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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잉보호의 시대
Posted 2007/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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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보호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단순한 어린아이의 문제만이 결코 아니다. 과보호의 문제는 어린아이로부터 확대되어 지금은 성인인 직장인들에게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슈가 사원
우선 슈가 사원이란 문제가 있다. 슈가사원이란 말은 삿포로시의 노무사무소 소장인 田北百樹子(타키타 유키코)가 이름붙인 것이라고 한다. 요즘 회사원들은 사탕같이 달다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일본말의 "달다"라는 뜻의 단어인 아마이(甘い)에는 달다라는 뜻이외에 "안이하다"나 "덜 떨어졌다"라는 뜻도 있는데 뒷 부분을 강조하는 표현이겠다.
다키타가 소개하는 사례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슈가사원의 전형은 바쁠 때 잔업을 시키면 부모로부터 상사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다. 왜 아이를 혹사시키냐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런 전화가 걸려오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여직원이 일을 너무 못해 야단을 쳤더니 갑자기 화를 내더란다. 자기는 부모한테도 욕 먹은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그리고 회사를 나가더니 이튿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소한 욕조차 견디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고 한다. 딸의 근무조건을 모조리 파악하고 싶다면서 사외반출이 금지된 회사규정집을 갖고 싶어하는 부모와 거기에 응하려는 딸.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딸의 모든 것을 파악해두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소1프로블럼(problem)
과보호란 부모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과보호가 문제지만 미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무조건 독립을 해야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과는 요즘 많이 달라진 듯하다.
헬리콥터 페어렌츠(parents)란 말이 있다. 아이들을 너무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왜 헬리콥터 부모라고 부르냐 하면 아이들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처럼 빙빙 돌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려와서 간섭한다는 것이다.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헬리오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헬리콥터 부모가 나이든 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측에도 대단히 많은 것이 문제이다. 바로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몸만 어른이고 마음은 어린아이인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바로 소1(小1)프로플럼이다.
소1 프로블럼이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동이 수업 중에 마음대로 자리를 옮겨다닌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해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태를 총칭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소1프로블럼이 심각해지자 4월에 학급편성을 하지 못하는 학교까지 나왔다고 한다(일본은 우리와 달리 새학기가 4월부터 시작된다) 4월에는 임시로 학급편성을 하여 일종의 연수기간을 설정해둔다고 한다. 집단생활을 익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담임도 정하지 않고 4명의 교수가 매일 교대로 맡는다는 것이다.
보호자와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교실에 상주하면서 담임선생을 돕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담임선생을 도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교정하는 것이 임무라고 한다. 수업도 유치원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루하면 아이들이 수업시간 45분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1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아이들을 관찰해 5월에 정식으로 학급편성을 한다. 이런 식으로 학급편성을 하니 수업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소1프로블럼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도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에서는 대학시험의 1교시가 끝나면 학교 직원들한테 전화가 쏟아진다고 한다. 수험생 부모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이다. 내용인즉슨 “교실이 너무 더워 아이가 시험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밖에 주차장에서 차가 빵빵거려 시험을 못볼 정도니 그것 좀 어떻게 해달라”라는 것들이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이 부모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에도 부모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과보호탓이다,
산케이신문에 지난 3월13일날 보도된 사례들은 코미디에 가깝다. 대학생들이 입학을 하면 오리엔테이션에 부모가 따라오는 것은 이제는 전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을 따라와서는 "어느 교수의 강의가 학점 따기가 쉬운가”,“어떤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좋은가”,“서클은 가입하는 것이 좋은가” 등을 물으면서 학교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모든 것을 자기가 해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오리엔테이션에는 학생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문구를 일부러 인쇄해둔 학교마저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과잉보호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웃고만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조기유학으로 기러기아빠가 양산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기유학에 굳이 엄마가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이것 역시 자기가 해주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과보호 근성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닐까. 지난번 김승연 회장 사건도 그렇다. 이것 역시 과잉보호가 빚어낸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도 과보호라는 문제는 잠복해있을 뿐 언제라도 튀어나올 소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과잉보호할 소질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절제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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