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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육담의 인간관 본문

.....古典(고전)

문헌 육담의 인간관

AziMong 2008. 2. 2. 19:19

3. 문헌 육담의 인간관
  3.1. '성적 인간'의 형상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육담은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서의 특성을 지닌다. 육담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감추고 금기시하는 '성'이라는
문제를 전폭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사람들이 쓰고 있는  관습의 포장을, 윤리의 가
면을 벗겨낸다.(주13:육담에 있어 이러한 '벗기기' 작업은 '성'을  화제로 삼는다는
것 이외에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물의 관계를 희극적으로 과장 전도하며,
반윤리적인 상황을 서슴없이 도입하여 통념을 깨뜨린다. 성기나 성욕, 성행위 등
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 또한 중요한  '벗기기'의 기법이다. 이러한 형상화 방
법에 대해서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본고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생
략한다.) 문제는 그렇게 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여러 벌거벗은 인간군상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른바 '성적 인가'이라  할 만하다. 오로지 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때와 장소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다. 그들은
성행위를 성사하기 위해 갖가지의 기기묘묘한 술수를  동원하며, 성적 만족을 높
이기 위하여 또한 갖은 방법을 쓴다. 성행위를  벌임에 있어 상대방을 별로 가리
지 않으며, 또한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옆에 다른 사람--
특히 배우자--이 있는 상태에서 질탕하게 성행위를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 하여
간 성에 대한 집착은  아주 대단하여, 성적 만족이 가히 인생  최고의 가치로 자
리잡고 있다.
  한 노파가 병으로 죽게  되어 세 딸의 소원을 물었다. 첫째  딸은 남자의 신낭
을 옮겨서라도 양경을  크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둘째 딸은  남자의 양경이
항상 커진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셋째  딸은 남자의 두 엉둥이에 큰
혹이 나게 해서  행사시에 붙잡고서 힘을 써봤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노파가 셋
째 딸의 말에 탄복하면서  남편에게 그런 물건이 있었더라면 여한이 없었으리라
하고는 손을 잡고서 맹렬히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기문]의 [양비
육류](요약)>
  세 딸이  가슴에 묻어둔 소원이란  것도 그렇지만, 다  죽어가면서까지도 성적
욕망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노파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주 희극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처절하기까지 한 느낌을 주고 있다.(주14:이 예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래도 덜한  편이다. 성병에 걸린  상태에서 커다란 과일로  자위행위를 하면서
더 큰 과일을 찾는 여인의 모습([어면순]의 [과요음양])이나, 총각을 유혹하여  성
행위를 하면서  뼈가 부러지는 것을  달게 여기는 칠십  노파의 모습([진담록]의
[쇄율피]) 등은 말 그대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성적 인간의 단면적 형상이다.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에 있어 사회의  제반 관습이나 윤리는 성적
만족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귀찮은 걸림돌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그것을 교묘히 피하고 때로
는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성욕의 충족을 추구한다.
  행상 한 사람이  인간에서 자다가 집주인이 아내와  일을 치르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주인에게 운우의  품격을 그럴듯하게 설파하니, 그 말을 들은 여인
이 마음이 동하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산돼지가 밭을 짓밟는 꿈을  꾸었다면 남
편을 내보내고는 행상을 유혹하여 극도의 환락을 이루었다.
  행상의 성적 능력에 반한 여인은  살림을 챙겨 무작정 행상을 따라 나서는 것
이었다. 이에 후환을 두려워한 행상은 여인을 속여  집에 가서 솥을 지고 오라고
보내고는 내빼고 말았다.  마침 집에서 남편을 만난 여인은 행상이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고 둘러대고는  남편을 이끌고 뒤를  쫓았다. 끝내 행상을  놓친 여인은
통곡을 하고서 돌아왔다고 한다. <[어면순]의 [부부적도](요약)>
  행상과 여인은 위에 보듯이  교묘한 속임수를 동원하여 질탕한 혼외정사를 벌
인다. 그것은  물론 제도상으로나 윤리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이지만, 두 남녀는
일을 치름에  있어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윤리적 갈등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인이 통곡을 하는 것은 살림을 잃어버린 것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남
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켜 줄 남자
를 놓쳐 버린 것을 한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한두 예만을 들었으나, 문헌 육담에 있어  '성'에 의하여 사회적 관습이나 윤리
가 깨뜨려지는 일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육담에  나오는 수많은 성행위의 거
의 대부분이  혼외정사이거니와(그중 상당수는 '겁간'이다)(주15:혼외정사를  다룬
이야기에 대하여  부부간의 성행위를 화제로  삼은 이야기는 반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부부간에 관한 이야기의 상당수는 신랑.신부라는  낯선 인물간의 일을 내
용으로 삼고 있다),  그를 통해 남녀가의 윤리는 결정적으로 허물어진다.  그런가
하면 부자나 장유  간의 윤리가 정면으로 부정되는 예도 허다하다.  부모의 정사
가 자식의 놀림감이 되고,  조손 벌의 남녀가 서슴없이 성행위를 벌인다. 반복되
는 지적이지만, 이들 '성적 인간'에 있어 관습이나 윤리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적 만족에 대한  애착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문헌 육담이  그려내고 있는
성적 인간의 형상이 인간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문
제는 그 형상이 '상식적인  것' 또는 '정상적인 것'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
는 데 있다.  그것은 단순히 '희극적으로 과장된 것'으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성적 인간의 비정상적인 요소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들이 속성 면에서  '인간적'이라기보다 '동물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의 행동양상이  '윤리'와 거리가 먼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본질적
인 것은 그것이  '애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참으로 우리는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에게서  '애정'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좀처럼 찾아보기
가 어렵다. 이성에  대한 애정도 없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다. 차고 넘치는
것은 단지 '성적 욕망'일 뿐이다.
  이러한 동물적인 성적 인간의  형상이 이야기 전승자들의 잠재적 성의식의 반
영이라고 할 때, 우리는 큰 의문에 부딪치게 된다. 조선사회는 유난히 윤리와 명
분을 중시하는, 인간다움과  정신문화를 지향하는 사회였으며, 그것을 앞서 주창
하고 이끌었던 이들은 바로 양반 사대부들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양반들이 전
승하고 향유한 육담에서는 오히려 동물적 차원의,  비윤리적 차원의 욕망만이 두
드러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성적 인간의 형상은 기실 사회
적 모순의 산물이라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육담 속의 인물들이  보이는 성에
대한 맹렬한 집착은,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반윤리적 성향은 성을  억누르고 금
기시하는 사회의 경직성이 낳은  하나의 반작용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윤리적 관념과 명분이 일방적으로 내세워지는 가운데, 성적 욕망은 음성적
으로 부풀려지고 왜곡된 형태로 해소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조선 사회에 있어 성과  윤리를, 또는 성과 애정을 자연
스럽게 매개하는 통로가  막혀 있었음을 주목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결혼제도의
모순과 관련이 있다. 주지하듯이 조선사회에 있어  남녀간의 성적 결합은 혼인을
통해서 가능하도록 제도화돼 있었다. 그런데 그 혼인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집안
끼리의 계약에 의하여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남녀가 부부로 만나서 그날로 성행위
를 치른다. 그리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박탈당한  채 그렇게 평생을 함께 살아
간다. 타의에 의해 만난 낯선 남녀의 성적 결합, 거기에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정
이, '애정'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그저 동물적 본능이 있을 뿐이다(주16:육
담 가운데는 첫날밤의  성행위를 소재로 한 것들이 있는데, 참으로  엉터리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또는 한쪽이 아주  어리석다거나 하
여 문제가 발생하는데,  겉보기에는 우스운 일이지만 당사자로서는  기막히는 일
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혼인제도의 모순을 단
적으로 보게 된다). 요행히 마음에 흡족한 상대를 만난다거나 살아가면서 애정이
생겨난다면 좋겠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짝을 만나 평생
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고역인가.
  한편, 체면과 염치를 중시하는 양반사회의 관념은  남녀 관계를 더욱 부자연스
럽게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관념에 의해  남녀관계를 차단당
한 상태에서의 성장은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태도와 감정을 저해한다. 그리고
집안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혼, 그리고 결혼 뒤에 부부  사이에 놓여있
는 많은 규범들-지키자닌 까다롭고 지키지  않으면 경망한 사람이 되는-이 또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부부간의  애정을, 성생활을 가로막는다. 이래저래 쌓이는 것
은 '욕구불만'이다.
  남녀가의 자연스러운 애정의 부재,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의 애정과 성을
연결시키는 능력의 부재,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적  욕망을 동물적 차원으로 격하
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할 길이 없는 상황은  혼외정사나 겁간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식의 욕구충족
을 유도한다고 여겨진다. 바로 문헌 육담에서 나타나는 그러한 특징이다.
  우리는 지금 중세  조선사회의 이면에 깔려있던 핵심적  모순의 한 면을 보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남녀관계의 통로를 막아놓았던, 정상적인 욕망의 출구를
막아놓았던 중세의 경직된 이데올로기는 그 반작용으로서 욕구불만과 함께 왜곡
된 인간관을 낳았던 것이다. 인륜의 이념의 반인륜성이라고나 할까.
  문헌 육담은 이렇듯 중세적 모순의 산물이라 할 만한 왜곡된 성의식을 내포하
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이야기가 지니는 긍정적 의의가  전적으로 부
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 욕구불만을  엄떤 식으로는 적나라하게  노정한 것은
그 자체 중요한  문제제기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그런가 하면 육담이  성적 욕구
불만을 중화하고 해소하는 하나의  안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해온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육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분히  음험한 심리적 대리충족의 경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되짚어 성찰하고  정화하도록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육담집 편자들이 내세운 '경계'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 아닐는지.......
  그런가 하면 우리는  다분히 동물적인 성적 인간의  군상 한켠에 이와는 다른
'인간적인 성적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비록 그 숫자는 소수지만, 문
헌 육담 가운데는  부부를 비롯한 남녀가 애정을  전제로 하여 성행위를 벌이는
모습을 흥취있게 그린 이야기들이 없지 않다.
  한 부부가 서로 싸워 남편이 아내를 때리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분이 풀리
지 않은 상태에서 잠자리를 들게 되었는데, 남편이  잠못 이루는 아내를 보니 측
은한 생각과  함께 가까이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가 자는 척  팔을 아내
가슴에 얹으니 아내가 '자기를 때린 손'이라면  물리치고 말았다. 다시 그가 발을
엉덩이에 올리니 이번에는 '자기를 차던  발'이라며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남편이
웃으며 양물을 뻗어 아내  배에 대니 아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양민이니, 너
야 나에게 어찌했겠니." 하는 것이었다. <[진담록]의 [양민찬](요약)>
  이러한 이야기가 주는  웃음은 유쾌하며 또한 건강하다(남편이 아내에게  폭력
을 쓴 대목은 예외지만). 실로  성이란 이렇게 남녀를 애정으로 화합시키는 매개
체, 나아가 애정의 결정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의식을 선양하는 육담
은 어떤 면에서 보면 반중세적 담론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
을 법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전대보다  후대의 설화집에서 더 많이 보이는 것(주
17:[진담록]이나 [기문] [교수잡사]  등의 후대 소화집에 이런  류의 육담이 많다.
이 소화집들에는 육담이  아닌 진진한 애정담이 육담과  함께 실려 있기도 하다
(그러한 애정담은 물론 이  시기의 야담이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종
류의 것이다)은, 물론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3.2.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앞서 지적한  대로 육담은 관습이나  윤리의 탈을 벗어던진  인간상을 그린다.
