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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육담] <28> 남편 앞에서 하기 본문
[강원의 육담] <28> 남편 앞에서 하기
옛날에 장님 점쟁이가 이쁜 부인과 같이 살았는데, 그의 아내는 얼굴이 반반하여 여러 사내들이 눈독을 들였대요. 장님 점쟁이의 아내는 얼굴값을 하느라고 아랫집 젊은 사내하고 자주 놀아났는데, 하루는 비 오는 대낮에 이 젊은 사내가 장님 마누라 생각이 나서 장님 집으로 갔네. 장님이 없는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누구요?" 하는 소리가 나더래요.
장님의 아내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 젊은 사내가 "아랫집 돌쇠입니다. 청이 있어서 왔는데요." 하니, "무슨 청인데?" 하니, "여자하고 좀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방을 좀 빌렸으면 하구요. 제가 꼭 사례는 하겠습니다." 했네. 점쟁이는 돌쇠의 점을 봐 줬대요. 산대를 흔들며 중얼거리다가 "그런데 조심하게. 나는 방을 잠깐 빌려 주면 그만이지만, 여자의 남편이 먼 데 있지 않으니 모름지기 빨리 해치우는 기 좋아." 그러더래.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돌쇠라는 이웃 젊은 녀석의 용렬함과 음란함을 개탄해 마지않는다. 아니, 장님 남편을 둔 그 아내의 음란함에 이르러선 아무리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선 여기선 남자들의 음란함에 주목해 보자.
비교적 자유스럽던 우리의 성 생활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분 때는 조선 시대다. 그 대표적 징표가 바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윤리 기강으로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에서 사대부들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면 첫째, 아들을 못 낳으면 쫓겨난다. 둘째, 시부모가 "저년을 쫓아내라." 하면 내쫓아야 하고, 셋째 정숙치 못한 여자, 넷째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린 여자, 다섯째 질투하는 여자, 여섯째 수다스러운 여자, 일곱째 도둑질한 여자는 내쫓는다 해 놓고, 실제로 내쫓고 다른 여자를 들여 성 생활을 즐겼다. 한 마디로 새로운 여자 찾기다. 비겁하다. 물론 여기엔 삼불거(三不去)가 따른다. 즉, 쫓아낼 일곱 가지 이유가 있어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으면, 함께 부모의 3 년 상을 치렀으면, 전에 가난하였다가 뒤에 부자가 되었으면 내쫓지 못한다.
어쨌거나 아내를 내쫓아도 좋다는 칠거(七去)란 도대체 뭔가. 비틀어 보자면, 이건 집안에 또 다른 섹스 대상을 불러들여도 결코 비난받지 아니한다는, 용서 못할 남성 본위 성 문화의 반영이 아니던가. 비난받지 않으면서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지 앞 장에서 간단하나마 살펴본 대로다.
다시 한 마디로, 이런 양식의 문화란 도대체 얼마나 음란한가. 특히 남성들의 숨겨진 음란성, 성적 무분별함을 그대로 인정받으려는 오만한 편견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동양 전반의 문제였다. 중국의 예를 보자. 기원전 2천년에 후궁제도가 성행했다. 주나라에선 왕이 왕후 1 명, 왕비 3 명, 제2급의 아내인 빈(嬪)은 9 명, 제3급 아내인 세부(世婦)는 27 명, 후처(後妻) 즉 첩은 81 명 등 합계 121 명의 성 대상 여자를 둘 수 있었다.
최대의 덕을 지닌 왕이 그 덕을 영속시켜 나아가야 하기에 성교를 통해 총명한 세습자를 얻고자 수많은 여자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는데,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 도대체 얼마나 유치찬란하고 비겁하고 위선적인가. 예미, 그 시절에 태어날 것을! 하지만 아서라. 될 성 부른 얘기도 아니고, 문제는 이 때 왕은 마음 내키는 때에 섹스하는 것이 아니라 역(曆)과 제례를 고려하고, 여자들의 질 내 사정을 감안하고, 또 우선 하급 여자들과 섹스 연습을 한 뒤 상황과 능력이 최대로 성숙했을 때 한번 하는 것으로, 매우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왕후와 하는 일은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도였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근엄한 척 해도 역시 음란한 건 음란한 거다.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기(期) 로마법왕 중엔 호색한이 많았다. 알렉산더6세는 상류계급의 유부녀와 딸들을 초청한 연회에서 상습적으로 겁탈했다. 일생불범(一生不犯)해야 하는 성직자가 말이다. 우리네 옛 승려들의 잦은 일탈행위와 어지간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인간사란 동이나 서나 그저 그렇게 서로 비슷한 것이다.
