 은 125~127호에 걸쳐 '배움의공동체' 모델을 소개했다. 일본 사토 마나부 교수가 창안하고 한국 교육 현장에도 확산 중인 이 모델이 핀란드 교육 개혁과 더불어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호에는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여기 참여한 세 사람은 지난 몇 년간 핀란드와 일본을 넘나들며 두 나라 교육 개혁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다. 그중에는 지난호 소개한 대로 '한국형 새로운 학교'를 직접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 좌담 참석자 >
서길원(보평초 교장, 작은학교교육연대 대표)
손승현(고려대 교수·교육학)
이광호(이우학교 부설 함께여는교육연구소장)
사회:핀란드로 대표되는 북유럽 모델과 더불어 일본 '배움의공동체' 등 새로운 교육 개혁 모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광호:'배움의공동체'를 창안한 사토 마나부 교수는 국내에도 꽤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그간의 학교 개혁 운동이란 게 '교과 수업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학교 전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서길원 선생님이 몸 담았던 남한산초등학교(경기 광주) 같은 데가 등장하면서 '아, 학교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배움의공동체 같은 모델이 일종의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른 듯하다.
국가에서 출발한 핀란드, 개인에서 출발한 일본
서길원:시대적 상황도 바뀌었다. 그간 진행돼 온 시장주의적 개혁이라는 게 결국엔 한계에 부딪치지 않았나? 교육의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교육이 꼭 지켜야 할, 교육에서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있다. 관료주의는 더 심화되고 있다. 교사간 경쟁 구도를 강화시켜 학교 경영이 나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좋은 학교일수록 더 망해가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핀란드와 일본의 교육 개혁 모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 것 같다. 양측은 프로젝트형 학습, 수업 공개 등 개방적인 학교·교실 문화를 개혁의 출발점이자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 곧 교육 복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단 핀란드는 20~30년에 걸쳐 총체적이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해 왔다. 시스템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 두 축을 중심으로 교육 개혁을 추진해 왔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시스템적 접근이 어렵다 보니 문화적 접근 곧 교실에서부터 출발하자는 발상이 나온 것 같다. 문화적 풍토를 바꿔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거꾸로 시스템의 변화까지 도달해 보려는 방식이랄까?
손승현:핀란드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1970년대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그 예방책을 미리부터 마련했다는 거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식사를 조절하듯, 국가적으로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교육 정책을 꾸준히 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이것이 2000년대들어 빛을 보게 된 거다.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는 동안 경제가 무너지면서 교실도 함께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예방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사토 마나부가 잘한 점은 자신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점이라고 본다. 부등교 학생 수(연간 30일 이상 결석하는 학생 수-편집자)가 급증하고 공교육이 무너지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개방하고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상당 부분 밟아가고 있다. 중3 교실의 경우 특목고 입시로 출석 관리가 엉망이 되면서 이미 부등교 학생이 광범위하게 늘고 있다. 우리도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광호:핀란드의 교육 개혁은 사실상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국가 차원의 정책과 교육 주체들의 자발성을 결합시키는 잘 짜여진 정책이 거기 있었다. 내가 그간 핀란드를 두 번 갔다왔는데, 볼 때마다 참 부럽고 어떨 땐 꿈 같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지금 있는 대한민국 정당이 다 사라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일본은 이런 제도적인 뒷받침이 거의 없었다. 손교수님 말씀대로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교육 투자도 우리보다 뒤졌다. 학교 시설은 낡았고, 학급당 학생수는 40명에 육박한다. 이 속에서 순전히 민간, 그것도 교수 한 사람에서 비롯된 개혁적 열정이 이에 동의하는 교장·교사·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밟아온 거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순전히 교육 주체들의 노력만으로도 개혁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배움의공동체 모델은 주목할 만하다. "다 좋은데 수업 공개만은 못하겠다"
사회:배움의공동체는 수업과 교실을 개방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하는데, 이게 기존의 열린교육이나 공개 수업과는 어떤 차이를 갖나?