그렇게 벌거벗은 상태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서로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실
제로 육담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물이 두루 '성적 인간'으로서 등장하여 성적 능
력으로써 승부하는 평등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서로 동등한 존재가 되는가 하면 그렇
지는 않다.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사회적 처지의 차이가 그것이
다. 그 가운데도 신분의 차이와 남녀의 차이는 특히 중요한 것들이다. 이제 문헌
육담이 '남성 양반'에 의해  결산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사회적 불평등 내지는
사회적 편견이 개재하는 양상을 단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분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고위 양반 사대부에
서부터 천민인 종에 이르기까지 서로 사회적 처지가 다른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
다. 이  중 서로 신분이 다른  인물간에 성행위가 시도되는 경우에  성적 욕망의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서로 얽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특히 양반과 여종의 관계를 다룬  여러 이야기에서 단면적으로 볼 수 있다(주18:
문헌육담 가운데는 주인과  여종의 사통을 소재로 삼은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
것은 실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종은 양반이 성적  욕망을 충족
할 수 있는  가깝고도 만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양반과  상민의 성관계
로서 양반과  여종의 관계만큼이나 많이  보이는 것이 양반과  기생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공인된 관계임으로 해서 전자만큼의 문제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이씨 성을 가진 선비 하나가 자못 음사를  좋아했다. 하루는 두어 선생과 친구
집을 찾아 술잔을 나누는데 분금이라는 침선비가  있어 용모가 수려하였다. 이씨
가 좋아하여 욕정을 참지 못하던  중 반쯤 취한 상태에서 방안에 붙들어다가 다
만 오른쪽 신발만을  벗은 채로 겁탈하여 기쁨을 누렸다. 한  선생이 창구멍으로
이를 보고는 좌중을 향하여  웃으며 말하기를 "분금이 아들을 낳으면 필시 사류
일 터이니 왈  '의관자제'로라" 하였다. 만좌가 절도하였다.  <[어면순]의 [의관자
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 집도  아닌 친구 집에서 남의 이목에 개의치 않고
여자를 겁탈하는 바,  이는 물론 자기는 양반이고 상대는 여종이라는  신분적 차
이에 기초한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성적 침탈이라고 할 만하다.
  주목할 것은 그의 성적 침탈이  그 자체로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
실이다. 다만 의관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하여 '의관자제'라는 교묘한  조롱이 나온 것이 화제일  뿐이다. 좌중의 한바탕
웃음 속에 여종에 대한 선비의 일방적인 성행위는 묵인되며, 나아가 조장된다(주
19:여종과 사통을 하면서 양반이 꺼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투기'다. 양
반은 아내의  눈초리를 피해 갖가지  방법으로 여종에게 접근한다.  그 방법으로
이른바 '십격전술'이라는  것까지 등장하는  바([속어면순]의 [십격전술]),  여종과
사통하는 열 가지 전술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왜곡되고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조
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 보면 불온하기 짝이 없는, 불평
등하고 비인간적인 양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문헌 육담에 있어 양반의 여종 사통이 위에서처럼 뜻대로 성사되는 것
만은 아니다. 여종을 범하려던 양반은 때로 엄청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월이란 여종을 마음에 두고 있던  선비 하나가 하루는 종들이 잠든 틈에 내
실에 들어가 이월의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월이 엉겹결에  주먹으로 세
게 치니 선비가 놀라  뛰어 나와서는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땅을 기었다. 마
침 아이 오줌을 누이던 종이 이를 개로 오인하여 '반반'하고 어르니 선비가 개소
리를 내면서 도망갔다. <[어면순]의 [반반태](요약)>
  이 이야기 속의 양반은 종에게  얻어맞고 개 노릇까지 하는 엄청난 봉변과 망
신을 당한다.  양반으로서의, 주인으로서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짐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는 양반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모욕적인 이야기이지만,  일반 평민
의 입장에서 보면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양반
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공격하는 의미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과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반명제로서 힘을 발휘했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위  이야기가 문제삼는 것은 양반이 여종을 범하려  한 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단이다.  곧 뜻밖에 매를 맞고  개 노릇을
한 사연이 화제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양반 전승자들에게 있어 어
처구니없는 한때의  망신을 웃고 즐기자는  것일 뿐, 근본적인  도덕적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돌이켜 반성하고 경계하는  면이 있다면 일을  소홀히 진행하다가
위신을 잃은 부분이 곧 그것일 터이다. 만약  이 양반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는
더욱 교묘한 방법-이를테면 '십격전술'(주19 참조) 같은-을 써서 끝내  여종과 사
통하고 말았을 것이다.  요컨대 아랫사람의 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식의 차
별적 통념은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본질적으로 부정되지 않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성에 대한 양반의 왜곡된 시각을 가히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
다.
  한 양반이 젊고 어여쁜 이웃집 상민 아내에게  항상 뜻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여자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을 보고 달려가 귀를 잡고 입을 맞
추었다. 그러자 여인이  소리를 치고 그 가족이 달려나와 양반을  꾸짖어 욕하였
다.
  여인의 남편이 관가에 호소하여 이 일을 법으로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그 판
결은 양반이 한  행위는 법에 죄로 나와 있지  않고 오히려 상민이 양반을 욕한
일이 죄가 된다면서 그 남편을 귀양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여인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양반을 찾아가
용서를 빌게 되었다. 그러자 양반은 여인을 방에  들게 하고는 입을 맞추고 합환
을 꾀하는 것이었다. 여인 또한 기꺼워하며 응하였다.
  그후 양반이 관청에 가서 남자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청하니, 관장이 말하기를
"이제야말로 가히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겠도다"  하였다. 양반 역시 웃음을 머금
었다. <[성수패설]의 [모욕빈색](요약)>
  위 이야기는 사회적 불평등이  일방적이고 비열한 성적 침탈을 어떻게 정당화
하고 있는지를 설명이  필요 없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건전한 양식을
거스르는 모순된 상황이거니와, 문제는 그것이 전승자에  대하여 잘못에 대한 비
판보다는 '공모의식'을 환기하는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데  있다. 상민 여인
이 양반의 합환  요구에 기꺼이 응하여 즐거움을  누렸다는 설정은 양반의 성적
침탈을 마치 '시혜'나 되는 것처럼 미화하여  조장하고 있다. 양반 전승자들은 이
야기 끝의 양반과 관장의  웃음에 동참하면서 자기자신에게도 그러한 일이 벌어
지는 상황을  꿈꾸게 된다. 어찌 이를  잠시 웃고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겠는가.
  앞서 문헌 육담이  '양반 남성'의 관점을 담고 있다고 했는데,  성에 얽힌 차별
적 관념은 '양반'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남성'의 입장에서도 만만치않게  부각되
고 있다. 남녀간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신분간의  관계에서와 유사한 왜곡된 관념
이 얽히고 있는 것이다.
  육담은 곧 남녀관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남녀의 관계 양상을 다
양하고 풍부하게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일견 그 관계는 서로 동등한  것처럼 보
인다. 문헌 육담 속의  남녀는 같은 '성적 인간'으로서, 양반이 다 적극적으로 성
적 만족의 추구를 지향한다. 여성의 행동양상은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욱 적극적
인 면이 있어서 성관계를 여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돼있는 이야기들이 자주 보인
다.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억압을 염두에 둘 때, 그리고 그것이  성적 욕구불만을
낳았으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육담  속의 여성의 형상은 상당  부분 남성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성에 대한 남성의 시각이 일방적으
로 여성에게 투영되고 있다는 것으로, 특히  '겁간'을 화제로 삼고 있는 이야기들
로부터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한 중이 길에서 여인을 만났다. 중은 욕심이  달랐으나 계책이 없어 그저 여인
의 뒤를 쫓던 중 "네 어찌  방귀를 뀌느냐?" 하고 꾸짖는 것이었다. 여인이 노하
여 중을 심하게 욕하였다.  중이 재삼 꾸짖었지만 여인은 오히려 굴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이 "저기 신령한 부처가 있으니 함께 가서 물어보자"고 하였다. 여인이
사실을 가리고자 하여 중과  함께 그리고 갔다. 중은 부도 앞의  으슥한 곳에 이
르러 여인을 강압하여  극음을 누렸다. 함께 돌아오는 길에 여인이  중을 돌아보
고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방귀 한번 더  뀔까요?" 중이 웃으며 갔다. <[속어면
순]의 [여청재비]>
  이 이야기는 악의  없는 재미있는 육담으로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있다. 중의
속임수도 그러하지만 '방귀 한번 더 뀔까?' 하는 여인의 말이 너털웃음을 자아내
는 면이 잇다. 확언은 할  수 없지만, 실제 이 이야기의 전승자들은 이를 하나의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함정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야기  속의 남성
이 여성을 '겁간'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의 겁간은 속
임수를 수반한 교묘하고  부당한 성적 폭력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
한가? 수모를 당하고 겁간까지  당한 여인이 오히려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여 다
시 한번 일을 벌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성적 인간'의 모습이거니와,
문제는 그러한 설정  속에 남성의 왜곡된 성의식이 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들은 일방적이고 비인간적인 성적  폭력을 은연중에 자연스럽고 정당한 일로 탈
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을 성적 쾌락을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보
는, 성적  만족의 수단으로 보는 태도를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여성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남성이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는 성
적 노리개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예가 그저  한두 개만 보인다면 어쩌다  그런 이야기까지도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문헌 육담에서 남성의 비정상적인 성행위-겁간,
그리고 간통-이 은연중에  정당한 것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재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앞에 인용한 [성수
패설]의 [모욕탐색]에도 양반의 비열한 겁간이 화간으로 변질되는 내용이 들어있
으며, [어면순]의  [의관자제] 또한 겁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담고 있다).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의식이 하나의  사회적 편견으로 뚜렷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좌라 하겠다. 사회적 불평등은 참으로  성이라는 본성적인 문제에까지 작
용하면서 그것을 뒤틀고 있다.
  4. 구전 육담의 성의식 -문헌 육담과의 거리-
  지금까지 우리는 문헌 육담에 담긴 성의식을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는 여러 측
면에서 건전한 양식을  벗어나는 왜곡된 요소가 발견된다는  쪽이었다. 그렇다면
주로 민간에서 전승돼 온 구전 육담에 있어서는 사정이 어떠할까? 과연 어떤 본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문헌 육담에 대한 구전 육담의  유사성 내지 변별성을 살핌에 있어 먼저 전반
적인 성관계의 양태를 비교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육담에는 여러 인
간군상이 등장하여  다양한 사단을 일으키거니와,  그 사단은 성의  문제에 얽힌
것들로 돼있다. 그 사단을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남녀의 갖가지 성관계
를 화제로  삼은 것 외에 자위와  동성애 같은 성행위가 화제에  오르기도 하며,
그밖에 성기.성욕 묘사, 성적 흥미를 유발하는 말장난  등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그 유형을 도표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행위 - 남녀관계{부부관계, 혼외관계;사통(단순정사), 간통, 겁간(주20:사통은
배우자 없는 남녀간의 성관계를 뜻하고, 간통은  배우자 있는 남녀의 상호교감에
의한  성관계를 뜻하며,  겁간은 일방적.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뜻한
다.)}, 그밖의 성행위(자위, 동성애, 이물교합 등), 기타(성에 관한 어희, 성욕.성기
묘사 등)
  구전 육담과 문헌 육담은 이중 어느 것을 주요 화제로 삼는가 하는 문제에 있
어 주목할 만한  편차를 보인다. 관계의 성격에  차이가 있으며, 그 주체에도 큰
차이가 있다.
  문헌 육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화제는 '혼외관계'다.  특히 간통에
관한 이야기가 전 자료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겁간-그중 상당수는
'화간'으로 변질되지만-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비하
면 부부관계나  사통(단순정사)을 화제로 삼은 이야기는  희소한 편이다. 이밖에
남녀관계 이외의 성행위를 다룬  것이나 '기타'에 해당하는 것들 또한 드물게 보
인다.
  이와 달리 구전  육담에 있어 간통이나 겁간을  화제로 삼은 이야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문헌에 있는  내용을 이야기로 옮긴 것을 제외할 경우  더
욱 그러하다). 부부관계를 다룬 이야기와  사통을 다룬 이야기가 이들을 훨씬 능
가하여, 구전 육담의  주요 이야기종목을 이루고 있다.  한편, 성행위를 직접적으
로 다룬 것  외에 성에 얽힌 말장난이 다양하게  보인다는 것 또한 구전 육담의
특징이다. 이외에 자위나 동성애[계간]  따위를 다룬 이야기의 비율이 문헌 육담
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다.(주21:구전육담 자료 가운데는 문헌육담에  비
하여 동일 유형이  거듭 채록된 각편들이 많은데, 자료의 빈도를  정리함에 있어
유형이 아닌 각편수에 초점을  맞추었다(이하 마찬가지임). 한 이야기가 여러 화
자에 의해 거듭  구연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다.)
