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책마을]〈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본문
책마을]〈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신라인의 기절초풍할 섹스 풍속도-
신라, 알고보니 엽색(獵色)왕국? 박창화가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서 필사하고,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55, 한국고대사)가 번역한 <화 랑세기>는 신라의 성풍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신라의 문장가 김대문이 7세기 말 편찬한 화랑에 관한 전기 로 원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신라인들의 에로세계를 파격 적으로 보여준다. 왕에게 섹스 서비스, 즉 생공(生供)을 하는 여인집 단이 있었다는 것도 하나의 예다.
사다함의 애인이었던 미실이란 여 인은 진흥, 진지, 진평 3대 황제를 섹스로 섬긴다. 이 여자들은 진골 정통(眞骨正統)이거나 대원신통(大元神通) 출신이었다.
하지만 주류 고대사적 시각을 대표하는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교 수는 이를 정사(正史)로 수용할 수 없다고 진작 의문을 던졌다. 진위 논쟁의 계기를 마련한, 1989년 발견된 <화랑세기> 발췌본과 95년 나 온 필사본을 두고 노 교수는 위작이라 주장했고 역자인 서강대 이종 욱 교수는 진본이라 맞섰다. 문제의 필사본은 1989년 부산에서 발견 된 32쪽짜리 발췌 필사본과 1995년 공개된 162쪽짜리 필사본 두 가 지가 있다.
물론 <화랑세기>에는 이런 성 풍속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540∼681 년 화랑의 우두머리였던 풍월주 32명에 대한 전기를 담고 있다. 성 풍속도는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계보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자 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일 뿐이다. 하지만 사학계의 대다수 학자는 그 토록 성적으로 타락한 나라가 어떻게 천 년을 지탱할 수 있는가 하 는 물음을 던지면서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주장, 사료로 인정하 지 않고 있다. 반대로 이 교수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 즉 그런 윤리적인 이유로만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본다면, 당연히 패륜을 일삼는 <고려사>의 기록도 위작으로 보아야 한다고 반박해왔다.
<화랑세기> 때문에 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이종욱 교수가 < 화랑세기> 필사본을 바탕으로 신라인의 섹스풍속을 재구성한 <화랑 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김영사)를 내놓았다. 화랑들과 그 주변의 기절초풍할만한 섹스행각이 주내용이다. 이 교수의 역사관은 20세기 초부터 화장실, 목욕, 섹스 등의 일상사로 역사지평을 넓힌 프랑스 아날학파의 역사관과 비슷하다.
우선 ‘마복자(摩腹子)’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인간들이 있다. 마(摩) 는 문지르다는 뜻으로, 마복자는 배를 맞춘 아들 정도로 해석된다. 신하나 부하가 임신한 자기 아내를 왕이나 상관에게 바쳐 난 아들이 다. 1세 풍월주였던 위화랑 조에서부터 이런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신라 법흥왕의 신하 비량공은 왕비를 사모했다. 왕은 왕비와 신하의 만남을 막지 않았다. 신하와 왕비 두 남녀는 왕비의 뒷간에서 정사를 즐겼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으니 그가 신라의 대 표적 화랑인 사다함이었다.
신라 사람 미생은 색을 탐해 돌아다니다 당두의 집에 찾아가 그의 처와 관계하곤 당두의 처를 첩으로 삼고자 집으로 불렀다.
그러자 미생의 누나 미실이 이를 알고 미생을 나무랐 고 미생은 여인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여자가 미생을 잊지 못해 스스로 미생을 찾아왔다. 여인은 미생의 아들 셋을 낳았고 이들을 당 두의 아들로 삼으니,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아름답다 하였다.
그런데 요즘 식 가치관으로 본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름답다는 말인 가. 이에 대해 저자는 “삼국시대에 ‘성’(性)은 다산(多産)을 기원 하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었고 신라인의 경우 이같은 성 관념이 일 상생활과 관습에까지 투영되었다”며 “신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화랑세기>의 성 풍속도가 현재의 관점에서는 문란하기 그지 없지만 인류학적으로 보자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신라는 처첩을 분명히 구분한 일부일처 사회였으 며 신분차별은 극심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놀이와 유희의 공간으 로만 알려졌던 포석정은 문노를 비롯한 나라의 중요인물의 화상이 있었고 길례를 행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었다는 주장도 이채롭 다.
화랑도 사이에서는 뇌물도 오간다. 세종은 아내인 미실을 기쁘게 하 려고 처남인 미생공을 전방화랑으로 삼으려 했으나 문노가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실이 낭도들에게 뇌물을 주어 미생공의 지위를 높혀주자 이해에 밝은 자들이 많이 따랐다.
아직까지 학계는 이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 화랑세기>가 진작(眞作)이라면 우리의 고대사는 180도 달리 씌어져 야 한다.
남성학 강의] 춘화(春畵)는 조상의 성문화 자료다
김재영〈신세기비뇨기과 원장〉
얼마 전 모 여성지가 별책 부록에 조선시대의 춘화를 원본 그대로 게재했다. ‘에로틱 스타일, 에로틱 섹스’ 라는 제목이 달린 이 부 록엔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가들이 담아낸 ‘진 한’ 성풍속도 10점이 실렸다. 여기에 현대미술계의 거장 피카소가 그린 춘화까지 최근 선보여 그 어느 때보다 춘화에 대한 관심이 고 조되고 이에 따른 논쟁이 일고 있다.
여성지에 게재된 춘화들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남녀의 은밀한 부위 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대 부분이다. 심지어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 남녀 두 쌍이 각각 그룹 섹스를 벌이는 그림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 춘화의 역사가 시작된 건 조선시대다. 조선시대 관리나 역관들이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몰래 갖고 들어온 것이 춘화 의 주된 유통경로다. 당시 북경의 책방에서는 우리나라 사신들이 책 을 고르는 척하면서 미적미적 시간을 때우면 은밀히 소맷자락을 끌 어당겨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춘화를 내밀었다고 한다. 밀수된 춘화 는 사대부를 포함한 양반사회에 빠른 속도로 널리 퍼졌고, 그 영향으 로 화가들이 춘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춘화는 흔히 포르노그라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물화나 풍경화와 마 찬가지로 옛사람들의 문화나 질병까지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얼굴에 담긴 반점이나 낯빛으로 춘화의 모델들이 어떤 질병에 걸렸 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춘화를 단순히 포로노물이라고 죄악시하고 단죄하기보다는 옛 조상들의 성문화를 엿보는 역사자료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도 한 번쯤 시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古典(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의 육담 ⑤-시아버지의 훈계 (0) | 2008.02.02 |
---|---|
④ 강원의 육담 (0) | 2008.02.02 |
한국 육담의 세계관 (0) | 2008.02.02 |
문헌 육담의 인간관 (0) | 2008.02.02 |
카트린 (0) | 200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