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제노비아 본문
뜨거운 모래사막 한가운데 땅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환상적인 도시 팔미라".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팔미라를 방문한 후 그곳에 매료되어 묘사한 구절임다.
시리아의 사막에 세워졌던 기원 3세기의 팔미라는 "사막의 궁전"이라고 불리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이에 찬 감동과 찬탄으로 채워주고 있슴다.
이집트를 아작내고 로마와도 맞짱을 뜰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팔미라.
이 도시국가를 이끌었던 사람은 여왕 "제노비아"였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한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는 여인 제노비아.....
그녀의 아버지는 아라비아의 집시, 어머니는 이집트인
아버지로부터는 아랍인 특유의 청갈색 피부를 받았고,
어머니를 닮아 이집트풍의 새까만 눈동자가 매력이었다고 함다.
제노비아의 미모는 어릴때부터 소문이 자자해서
클레오파트라를 트럭으로 데려와도 쨉이 안된다고 할 정도였슴다.
그녀는 미모만 뛰어 났던게 아니었담다.
어떤 사내들보다도 낙타를 모는 기술이 뛰어나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시부족의 지도자가 되었슴다.
당시 "팔미라"는 동서교역의 중간지로 크게 번성하고 있었으며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융성한 도시였슴다.
그런데 이 도시를 호시탐탐 침흘리며 노리는 나라가 있었으니....바로 로마임다.
로마는 군대를 파견해서 팔미라를 접수하고 로마제국의 영토로 삼아 버림다.
당근 팔미라에는 자유를 꿈꾸는 독립투사들이 생겨나는데
로마제국의 대리인으로 팔미라를 통치하고 있었던
"오데나투스"라는 젊은 아랍 귀족도 그 중의 한명이었슴다.
"오데나투스"는 성밖 사막에서 독립군을 몰래 양성시키고 있었는데
어느날 낙타를 기똥차게 모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가보니
남자가 아니고 여성...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제노비아였슴다.
둘은 첫 만남에서 사랑을 느꼈고 곧바로 결혼을 하게 됨다.
팔미라의 1등 신랑감인 "오데나투스"가 집시부족 촌닭 과 결혼하자
팔미라의 쭉빵 귀족 걸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구경왔다가
그만 꼬랑지를 내리고 뒷걸음 쳐서 그길로 성형외과로 갔을 만큼
제노비아의 아름다움은 찬탄의 대상이었다고 함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독립군 양성에 열정을 바쳤는데
지모와 지혜 또한 대단해서 휘하장군들도 고개를 숙였슴다.
귀족 부인들이 떼거지로 캬바레, 호스트바, 헬스 크리닉 다닐때
그녀는 독립군과 함께 야영하며 군사작전에 참여하였슴다.
(울나라 고관대작 부인덜.....팔미라에 단체관광 보내야 함다)
그녀가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페르시아군을 대파하자
시리아 사막 인근의 나라들이 줄지어 팔미라에 편입을 요청하여
그 지역 인근에 유례를 찾아 볼 수없는 강국으로 부상하였슴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팔미라의 국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남편이 암살당하게 됨다.
일부 역사가들은 제노비아의 음모라고도 함다만....
어쨌던 이를 계기로 제노비아는 스스로 절대군주가 되어
"동방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됨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을 잡으면 초기에 뭔가 폼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함다.
싸움이 하고 싶어 좀이 쑤셨던 제노비아는 그 제물로 이집트를 점 찍고
병사 7만명을 투입해 단 한번의 싸움으로 이집트를 수중에 넣슴다.
하얀 낙타등에 올라타 보랏빛 외투를 휘날리며 선두지휘하는 그녀에게
시리아, 팔레스티나,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소아시아등의 국가들이
무릎을 꿇고 그녀를 최고 군주로 받아 들였슴다.
기원 270년, 로마제국은 자기네 영토의 절반 가량을 그녀에게 뺐겼는데
한 여성이 이만큼 넓은 영토를 전쟁승리로 차지한 예는 전무후무함다.
그러나 그녀의 지나친 야심은 팔미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슴다.
서기 272년 그녀가 아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고 황제의 어머니로 자처하자
가뜩이나 쫑따구 나있던 로마의 황제가 팔미라 공격을 명령함다.
1차전은 팔미라가 가비얍게 승리......
그러자 아우렐리안 황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팔미라로 진군해 성을 포위함다.
수세에 몰린 제노비아는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팔미라를 빠져 나와
페르시아에게 원군을 요청하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려는 순간
뒤쫓아 온 로마 기병대에 붙잡히고 맘다.
로마인들은 팔미라 주민들을 한 사람 남김없이 죽여 버렸고,
궁전, 사원, 성벽, 원주,회랑을 모조리 부서 버렸다고 함다.
당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 팔미라는 이렇게 스러졌슴다.
제노바아의 최후에 대해서는 썰이 분분함다.
팔미라가 모조리 파괴됐다는 충격에 단식끝에 숨졌다고도 하며,
로마황제가 개선행진 할 때 그녀를 전차뒤에 묶어 끌고 다녔다고도 하고,
로마의 용서를 받고 로마부인으로서 만인의 우러름속에 천명을 다했다고도 함다.
세계 2차대전전 시리아는 프랑스 통치령으로써
프랑스 외인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부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시리아인들은 날이 저물면 결코 팔미라 페허 근처에 가지 않았다고 함다.
긴 외투를 걸치고 낙타등에 올라 탄 제노비아의 망령이 어슬렁거리다
길가는 사람을 만나면 검은 눈동자로 뚫어 질 듯 바라보면서
로마군을 물리쳐 달라고 간청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람다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팔미라를 방문한 후 그곳에 매료되어 묘사한 구절임다.
