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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에디뜨삐아프

AziMong 2007. 4. 17. 21:30
세계적인 샹송 가수를 꼽으라면 나를 빼 놓을수 엄찌....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1915-1963년)....내 이름 모르면 간첩일걸?
거 왜....빠담 빠담.....어쩌구 하는 노래 들어 봤지?
그건 불어로 "두근 두근" 가슴뛰는 소리를 뜻하는 거야.
아...이제 기억난다구?......

내 첫 출발은 참 비참했어.
1915년 파리의 빈민촌에서 곡예사 부부의 딸로 태어났거덩.
아버지는 서커스단의 곡예사, 어머니는 서커스단의 가수였지.
낭만적인 커플이라구?....꿈깨....인간이하 취급받고 다녔대.
니네 나라도 옛날에는 남사당패를 사람 축에도 안껴줬자너?

나를 임신한 어머니는 병원으로 가던중 길바닥에서 나를 낳았대.
지지리 복도 없는 유년생활은 이렇게 시작되나 봐.....
내가 태어난 지 두 달 후 어머니는 극심한 가난을 견디지 못하여 가출했대.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된 아버지는 나를 안고 순회 공연을 다니다 지쳤는지
얼마 후 나를 노르만디 농촌에 사는 할머니에게 맡겨 버렸대.

그렇게 자라던 어느 날 꽃가루가 눈에 들어왔는데 눈꼽이 끼고 충혈되는거야.
어쩌겠어 ? 의료보험카드도 엄꼬 돈도 없는데 깡으로 버텨야지.
에이 뭐 이러다 낫겠지....맹물로 씻고....손으로 닦아내고 했는데
이런 젠장할..... 두 눈이 실명되고 만거야....내 나이 6살 때 말야.

어린나이에도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았어.
이렇게 살아야 뭐하나....거지뿐이 더 되겠나 싶어 매일 밤낮을 울었어.
울적할 때면 새소리 바람소리를 벗삼아 제멋대로 노래하면서 맘을 달랬지.

먼 친척보다 이웃 사촌이 최고라는 니네나라 속담 그거 딱 맞더라....
나를 딱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성수로 씻으면 어떤 병도 낫는다는 쌩뜨 루이드 성당에 갈 여비를 마련해 준거야.
그 성당에 기숙하는 동안 기도도 열심히 드리고 성수로 매번 눈을 씻었어.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눈이 환해지면서 시력을 되찾았어.........미쓤미까?
1919년 8월 25일 오후 다섯 시에 일어난 기적이었지.

그로부터 얼마 후 잠시 마을에 들른 아버지를 따라 마을을 떠났어.
내가 배운게 뭐 있겠어?....그저 서커스 단원 심부름이나 할 수 밖에 없었지.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그게 아니었어.
남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귀고 싶어 진거야.
어떻게 하면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늘 궁리만 했어.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돼?
생각은 간절하지만 헛된 꿈에 불과한 거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천막 뒤로 가서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지냈어.
그 노래 소리를 아버지가 어느 날 우연히 듣더니
그 이튿날부터 서커스단의 여자 가수에게 샹송을 배우게 하는거야.
그리고는 서커스 무대에서 샹송을 불렀지.

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지면 나는 혼자서 곡예까지 하며 노래를 했어.
이런 유랑 가수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가 16살.......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술에 쩔어 살더니 나를 자주 때리고 괴롭혔어.
심지어는 나를 어느 주막집에다 팔아 넘기려고까지 했었지.

나는 아버지를 떠나 혼자서 파리로 상경해 버렸어. 1932년 5월이었지.
파리를 돌아다니며 즉석 거리 공연을 해서 생활비를 벌었어.
역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나봐....제법 쏠쏠했거덩.
그렇긴 해도 거지나 별반 다름없는 생활이 나를 짓눌렀어.
쇼윈도에 비쳐진 내모습을 바라보고는 꺽꺽 울어대곤 했었지.

1934년 가을 어느 날......
몽마르트르 언덕을 거닐다가 내려오던 길에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고 앞날은 비통하기만 해서
가로등에 기대 눈을 감은채 목놓아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그 심정 이해가 가?

이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노래에 매혹된 듯 숨죽여 듣더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노래를 계속했어....절절한 목소리로.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져 가는데 웬넘이 남아 있대?
그러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어때? 우리 카바레에 와서 노래 공부를 더 해 볼 생각 없나?
다듬기만 하면 대성할 것 같은데 말이야."

순간 나는 멈칫했어......이넘 사기꾼이냐.....아니냐.
니네나라도 길거리 스카웃이란게 있짜너?
잘 걸리면 뜨는거고 잘못 걸리면 몸 버리는거.....여기도 똑 같거덩.
나는 도박을 결심했지...모 아니면 도....온그린 아니면 빵카.
그는 시내 중심가에서 카바레를 경영하고 있는 루이 루쁘레였어.