이광호:단순히 수업을 공개하고 관찰한다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배움의공동체는 학교의 운영 원리 자체가 수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가 아니라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위에 수업이 철저하게 '티칭'이 아닌 '러닝'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기존의 공개 수업은 완전히 티칭 중심이었다. 젊은 교사들이 공개 수업하면 나이든 교사들이 교실 뒤에 서서 마치 복덕방 할아버지들이 바둑 훈수 두듯 '티칭 스킬'을 따졌다. 아이들이 지금 저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흥미를 갖고 있는지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도 수업 공개가 교사들의 자존심을 짓밟는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우학교의 경험을 강의하러 다니며 많은 교사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배움의공동체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긴 것도 수업 공개였다.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교사들간에 동료성을 확보하는 것이 배움의공동체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인데, 이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다 좋은데 수업만은 공개 못하겠다'고 버티는 분들이 많았다. 앙꼬 없이 찐빵 만들어보겠다는 식이 된 거다(웃음).
서길원:배움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를 학교에서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는 문화적인 접근이 이뤄져야만 교사들의 자발성이 살아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는 위로부터 너무 많은 정책들이 '탑 다운' 방식으로 쏟아지기만 한다.
이광호:현장에 가 보면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위로부터 하달돼 만들어진 방과후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일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학기 초가 되면 교사들이 업무 나누느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학교 운영 원리가 교수 활동이 아닌 공문 처리 중심이 돼다 보니, 어떻게 하면 수업을 더 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잡무를 덜 맡을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하는 것이다.
손승현:정부가 지나치게 모든 것을 주도하려 들면 오히려 개혁이나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저항감이 굉장히 커진다. 제도가 바뀐다고 교실이나 교사·학생이 따라 바뀌지 않는다. 나는 교사들을 만날 때 극단적으로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수업에 목숨 걸지 않는 교사는 결코 교직에서의 성공감을 맛볼 수 없을 거라고. 그런데 수업에 목숨 걸기에는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수업을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간의 수업이 학생 중심이 아닌 교사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고 흔히들 비판하는데, 나는 엄밀히 말해 교사 중심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교사들을 지배한 것은 관료주의였다. 미국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주어져도 교사에 따라 이를 천차만별로 풀어낸다. 창의력 뛰어난 교사에서 진부한 교사까지, 그 차이가 엄청나다. 그런데 한국은 심지어 수업 지도안까지 위에서 내려온다. 관료제 틀 속에서 교육과정이나 수업이 모두 표준화·박제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래서는 교사들의 자발성이 살아날 수 없다. 학생들에게 배움에 대한 욕구가 필요하듯 교사에게는 가르침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관료주의는 이런 욕구를 거세시켜 버린다. 영혼 없는 '클릭 교사'가 나오는 이유
서길원:나는 그걸 '능동적 기제'와 '수동적 기제'라고 표현하는데, 관료제 틀 속에서 만들어진 수동적 기제가 점점 더 교사들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능동적 기제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학교는 살아날 수 없다. 요즘 다들 창의성 교육, 질적 교육을 얘기하는데 교사들의 능동성·자발성이 살아나지 않고 어떻게 창의적인 교육 활동이 나올 수 있나. 조현초(경기 양평)가 좋은 사례라고 본다. 교육과정 운영이나 수업에서 교사들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하니 교사들이 신이 나서 일한다. 일이 많아 힘들어도 그 속에서 성장하는 기쁨이 있는 거다.
이광호:교사들의 능동성이 살아나지 않는 한 첨단 기기도 오히려 독이 된다. 한국이나 핀란드나 교실 인프라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걸 활용하는 교사들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핀란드 교사들은 수업 중 모둠 활동을 병행하면서 필요할 때만 교실에 비치된 실물 화상기를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한국 교사 일부는 수업 내내 빔 프로젝트를 사용한다. 어떤 교사는 아예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 '클릭질'만 하고 있다.
서길원:이른바 교단 선진화가 한국 사회에 매우 부정적인 교실 문화를 만들고 있다. 우수한 교사들이 교단에 들어와 '분필 교사'만도 못한 '클릭 교사'로 변해가고 있는 거다. 학생 아닌 모니터를 바라보고 수업 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체크할 수 있겠나.