  문헌 육담에 있어 성에 얽힌 사단에는 흔히 양반(선비)이 등장한다. 양반은 문
헌 육담의 가장 두드러진 남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반이 여종이나 기생,
첩, 촌녀(유부녀/과부), 아내 등을 상대로  하여 성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가 문헌
육담의 주류를 이룬다. 양반 외에 장사꾼이나  머슴, 촌사람, 중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는 않지만, 그것을 다  합쳐봐야 겨우 양반에 관한 것에 미칠까  말까 할 정
도다.(주22:실은 양반의 기록에  촌인에 관한 이야기가 이만큼 수록된 것만  해도
특기할 일이다. 아마도  이는 '성'에 대한 보편적 관심으로써 설명할  수 있을 것
이다.)
  이와 달리 구전  육담에 펼쳐지는 다양한 성적  사단에 있어서는 양반은 거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구전 육담의 주요 남성 주인공은 촌사람, 총각
머슴, 장사꾼(소금장수, 생선장수, 옷감장수  등), 중이며, 그 상대역은 주로 시골
아낙, 과부, 처녀(시골처녀/양갓집 처녀)  등이다. 특히 촌사람 부부(신랑.신부 포
함),  총각모슴-과부, 총각(머슴)-처녀,  홀아비-과부, 장사꾼-아낙,  장사꾼-처녀,
중-아낙 등이 주된 짝을 이룬다.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이 나타내는 이러한 차이는 전승자층이 다른데 따른 자
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주목할 만한
문제성이 있다.
  그 하나는  성관계의 윤리성 문제다. 혼외정사를,  특히 간통과 겁간을 집중적
화제로 삼는 문헌 육담이 성윤리와 관련하여 주로 어둡고 음란하며 착잡한 느낌
을 유발하는  데 대하여, 부부관계나  처녀.총각(또는 과부-홀아비)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는 구전 육담은 이야기가 주는 느낌부터가 전반적으로 훨씬 밝고 유쾌
하다. 구전 육담에  있어 성적 욕망과 윤리의 문제는 문헌  육담에서와는 양상을
달리한다.
  다음으로 주체의 사회적 성격 문제다. 구전  육담의 주인공인 하층민들은 양반
들과는 다른 차원의  성적 억압과 결핍을 절박하게 겪고 있음이  주목된다. 나이
가 차도록 결혼을 못한 노총각은 그 단적인  예이거니와, 그 외의 주인공들 또한
사회적 처지와 관련하여 크고작은 성적 억압을 겪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문헌 육
담과 변별되는 이러한 특징이 의미상의 편차로 이어짐은 또한 당연한 일이다.
  앞서 문헌 육담  속의 인간군상이 '성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거니와, 구전 육담에 있어서도  '성'에 부여되는 가치는 막대하다. 성적 만족에
비하면 윤리도덕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옛날에 한 늙은 내외가 두 아들과 며느리를  두었는데 모두 효자 효부였다. 그
런데 할멈이 병이 나서  아무리 약을 써도 안 낫는 것이었다.  이때 강원도에 용
한 의원이 있어  약을 지어주면서 '좃모가지'(조이삭)를 달이라고 하였다. 식구들
이 이를 남자의 양물로 잘못 알아들어 큰  사단이 일어났다. 큰아들이 자기 물건
을 자르겠다고 나서자  이를 들은 큰며느리가 제사  모실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펄쩍 뛰었다. 다시 작은아들이  물건을 자르겠다고 하자 작은며느리
가 시집  온 지 몇 달밖에  안됐는데 그것 없으면 못산다면서  말리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영감이 자기것을 베어서 달이겠다고 하자 늙은 마누라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아  내 병  다 나았다"고  했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8,
392-94면, [내 병 다 나았다](요약)>
  남편의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두 며느리의 모습에서, 그리고  늙은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본다. 그것은 '효성'이라는 윤리를 무색
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육담이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성적 욕망이란 본래  사회의 관습 내지 윤리에 반하는 성향이  있거니와, 우리
는 둘이 맞부딪치는 모습을  여러 구전 육담 자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식에
게 들통난 부부의  성행위를 통해 부자간의 질서가 깨지며, 남편의  눈을 속이며
외간남자와 사통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남녀간의  성윤리가 깨진다. 처녀를 속
여 범하는 소금장수나 여색을 밝히는 중 또한 윤리를 파괴하는 데 한몫 하는 이
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다수  구전 육담 자료에 있어  동물적 차원의 성적 욕망만이
홀로 우뚝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성적 욕망은 흔히 인간적, 윤리적 고
민과 함께 맞물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위에 인용한 [내 병 다 나았다]만 하더
라도 윤리의식은 그리  간단히 무시되지 않는다. 두 아들은 성을  포기하고 효성
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 며느리들이 이를 막아서지만 이  또한 윤리적
가치를 저버린 것이라기보다는 성생활을 차단당할 절박한 상황에서 본성이 윤리
의식을 앞선 것일 뿐이다. 그것은 성적 만족에  대한 극단적 집착과는 다른 차원
의 자연스러운 인간적 반응이다.
  다음 이야기는 욕망과 윤리 사이의 고민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한 부자  과부가 있었다. 한 총각이 머슴으로 들어왔는데  새경도 필요
없고 불을  켤 기름만 달라고 했다.  총각은 부지런하고 모든 일을  잘하여 과부
마음에 흡족하였다. 이 머슴은  밤마다 방에 불을 환히 켜두었는데, 궁금한 마음
에 그 방을 엿본  과부는 심병을 얻고 말았다. 총각은 반듯이  누워 큼직한 물건
을 세워  벌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부는 마음을 진정시켜  돌아왔으나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다시 머슴의  방으로 가서 물건을 훔쳐본 과부는
다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다음날 자기도 모르게  다시 머슴방으로
이끌려간 과부는 결국  머슴의 몸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총각은  과부와 결혼하
여 잘 살았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10, 348-49면, [과부와 머슴](요약)>
  이 이야기에서 수절  과부가 겪는 성적 욕망과  윤리 사이의 갈등은 진솔하고
절박하다.(주23:이 이야기의  각편은 10편 가량 되는데,  한결같이 과부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 갈등은 그녀를 오히려 인간적인 존재로  부각시킨다.
이야기 전승자들은 그녀의 갈등에 공감하며,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이 과부와
총각의 결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잘 된 일, 축복받을 일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경직된 윤리도 아닌, 또한 동물적인  욕망도 아
닌,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인간의 한 진면목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진지한 갈등을 거쳐서 이루어진 선택을 어느 쪽이든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지닌
다. 위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중 욕망을 선택했고, 그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긍정
된다. 본연의 욕망을 건강한 인간성으로 긍정하는 시각이다. 구전설화의 전승 주
체로서의 민중이 가다듬어온  인간관이다.(주24:이 이야기는 널리 구전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로서, [한국구전설화]에만도 여러 편의  각편이 실려 있다. 이는 이
이야기에 담긴 관념이 사람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구전 육담은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 밝고 유쾌하다고 했거니와,  위의 두
예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인물들의 행위가
'정상적인 것'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과 함께, 아마도 이야기  속에 인간적 체취
가 담겨있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예를 단편적인 것으
로 하나 더 들어 본다.
  어떤 성지(형제)기 아침밤 먹고  어디 함께 가기로 약속얼 ㅎ넌디 성언  갈 채
비럴 다 허고 바깥이 나와서 지달코(기다리고) 있넌디  동생놈이 통 나오지 안히
서 성언 그만 화가 나서 동생 방문얼 왈칵 열고 "멀 허니라고 이때꺼지 안 나오
냐?" 험서 소리질르다 보니 아 이거 야단났단  말이야.  어어 이거 이거 쯧쯧 허
고 있었다. 그건 그럴 수밖에.  동생놈언 제수허고 그 짓얼 한참 허고 있어서 말
이다.
  동생놈언 그만 성헌티 그런 꼴얼 당히서 어쩔 줄 몰라 각시 배 우그서 엉겁절
에 헌단 말이 "성님도  한 번 허시지요." ㅎ다. 그렁께 성도 엉겁절에 헌단  말이
"오냐 어서 히라, 나도 허고 왔다." <[한국구전설화] 8, 374-375면, [나도 했다]>
  아주 민망한 상황에서 은연중에 주고받는 형제의 말이 주는 웃음이 아주 유쾌
하다. 아마도 그것은 상대방의  처지를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
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전승자들의 심리 속에 또한 인간적 체취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그것은 구전
육담에서 다양한 성적 사단에 '애정' 내지는 '인간적 정감'의 요소가 얽혀들고 있
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위가 그러하며,(주25:한가지  보충하면,
앞에 든  [과부와 머슴]에서 과부가 머슴에게  끌린 데는 단순한  성적 욕망뿐만
아니라 머슴에 대한 인간적 호감이 전제돼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한 전승자의 시각이 그러하다. 이러한 '인간적  배려'를 잘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
기를 하나 보기로 한다.
  옛날에 소금장수  하나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집 외양간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한 사람이 문앞에서 배회하는  것이었다. 소금장수가 그 사람을
내쫓고 문앞에서 배회하니  주인여자가 끌고 들어가 사통하였다.  다음날 여자가
일어나서 보니 샛서방이 아닌 엉뚱한 남자이므로,  일을 무마하느라고 음식을 챙
겨주고 떠나 보냈다.
  마침 그 여자의  남편이 우연히 그 소금장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
데, 그 와중에 자기 아내가  음행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집에 와서
어머니 사당에 가서 어머니 말소리를 흉내내어 아내의 음행을 낱낱이 이르는 것
이었다. 그  모습을 본 며느리는 남편이  나간 틈에 사당에 가서  시어머니 욕을
해댔다. 그러자 그 모습을 정탐한 남편이 다시  사당에 가서 어머니로부터 그 사
실을 듣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보고 놀란  며느리는 사당에 가서 용서를 빌고는
다시는 나쁜 행동을 안했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1, 245-247면, [아내의 음행
을 고치다](요약)>
  이 이야기를 주목하는  것은 음행을 저지른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 때문이
다. 샛서방을 두고 있고 소금장수하고도 정을 통한 아내, 그 아내에 대하여 남편
은 뜻밖에도 직접 책망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아내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도록 인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인내심
있고 너그러운 행동이다. 이와 같은 인간적  배려를 우리는 일종의 '애정'으로 규
정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성에 얽힌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유력한 해법이다.
  앞서 우리는  문헌 육담을 살피면서 전통사회에  있어서의 혼인제도의 모순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  그것은 일반 평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
다. 평민들 또한 대개  낯모르는 남녀가 만나 부부생화을 엮어나갔던 것이다. 그
런데 구전 육담에 있어 문헌 육담과 달리  인간적 정감의 요소가, 애정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간단히 답할 성질의  문제가 아
니지만, 평민들의 삶에  있어 적어도 명분과 체면의 허울이 덮여  있지 않았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삶을
함께 엮어가는 길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육담은 그 자신 그러한  삶의 한 과정
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구전 육담에 있어 성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양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필 시점이 되었다. 구전 육담은 그 전승 주체의 사회적 처지가, 또한
등장인물의 사회적  처지가 문헌 육담에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앞서 지적했거니
와, 그것은 성의식의 측면에서 어떠한 차이를 낳는 것일까?
  앞서 문헌 육담에 있어 신분차별의 관점,  남성위주의 관점이 성의식을 왜곡시
키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 구전 육담에서는 양상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여, 그러한 요소가 거의 없거나 또는 희미한 편이다.
