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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강원의 육담] <30> - 입 맞추기

AziMong 2008. 2. 2. 19:50

강원의 육담] <30> - 입 맞추기 
 
  
 조카가 과걸 보러 가는데 삼촌이 “너는 과거 보러 가고, 나는 보따리나 메고 같이 가자." 하고 같이 가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저기 목화 따는 색시한테 가서 입을 맞추고 오면 우리가 한턱내겠소." 이러니까, 삼촌이 “내가 입을 맞추고 올 테니 과거에서 글이나 좀 지어 주게." 이랬대요. 삼촌이 목화 따는 색시 앞에 가 정말 입을 맞추고 오거든.
 나중에 조카가 “어떻게 입을 맞췄지요?" 물으니까, “입을 맞추길 어떻게 맞추는가. 눈에 가시가 들었으니 당신이 좀 불어 달라니까, 색시가 내 두 귀를 잡고 불더란 말이야. 멀리서 볼 땐 입을 맞춘 것 같지 보였지." 하고 대답하더래. 일행 한 사람이 글을 지어줘서 글 잘하는 조카는 과걸 못하고, 짓궂은 삼촌은 과거를 하더래요.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키스를 빼 놓고 어찌 성을 논할 수 있겠나. 키스라…. 그래, 키스도 가지가지다. 이를 테면 입술만 접촉하는 키스, 입술과 혀를 사용하는 키스, 살짝 깨물며 하는 키스, 상대의 입 속을 휘젓는 정열적인 키스 등. 완전한 성교는 전희-애희-성교-후희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전희와 애희의 경계선에 키스가 있다. 애희는 사랑을 알리는 키스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키스는 성교의 중요한 준비 단계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알다시피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앞 몇 구절이다. 1924년 4월 이후, 불교청년운동이 거의 종막을 고하던 무렵, 지쳐가던 만해는 정신적 고향 설악산 하고도 오세암에 가 머물면서 88 편의 시를 쓰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님의 침묵'이다. 여기서의 키스는 물론 성적(性的)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으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우리는 키스라는 게 운명을 바꾸어 놓을 만큼의 놀라운 그 무엇임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만해처럼 운명을 바꿀 만한 첫 키스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했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다고? 그 다음 장면만 생각난다고? 예컨대 애브리언 블루가 ‘키스의 재발견'에서 한 말, “키스는 섹스와 달리 남녀가 똑같은 신체기관으로 하는 행위다. 키스는 육욕의 동등함을 보여준다."는 것 그대로의 키스 이후에 한, 그 놀라운 쾌감의 섹스 장면만 오직 생각난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낭만이 없는, 정말 드라이한 사람이다.
 키스의 낭만?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될 것이, 키스는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음의 예를 들면 이해할까. 파리의 센 강변을 따라 젊은 연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다른 유럽 사람들보다 프랑스인들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얼마나 사랑하면 남이 보는 앞에서 저렇게 열렬히 키스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때 우리가 깨달을 것은 아무리 프랑스 사람들이라도 정말 가까운 사람끼리는 대중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물 행동학자 모리스(Morris, D)는 “가까운 연인이나 부부끼리는 조용히 함께 앉아 거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각기 자기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가까운 사람끼리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정도로 그런 야단스러운 사랑의 표시를 안 해도 마음속으로 서로 믿음을 가진다는 말이다. 대중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필자의 딸아이가 “식당에서 많은 얘기를 정답게 나누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에요."라며 통찰적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정상적인 부부는 유난스런 행동 없이 오직 식사만 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사람들 앞에서 아무리 진한 키스를 하면서 자기들의 뜨거운 사랑을 과시한다 하여도 낭만적이라기보다 “우리는 사귄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막 가까워지려 해요."라는 것을 알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건 정말 낭만적인 키스를 해 본 지 오래된 한 늙은이의 푸념일지 모른다.
 고대 로마에서는 여러 가지 키스 기술이 개발됐는데, 그 결과 예우의 키스인 바시움, 친구 간의 키스인 오스크룸, 애인 간의 키스인 스와비움으로 나누어지더라 한다. 그러나 스와비움도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예컨대 딸아이가 있는 데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키스를 하지 않을 정도로 키스 행위를 스스로 자제했다. 16 세기에서 17 세기에 걸쳐 키스가 범람할 때에도 사람들은 키스와 정조를 동일시했다. 즉, 독신 처녀가 입술을 빼앗기면 결혼을 허락한 것으로, 기혼 부인이 다른 남자에게 입술을 허락하면 이혼의 사유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젊은 여성의 입술은 최후까지 약혼자를 위해 닫혀진 채 보류된다."고 한 영국의 성과학자 하베로크 에리스의 말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워낙 일반화된 키스를, 금방 만나 금방 나누는 키스를 누군들 죄악시할 수 있겠나. 죄악시라니, 무슨 가당찮은 말씀을. 키스에 대한 현대인의 시각을 한 통계를 소개하는 것으로 얘기를 맺자. 몇 년 전에 어느 포털 사이트가 조사했는데, 진한‘프렌치 키스'가 좋더라는 사람이 50 %였고, 입술만 살짝 닿는 ‘버드 키스'를 30%, 입술을 깨무는 ‘이팅 키스'는 20% 가까이 즐기더라나. 어떤 형식으로든 하여간 요새 아이들은 키스를 너무 쉽게 한다. 운명을 바꿀 키스, 낭만적 키스는 이미 신화나 전설이 돼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