손승현:교사는 앞에서 클릭하며 진도 나가고 학생들은 하루 몇 페이지씩 스스로 목표 정해 문제 푸는 걸 자기주도적 학습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건 수동적 학습일 뿐이다. 일본 배움의공동체를 가 보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교사가 학생을, 학생이 학생을 서로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었다. 한국 공개 수업을 가 보면, 잘하는 애들이 "저요" "저요" 손을 들고 선생님이 지목한 아이가 정답을 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면 선생님이 잘했다고 아이를 칭찬하고, 나머지는 그 애가 말한 걸 듣고 끝낸다. 오답을 들을 기회가 없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인 거다. 사토 마나부가 말한 '안전한 교실'이란 실패에 대한 허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답을 말할 수도 있고, 말해도 괜찮다는 믿음. 오답을 말했을 때는 이렇게 해결점을 찾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 이런 게 있어야 그 안에서 내 생각을 갖고 말하고 읽고 쓰고 듣고 재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진짜 자기주도적 수업이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를 참관하던 날 쇼지 야스오 교수(사이타마대)가 "배움의공동체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있다"라고 얘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등교를 거부하던 아이들이 마음을 바꾼 건 학교에서 '내 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고, 존중받는다고 느끼기에 아이들이 다시 학교를 찾은 거다. 교실에서 틀린 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광호:요즘 사토 마나부 교수를 만나면 몇 년 전에 비해 소득 양극화에 따른 저소득층 아이들 얘기를 특히 더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데, 이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일탈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아이들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으려면 협동을 통해 높은 단계에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사토 교수는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게 배움의공동체 철학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선생님들이 제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도 이거다. 왜 공부 못하는 애들한테 높은 단계의 도전 과제를 주느냐는 거다. 그런데 일본 교육의 역사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1990년대 일본은 교육 과정을 슬림화하는 신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일명 '여유 교육(유도리 교육)'이라고도 불렸던 이 방식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핵심 교과는 줄여 덜 가르치고, 대신 재량 활동이나 방과후 활동을 늘리는 게 핵심이었다. 재량·방과후 활동은 외부, 그러니까 사교육에 위탁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느슨한 교육으로 학교에 관심없던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오히려 높은 단계의 도전 과제가 주어졌을 때 아이들은 흥미를 느꼈고, 협동을 통한 배움이 일어났다.
사회:서길원·이광호 선생님은 배움의공동체 모델을 학교 현장에서 직접 실천해 본 분들인데, 이론과 현실간에 어떤 차이가 있나?
이광호:"내가 배움의공동체 모델 갖고 수업을 해봤는데 애들이 협동을 안한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고교 선생님을 만난 일이 있다. 애들이 토론 시간을 주면 토론은 안하고 농담 따먹기만 하고 있다는 거다. 왜 그럴까. 공부 잘하는 애들이 특히 문제였다고 한다. 이렇게 토론해 봐야 시험에는 안나온다, 하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더라는 거다. 그뿐인가. 모둠 활동을 권하는 선생과 권하지 않는 선생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놈들도 생긴다. 애들 입장에서 처세술만 느는 거다. 그 얘길 듣고 '아, 학교의 철학 내지 지향점을 구성원끼리 공유하지 않는 한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서길원:아이들끼리도 협동학습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잘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차라리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낫지, 옆에 있는 친구들이 못한다고 비난하는 건 못참겠다는 거다. 이게 잘못하면 왕따로도 이어진다. 일종의 지식 권력이 그 안에서 작동을 하게 된다.
이광호:요즘 아이들은 협력 하면 분업을 떠올린다. 이우학교도 초창기 2~3년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 당쟁에 대해 모둠별로 조사해 오라고 시키면 저희들끼리 누구는 정보 검색, 누구는 프리젠테이션 문서 작성 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이건 협력이 아니다. 분업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모둠을 이끌던 소수의 아이들은 급격히 성장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점점 더 수동적이 되어갔다. 반면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는 수업 시간에 현장에서 교사가 과제를 내준다. 그걸 푸는 과정에서 협동과 배움이 일어난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그게 내용상 크게 다른 것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손승현:우리학교(고려대) 아이들도 프로젝트형 과제를 내주면 서로 역할 나누느라 바쁘다. 이 정도를 협력이라고 이해하는 거다. 이 아이들을 보면 '경쟁을 통해서만 성취가 높아진다'라는 가치가 어려서부터 매우 뿌리깊게 박혀 있다. 협력의 가치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다. 일본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일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시민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는 거다. 반면 요즘 한국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너만 잘하면 돼'라는 식으로 경쟁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는다. 조용한 일본 교실, 역동적인 한국 교실
이광호:소규모로, 남에게 피해 안끼치고 예의를 잘 지키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토양 때문에 배움의공동체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교실에 가 보면 사실 굉장히 조용하고 정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다이내믹함이라고 할까, 특유의 역동성이 있지 않나. 이게 수업의 역동성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은 토양이 다르니까 배움의공동체 모델을 접목시킬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본다. 이우학교는 요즘 배움의공동체 철학을 살리면서 이를 한국적 특성에 맞게 재구성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서길원:이우학교를 그래서 높이 평가한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에서는 개혁을 이끌고 가는 교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지켜보고 조언하는 외부 슈퍼바이저 역할도 크고. 그런데 이우학교는 교사들의 능동성이 대단하다. 이게 굉장한 힘이다. 이런 이우식 모델이 한국사람 특유의 다혈질적이고 파워풀한 기질과 잘 맞물리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광호:교사 개인의 역량과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라도 5년, 10년씩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다. 같은 교과, 같은 학년 교사끼리 자주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요즘 '명품 교사' 운운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훌륭한 교사는 화려한 '티칭 스킬'을 가진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수업, 배움의 점프를 유발할 수 있는 문제를 연구하는 교사, 아이들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서로 관계 맺는 것을 도와주는 교사가 진짜 교사다.