영국의 헨리8세는 왕비를 여섯이나 갈아 치우는 음란성을 보이고 있다. 6 살 연상인 형의 아내 캐서린과 결혼한다. 그 뒤 프랑스 궁정의 음란한 문화를 섭취한 메어리 부린, 앙 부린 두 자매와 섹스 삼매경에 빠진다. 자기 동생을 유혹해 아내로 삼았다가 방해된다 하여 다른 남자와 간통했다는 죄목을 씌워 처형한 뒤 젠과 결혼한다. 그 후 크레브즈와 결혼했다가 반년 만에 이혼하고, 캐서린 하워드와 다시 결혼하고, 그러다가 매독에 걸려 58 세로 숨을 거두는데….
판이 판인 만큼, 떠돌이 연예인을 아버지로 하고 가극단 여배우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카사노바 얘기를 어찌 안 할 수 있으랴. 10 새 때 음란시를 쓰고, 11 세 때 여체를 경험하고, 17 세에 14 세 처녀의 처녀성을 빼앗은 아이, 성직자의 길을 걷다가 곧 타락해 간 젊은이가 카사노바다. 카사노바는 헤어 페티스트다. 여자의 머리카락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 사내였단 말이다. 여자의 머리털을 바닐라 알코올에 재우고, 이에 설탕을 묻혀 즐겨 먹었다. 뒷날 성병에 걸렸고, 가난에 찌들기도 했으나 창부를 사서 계속 쾌락을 추구한, 그야말로 음란한 남자 중에 특히 음란한 사내였다.
"말도 마라. 우리 이웃의 한 녀석은 무려 400여 명의 여자와 잤다더라." 최근 이런 얘기들이 들려온다. 그렇다. 인간의 음란함에 어찌 고금이 있을쏜가
옛날에 장님 점쟁이가 이쁜 부인과 같이 살았는데, 그의 아내는 얼굴이 반반하여 여러 사내들이 눈독을 들였대요. 장님 점쟁이의 아내는 얼굴값을 하느라고 아랫집 젊은 사내하고 자주 놀아났는데, 하루는 비 오는 대낮에 이 젊은 사내가 장님 마누라 생각이 나서 장님 집으로 갔네. 장님이 없는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누구요?" 하는 소리가 나더래요.
장님의 아내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 젊은 사내가 "아랫집 돌쇠입니다. 청이 있어서 왔는데요." 하니, "무슨 청인데?" 하니, "여자하고 좀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방을 좀 빌렸으면 하구요. 제가 꼭 사례는 하겠습니다." 했네. 점쟁이는 돌쇠의 점을 봐 줬대요. 산대를 흔들며 중얼거리다가 "그런데 조심하게. 나는 방을 잠깐 빌려 주면 그만이지만, 여자의 남편이 먼 데 있지 않으니 모름지기 빨리 해치우는 기 좋아." 그러더래.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돌쇠라는 이웃 젊은 녀석의 용렬함과 음란함을 개탄해 마지않는다. 아니, 장님 남편을 둔 그 아내의 음란함에 이르러선 아무리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선 여기선 남자들의 음란함에 주목해 보자.
비교적 자유스럽던 우리의 성 생활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분 때는 조선 시대다. 그 대표적 징표가 바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윤리 기강으로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에서 사대부들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면 첫째, 아들을 못 낳으면 쫓겨난다. 둘째, 시부모가 "저년을 쫓아내라." 하면 내쫓아야 하고, 셋째 정숙치 못한 여자, 넷째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린 여자, 다섯째 질투하는 여자, 여섯째 수다스러운 여자, 일곱째 도둑질한 여자는 내쫓는다 해 놓고, 실제로 내쫓고 다른 여자를 들여 성 생활을 즐겼다. 한 마디로 새로운 여자 찾기다. 비겁하다. 물론 여기엔 삼불거(三不去)가 따른다. 즉, 쫓아낼 일곱 가지 이유가 있어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으면, 함께 부모의 3 년 상을 치렀으면, 전에 가난하였다가 뒤에 부자가 되었으면 내쫓지 못한다.