  먼저 남성  위주의 관점을 보자면, 앞서  살핀 구전 육담 자료들이  이미 이에
대한 답변을 웬만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과부와  머슴] 같은 이야기에 있어
남성과 여성은 각기 주체적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여성은 성적 만족의
일방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격을 지닌 '상대방'이다. 이런  사정은 [아내의 음행을
고치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외의 다른 자료들을 두루 사펴보아도 성에
얽힌 남녀차별의 관념은 그리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구전 육담에 있어 '겁간'
을 화제로 삼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으며(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겁
간이 화간으로  둔갑하는 식의 이야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주26:이런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드문  예로 [한국구전설화] 5, 389-390면,  [봉변당한
여자]를 들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한 사냥꾼이 색시를 데리고  산길
을 가다가  칼을 찬 도적을 만났다.  도적은 응큼한 생각이 들어  사냥꾼더러 그
활고 자기 칼을  바꾸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활을 차지한 도적은  활로 사냥꾼을
위협하여 칼을  버리게 하고 나무에  묶어놓은 다음 색시를  겁탈하였다. 색시는
처음에 저항하다가 나중에 기분이 좋아져 갖은  재주를 부리는 것이었다. 도적이
사라진 후 사냥꾼이 색시를 꾸짖어  욕하니 색시는 오히려 칼을 활과 바꾼 사람
이 잘못이지 무슨 소리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물론 비윤리적.비정상
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초점이 겁간의 정당화에 놓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반하장 식의  여인의 뻔뻔한 태도에 초점이 놓인다. 그런  점에서 남성
중심의 시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육담 일반의  특징이 아닌,
문헌 육담 특유의 설정이었던 것이다.
  다음 신분차별의 요소는 구전 육담에 있어 애초에 크게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육담의 대다수 등장인물이 일반  하층민들로 돼있고 이들 사이의 성
적 결합이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양반과 하층민이 함께 등장하는 이
야기들이 보이지만, 그  관계의 짝은 주로 '하층 남성 대  양반집 여성'으로 설정
돼 있어 문헌 육담과는  상반되는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앞서 [첩과 종]에서 본
바와 같이  양반에 대하여 도전하면서  일종의 우월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 또한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한 정승이  뒷간을 가다가 하인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들어보닌
그 중 하나가 "대감님  소첩을 불이 나게 한바탕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
는 것이었다. 정승이 그 하인을 불러서 "어디 한번 불나게 해봐라. 불이 안 나면
목을 베겠다"고 호령하였다.  하인이 정승 앞에서 소첩과 일을 시직하는데,  한참
일을 벌이다가 말고 갑자기 소첩을 때리면서 "남 목이 달아나라고 이게 무슨 짓
이냐"고 욕하는 것이었다. 정승이 왜 딴소리냐고 꾸짖으니  하인이 말하기를, "이
년이 한참 불이  나려고 하니 물을 싸서  꺼버리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정승이
과연 사내라고 감탄하면서 소첩은 물론 재물까지 주어  보냈다고 한다. <[한국구
전설화] 5, 360-361면, [불이 나려는데]>
  이상의 논의는 구전 육담에 있어  사회적 불평등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
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전 육담의 성의식 또한 전승자들이  처한 사
회적 조건과 관련하여 나름의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소홀히 넘길 수 없다.
  먼저 성의 은폐에  따른 왜곡된 성문화의 문제로서, 이는 구전  육담에도 영향
을 미치고 있다. 성을  덮어두는 사회적 관습이 낳은 결과는 곧  성적 무지로 나
타나는바, 그로 말미암아 겪는 엉뚱한 사단이 구전 육담에 흔히 보이고 있다. 응
큼한 남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처녀가  혼전에 몸을 내준다거나,  결혼한 부부가
성행위를 겁내 피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한편으로 한심하고 착잡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육담이 그  자체로서 이
러한 성적 무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에 관한 인식의 통로를 열고 있다
는 데 의의를  부여해 보지만,(주27:육담 가운데는 이야기 내용 자체에  성교육적
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방사를 할 줄 모르는  신랑을 위하여 밖에서
친척이 '탈의-진퇴진퇴' 등으로 방법을 일러주어 신랑이 따라 하게 했다는 것 등
이다.) 그 역시 성인남자드의 은밀한 수군거림에 가깝다는 면에서 개방적인 공론
과는 거리가 있지  않음을 부정할 수 없다.(주28:이러한 이야기들이 미혼  남녀들
사이에서 전승되면서 성교육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
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때도 '은밀한 것'임은 변치 않는다.)
  다음 비합리적인  제도에 의한 성적  억압의 문제이다. 불합리한  혼인 제도에
의해 욕구불만이 쌓이는 것이나 개가를 막는 제도 때문에 과부가 무조건 욕망을
넉눌러야 하는  것 등은 서민들에게  있어서도 큰 고역으로  작용했던 것으로서,
구전 육담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육담에 자주 등장하는, 아
예 결혼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노총각의 모습은 성이라는 기본 욕구에서조
차 소외된 민중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층민들의 성적 결핍은 기실  사회적 불평등의 소산으로서 아주 본질적인 문
제이거니와, 그에 대한 대응이  주목된다. 육담은 성적 결핍에 대한 대응을 크게
두가지 형태로 그려보이고  있다. 하나는 그 욕구불만을 자위나 동성애  등의 방
법으로 해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물론  비정상적인 것이지만, 달리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처지를 고려한다면 '상놈의 천한 짓'이라는 식으로 질타할 수는 없
는 노릇이라고 생각된다.  또하나는 적절한 배필을 짝지어주어서  문제를 해결하
는 형태이다. 앞서 본  바 있는 [과ㅜ와 머슴] 같은 경우다.  이쪽이 훨씬 원만하
고 바람직스러운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 상황
은 기실 현실이라기보다는 '공상'에 가까운 것이고,  그러기에 공허할 수 있는 것
이다. 그 공상은 다음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진사집과 나란히 있는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총각이 어머니에게 진사딸에게 장가를 보내 달라고 하니 어머니가 그런 소리 하
지도 말라며 꾸짖었다.  총각은 돈이 있어야 장가를 간다는 생각에  짚을 구해다
가 굵다란 새끼를 서  발을 꼬았다. 밤중에 그 새끼를 쳐놓았더니  새가 한 마리
걸렸는데, '홀련만년 풍덕새'였다. 총각은  꽁지 깃털을 하나 뽐고서 새를 놓아주
었다.
  어느날 총각은 진사  딸이 담모충이에 오줌을 눈  자리에 새 깃털을 꽂아놓았
다. 그랬더니 그 처녀가 걸어가면 밑에서  '흘렁만렁 풍덕궁'하는 소리가 나는 것
이었다. 진사집에서 아무리 용한  의원을 써도 고칠 수가 없었는데, 그때 총각이
나서서 딸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병을  고쳐주기로 하였다. 총각은  가짜 환약을
만들어준 다음 깃털을  뽑아 처녀의 병을 고쳤다. 그러자 진사댁에서는  딸을 내
줄 수 없다고  딴전을 하는 것이었다. 총각은 다시 깃털을  꽂았고 처녀한테서는
다시 '흘렁말렁 풍덕궁'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진사는 딸을 총각과 결혼
시키게 되었고, 총각은  처녀의 병을 고쳐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8, 315-317면 [이상한 새털로 장가들다](요약)>
  참으로 꿈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꿈 속에서만, 공상 속
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러한 이야기가 있어 심사를  조금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공상적 대리만족이  어찌 성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욕구불만을 제대로 해소시켜 줄 수 있었겠는가.  위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기보다는 오히려 슬픈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끝으로 경제적 곤핍한 하층민의 처지  또한 성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
다. 구전 육담은  가난과 관련하여 생겨나는 갖가지의 웃지 못할  희극을 보여주
고 있거니와, 그 가장 흔한 예로 단칸방  생활에서 빚어지는 부부와 자식간의 민
망한 사달을 들 수가 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아주 많은데,(주29:문헌육담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몇 편  있지만, 수적으로 구전육담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구
전 육담은 그 상황에서의 다양한  사단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중 두 편만을 들어 본다.
  한 머슴이 겨우  장가들어 단칸방에서 사는데 자식을 숱하게 낳아  놓았다. 부
부는 서로 정답게 잘  기회를 못 찾던 중, 어느 여름날  마당가 대추나무 밑에서
일을 벌이기로  하였다. 아이들 잠든 틈을  보고 남편이 아내에게  '꼬끼오' 하고
신호하니 아내가 '꼬꼬' 하면서 나왔다. 그러자 아이들이 잠에 깨서 '삐요삐요' 하
면서 엄마 두리르 따라나오는 것이었다. <[한국구전설화] 6, 477면 [삐요삐요](요
약)>
  한 가난한  집에 있는데 아이까지  많아서 살기가 어려웠다.  아이보기에 지친
큰자식들이 의논하여 부모가 밤일을 시작하면 불을  켜서 막기로 하였다. 부모가
성냥과 부싯돌을 다  감추자 자식들은 화로에 숯불을  담아 불을 켜대는 것이었
다.
  오래도록 밤일을 하지 못하던 부부는 어느날 화로에 무를 묻어놓고 일을 시작
했다. 자식들은 일어나서 화로를 쑤시며 불을 키려고  했으나 무 때문에 불이 붙
지를 않았다. 그러자 한 녀석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어떤 놈이 무를 묻었어? 무
묻은 놈이 이번  애기를 보아라." <[한국구전설화] 3,327면,  [무 묻은 놈이 애봐
라](요약)>
  단칸방 살림에  자식의 눈을 피하여 일을  벌여야 하는 부부, 그리고  그 일을
방해하는 자식들. 참으로 엉뚱하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성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
이다. 그 민망하고 속상한 것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팔자 편한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 이런 일을 겪으
며 살고 있는 고단한 평민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웃지 못할 희극이다. 삶의 절박성이 거기 배어 있다.
  성은 인간 보편의 것이라는 명제는 타당하다. 그러나  모든 성이 다 같은 성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 절의 논의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부여주고 있다.
  조선사회에 있어 윤리 관념을 사회의 지표로서 힘주어 내세운 것은 양반 사대
부들이었다. 그러나 그 가면 뒤에 비인간적이고 차별적인, 왜곡된 성관념이 도사
리고 있음을  우리는 문헌 육담을 통해  단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일반 민중들이 구전 육담을 통해 가다듬어 온 성의식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인
간적인 것이었다. 윤리적  고민이 담겨 있고, 인간적 정감이 배어  있다. 여러 가
지 사회적 억압이 성생활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성에 얽힌 문
제를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또 한편으로는 절박하게 형상화하면서 그것을 헤쳐나
갈 길을 찾고 있다. 고단한 처지 속에서 힘들여 지켜온 민중의 삶의 방식이다.
  5. 인간의 길 찾기 - 결론을 대신하여 -
  이 논문에서는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을 서로 견주어 보는 방식으로 우리 전
통 육담의 성의식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아직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충
분히 많은 사례를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이 논문의 결론은 아
직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의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고자 한 의도가 때로 문제를 단순화시킨 면이 없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 논문의 논의 결과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성의식을 이해하는 데 있
어 하나의 유효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또한  오늘날의 성문제
를 돌아보는 데 있어서도 유효한 면이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오늘날 성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욱 크고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는 바, 그
중에는 근대 이후에 새롭게 발생하거나 확장된 문제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근래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대중매체를 통한 '성의
상품화'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현재 우리의 성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먼저 성을 금기시하고  억압하는 현상은, 과거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성문화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 성이 무언가 음험한  것으로 치부되
는 가운데  음지에서 왜곡된 성의식이 자라고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성문화의 현주소다.
  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건전한 성윤리의  확립 또한 아직 요원한 것으
로 보인다. 근래 이래로 '애정'의 인간적  가치가 강조되고 애정에 기초하여 남녀
의 성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가 보편적 공감을 얻게  되었지만, 그것
이 현실에 있어 명실상부하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애정과 무관한 동물
적 차원의 성관계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바, 물질적.육체적 쾌락을 중
시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롭게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
  성에 얽힌 사회적 불평등은 해소되었는가 하는 데 대해서도 또한 자신있게 말
하기 어렵다. 양반의  여종 겁탈 대신 직장  내 성추행이 빈발하고 있고, 권력과
돈을 가진 집단의  기생파티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많은 남성들이  아직도 여
성을  성적 종속물 내지는 성적 쾌락의 수단으로 보면서 성적 결합의 성취를 위
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과연 바람직한 성문화는 어떠한 것이고 어떻게 거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성에 관한 참다운 '인간의 길'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성찰하는 하나의 작은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이 논의의 의미를 둔다.