서길원:핀란드나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를 보면 비슷한 점이 수업이 화려하지 않다는 거다. 교실마다 수업에 큰 기복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차이가 너무 난다. 스타 교사가 많은 것이 아니라 비난받는 교사가 없는 것이 좋은 학교다. 보평초, 교육과정·학교구조·성적표 모두 바꿀 것
사회:학교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우학교나 보평초가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장에서 보는 학교 개혁의 전망은 어떠한가?
서길원:보평초는 지난해 9월 개교했다. 초기 6개월은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교사는 수업에 전념할 수 있고, 아이들은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다. 그 다음 2단계가 수업과 교육 과정을 개방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탈근대 사회에서 학교가 존립하려면 일차적으로 교사가 문제의식을 갖는 수밖에 없다. 내가 그간 익숙하게 해 왔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는, 성찰적 자세가 형성돼야 그 뒤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간 나는 열심히 가르쳐 왔는데 아이들이 못따라 온 건 게을러서다'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단계에서는 교과의 벽을 뛰어넘는 프로젝트형 수업과 더불어 학년을 작은 학교(미니스쿨) 단위로 묶는 실험도 해 보려 한다. 학교 틀을 작은 단위로 바꿔 각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을 아예 위임해 보려는 거다. 평가 방식도 바꾸려 한다. 지금처럼 점수로 모든 것을 환산하기보다 성적표에 아이들이 수업 태도나 학습의 능동성, 협력 정도 같은 걸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아이들도 수업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게 되지 않겠나.
이광호: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의 교육 개혁 운동은, 뭐랄까, 흡사 장외투쟁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단위학교별 개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국가가 앞장선 핀란드, 사토 마나부라는 개인이 앞장선 일본. 그 어느 쪽과도 다르다. 지금껏 한국의 교육 개혁 운동에는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밖에 없었다. 그런데 'MB교육 반대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교육 현실의 악화를 막을 수 있나? 학급 운영 내지 교과 수업 같은 미시적 실천만 열심히 한다고 교육이 바뀌나?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단위 학교 개혁을 일차적인 목표로 해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반MB 교육' 외친다고 교육이 바뀌나
서길원:공감한다. 거시적인 제도 투쟁에 에너지를 다 소진할 게 아니라 학교를 현장으로 하는 일상적·실천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게 현재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 '파일럿 스쿨'처럼 선도적인 학교, 희망을 줄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에도 이런 학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은학교교육연대'를 중심으로 전국에 거점학교가 생겨나고 있고, 경기도 혁신학교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우학교도 공립학교는 아니지만 실천적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나? 핀란드나 배움의공동체를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학교가 현실에 등장하지 않는 한 책 속 얘기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런 학교가 현실에 존재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상승 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손승현:학교에서 겪어보면 시골 출신 아이들이 굉장히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지방 선생님들한테 하면 "교수님은 그렇게 보실지 몰라도 기업에서는 그런 애들을 원하지 않아요"라고 한다. 현재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사회는 변하는데 학교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는데, 학교는 더 나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어떤 아이들을 길러낼지 사회적 합의를 다시 만들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강남식으로 교육시키는 게 전부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허상을 깨뜨리는 학교들이 나와줘야 한다.