시리아의 사막에 세워졌던 기원 3세기의 팔미라는 "사막의 궁전"이라고 불리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이에 찬 감동과 찬탄으로 채워주고 있슴다.
이집트를 아작내고 로마와도 맞짱을 뜰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팔미라.
이 도시국가를 이끌었던 사람은 여왕 "제노비아"였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한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는 여인 제노비아.....
그녀의 아버지는 아라비아의 집시, 어머니는 이집트인
아버지로부터는 아랍인 특유의 청갈색 피부를 받았고,
어머니를 닮아 이집트풍의 새까만 눈동자가 매력이었다고 함다.
제노비아의 미모는 어릴때부터 소문이 자자해서
클레오파트라를 트럭으로 데려와도 쨉이 안된다고 할 정도였슴다.
그녀는 미모만 뛰어 났던게 아니었담다.
어떤 사내들보다도 낙타를 모는 기술이 뛰어나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시부족의 지도자가 되었슴다.
당시 "팔미라"는 동서교역의 중간지로 크게 번성하고 있었으며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융성한 도시였슴다.
그런데 이 도시를 호시탐탐 침흘리며 노리는 나라가 있었으니....바로 로마임다.
로마는 군대를 파견해서 팔미라를 접수하고 로마제국의 영토로 삼아 버림다.
당근 팔미라에는 자유를 꿈꾸는 독립투사들이 생겨나는데
로마제국의 대리인으로 팔미라를 통치하고 있었던
"오데나투스"라는 젊은 아랍 귀족도 그 중의 한명이었슴다.
"오데나투스"는 성밖 사막에서 독립군을 몰래 양성시키고 있었는데
어느날 낙타를 기똥차게 모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가보니
남자가 아니고 여성...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제노비아였슴다.
둘은 첫 만남에서 사랑을 느꼈고 곧바로 결혼을 하게 됨다.
팔미라의 1등 신랑감인 "오데나투스"가 집시부족 촌닭 과 결혼하자
팔미라의 쭉빵 귀족 걸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구경왔다가
그만 꼬랑지를 내리고 뒷걸음 쳐서 그길로 성형외과로 갔을 만큼
제노비아의 아름다움은 찬탄의 대상이었다고 함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독립군 양성에 열정을 바쳤는데
지모와 지혜 또한 대단해서 휘하장군들도 고개를 숙였슴다.
귀족 부인들이 떼거지로 캬바레, 호스트바, 헬스 크리닉 다닐때
그녀는 독립군과 함께 야영하며 군사작전에 참여하였슴다.
(울나라 고관대작 부인덜.....팔미라에 단체관광 보내야 함다)
그녀가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페르시아군을 대파하자
시리아 사막 인근의 나라들이 줄지어 팔미라에 편입을 요청하여
그 지역 인근에 유례를 찾아 볼 수없는 강국으로 부상하였슴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팔미라의 국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남편이 암살당하게 됨다.
일부 역사가들은 제노비아의 음모라고도 함다만....
어쨌던 이를 계기로 제노비아는 스스로 절대군주가 되어
"동방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됨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을 잡으면 초기에 뭔가 폼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함다.
싸움이 하고 싶어 좀이 쑤셨던 제노비아는 그 제물로 이집트를 점 찍고
병사 7만명을 투입해 단 한번의 싸움으로 이집트를 수중에 넣슴다.
하얀 낙타등에 올라타 보랏빛 외투를 휘날리며 선두지휘하는 그녀에게
시리아, 팔레스티나,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소아시아등의 국가들이
무릎을 꿇고 그녀를 최고 군주로 받아 들였슴다.
기원 270년, 로마제국은 자기네 영토의 절반 가량을 그녀에게 뺐겼는데
한 여성이 이만큼 넓은 영토를 전쟁승리로 차지한 예는 전무후무함다.
그러나 그녀의 지나친 야심은 팔미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슴다.
서기 272년 그녀가 아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고 황제의 어머니로 자처하자
가뜩이나 쫑따구 나있던 로마의 황제가 팔미라 공격을 명령함다.
1차전은 팔미라가 가비얍게 승리......
그러자 아우렐리안 황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팔미라로 진군해 성을 포위함다.
수세에 몰린 제노비아는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팔미라를 빠져 나와
페르시아에게 원군을 요청하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려는 순간
뒤쫓아 온 로마 기병대에 붙잡히고 맘다.
로마인들은 팔미라 주민들을 한 사람 남김없이 죽여 버렸고,
궁전, 사원, 성벽, 원주,회랑을 모조리 부서 버렸다고 함다.
당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 팔미라는 이렇게 스러졌슴다.
제노바아의 최후에 대해서는 썰이 분분함다.
팔미라가 모조리 파괴됐다는 충격에 단식끝에 숨졌다고도 하며,
로마황제가 개선행진 할 때 그녀를 전차뒤에 묶어 끌고 다녔다고도 하고,
로마의 용서를 받고 로마부인으로서 만인의 우러름속에 천명을 다했다고도 함다.
세계 2차대전전 시리아는 프랑스 통치령으로써
프랑스 외인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부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시리아인들은 날이 저물면 결코 팔미라 페허 근처에 가지 않았다고 함다.
긴 외투를 걸치고 낙타등에 올라 탄 제노비아의 망령이 어슬렁거리다
길가는 사람을 만나면 검은 눈동자로 뚫어 질 듯 바라보면서
로마군을 물리쳐 달라고 간청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