  성이야기의 유형과 민중들의 의식지향 김종대(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1. 서언
  민담을 통해볼  때 우리 조상들이 성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그
표현형태도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러
한 민담을 연구한 논문은 별로 없으며,  <고금소총> 등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
책이나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흥미를 높여줄 뿐이다.(주1:조영암이 번역한 <고금
소총>(신양사, 1962)의 내용은 서거정의  <태평한화>, 송세림의 <어면순>, 성여
학의 <속어면순>, 강희맹의  <촌담해이>, 홍만중의 <명엽지해>, 부묵자의  <파
수록>, 장한종의  <어수신화>, 작자 미상의  <성수패설>, <교수잡사>, <기문>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먼저 <고금소총>의 내용은 당대에 시정에서  유포되던 음담패설이라는 점, 그
주인공들이 대개 사대부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상층민들에게 애용되던 이야기라
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 유형은 주인공으로 볼 때 부부.과부.주인과 종.소
금장수 등과 같은 떠돌이.벼슬아치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부부가
개입된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사통이 내용이 거리낌
없이 표현되고 있어 일상적인 우스갯소리라고 하기가  어렵다. 즉 대개가 음담패
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주2:<고금소총>과 관련한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김
기형의 <17세기 문헌소화에 나타난 인물과 웃음의 성격 {[민속학연구], 국립민속
박물관, 1996, 8-9쪽}을 참조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에  대한 관심은 상층부나 하층부의 구분이 없이 높
았음을 알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의 모습은 일반적인 성신앙과  달리 신성의
개념보다는 즐기는 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인 관심의 표현이 이야
기라는 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은 작중세계의 현실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서 메
꿀 수 없는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대리만족적인 효과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도 한다.
  <고금소총>의 수록내용들은 일반 시정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관점은 식자층이  바라보는 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주3:이
것을 김기형은 문헌소화의 편찬동기를 살펴보면서 대개 권계적 속성을 취하고

있음을 제시한 바 있다. 즉 민중의 해학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
적한 것인데, 이를 민간인(민중)과 기록자(사대부)의 거리라고 설명하고  있다.[윗
글, 14쪽]) 그러나 이런 내용과 달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
에 수록된 설화들 속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심이 어떤 형태로 표
출되고 있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많다. 여기에서는 <고금소총>에 수록
된 유사형태를 제외하고 많이 채록된 줄거리를 대상으로 성에 대한 관심의 표현
방식이나 그 의식적인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주4:예컨대 <한국설화유형분류
집>[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449-452쪽]의  '443 남녀관계 잘못되기'가 그러한
유형이다.)
  2. 성이야기의 유형과 그 의미
  성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유형으로는 크게 부부관련담, 사돈교체담,
성교육담, 여성기를 주제로 한 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성교육담과 관련해서  사대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하층민들이다. 특히
하층민들에게 있어서 주거공간의 열약성 때문에 올바른 성생활을 영위하지 못하
고 있는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가 형성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들
이 사대부계층의 입장에서는 웃음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는 온전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비극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부부관련담
  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쉽게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상대자는 부부이다. 물
론 과거 유학자 층에서는 선비의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고 하지만, 그
들도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주5:이러한  속
사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밤퇴계  낮퇴계'계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술 한잔  주게>와 부부
의 잠자리가 그것이다.
  먼저 부부간의 성적 관심은 역시  성행위에 있기는 하지만 그 행위를 직접 하
는 내용보다는 성행위를 하기 위해 남자가 보내는 신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류
를 이루는데, <술 한잔  주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야기의 내용을 주요
전개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부부 간에 그  일을 하고 싶으면 남자가 "술  한잔 주게"라고 말하자고 정했
다. 2.하루는 장인이 왔는데도, 남자가 "술 한잔 주게"하였다. 3.부부가 골방을 들
어갔다 나왔는데, 마치 술을 먹은 것처럼 얼굴이  붉었다. 4.장인은 그 꼴을 보고
저희들끼리만 술을 먹은 것으로 오해하여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5.집에 와
서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사위집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였다. 6.장
모가 사위집에 가서 그  내막을 듣고 남편에게 우리도 "술 한자 주게"를  하자고
하였다.(주6:임재해  외, <한국구비문학대계>  7-1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700-702쪽 참조. 이하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인용은 <대계>로 줄여서 표시함.)
  이 이야기는 남자편의  성욕이 강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는 과거시대에는 밤에도  성행위를 하기가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러
한 사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상층계급이 아니라 하층민이라는 측면에서 주거공
간의 협소함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은밀한 행위는  밤에 이
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인 사고인데도 낮에 한다는 것은 밤의 거주공간이 그 행위
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
  여기에서 부부간의 낮거리를 모르고  술을 비유된 것은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
면서도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수용하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상대자
로 장인장모를 등장시킨  것은 이들이 시부모 쪽에  비해서 큰 거리감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노부부가 사위부부한테 들은 <술  한잔 주게>를 자기들
도 그 행위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행위는 성인이라면 남녀노소
의 구분이 없이 모두 흥미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북 예천에서 채록된  이야기 중에서는 원래 <술 한잔 주게>의 전반
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성을 모르는 아들에게 성행위를  가르쳐주는 내
용이 개입되어  있는데, 여기서부터 성행위를 한잔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
내용에는 여자들이 부르는 민요도  수용되어 있어 이야기의 재미를 높여주고 있
어 흥미롭다. 여기에서는  <술 한잔 주게>에서 탈락되어  있는 앞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1.혼인한 지가 오래된  부부가 있었는데 남자가 숙맥이라 아기가  없었다. 2.이
웃집 할머니가 여자에게 밑이  없는 홀바지를 입혀 부부를 비탈밭으로 보내라고
시어머니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3.남자는 아래서 일을 하닥 밭에 앉아 있는
부인을 보니 자기와 다르게 생긴  것을 알게 되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
다. 4.여자가  한잔 하는데 쓰는  것이라고 대답하니, 남자가  한잔해보자해서 그
일을 알게 되어 그후로  아무데서나 한잔을 하자고 하였다. 5.모든 식구가 그 사
실을 알고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다. 6.<술 한잔 주게>와 동일
  이러한 이야기의 확대는  구연자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 같다.(주7:이  이야기가
경북 예천에서만 채록되었다는 사실도 그런 추정에 보탬을 준다. {<대계>  7-17,
1988, 340-344쪽 참조}) 술 한잔하자는 이유를 해명하는 방편으로 앞부분에 대한
확장이 이루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술 한잔 주게'에서 남자가 성욕이 너무 강한
듯한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습관의 형성이 단순히  육체적인 성
적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손의 생산을 통한 가계의  계승이라는 도덕적
용납이 허용되는 성의 성취로써 그 행위를 긍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성행위를 모르는 남자에게 교육시키는 이야기가 보다
많은 전승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성교육담>에서 논의할
예정이지만, <술 한잔  주게>의 내용보다도 광범위한 전승을  이루고 있다는 점
에서 과거시대의 성에 대한 무지를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해소시켰다는 것을 보
여주는 것이다. 결국 위의  이야기는 장가간 아들의 <성교육담>과 <술 한잔 주
게>가 결합된 것임을 알게 한다.
  <술 한잔 주게>와 같은 성행위를 암시하는 신호는 '삐약삐약 꼬꼬' 등과 같이
여러 형태로 존재하여 왔던 것으로 보인다.  '삐약삐약 꼬꼬'의 주인공은 매우 가
난한 농부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즉 모든 식구들이  한 방에 잘 수밖에 없는 상
황에서 부부의 성생활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과  결부되어 부부간
의 성생활에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신호를 마련한 것이다. 그 내용
을 보면 다음과 같다.
  어뜬 놈이 이,  새끼(아이)들이 대여섯 되고 단방이고 영 복잡해.  글먼 아까도
늘 따먼 나면, 딸애기 나먼  딸애기 그리 안했소. 근대 행여나 아들이나 하나 날
까 허고 난 것이  자매가 너덧 낳는디, 행여 아들 하나 날까 허고  늘 방은 단방
이고. 그래 두 내외  인자 어떻게 해서 아들이나 한나 나먼  허고 잔디 새끼들이
요렇게 전부 드러누웠은께 어디 잘 때가 있어야제. 두 내우(내외) 그런께 자념에 
두 내우 약속을 했어.
  "자네는 삐약삐약 허고 쩌리 돌고 나는  꼭꼭꼭 허고 요리 돌세." 그래갖고 인
자 저녁에 인자 삐약삐약  허고 쩌리 돌고 꼭꼭꼭 허고 요리  돌다가, 그래도 즈
그 엄니는 인자  새끼들 항상 키와 봐싸서 조심을  허고 돈디 지 애비가 어떻게
그냥 참 ㅂ아부렀든 모양이여. 그런께 큰 새끼는 ㅂ아도 그냥 전디고(참고) 아뭇
도(아무 말도) 안해. 아, 그런디 쩌 끄터리  가서 작은 새끼를 어치께 ㅂ아부렀든
가 '앵' 허고 운단  말이여. 쩌 밑에 큰 놈이, "시끄럽다, 그만둬라, 나도  지금 잠
도 안 오고  죽겄다. 시방 열두 바꾸차 돈다.  가만 나둬라, 열 두 바꾸차 돈다."
그럴 때 부모가 얼마나 애가 터질 거이여.(주8:<대계> 6-12, 1988, 308-309쪽.)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붑와  자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희화해서 묘사하
고 있으나, 당시의 빈궁했던  삶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삶의 궁핍은 동시에 성생활까지도 궁핍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
여주고 있는 신호는 <술 한잔 주게>와는 완전하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즉 <술 한잔 주게>는 낮거리를 말하지만, '삐약삐약 꼬꼬'는 밤의  정
상적인 성생활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따라서 <술  한잔 주게>는 일상적인
성생활보다도 더 많은 성적 욕구를 충조교시킨다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에 웃
음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삐약삐약 꼬꼬'는  밤의 정상적인 성생활동 확보할 수
없는 성의 궁핍을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그러한  궁핍은 삶의 궁핍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대의 곤궁상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으로 풀이가 가능하
다.(주9:이와 유사한 이야기이지만 전남 신안군에서  밤에는 "삐약삐약 꼬꼬"라는
신호가 없이  그냥 방을 열두바퀴  돌다가 아이들한테 들키고,  낮에는 막내놈이
부모가 싸운다고 말리는  유형도 채록된 바 있다.[<대계> 6-6,  1985, 490-491쪽
참조] 그리고 신안군  장산면에서는 밤에 아홉바퀴를 돌다가 들키는 유형으로도
채록되었다.[<대계6-7,1985, 65-66쪽] 이러한  신호로의 만남 이외에도 목탁으로
부인을 불러내던  사람이 친구에  의해 들통난다는  이야기도 있다.[<대계>3-2,
1981,577-581쪽])
  성행위를 벌이기 위해 부부간의  신호를 정한 이야기와 함께 부부간의 성행위
를 자식들이 엿듣는  이야기도 많이 채록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원래 조선초기
의 학자인 송세림의 <어면순>에 <오자조부>로 수록되어 있던 내용으로, 부인의
몸을 비유하면서  성생활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다섯이나 되는
아들 때문에 부부가 온전한 성생활을 못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맨 앞부분에는 자식들이 다섯만으로도  충분한데 밤에 성생활을 하여 더 많은
동생들을 볼까봐 부모를 감시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견디다 못한 부부가 자
식들을 새벽에 말과 소를 산으로  끌고 가서 먹이라고 시킨 후에 둘이서 애성교
어로 나누는  내용이 줄거리이다. 현재 각  지역에서 채록된 자료는  6편 정도가
있는데, 이들은  대개 충남에서 전라도 지역으로  편중되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각 자료에서 나오는 여인과 남자의 몸에 대한 명칭을 어떻게 비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주10:자료에 대한  각 출전 및 조사지역은 다음과 같다.  1.오
자조부 : 송세림, <고금소총> (조영암 역), 신양사,  21-23쪽. 2. 낮거리하다 자식
에게 들킨 이야기 : <대계>  4-2 (충남 대덕군 신탄진읍), 1981, 73-75쪽. 3.탄로
난 낮거리 :  <대계> 5-7 (전북 정읍군 산외면), 1987,  629-631쪽. 4.아둘 셋 둔
부모의 잠자리 : <대계> 6-6  (전남 신안군 자은면), 1985, 503-504쪽. 5.거가 연
적산이요 : <대계> 6-12 (전남  보성군 벌교읍), 1988, 309-311쪽. 6.연제봉에 소
먹이고 돌아온 아들 : <대계> 6-12 (전남 보성군 득량면), 607-608쪽.)