이 뜻밖의 행운이 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말았지..
그는 '귀여운 작은 새'라는 뜻의 '모옴 삐아프'라는 애칭을 지어 주었어...
하필 왜 "작은 새"냐구? 내 어렸을때 못 먹어서 그런지 키가 150센치 밖에 안됐거든.

이때부터 나는 오전에는 청소부, 오후에는 전속악단의 지휘자 밑에서 노래 공부를 했어.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첫 공연을 하게 됐는데 대단히 성공적이었어.
더욱이 마침 그 자리에 와있던 쟝 콕토는 찬양을 아끼지 않았어.....우와.
그뿐인줄 알어? 나를 위해 특별히 가사까지 써주었고,
유명한 작곡가와 레코드 회사 중역들도 소개해 주었어.

그 후 나는 일약 파리의 신데렐라가 됐어...... 나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지.
내 노래 <참새의 노래>와 <나를 껴안아 주세요>가 담긴 레코드는 대박이었고
데뷔한 지 6개월 만에 나는 파리의 초특급 스타가 되었어.

거지와 다름없는 밑바닥에서 파리의 스타로 올라서면서
나는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로만 알았지.
그러나 운명의 신은 어찌 그리도 짖궂은지......
나를 절망케하는 사랑의 행로가 본격 시작 됐던거야.

어느 날 캬바레주인 루이 루쁘레 씨가 시체로 발견됐어..
경찰은 그 시체를 처음 발견한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언론에서는 나의 과거까지 들추어내어 비방하면서 나를 헐뜯었다.
그러나 종업원과 악단장, 쟝 콕토와 레이몽 앗소 등이 유리한 증언을 해주어
나는 겨우 살인 혐의를 벗게 되었어.
까닥하면 수지김 짝 날 뻔 했지 모야?

그 중에서도 레이몽 앗소는 날마다 면회를 와서 나를 따뜻이 위로해 주었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나는 레이몽의 집에서 요양을 했지.
시인인 그는 정말로 따뜻하게 나를 돌 봐 주었고
"사랑은 가득히"라는 시를 나에게 선사하기도 했지.

그러나, 그녀를 의심하는 대중들은 나에게 계속 손가락질을 해댔어.
재기의 무대에 섰으나 비난과 야유 때문에 공연 도중에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
크게 절망한 나는 그 길로 곧장 세느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곧 뒤따라온 악단장과 레이몽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어.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재기에 성공했고,
레이몽도 덩달아 작사가요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는데.....
나날이 성가가 올라가는 나의 명성과 잦은 연주여행에 비해
레이몽은 슬럼프에 빠져 좋은 시를 쓰지 못해 매일 술에 젖어 살게 됐고
결국 레이몽의 제의로 우리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어.

이 무렵 나는 신인 가수 이브 몽땅을 알게 됐는데
걔 참 싹수 있어보여 선배로써 많이 지도해 주다 사랑에 빠졌어.
이브 몽땅....이름이 참 이쁘쥐?
그의 품에 안기면 비로소 완전한 여인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를 위해서 그 좋던 술도 딱 끊어 버렸지.
<밤의 문>이란 영화에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감독에게 사정하기도 했지.
그러나, 그 영화의 실패로 금이 가기 시작해서 결국 또 헤어졌어.

아.....그 이후부터 나의 애정생활은 비참해졌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지.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나 싶으면...... 그게 아니었어.

프랑스 권투 선수 마르세르 세르당에게 겨우 정을 붙이나 했는데
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또 다시 혼자가 됐어.
그 뒤 영화 배우 폴 무리스와는 약혼까지 했었는데
세르당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너무나 커서 곧 파혼하고 말았어.

샹송가수 쟈끄 필스를 만나 곧 결혼했지.....걔가 화끈하게 덤비더라구.
결혼 후 나는 노래는 잠시 접어두고 주로 신인가수 발굴에 주력했었는데
신인가수 배꼬는 내 도움으로 일약 샹송가수로 발돋음 하게 됐어.
그런데 밴댕이같은 남편 필스가 질투를 심하게 해서 또 이혼......

이후 샤르르 듀몽, 샤르르 아즈나블, 에듸 꽁스땅찌느, 데오 사랏뽀...
이름도 야리꾸리한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었지.

이제 슬슬 마감할 시간이네?
나는 만성 위궤양으로 입원했는데
수술도 별 효과가 없었는지 1963년 10월 11일에 세상을 떴어.
생각해보면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어.....그치?

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쟝 콕토는 충격을 받아 쓰러진 뒤
"삐아프같은 사람은 두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며
그 이튿날 마치 내 뒤를 따라 오듯 숨을 거두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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