미래형 인재 길러내는 새로운 학교 등장할 때 됐다
이광호:나는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미래 핵심 역량을 가르치는가, 학교 운영 시스템이 민주적이고 개방적인가, 학생 중심인가. 이를 충족시키는 학교가 미래형 학교라고 본다. 이런 학교들이 생겨나서 새로운 선택지를 줘야 한다. 물론 강남에서 사교육받아 특목고 가고 고시 패스한 걸 여전히 엘리트라고 믿는 사람은 그 길로 가야지. 그렇지만 지금 당장 수학·영어 점수가 떨어질지라도 자기주도성, 남과 소통하는 능력,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부모라면 유학이나 대안학교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새 길이 제시돼야 한다. 지금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 와 있다.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교사나 학부모들의 열기가 엄청남을 느낀다. 더는 막연하게 학교 개혁을 얘기할 일이 아니다. 이런 자발적 주체들이 모여 새로운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구체적인 절차와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게 구체화되면 오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손승현:통합교육이나 협동교육 하면 하향 평준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수교육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경쟁 위주 교육이야말로 교육 전반, 나아가 사회 전반의 하향 평준화를 부른다. 곁에 있는 누군가 실패해도 내가 데려갈 수 있고, 또 내가 실패해도 누군가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교실이, 사회가 상향 평준화된다. 핀란드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말이 "우리는 잃을 아이가 없다. 아이 하나하나가 소중해서"였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닐까.
< 좌담 참석자 >
서길원(보평초 교장, 작은학교교육연대 대표)
손승현(고려대 교수·교육학)
이광호(이우학교 부설 함께여는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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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배움의공동체'를 창안한 사토 마나부 교수는 국내에도 꽤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그간의 학교 개혁 운동이란 게 '교과 수업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학교 전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서길원 선생님이 몸 담았던 남한산초등학교(경기 광주) 같은 데가 등장하면서 '아, 학교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배움의공동체 같은 모델이 일종의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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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함께여는교육연구소 소장)"학교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는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이런 학교들이 현실에 등장하면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다." |
서길원:시대적 상황도 바뀌었다. 그간 진행돼 온 시장주의적 개혁이라는 게 결국엔 한계에 부딪치지 않았나? 교육의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교육이 꼭 지켜야 할, 교육에서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있다. 관료주의는 더 심화되고 있다. 교사간 경쟁 구도를 강화시켜 학교 경영이 나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좋은 학교일수록 더 망해가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핀란드와 일본의 교육 개혁 모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 것 같다. 양측은 프로젝트형 학습, 수업 공개 등 개방적인 학교·교실 문화를 개혁의 출발점이자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 곧 교육 복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단 핀란드는 20~30년에 걸쳐 총체적이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해 왔다. 시스템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 두 축을 중심으로 교육 개혁을 추진해 왔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시스템적 접근이 어렵다 보니 문화적 접근 곧 교실에서부터 출발하자는 발상이 나온 것 같다. 문화적 풍토를 바꿔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거꾸로 시스템의 변화까지 도달해 보려는 방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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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보평초교 교장)"관료적 통제가 교사들을점점 무능하게 만들고 있다.교사들의 능동성 없이어떻게 창의적인 수업이 나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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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고려대 교수)"경쟁의 신화가 깨져야 한다.내가 실패해도 낙오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교실이, 사회가 상향 평준화된다." |
사회:배움의공동체는 수업과 교실을 개방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하는데, 이게 기존의 열린교육이나 공개 수업과는 어떤 차이를 갖나?
이광호:단순히 수업을 공개하고 관찰한다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배움의공동체는 학교의 운영 원리 자체가 수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가 아니라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위에 수업이 철저하게 '티칭'이 아닌 '러닝'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기존의 공개 수업은 완전히 티칭 중심이었다. 젊은 교사들이 공개 수업하면 나이든 교사들이 교실 뒤에 서서 마치 복덕방 할아버지들이 바둑 훈수 두듯 '티칭 스킬'을 따졌다. 아이들이 지금 저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흥미를 갖고 있는지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도 수업 공개가 교사들의 자존심을 짓밟는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우학교의 경험을 강의하러 다니며 많은 교사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배움의공동체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긴 것도 수업 공개였다.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교사들간에 동료성을 확보하는 것이 배움의공동체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인데, 이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다 좋은데 수업만은 공개 못하겠다'고 버티는 분들이 많았다. 앙꼬 없이 찐빵 만들어보겠다는 식이 된 거다(웃음).
