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 담은 내용은 2009년 5월23일 생을 마감하기 직전 그의 참담한 심경을 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법원에서 정당한 판결을 받기도 전에 ‘여론재판’의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검찰과 언론의 ‘인격살인’ 공조는 한국 현대사 초유의 사건을 몰고 왔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될 때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 / 편집자
정치 사회 법조 등 주요 영역 상층부를 이뤘던 이들은 드라마 주인공과 같은 정치인 노무현이 달갑지 않았다. 가난한 상고 출신 시골 청년이 사법고시를 통과하더니 대통령까지 오른 정치 인생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줬겠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언론이 노무현 정치에 ‘진보’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찬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반노무현 정서’를 자극해 진보의 실패, 진보에 대한 거부감을 유도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 노무현이 부패로 무너지면 그것은 곧바로 진보의 실패로 연결짓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부패 의혹은 ‘개인 노무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1년 만에 검찰 수사에 시달렸다.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그 대상이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의 최종 목표는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 노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검찰은 먼지떨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부패에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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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3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출두하기를 기다리며 지지자들이 대검앞 인도를 따라 노란풍선과 현수막을 매달았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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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언론은 진실과 무관하게 노 전 대통령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원칙’을 강조하는 정치인이지만 알고 보니 파렴치한 인물인것처럼 몰아갔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자서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검사들과 언론은 그를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인권, 정의, 국민 통합을 원해서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에게도 침을 뱉었다. 이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웠기에 그는 외쳤다. ‘노무현을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창동 영화감독은 ‘노무현 재단’ 라디오광고에서 “원칙을 고집하면 진다.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노 전 대통은 “지겠다”고 대답했다면서 “오늘따라 노무현의 원칙이 그립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참담함을 말한 것은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보겠다는 다짐을 무색하게 했던 현실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던 지난해 4월30일 조선일보 1면에 <위선과 독선…허상(虛想)으로 가득했던 ‘노무현 정치’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제목을 뽑은 기자와 데스크는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기사가 ‘여론재판’을 몰고 온 문제의 기사들이었다.
명품시계를 둘러싼 논란은 ‘인격모독’을 노린 참 나쁜 기사였다. 검찰이 ‘나쁜 빨대’를 찾겠다면서 색출작업을 벌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박연차 전 회장이 1억 원 명품시계를 노 전 대통령 회갑 선물로 준 것처럼 진술하자 언론은 조롱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회갑 선물로 박연차 회장이 주었다는 내 회갑 때는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소위 ‘명품시계’가 언론에 보도됐다”고 개탄했다.
보수 언론이 검찰이 흘린 정보를 ‘받아쓰기’ 하면서 인격살인 보도를 이어갈 때, 진보 언론들은 이런 흐름에 동조하거나 관망했다. 경향신문, 한겨레를 포함해 어떤 언론도 적극적으로 ‘정치보복’을 둘러싼 검찰수사의 근본적 의문을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비판언론을 견지하겠다는 강박관념은 합리적 의문까지 주저한 방관자 언론을 만들었다.
이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뒤늦은 ‘릴레이 반성’을 하기도 했지만, 서거의 공범이 돼 버린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기명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은 언론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기자는 기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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