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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노모 오열에 71세 딸 “울지마, 엄마”… 이산가족 1차상봉 눈물의 .. 본문
96세 노모 오열에 71세 딸 “울지마, 엄마”… 이산가족 1차상봉 눈물의 작별
국민일보 | 입력 2010.11.01 18:08
60년을 기다려 겨우 혈육을 만난 이들에게 2박3일은 너무도 짧았다.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 참가자들이 1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상봉행사를 마쳤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 533명이 쏟아낸 애끊는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제 또 언제 보냐"=이번 상봉행사 최고령자인 남측의 김례정(96·여)씨는 북에 두고 온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다시는 못 볼 거야. 다시는…·"이라며 애통해하다가 갑자기 심장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기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김씨는 1분이라도 딸을 더 보기 위해 의료진의 진찰조차 거부했다. 작별상봉은 1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미 노환으로 지난 5년 동안 집밖을 나오지 못했던 김씨였기에 세월은 다시 딸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을 한 듯했다. 북측의 딸은 "울지 마 엄마, 인차(곧) 만나자"라고 울먹이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큰 절을 올렸다.
동행한 김씨의 가족들은 북측 이산가족들이 탄 버스가 면회소를 떠날 때 어머니를 자리에서 들어올려 창문을 통해 두 모녀가 한 번 더 손을 맞잡게 했다.
◇목놓아 부른 '아버지', 눈물로 쓴 편지=국군 출신인 북측의 이종렬(90)씨는 기력이 약해진 탓에 영양주사를 맞고 행사장에 나왔다. 그동안 의연했던 이씨였지만 출생 후 100일 무렵 이름을 지어주고 헤어졌던 아들 민관(61)씨와 자신의 동생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훔쳤다. 민관씨는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부디 건강하기만 하시라"며 60년간 부르지 못했던 '아버지'를 하염없이 불렀다.
국군 출신인 북측의 윤태영(79)씨 가족은 '작별상봉 종료가 10분 남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넷째 동생인 상영(71)씨는 큰형 윤태영씨를 등에 업은 채 "건강하세요"라며 절규했다.
북측의 이순희(75·여)씨는 남측 부모님 산소에 놓아 달라며 편지를 건넸다. "저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하셔서 더 사실 것도 못 사시고 돌아가셨습니까? 제삿날엔 평양에서 술 한 잔씩이라도 올리겠습니다"라고 적은 편지는 가족들이 돌려보는 동안 눈물로 얼룩졌다.
일부 가족들은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북측 가족에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주는 남측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창문 좀 열어주세요"=북측 가족들은 1시간의 작별상봉을 마치고, 면회소 앞에 주차된 3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작별상봉 내내 북측 오빠 김진원(80)씨 품에 안겨 있던 남측 여동생 진녀(69)씨는 "창문 좀 열어 달라"며 버스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남매는 손을 맞댔고, 유리창은 이내 입김과 손바닥 자국으로 얼룩졌다. 떠나기 몇 분 전에야 창문이 열렸고, 두 남매는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 짐꾼으로 따라갔던 북측의 오빠 정기형(78)씨를 위해 신발 네 켤레를 선물했던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 기옥(62) 기연(58)씨는 떠나는 버스를 향해 "오빠, 건강해요. 편히 살아요"라고 외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1차 상봉에 참여한 남측 가족들은 오후 1시쯤 금강산 지구를 떠나 육로로 남쪽에 돌아왔다. 3∼5일 진행되는 2차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94명이 금강산지구에서 북측 가족 203명을 만난다.
◇"이제 또 언제 보냐"=이번 상봉행사 최고령자인 남측의 김례정(96·여)씨는 북에 두고 온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다시는 못 볼 거야. 다시는…·"이라며 애통해하다가 갑자기 심장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기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김씨는 1분이라도 딸을 더 보기 위해 의료진의 진찰조차 거부했다. 작별상봉은 1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미 노환으로 지난 5년 동안 집밖을 나오지 못했던 김씨였기에 세월은 다시 딸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을 한 듯했다. 북측의 딸은 "울지 마 엄마, 인차(곧) 만나자"라고 울먹이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큰 절을 올렸다.
동행한 김씨의 가족들은 북측 이산가족들이 탄 버스가 면회소를 떠날 때 어머니를 자리에서 들어올려 창문을 통해 두 모녀가 한 번 더 손을 맞잡게 했다.
◇목놓아 부른 '아버지', 눈물로 쓴 편지=국군 출신인 북측의 이종렬(90)씨는 기력이 약해진 탓에 영양주사를 맞고 행사장에 나왔다. 그동안 의연했던 이씨였지만 출생 후 100일 무렵 이름을 지어주고 헤어졌던 아들 민관(61)씨와 자신의 동생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훔쳤다. 민관씨는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부디 건강하기만 하시라"며 60년간 부르지 못했던 '아버지'를 하염없이 불렀다.
국군 출신인 북측의 윤태영(79)씨 가족은 '작별상봉 종료가 10분 남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넷째 동생인 상영(71)씨는 큰형 윤태영씨를 등에 업은 채 "건강하세요"라며 절규했다.
북측의 이순희(75·여)씨는 남측 부모님 산소에 놓아 달라며 편지를 건넸다. "저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하셔서 더 사실 것도 못 사시고 돌아가셨습니까? 제삿날엔 평양에서 술 한 잔씩이라도 올리겠습니다"라고 적은 편지는 가족들이 돌려보는 동안 눈물로 얼룩졌다.
일부 가족들은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북측 가족에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주는 남측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창문 좀 열어주세요"=북측 가족들은 1시간의 작별상봉을 마치고, 면회소 앞에 주차된 3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작별상봉 내내 북측 오빠 김진원(80)씨 품에 안겨 있던 남측 여동생 진녀(69)씨는 "창문 좀 열어 달라"며 버스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남매는 손을 맞댔고, 유리창은 이내 입김과 손바닥 자국으로 얼룩졌다. 떠나기 몇 분 전에야 창문이 열렸고, 두 남매는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 짐꾼으로 따라갔던 북측의 오빠 정기형(78)씨를 위해 신발 네 켤레를 선물했던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 기옥(62) 기연(58)씨는 떠나는 버스를 향해 "오빠, 건강해요. 편히 살아요"라고 외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1차 상봉에 참여한 남측 가족들은 오후 1시쯤 금강산 지구를 떠나 육로로 남쪽에 돌아왔다. 3∼5일 진행되는 2차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94명이 금강산지구에서 북측 가족 203명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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