서길원:배움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를 학교에서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는 문화적인 접근이 이뤄져야만 교사들의 자발성이 살아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는 위로부터 너무 많은 정책들이 '탑 다운' 방식으로 쏟아지기만 한다.
이광호:현장에 가 보면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위로부터 하달돼 만들어진 방과후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일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학기 초가 되면 교사들이 업무 나누느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학교 운영 원리가 교수 활동이 아닌 공문 처리 중심이 돼다 보니, 어떻게 하면 수업을 더 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잡무를 덜 맡을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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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모든 운영 원리를 수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서 '배움의공동체'는 시작된다. 위는 일본 모토요시와라 중학교 공개 수업 장면. |
서길원:나는 그걸 '능동적 기제'와 '수동적 기제'라고 표현하는데, 관료제 틀 속에서 만들어진 수동적 기제가 점점 더 교사들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능동적 기제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학교는 살아날 수 없다. 요즘 다들 창의성 교육, 질적 교육을 얘기하는데 교사들의 능동성·자발성이 살아나지 않고 어떻게 창의적인 교육 활동이 나올 수 있나. 조현초(경기 양평)가 좋은 사례라고 본다. 교육과정 운영이나 수업에서 교사들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하니 교사들이 신이 나서 일한다. 일이 많아 힘들어도 그 속에서 성장하는 기쁨이 있는 거다.
이광호:교사들의 능동성이 살아나지 않는 한 첨단 기기도 오히려 독이 된다. 한국이나 핀란드나 교실 인프라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걸 활용하는 교사들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핀란드 교사들은 수업 중 모둠 활동을 병행하면서 필요할 때만 교실에 비치된 실물 화상기를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한국 교사 일부는 수업 내내 빔 프로젝트를 사용한다. 어떤 교사는 아예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 '클릭질'만 하고 있다.
서길원:이른바 교단 선진화가 한국 사회에 매우 부정적인 교실 문화를 만들고 있다. 우수한 교사들이 교단에 들어와 '분필 교사'만도 못한 '클릭 교사'로 변해가고 있는 거다. 학생 아닌 모니터를 바라보고 수업 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체크할 수 있겠나.
손승현:교사는 앞에서 클릭하며 진도 나가고 학생들은 하루 몇 페이지씩 스스로 목표 정해 문제 푸는 걸 자기주도적 학습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건 수동적 학습일 뿐이다. 일본 배움의공동체를 가 보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교사가 학생을, 학생이 학생을 서로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었다. 한국 공개 수업을 가 보면, 잘하는 애들이 "저요" "저요" 손을 들고 선생님이 지목한 아이가 정답을 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면 선생님이 잘했다고 아이를 칭찬하고, 나머지는 그 애가 말한 걸 듣고 끝낸다. 오답을 들을 기회가 없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인 거다. 사토 마나부가 말한 '안전한 교실'이란 실패에 대한 허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답을 말할 수도 있고, 말해도 괜찮다는 믿음. 오답을 말했을 때는 이렇게 해결점을 찾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 이런 게 있어야 그 안에서 내 생각을 갖고 말하고 읽고 쓰고 듣고 재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진짜 자기주도적 수업이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를 참관하던 날 쇼지 야스오 교수(사이타마대)가 "배움의공동체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있다"라고 얘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등교를 거부하던 아이들이 마음을 바꾼 건 학교에서 '내 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고, 존중받는다고 느끼기에 아이들이 다시 학교를 찾은 거다. 교실에서 틀린 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광호:요즘 사토 마나부 교수를 만나면 몇 년 전에 비해 소득 양극화에 따른 저소득층 아이들 얘기를 특히 더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데, 이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일탈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아이들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으려면 협동을 통해 높은 단계에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사토 교수는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게 배움의공동체 철학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선생님들이 제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도 이거다. 왜 공부 못하는 애들한테 높은 단계의 도전 과제를 주느냐는 거다. 그런데 일본 교육의 역사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1990년대 일본은 교육 과정을 슬림화하는 신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일명 '여유 교육(유도리 교육)'이라고도 불렸던 이 방식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핵심 교과는 줄여 덜 가르치고, 대신 재량 활동이나 방과후 활동을 늘리는 게 핵심이었다. 재량·방과후 활동은 외부, 그러니까 사교육에 위탁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느슨한 교육으로 학교에 관심없던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오히려 높은 단계의 도전 과제가 주어졌을 때 아이들은 흥미를 느꼈고, 협동을 통한 배움이 일어났다.