  자료 : 모의 양미[1.팔자문], 안[1.망부천], 비[1.감신현], 구[1.토향굴],  이[1.사
인암], 유[1.쌍운령, 2.쌍계봉, 3.가슴 두근산, 4.응암산, 5.연적산,  6.연제뽕], 복[1.
유선관, 2.둥덜실, 3.배꼽 짚은산, 4.허허벌판, 5.댓동산, 6.미랑  뻔데기], 안[1.옥문
산], 모[1.감초전, 4.풀속, 5.잔솔밭], 옥문[1.온정수, 2.옹달샘, 3.보지  구명산, 4.옹
달샘, 5.옹달샘, 6.옹질시암], 부의  양경[1.주상시], 낭환[1.홍동씨 형제], 모의 엉
덩이[2.천안 뒷뜰, 5. 뒷동산], 모의 이마[3.배매산]
  이러한 명칭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구연자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특
히 <자료-3>을 제외하고는 지역적인 명칭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자료-3>은 구연자가  실제적인 몸의 명칭을 그대로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줄거리의 흥미보다는  농담거리로써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
다. 그러나 일관성을 보여주는  명칭으로는 옥문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거의 옹달샘이라는 자연물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옹달샘은 산속 깊은  속에 위
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마르지  않는다는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여자의 옥문을 중심으로 언덕과 숲이 위치하고 있다는 인식의 형태가 이
러한 구조적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작용한 것같다.
  원래 조선시대 유학자의 한문적  수식어로 포장되어 있던 이 이야기는 민간에
서 전승되면서 사실적인 자연명칭을  여성의 각 몸매에 부여하는 변이를 가져왔
다. 예컨대 여자의 음모를 감초련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형이상학적
이다. 오히려 <자료-5>와  같이 잔솔밭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하기  쉽고 어떠
한 형태적인 특징을 반영했는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자료-6>과 같이
배를 '미랑 뻔데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식을 여럿 낳아 키운 여인의 사실
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
다. 그러한 변화의  형태가 바로 투박해 보이지만 소박한 민중적인  삶과 사고방
식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이야기가  약 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민중들 사이에서 전
승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 생명력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여체와 남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루어져 왔던 끊임없는 생명
력의 원천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다. 옥문을 옹달샘이라고 표현한  그 자체는
단절없이 오랜  세월동안 생명을 연결시켜 주는  구심점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자료-1>의 경우 한문투로 수식된  용어들은 사실 하층민들이 이해하기는 어
려운 내용이다.  즉 식자층에서 멋을 부린다고  붙인 명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자료들은 대개가  쉽게 비교되는 자연물을 비유대상으로 선정하고 있
으며, 특히 <자료-3>은  사실적인 명칭을 그래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육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할 때 이 이야기의 형성유인은 성행위에 목적을 두
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여성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이야기의 앞뒤에 두어진 자식들의 행동은  이야기를 흥미
있게 유도하려는 전승자의  상상력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행
위가 끝난 뒤에 말하는 내용은 그러한 해학의  기능을 보다 강화한다. <자료-5>
의 경우처럼 '천  모냐(처음에) 연적산에 띠끼갖고, 댓동산에 띠껴갖고, 잔솔밭에
띠껴갖고, 옹달샘에 물 믹여서, 뒷동산천에 매놓고 왔소.' 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
답이 부모의 대화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좋은 에이다. 결국 이들 이야기
도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성생활의 어려움을 묘사하고 있는 것의 한 유형이라
고 볼 수 있겠다.
  2) 사돈교체담
  속담에 '만만찮기는 사돈집  안방'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사돈과의 관계는 사실
은 어려운  관계이며, 우스갯소리의 대상으로  다루어질 수 없을  것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과는  달리 사돈들이 성의 희롱적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야기들이 전국적으로 채록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것은 현실적인  인척관계가 이
야기 속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고  다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다.(주11:여기에서  인용하는 자료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내용이므로
그 출전 기록에서는 생략하며, 주어진 번호는 자료의 번호로 사용함. 1.<포천 소
까닭>, 1-4(경기 남양주군),  696-697쪽, 2.<사돈끼리 소 개비하러 갔다가>,  1-5
(경기 수원시), 131-133쪽, 3.<뒤바뀐 사돈>, 4-5(충남 부여군), 860-862쪽, 4.<소
바꾸려다 부인까지  바꾼 사돈>, 5-7(전북  정읍군), 737-739쪽, 5.<술  좋아하는
두  사돈의 실수>,  6-12(전남 보성군),  258-260쪽, 6.<소를  타고 바뀐  사돈>,
7-9(경북 안동군),  685-686쪽, 7.<사돈끼리 바꾸어  탄 말>, 7-9,  827-828쪽, 8.
<소를 바꾸어 탄 사돈>, 7-9(경북  안동시), 126-127쪽, 9.<소를 바꾼 탓에 실수
한  두 사돈>,  7-18(경북 예천군),  301-302쪽,  10.<사돈끼리 실수한  이야기>,
8-1(경남 거제군),  506-507쪽, 11.<사돈의 실수(1)>, 8-3(경남  진양군), 465-466
쪽, 12.<소 바꾸어 탄  사돈>, 8-8(경남 밀양군), 175-176쪽, 13.<사돈 소 바꾸어
타기>, 8-10(경남 의령군),  478-479쪽, 14.<소 팔러간 사돈들>,  8-14(경남 하동
군), 156-157쪽) 이들 내용을 주요 전개단락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돈끼리 소를 바꾸려고 장에 나왔다가 만나 술을 먹었다. - 숫사돈을 숫소
(암소)를, 암사돈은 암소(숫소)를 끌고 나왔다. - 모두 암소를 끌고 나왔다.
  2. 술에 취해  서로 소를 바꿔 타고 집으로 갔다.  - 서로 소를 바꿀려고 했기
때문에 숫사돈은 암소, 암사돈은 숫소를 끌고 갔다. - 암소를 바꾸어 타고 갔다.
  3. 한밤중에 집에 도착해서 자식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방에 모셨다. - 자다
가 그 일까지 했다. - 그냥 곱게 잤다.
  4. 깨어 보니 낯선 곳이라  도망을 쳤다. - 도망을 치다가 중간에서 사돈을 만
나 서로 비밀로  하자고 하였다. - 일찍  나와 보니 시집온 딸에게 들켜  망신을
당했다.
  여기에서 구별되는 요소는 소의 암수 여부, 바뀐 사돈끼리 동침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바뀐 것을 깨닫고  나갈 때 딸에게 들키는 지의 여부  등이다. 먼저 소의
성별이 구분되는 경우와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는 암사돈이 암소를
숫사돈이 숫소를 끌고와서  다른 성을 가진 소와 바꾸고자 한다.  여기에서 숫사
돈을 숫소로, 암사돈을 암소로 내세우는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기억하기 용이
하게 만드는 요소의 하나이다.(주12:그러나 수원시에서 채록된 내용의 경우는  두
사돈이 모두 암소를 끌고 왔다.)
  어려운 사돈관계에서 인륜적인 행동이  ㄲ어지는 것은 술의 힘과 소의 역할에
기인한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각기 사돈의 부인을  탐할 정도로 파렴치한 사람
들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사돈의 부인을 사모했던 것
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표현되는 내용들이 대개 동침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침은 단순히 같이 누워 잤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성관계를 맺었
다는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자료-4>의 경우를  보면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지
는 않았지만 제보자 자신이  사돈의 부인을 바꾸어 성관계를 맺었다는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있다.
  서로 가지. 소라는 것은 한번 팔먼 꼭 그 집이로 가. 아 그런 것이 다 지금 소
를 ㄲ고는 다  지금 가네. 아 이놈이  딸 사둔이 황소 송아치를 서로  가는디 아
가닌게, 아 말허자먼 딸네 집이로  갔제. 아 술이 취해가지고 그냥 자 버릿단 말
여. 아이 딸이 보인게 친정아부지가 어찌 술이  취해가지고 온지 어쩐 일인가 모
르거든. 아 근디 시아부지는 안와.  아 근게 시아부지는 말허자먼 인자 딸 그 그
냥 친저으로 갔제.  응, 소 따라서. 아 그런  것이 사둔이 바꽈서 자부ㄹ네. 아이
그ㄹ어. 참말로 그ㄹ단게. 아 그리서 날이 샜단 말여. 딸이, "아니 아부지." "응?"
"아이 뭔 술을  그르게 잡수ㄱ소. 술 쪼끄만치  잡수...." 아이 눈 떠본게 딸이네.
"참 나는 엊즈녁 그냥  잤다마는 너그머니 안ㄷ다." 아 바꽈 자닌게. 아 바꿔  자
닌게. 그양 자겄어. 사둔네 집이 가서, 근게  딸, 딸네 집이는 그양 잤제. 근디 요
쪽 사둔이 사둔허고 자는디 그양 자겄어?  그인게 아 이놈의 영갬이 알고, "너그
메 신세가 안ㄷ다. 엊저녁으 너그메는 그양 자들 안ㅎ을 거이다."
  <자료-4>의 끝부분에 표현된 내용으로  볼 때 딸의 아버지는 그냥 곱게 잤는
데, 아들의  아버지는 딸의 어머니와  필시 성관계를 맺었다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는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남은 그럴 것이다 라고 하는 선입관이 작
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아들의 아버지는 며느리의 외양을
보고 딸의 어머니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것이며, 그래서 일부러  딸의 어머니와
동침을 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주13:이러한  사례로 경북 예천에서 채록된
<안사돈을 탐낸  바깥사돈>{<대계> 7-17,344-345쪽}이  좋은 예이다. 이야기의
대강은 딸의 어머니가  찾아왔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사돈하고  하룻밤 잔다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딸이 어머니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아들의 아버지가
안사돈을 탐하는 내용을  명쾌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홀아비가  된 딸
의 아버지가 과부가 된 안사돈을 보고 상사병이 나서 딸이 꾀로 이를 치료해 준
다는 이야기도  채록된 바 있다.{<대계>  8-4(경남 진양군), 133-136쪽}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맺음은 안사돈이  딸의 아버지에게 다시 찾아오도록 말하고 있어
'과부 마음은  홀애비가 안다'는 속담을  설명하는 자료로 유용하다.) '근디  요쪽
사둔이 사둔허고 자는디  그양 자겄어?'라는 말하는 내용 속에는  아들의 아버지
가 성적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이들 유형의 특징은 아버지가 사돈 집에 와서 딸에게 걸렸을 때는 한쪽편이나
양쪽편이나 간에 대개가 성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중간에 사돈끼리 만났을 때
는 서로 곱게 잤다고 표현하며,  그것을 비밀로 한다. 즉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
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부도덕한 행위로써 세인들에게 지탄을  받을 것이
며, 동시에 양 집안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주14:이러한 점에서 '아들  못
난 건 제 집만 망하고 딸 못난 건 양사돈이 망한다.'는 속담이 참고될 필요가 있
다. 이것은 못난 것을  앞세우지만, 오히려 딸이 잘났기 때문에 아들의 아버지가
안사돈을 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돈교체담의 형태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기도 지방에서
채록된 이야기들은 포천의 사돈들에  의해 이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식으로 말하
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것은 사돈교체담의  형태가 포천지역에서 발생한 실
제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주15:그
러나 조희웅은 남양주에서  조사하면서 '이 자료의 분포 상태로  보아 꼭 포천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전래되던  이야기에 포천이란 구체적인 지명을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언급한 바 있다.{<대계)> 1-4, 696쪽}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수원지방에서 채록되었는데, 여기서는  가평군과
포천군 사람이 사돈을 맺었다고  하였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대계> 1-5,
131쪽) 결국 이 이야기는  원래 경기도 지방을 중시으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
는 가능성이 높으며, 어려운 관계인 사돈을  성적으로 연결시켜 버리는 줄거리의
특징에 의해 전파가  손쉽게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결국  이 이야기의 전승은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유포되다가 흥미를 강조하는 이야기의 개입이 이루어져 전
국적인 전파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3) 성교육담
  이 이야기의 유형은  대개 어리석은 아들이 장가를 갔으나, 성관계를  알지 못
해 자식을  못낳기 때문에 발생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어리석은
아들이란 나이가 어려서  아직 성을 깨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나이가 차기는
행ㅆ으나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기 사례로 대별된다.
