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맏형·막내는 국군, 둘째는 인민군… 이산상봉장의 ‘태극기 휘날리며’ 본문

.....Live(삶터)

맏형·막내는 국군, 둘째는 인민군… 이산상봉장의 ‘태극기 휘날리며’

AziMong 2010. 11. 5. 06:53

맏형·막내는 국군, 둘째는 인민군… 이산상봉장의 ‘태극기 휘날리며’

여동생이 나와 둘째 사망소식 전하자 ‘울음바다’

경향신문 | 금강산 | 공동취재단·전병역 기자 | 입력 2010.11.05 03:37

 

금강산에서 4일 이어진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한국전쟁 때 형제가 국군과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겨눈' 사연이 전해졌다. 혼자 인민군과 국군을 오간 이도 있었다.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 처럼 전쟁통에 형제가 적군으로 갈리거나, 포로로 잡혀 인생이 뒤바뀐 사람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함경남도 풍산군 장평리가 고향인 김대종씨(77)의 3형제는 국군과 인민군으로 나뉘어 참전했다. 1950년 10월 스무살 청년이던 대종씨는 큰형 주종씨(1976년 사망)와 국군에 입대했다. 반면 공산주의자였던 작은형 태종씨(1992년 사망)는 전쟁나기 1년 전 인민군에 들어갔다. 태종씨는 동생이 입대하기 한 달 전쯤 "전투에서 부상당해 평양에서 치료받고 다시 전투에 나간다"는 편지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대종씨는 큰형과 함께 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때 남한으로 내려와 계속 참전했다. 대종씨는 "전투 때마다 내가 쏜 총탄에 형님이 맞지않을까 늘 걱정했다"고 오열했다. 상봉장에 나온 북측의 여동생 계화씨(69)는 "작은 오빠(태종씨)가 전쟁 때 한쪽 눈을 실명했고 인민군 중장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김태윤씨(77)는 "50년 7월 야밤에 인민군이 들이닥치더니 나를 트럭에 태워 입대시켰다"며 "가족 중 아무도 내가 사라진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해 12월 퇴각하다 평양 부근에서 국군에 붙잡혀 2년간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났고 53년 국군에 입대했다. 북측 동생 태석씨(67)를 만난 김씨는 "지난해 위암으로 위장 3분의 1을 잘라내며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동생을 보려고 살아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한자옥씨(83)도 인민군과 국군을 오갔다. 50년 인민군에 동원돼 임신 중이던 아내 박정심씨(79)와 생이별했다. 포로로 잡힌 한씨는 국군에 입대해 가족과 영영 떨어졌다가 당시 아내의 배 안에 있던 딸 순희씨(59)를 이번에 찾았다. 북에서 홀로 딸을 키운 부인은 심장병을 앓고 있어 나오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못 봐 아직 응어리가 남아있다"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