사회:서길원·이광호 선생님은 배움의공동체 모델을 학교 현장에서 직접 실천해 본 분들인데, 이론과 현실간에 어떤 차이가 있나?
이광호:"내가 배움의공동체 모델 갖고 수업을 해봤는데 애들이 협동을 안한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고교 선생님을 만난 일이 있다. 애들이 토론 시간을 주면 토론은 안하고 농담 따먹기만 하고 있다는 거다. 왜 그럴까. 공부 잘하는 애들이 특히 문제였다고 한다. 이렇게 토론해 봐야 시험에는 안나온다, 하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더라는 거다. 그뿐인가. 모둠 활동을 권하는 선생과 권하지 않는 선생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놈들도 생긴다. 애들 입장에서 처세술만 느는 거다. 그 얘길 듣고 '아, 학교의 철학 내지 지향점을 구성원끼리 공유하지 않는 한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서길원:아이들끼리도 협동학습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잘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차라리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낫지, 옆에 있는 친구들이 못한다고 비난하는 건 못참겠다는 거다. 이게 잘못하면 왕따로도 이어진다. 일종의 지식 권력이 그 안에서 작동을 하게 된다.
이광호:요즘 아이들은 협력 하면 분업을 떠올린다. 이우학교도 초창기 2~3년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 당쟁에 대해 모둠별로 조사해 오라고 시키면 저희들끼리 누구는 정보 검색, 누구는 프리젠테이션 문서 작성 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이건 협력이 아니다. 분업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모둠을 이끌던 소수의 아이들은 급격히 성장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점점 더 수동적이 되어갔다. 반면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는 수업 시간에 현장에서 교사가 과제를 내준다. 그걸 푸는 과정에서 협동과 배움이 일어난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그게 내용상 크게 다른 것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손승현:우리학교(고려대) 아이들도 프로젝트형 과제를 내주면 서로 역할 나누느라 바쁘다. 이 정도를 협력이라고 이해하는 거다. 이 아이들을 보면 '경쟁을 통해서만 성취가 높아진다'라는 가치가 어려서부터 매우 뿌리깊게 박혀 있다. 협력의 가치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다. 일본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일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시민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는 거다. 반면 요즘 한국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너만 잘하면 돼'라는 식으로 경쟁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는다. 조용한 일본 교실, 역동적인 한국 교실
이광호:소규모로, 남에게 피해 안끼치고 예의를 잘 지키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토양 때문에 배움의공동체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교실에 가 보면 사실 굉장히 조용하고 정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다이내믹함이라고 할까, 특유의 역동성이 있지 않나. 이게 수업의 역동성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은 토양이 다르니까 배움의공동체 모델을 접목시킬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본다. 이우학교는 요즘 배움의공동체 철학을 살리면서 이를 한국적 특성에 맞게 재구성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서길원:이우학교를 그래서 높이 평가한다.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에서는 개혁을 이끌고 가는 교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지켜보고 조언하는 외부 슈퍼바이저 역할도 크고. 그런데 이우학교는 교사들의 능동성이 대단하다. 이게 굉장한 힘이다. 이런 이우식 모델이 한국사람 특유의 다혈질적이고 파워풀한 기질과 잘 맞물리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광호:교사 개인의 역량과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라도 5년, 10년씩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다. 같은 교과, 같은 학년 교사끼리 자주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요즘 '명품 교사' 운운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훌륭한 교사는 화려한 '티칭 스킬'을 가진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수업, 배움의 점프를 유발할 수 있는 문제를 연구하는 교사, 아이들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서로 관계 맺는 것을 도와주는 교사가 진짜 교사다.
서길원:핀란드나 일본 배움의공동체 학교를 보면 비슷한 점이 수업이 화려하지 않다는 거다. 교실마다 수업에 큰 기복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차이가 너무 난다. 스타 교사가 많은 것이 아니라 비난받는 교사가 없는 것이 좋은 학교다. 보평초, 교육과정·학교구조·성적표 모두 바꿀 것
사회:학교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우학교나 보평초가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장에서 보는 학교 개혁의 전망은 어떠한가?