  이러한 이야기가 형성된 것은 무엇보다도 가계계승적 차원에서 자식의 생산이
라는 당대의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결혼을 했지만  성적인 결핍에
빠져있는 여인에게 있어서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수용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바로 이들  유형군이다. 먼저
이들 이야기의 유형을 전개단락별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한 장승집 자제인데  여자를 멀리하여 장가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2.부모들
은 남자의 명을 고치고  혼인도 시키려고 방을 내어 여자를 구했다. 3.주막집 딸
이 남장으로 변신하여 지원해서 자제의 시중을 들었다. 4.여자가 글을 가르쳐 달
라고 해서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5.하루는 여자가 내일 심부름을 갈지 모르
는 내일할 내용까지 가르쳐 달라고  해서 밤늦도록 있다가 남자가 먼저 잠을 자
길래 몰래 성기를 만졌다. 6.놀라서 깨어난 남자가 사타구니에 혹달린 병을 숨겨
왔으나 네가 알게 되었으니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7.여자가 혹을 녹일 수
있는 독을 갖고 있으니  고쳐 주겠다고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 8.남자의 성기
가 커지면  여자의 성기에 담그고, 또  커지면 담그고 하다가 자식까지  낳고 잘
살았다.(주16:<대계> 6-10(전남 화순),  1987, 493-501쪽. 이와 유사한 사례가 경
북 안동에서도  채록된 바 있는데,  {<대계> 7-9, 1982, 832-835쪽}  여기에서는
상대가 같은 계층인 정승집 자제들이다. 특히  안동이라는 채록지적인 특징 때문
인지 몰라도 주인공의 성이 권과 김으로 나타나 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은 여자이다. 남자의 경우  자신의 성기를 불필요한 신
체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으로 나아갈 수
있기 전에는 남자에게 중요한  일이 바로 학문적인 성취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
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자는 여자를 싫어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여자
의 경우는  인간적인 경험에서 앞서는  존재로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성에 대한
지식의 형태가  풍부하다는 점이나, 그를  통해 양반의 자제와  통혼을 이루면서
신분적인 상승까지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성의 지식습득이 필요하다는 점을 암
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여자의 성기형태를  병으로 생각해서 남녀간의 성기를 결합하는 이
야기들도 있다.(주17: <대계> 8-5(경남 거창),  1981, 343-345쪽 참조) 여하튼 이
러한 이야기들은 무엇보다도 남자들이  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에 토대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 성적인 지식이 결여되
어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밀폐된 성적 대화에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에는 조
혼제도에 대한 부분적인 비판의식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행위를 묘사하는  방식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상징적이거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
다. 현재 부분적으로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전남 해남에서 조사된 <어린애 신랑>에서는 부부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우연히 서로의 성기를 보게 되었는데, 남자의  성기가 이상하게 튀어나왔다고 해
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개한테 물렸다고 답하였다. 그래서 부인이  그것을 약으
로 고쳐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성기에 넣었다.  그 이후로 남자가 성욕을 느낄
때마다 "개물린데 약하자 개물린데  약하자"고 말하였는데, 이를 본 식구들은 매
우 좋아했다고 한다.(주18:<대계> 6-5(전남 해남), 1985, 186-188쪽)
  신안에서 조사된 <철없는 신랑>은  잠잘 때와 고쟁이를 입고 있는 부인의 성
기를 본 신랑이  자기의 성기와 다르다고 놀래서 달아났는데, 입과  같이 물어버
리는 신체의 일부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인은  성기를 건으로 가려놓고 남편에게
물지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여, "엎어났다가  한 번씩 허고 물이 쪽 빠
진 뒤에는"  안물을 것이라고 하여 성을  알게 만들어 놓는다.(주19:<대계>  6-6
(전남 신안), 1985, 212-213쪽)
  부부관계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성을 모르는 남자에게 성관계를 가르쳐준
기생의 이야기도 있다.  서울의 김정승집 아들이 공부하느라  남녀관계를 모르기
때무에 이를 알도록 하기 위해 평양의 기생들을  동원한다. 그 중에서 한 기생과
좋아지게 되어 정이 들었는데, 하루는 찾아오지 않자 궁금해한다. 다음날 기생이
찾아왔을 때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기생은  사타구니에 마묵이라는 것이 생겨
고생을 하는데, 이것은  서방님의 마묵으로 고쳐야 한다고 해서 성을  깨닫게 만
들어 보냈다고 하는 내용이다.(주20:<대계> 8-5(경남 거창), 1981, 343-345쪽)
  경북 상주에서 조사된 내용은  남자의 성기를 꽃을 모종하는데 사용하는 도구
로 표현한  예도 있다. 성을 모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남자와 함께  목욕을 같이
하다가 남자의  성기를 보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여자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꽃을 모종하는  도구라고 답하였다. 그 답을 듣고 여자가  자기도 하나
달라고 해서 주었다는 이야기이다.(주21:<대계> 7-8(경북 상주), 1983, 81-85쪽)
  경북 예천에서는  <물먹다가 살꽁지 터져>라는 이야기가  채록되었는데, 여기
에서도 여자가 성에  대한 무지한 상황으로 나타난다. 처녀와 총각이  산에서 우
연히 만나게 되어 옹달샘으로 물을 먹으러 갔다. 총각은 옷을 홀딱 벗었는데, 처
녀가 그 이유를 묻자 물먹다가 옷을  적실까봐 걱정되어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사타구니에 달린 성기를 살꽁지(살꼬리)라고  하여 물에 빠지지 않도록
꼭 잡으라고 하였다. 처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살꽁지를 잡았는데 점
점 커지니까 총각이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고 그만 물먹어라 살꽁지 터진
다고 외쳤다.(주22:<대계> 7-17(경북 예천), 1988, 603-604쪽)
  상주에서 조사된 예는 성기를  꽃모종삽으로 비유하여 그 생산적인 의미를 갖
고 있는  상징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함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남녀의 성기를 병이나 혹과 같이 신체적인 결함으로 제
시하여 이를 치유하려는  과정을 통해 성을 깨치는 기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
의 제시는 결국 한쪽에서 성의  무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남녀의 양쪽이 무지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성교육의 형태는 직접적인 가르침의 행위보다는 이야기적인 과정을 통
해 골계적인 요소가 부분적으로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속된 표현이 될
수도 있는 성적 내용을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은 동시에  성에 대한 자
연스러운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남녀의 첫경험을 쉽게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교과
서적인 의미에 해당된다.(주23:정월에  노는 승경도놀이 형태도 그러한  가르침의
일종을 잘 보여주는  민속놀이이다. 승경도에는 중앙과 지방의  관직명이 명시되
어 있으며, 그것을 통해 사대부집안의 자제들이  앞으로 성장해서 벼슬길로 나아
가는데 미리 숙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들 성관련담이
과거시대에는 단지 상스럽고  속된 내용을 흥미위주로 전개하기는  했지만, 자연
스럽게 부자간에  혹은 모녀나 모자간에 성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일정한 작용을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4) 여성기를 대상으로 한 민담
  여성기를 주제로 삼고 있는 이야기의 구조적 특징은 여성기를 입의 한 상징으
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적으로 인식은 여자의 성기를
단순한 성기 차원에서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라면 마땅히
갖고 있어야만 하는 입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변강쇠가>의 기물타령에서 불려
지고 있는 내용 중에서도 '이상히도 생기었다.  맹랑히도 생기었다. 늙은 중의 입
일란지, 털은 돋고 이난 없다.'(주24:강한영 <신재효 판소리사설 여섯마당집>, 형
설출판사, 1982, 426쪽.  이외에도 여성기를 속되게 표현하는 '씹'이 '씨(종자)+입'
의 합성어라고 하는 견해도 이러한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김욱동, <탈
춤의 미학>, 현암사,  1994, 339쪽 재인용})라는 표현처럼 여성기가  사람의 입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글은 많다. 특히 늙은 남자의  입이라는 견해는
매우 희화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자의  몸에 자리잡고 있는 성기를 남자의
입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여성기와 남자의 입과의 관련
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기담의 내용은  여성의 성기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개 입으로
상징되고 있다. 즉 여자에게는 입이 두 개 있는데, 실질적인 의미의 윗입과 성기
를 뜻하는  아래입이 그것이다. 따라서  여성기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의 관점은
아래입을 통한  웃음거리를 자아내는데 있다.  이들 유형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세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행동으로서 여성기
가 동원되는 경우와 여자의 아래입술과 남자의 윗입술이 바뀐 이야기이다.
  세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경우에는 원래  셋째 며느리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 목
적이었으나, 셋째 며느리가  기지를 발휘해서 그것을 멋들어지게  벗어나는 것이
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단락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주25:이들 이야기의 채
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자료-1 ;  시아버지와 며느리,  <대계>(전남 신안군),
469-470쪽, 2.자료-2 ; 동서들보다 한 수 더 뜨는 막내 며느리, <대계> 7-9(경북
안동시), 127-130쪽,  3.자료-3 ; 세  며느리의 축수, <대계> 7-16(경북  선산군),
285-287쪽, 4.자료-4 ; 며느리 문자 세배하기,  <대계> 8-11(경남 의령군), 87-89
쪽)
  1. 마음씨가 고약한  셋째 며느리를 골려주기 위해 시아버지와  며느리들이 짜
고 문안인사의 방법을 정했다.
  2. 첫째 며느리는 큰 갓을 쓰고 와서 편안할 안로 글짜문안을 올렸다.
  3. 둘째 며느리는 아들을 안고 와서 좋을 호로 글짜문안을 올렸다.
  4. 셋째 며느리는 생각하다가 옷을 홀딱 벗고 글짜문안을 올렸다.
  - 자료-1 ; 클 태, 자료-2 ; 법 여, 자료-3 ; 좇, 자료-4 ; 법 여
  5. 셋째 며느리가 제일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이들 유형이 모두 이러한 전개방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며, 자료-2의 경우에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풍족하게  만들고 있다. 또다른 인사방식
을 동원하여 자신을 놀리고자  했던 시아버지와 윗동서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
들고 있는 것이다. 즉 첫째 며느리는 천세 동안을, 둘째 며느리는 만세라는 세월
이 흐르도록 오랫동안 장수하실 것을 기원하고  있는데, 셋째 며느리는 '좆'이 되
어 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원래 셋째며느리가 못되게 굴기 때문에  두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짜고서 한 행동인데, 그러한 모함을  벗어나고 오히려 시아버지를 놀
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의  두 며느리는 입바른  소리에 불과하나, 셋째  며느리는 남성기가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기원하는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똑똑한 며
느리임을 보여준다. 부연하여 '막내  며느리한테 손자난 것이 제일 큰 놈이 나드
라네, 제일 큰 늠이 나드래.'(주26:<대계> 7-9(경북 안동시), 130쪽. 이 설화의 제
보자는 이응학(남, 71세)이다.)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방식임
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설화의 제보자가  남자라는 사실은 시아버지의 입장에서 이 설
화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버릇없는 며느
리의 행동을 바로  잡으려고 한 시아버지가 오히려 말로 당하기는  하지만, 당돌
하나 똑똑한 며느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은 성기를  바탕으로 골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똑똑한
며느리가 자식도 잘 난다고 하는 점을 역설적으로 내세우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기 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를 하는 관계가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점이다.