어쨌거나 아내를 내쫓아도 좋다는 칠거(七去)란 도대체 뭔가. 비틀어 보자면, 이건 집안에 또 다른 섹스 대상을 불러들여도 결코 비난받지 아니한다는, 용서 못할 남성 본위 성 문화의 반영이 아니던가. 비난받지 않으면서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지 앞 장에서 간단하나마 살펴본 대로다.
다시 한 마디로, 이런 양식의 문화란 도대체 얼마나 음란한가. 특히 남성들의 숨겨진 음란성, 성적 무분별함을 그대로 인정받으려는 오만한 편견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동양 전반의 문제였다. 중국의 예를 보자. 기원전 2천년에 후궁제도가 성행했다. 주나라에선 왕이 왕후 1 명, 왕비 3 명, 제2급의 아내인 빈(嬪)은 9 명, 제3급 아내인 세부(世婦)는 27 명, 후처(後妻) 즉 첩은 81 명 등 합계 121 명의 성 대상 여자를 둘 수 있었다.
최대의 덕을 지닌 왕이 그 덕을 영속시켜 나아가야 하기에 성교를 통해 총명한 세습자를 얻고자 수많은 여자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는데,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 도대체 얼마나 유치찬란하고 비겁하고 위선적인가. 예미, 그 시절에 태어날 것을! 하지만 아서라. 될 성 부른 얘기도 아니고, 문제는 이 때 왕은 마음 내키는 때에 섹스하는 것이 아니라 역(曆)과 제례를 고려하고, 여자들의 질 내 사정을 감안하고, 또 우선 하급 여자들과 섹스 연습을 한 뒤 상황과 능력이 최대로 성숙했을 때 한번 하는 것으로, 매우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왕후와 하는 일은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도였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근엄한 척 해도 역시 음란한 건 음란한 거다.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기(期) 로마법왕 중엔 호색한이 많았다. 알렉산더6세는 상류계급의 유부녀와 딸들을 초청한 연회에서 상습적으로 겁탈했다. 일생불범(一生不犯)해야 하는 성직자가 말이다. 우리네 옛 승려들의 잦은 일탈행위와 어지간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인간사란 동이나 서나 그저 그렇게 서로 비슷한 것이다.
영국의 헨리8세는 왕비를 여섯이나 갈아 치우는 음란성을 보이고 있다. 6 살 연상인 형의 아내 캐서린과 결혼한다. 그 뒤 프랑스 궁정의 음란한 문화를 섭취한 메어리 부린, 앙 부린 두 자매와 섹스 삼매경에 빠진다. 자기 동생을 유혹해 아내로 삼았다가 방해된다 하여 다른 남자와 간통했다는 죄목을 씌워 처형한 뒤 젠과 결혼한다. 그 후 크레브즈와 결혼했다가 반년 만에 이혼하고, 캐서린 하워드와 다시 결혼하고, 그러다가 매독에 걸려 58 세로 숨을 거두는데….
판이 판인 만큼, 떠돌이 연예인을 아버지로 하고 가극단 여배우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카사노바 얘기를 어찌 안 할 수 있으랴. 10 새 때 음란시를 쓰고, 11 세 때 여체를 경험하고, 17 세에 14 세 처녀의 처녀성을 빼앗은 아이, 성직자의 길을 걷다가 곧 타락해 간 젊은이가 카사노바다. 카사노바는 헤어 페티스트다. 여자의 머리카락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 사내였단 말이다. 여자의 머리털을 바닐라 알코올에 재우고, 이에 설탕을 묻혀 즐겨 먹었다. 뒷날 성병에 걸렸고, 가난에 찌들기도 했으나 창부를 사서 계속 쾌락을 추구한, 그야말로 음란한 남자 중에 특히 음란한 사내였다.
"말도 마라. 우리 이웃의 한 녀석은 무려 400여 명의 여자와 잤다더라." 최근 이런 얘기들이 들려온다. 그렇다. 인간의 음란함에 어찌 고금이 있을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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