서길원:보평초는 지난해 9월 개교했다. 초기 6개월은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교사는 수업에 전념할 수 있고, 아이들은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다. 그 다음 2단계가 수업과 교육 과정을 개방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탈근대 사회에서 학교가 존립하려면 일차적으로 교사가 문제의식을 갖는 수밖에 없다. 내가 그간 익숙하게 해 왔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는, 성찰적 자세가 형성돼야 그 뒤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간 나는 열심히 가르쳐 왔는데 아이들이 못따라 온 건 게을러서다'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단계에서는 교과의 벽을 뛰어넘는 프로젝트형 수업과 더불어 학년을 작은 학교(미니스쿨) 단위로 묶는 실험도 해 보려 한다. 학교 틀을 작은 단위로 바꿔 각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을 아예 위임해 보려는 거다. 평가 방식도 바꾸려 한다. 지금처럼 점수로 모든 것을 환산하기보다 성적표에 아이들이 수업 태도나 학습의 능동성, 협력 정도 같은 걸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아이들도 수업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게 되지 않겠나.
이광호: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의 교육 개혁 운동은, 뭐랄까, 흡사 장외투쟁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단위학교별 개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국가가 앞장선 핀란드, 사토 마나부라는 개인이 앞장선 일본. 그 어느 쪽과도 다르다. 지금껏 한국의 교육 개혁 운동에는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밖에 없었다. 그런데 'MB교육 반대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교육 현실의 악화를 막을 수 있나? 학급 운영 내지 교과 수업 같은 미시적 실천만 열심히 한다고 교육이 바뀌나?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단위 학교 개혁을 일차적인 목표로 해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반MB 교육' 외친다고 교육이 바뀌나
서길원:공감한다. 거시적인 제도 투쟁에 에너지를 다 소진할 게 아니라 학교를 현장으로 하는 일상적·실천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게 현재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 '파일럿 스쿨'처럼 선도적인 학교, 희망을 줄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에도 이런 학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은학교교육연대'를 중심으로 전국에 거점학교가 생겨나고 있고, 경기도 혁신학교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우학교도 공립학교는 아니지만 실천적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나? 핀란드나 배움의공동체를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학교가 현실에 등장하지 않는 한 책 속 얘기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런 학교가 현실에 존재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상승 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손승현:학교에서 겪어보면 시골 출신 아이들이 굉장히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지방 선생님들한테 하면 "교수님은 그렇게 보실지 몰라도 기업에서는 그런 애들을 원하지 않아요"라고 한다. 현재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사회는 변하는데 학교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는데, 학교는 더 나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어떤 아이들을 길러낼지 사회적 합의를 다시 만들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강남식으로 교육시키는 게 전부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허상을 깨뜨리는 학교들이 나와줘야 한다.
미래형 인재 길러내는 새로운 학교 등장할 때 됐다
이광호:나는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미래 핵심 역량을 가르치는가, 학교 운영 시스템이 민주적이고 개방적인가, 학생 중심인가. 이를 충족시키는 학교가 미래형 학교라고 본다. 이런 학교들이 생겨나서 새로운 선택지를 줘야 한다. 물론 강남에서 사교육받아 특목고 가고 고시 패스한 걸 여전히 엘리트라고 믿는 사람은 그 길로 가야지. 그렇지만 지금 당장 수학·영어 점수가 떨어질지라도 자기주도성, 남과 소통하는 능력,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부모라면 유학이나 대안학교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새 길이 제시돼야 한다. 지금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 와 있다.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교사나 학부모들의 열기가 엄청남을 느낀다. 더는 막연하게 학교 개혁을 얘기할 일이 아니다. 이런 자발적 주체들이 모여 새로운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구체적인 절차와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게 구체화되면 오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손승현:통합교육이나 협동교육 하면 하향 평준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수교육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경쟁 위주 교육이야말로 교육 전반, 나아가 사회 전반의 하향 평준화를 부른다. 곁에 있는 누군가 실패해도 내가 데려갈 수 있고, 또 내가 실패해도 누군가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교실이, 사회가 상향 평준화된다. 핀란드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말이 "우리는 잃을 아이가 없다. 아이 하나하나가 소중해서"였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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