과연 이들 관계에서 이러한 형태의 대화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
문이 아닐 수 없다. 여성기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일면 효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기는 하다. 즉 시아버지가  성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하더
라도 그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나이이다. 따라서 그러한 성욕에  대한 관
심을 높이기 위한 셋째 며느리의 행동은 시아버지의 성적 능력을 강화한다는 측
면에서 가장 훌륭한 효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아버지의 입
장에서 그러한 욕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그 표현을 우회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둘째로는 여성의 아랫입술과  남성의 입술이 바뀐 아야기군이다.  이들 이야기
는 순수하게 재미를  주기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교설적인 의미를 찾기 어렵
다. 그 이야기의 전개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주27:이들 자료의 채록내용과 채
록지는 다음과 같다. 1.부인의 윗입술과 아래 입술, <대계>2-8(강원 영월), 1986,
744쪽, 2.떨어진 살점을  바꿔 붙인 이야기, <대계>  3-2(충북 청주), 248-250쪽,
3.게발에 물린 여자와 중, <대계> 6-2(전남 함평),  1981, 151-153쪽, 4.게에게 물
린 시아버지와 며느리, <대계> 6-4(전남 승주), 1985, 286-288쪽, 5.게에 물린 며
느리, <대계> 6-6(전남 신안),  1985, 242-244쪽, 6.게구멍에 오줌 눈 과부, 윗책,
504-506쪽, 7.살 바뀐 이야기, <대계> 8-14(경남 하동), 1986, 154-156쪽)
  1. 며느리가 새참을 가져가는 중에 오줌이  마려 논사이의 고랑에서 누다가 농
게한테 아래입술을 물렸다.
  2. 배고파하던 시아버지가 찾아보니 며느리가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하길래 이
유를 물었는데도 대답을 못하고 아래를 가리켰다.
  3. 시아버지가 아래를 보니 게가 똑같이 생긴 입술이라고 생각하고 또 물었다.
  4. 남편이 아버지와  부인을 찾아다니다가 그런 상황을 보고  둘을 떼어놓았는
데, 게가 살점을 짤라버리고는 도망갔다.
  5.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살점을  바꿔 붙였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음담패
설을 하면 입술이 씰룩씰룩하고, 며느리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아래입술을
씰룩거린다고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개  이러하지만, 등장인물이 차이에 의해서  내용의 변화
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의 설정은 여자의  경우 몸가짐과 관련이 있는 것
으로 생각되지만,  그 보다는 여성의 오줌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에 더  큰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과 같은 사례의 제시는 그런  의미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가에서 안칙간의 뇨는 사랑칙간의 뇨에 비하여 최소한 세곱절의 비료로서의
가치를 둔다. 특히  감자 같은 새끼를 치는  농작물에 이 안사랑 오줌(내측요)의
거름은 필수다. 안 오줌  한 장군과 사랑 오줌 세 장군과  맞바꾸는 것은 농촌의
관례였다. 이같은 거름으로서의 실리성 때문에 사랑칙간.안칙간 습속이 유지되었
고 거기에 남녀 외면 법도가 가미되었을 것이다.
  물론 남자의 오줌보다 여자의 오줌이 비료 성분으로서 더 좋다는 과학적 근거
는 없다. 그것은  여뇨가 남뇨에 비해 번식성의 주술적인 상정을  하기 쉽다는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는 아기를 낳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학에서
말하는 유감주술의  한 본보기다.(주28:이규태,  <한국인의 성과  미신>, 기린원,
1985, 69-70쪽)
  이러한 설명과 같이 여자의 오줌은 논과 같은 장소에 함부로 버릴만한 비료가
아니였으며, 농가에서 생산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비료로서의  기능을 활발하게
수행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여자의 아래입술과  남자의 입술
이 바뀌는 이야기형태는 오줌의  주술성과 여자의 성기적 특징을 바탕으로 흥미
있게 구조를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입술이 바뀌는 관계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일 경우는 위의 내용과 같은 부
연설명을 하기 때문에 청자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다른 관계일 경우에는
또다른 부연설명을  하여 청자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와
그 결과를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주29:여기서의 자료번호는 주27의 번호와
같다.)
  자료1-상황:빨래 중에 가재에게 물림, 관계자.떼는 사람:자신의  위와 아래입술,
바뀐결과:음식얘기를 하면 밑에 입술이 실룩, 자지얘기를 하면 우에 입술이 실룩
  자료2-상황:며느리가 점심을 가져가다  오줌누고 게한테 물림, 관계자.떼는  사
람:며느리와 시아버지, 남편, 바뀐결과:여자는 입술이 마렵던지 거기서 자꾸 얘기
를 하구, 남자는 무신 생각이 있으면 거기가 자꾸 근질하구
  자료3-상황:부인이 점심을 가져가다 오줌누고  게한테 물림, 관계자.떼는 사람:
부인과 중, 남편, 바뀐결과:날이  ㄱ으면 여자 아래쪽에서 염불소리나고, 중의 입
에서는 고랑내가 퍼얼펄 났쌌고.
  자료4-상황:밭을 매는 중 오줌을 누고 그 놈한테 똥개를  물림, 관계자.떼는 사
람:며느리와 시아버지, 남편, 바뀐결과:며느리는 깊은  살이라 모르고, 시아버지는
수염이 꼬골꼬골 허니 낭께
  자료5-상황: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친정에 가다  오줌을 누는 중에 게에게 물림,
관계자.떼는 사람:며느리와  시아버지, 일꾼, 바뀐결과:병원에서 수술후  사돈댁에
갔는데 씨암씨는 가만  앉아서 '흠'이랬싸고, 며느리는 속옷  밑에서 두렁두렁 소
리가 나서 나중에 다시 교환 수술을 함.
  자료6-상황:과부가 뻘을 가는  중에 오줌을 누고 게에게 물림, 관계자.떼는  사
람:과부와 중, 나팔장수,  바뀐결과:과부가 고맙단 말이 없이  '뭔놈의 중대가리가
그리 까실까실한고', 중은  '허허 아무리 시궁창을 맡아봐도  이렇게 고랑내게 심
헌 고랑창은 처음  맡아 보내여', 나팔장수는 '나팔장수  십년만에 씹나팔 불기는
내생전 처음이네.'
  자료7-상황:부인이 논으로 밥을 갖고가다 오줌누고 게에 물림,  관계자.떼는 사
람:부인과 중, 바뀐결과:중이 염불할 때마다 '시방보살! 시방보살!' 그런다고 함.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가 남다르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며느리의 성기부위를 시아버지가  위의 사건과 같이 볼 수
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것은 사돈교체담의  유형과 같이 어떤 의미부여
를 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가 밀착되어  있다고 하
더라도 위와 같은 행동은  효를 강조하던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용납하기가 어렵
기 때문이다.
  사돈교체담에서처럼 사돈끼리는 매우 어려운  사이이며, 그런 관점에서 부인을
바꾸어서 잠잤다고  하는 이야기는 흥미가  주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여성기담이 발생한  것은 며느리가 시어미보다는 시아버지와 밀착된
관계에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 풀이될 수도  있으나, 아래입술을 윗입술과 동일시
했던 우리 조상들의 해학적인 의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입
술이 바뀐 결과에 대한 내용으로도 잘 알게 한다.
  먼저 시아버지와  바뀌었을 때의 경우는 노인네의  입술이라는 점에서 날씨와
관계를 맺고  있으나, 여자의  아래입술은 자지얘기가 나오게되면  실룩거린다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여기에는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는 표현도  나온다는 점
에서 최근세까지도 이런 이야기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이  그 대상자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을 대
상으로 삼은 해학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들도  육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자료-3의
경우처럼 바뀐 여자의 아래입술에서  염불소리가 난다고 하는 것은 파계의 상징
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여염집 여인들과의  이상한 소문들이
또다른 이야기거리를  형성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탈춤에서  파계승과장이
꼭 개입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기를 이야기거리로 삼고 있는 유형들은 여성기의 외형적 특징과 결부되어
있다. 이것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거리감이  없고 친한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말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감정과는 약간의 괴리성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이들 이
야기는 성기를 대상으로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같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가 성적인 희롱대상으로  정착하기에는
조선사회가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이야기가 교술적인 속성을 갖
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3. 이야기에 나타난 의식지향
  성을 이야기거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때  그것은 웃음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물론 부분적으로 성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성인들의 농
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사실은 소화를 다루는데 있어서
외설담이라고 하여 논의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경우와 같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예가 드문 형편이다.(주30:신월균, <한국 소화의 연구>,  인하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1, 12-13쪽. 여기에서 소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유형과 모티
브별 내용을 참고로 살펴보면 음담패설적인 외설담을 제외하고 다음과 8가지 유
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1.치우담 : 바보이야기, 병신,  욕심, 2.과장담 : 게으름, 건
망증, 인색, 방귀, 거짓말, 오래참기, 힘(재주)겨루기,  끈기, 대식가, 3.지략담 : 버
릇고치기, 상전놀리기, 사기, 아지, 명판결, 시험, 무식감추기, 진위구별, 4.일화, 5.
우행담 : 오해, 치병, 실물찾기,  6.포획담 : 동물잡기, 7.모방담 : 욕심, 8.풍월담 :
파계승, 문자쓰기, 어희, 결말 9.소담)
  최근에는 민담이 아닌 고금소총등의 문헌소화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기명
준이나 이석래 등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주31:이석래, <문헌소재 한문소화  연
구>, <성심어문논집>, 성심여자대학  국어국문학과, 1983, 25-40쪽. 김영준,  <조
선조 문헌소화와  사회의식>, <원우론집>  15집 1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7,
3-29쪽) 이석래는 민간에 유포된 소화를 사대부계층이 수집 편찬한 의도를 단순
유희가 아니라, 권선징악을 통한 세교를 목적으로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반대로
김영준은 소화 속에 반영된 민중의식을 통해  지배층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가해.욕설과 조소.반항과 거부.농락과 폭로로  살펴본
바 있다. 그러한  내면적인 의미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통해서  직접적인 전달하고 있는 것은 성적인 욕
구형태를 간접적으로 충족시켜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부관련담은 우리의 전통적 민가구조가 갖고 있는 특징에 의해 정
상적인 성행위를 하고 싶어도 어렵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런 곤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가  광범한 유포를 할 수 있었
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런 사실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하층민들에게 있어서 아이들과  같은 방에서 살던 시기에
부부간의 성행위는 밤에는  거의 불가능하고 낮에나 겨우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주32:흥부전에는 흥부의 자식이 스물다섯이라는 표현은 그런  와중에서도
부부간의 행위가 가능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과장된 숫자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 없다. 이를 두고 놀부는  "박살할 놈, 그 노릇 아여 하여도, 밤
이며 대고 파니, 다른  일 할 틈 있어야제. 계집년 생긴 것이,  눈이 벌써 음녀거
든."라고 빈정되고 있다.{<신재효판소리사설  여섯마당집>, 219쪽.}, 여기에서 밤
마다 그 일을 한다는 점과  그 일 때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는 대목은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밤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일상적인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일을 못한다는 사실은 낮거리에 의한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
다. 따라서 흥부의 아내만이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맞추는 흥부 역
시 일할 시간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흥부의 아내를  빗대어 흥부를 욕
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한 부부간의 성행위는 은밀함이나 비밀스러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다. 부부간에 신호를 정하는  이유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들의 사정
을 아이들은 용납하지 못하고 부부간의 행위를  방해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
것은 낮거리의 행위가 보편적인  통념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아이들의 생활과
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것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아이들 때문에 낮거리를  하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일상
적인 이야기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부간의 성행위나  아이들에게 걸리는 이야기형태는 일상적인 삶에서
얻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구를
막고 있는 또다른  일상물에 대한 불평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들
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장치는 실질적인 행위이기보다는 말을 통한 욕구의
심리적인 해소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성과 관련한 이야기형태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흥미만을 수용하고 있
는 것은 아니다. 과거시대에는 성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방식이 없
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럼없이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조혼
시대에 있어서 남자에게 성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그 행위를 동작
하기 보다는 이야기라는 전달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었음을 인식
한 때문이다.
  이야기를 통한 성교육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유형으로는 <어린애 신랑>이나
<철없는 신랑>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개  신랑이 어리다는 특징
에 의해 여자쪽은 성의 결핍을 야기하고 있다.  나이가 찬 여자쪽에서 본다면 슬
픈 일이기는  하나 어린 신랑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며, 따라서  어른들에 의해
이야기되거나 그 지식을 습득하도록 만들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민담이
수행하여 왔다는 사실적인 의미를  확인함과 동시에 과거의 성문화를 엿보는 중
요한 자료로 이들 이야기가 새로이 활용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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