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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육담] <32> - 달래나 보지 본문
강원의 육담] <32> - 달래나 보지
-인간은 왜 팬티를 입는가-
옛날 양양의 웃달래에 시집간 누이가 재향을 와 여러 날 친정에서 지내다가 시댁으로 돌아갈 때 친정에서 떡을 해주며 남동생을 우이로 보냈네. 동생이 떡을 지게에 둘러메고 누이를 따라 길을 나섰지. 오누이는 서로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걷고 있는데, 하늘이 검어지면서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졌거던. 한길에서 비가 쏟아지니 비를 피할 마땅한 곳도 없고 비옷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대요. 때가 여름이라 옷을 여러 겹 입지 않는 누이는 쏟아지는 비를 맞아 우유 빛 속살이 드러났지. 누이의 젖은 몸이 완만한 곡선을 그으며 동생을 자극했네.
앞서 가던 누이가 동생에게 쉬어가자며 뒤를 돌아보니 동생이 보이질 않더래요. 누이는 동생이 잠시 볼일 보느라 늦는 줄 알고 기다렸으나 오질 않아. 그래 되돌아 냇가에 가 보니 동생이 쓰러져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 동생을 보니, 바지춤이 붉게 물들어 있더래요. 누이를 보고 색정을 느낀 동생은 수치라 생각해 '누나를 보고 색정을 일으키니 짐승만 못한 놈이다. 이놈의 물건 때문에 흑심을 품었어.' 하고 자탄하면서 자기 그것을 꺼내 돌로 짓이겼던 것이야. 죽은 동생을 본 누이는 참담했고, 또 동생이 가여워서 "이 녀석아, 죽긴 왜 죽어 한번 달래나 보지." 하며 땅을 치고 통곡을 했대. 그래 이 강을 '달래강'이라 한대요.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양양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설화다.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어 익숙한 육담이랄 수 있는데, 이런 육담이 여전히 돌아다니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에 오늘의 주제가 숨겨져 있다. 먼저 결론을 말하자면, 이 육담은 인간의 성(性) 금기(禁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짓,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일이 우리의 삶 속에서 늘 일어난다는 것이다. 동시에 여기엔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게 뭔가? 그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금기를 깨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얘기를 더 확실히 해 두기 위해 잠시 고다 스미스의 주장을 듣도록 하자.
고다 씨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보통 때보다 더 맛있게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이를 테면 좋은 컵으로 마시면 더 맛날 것,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방법도 있으며, 바닷가처럼 경치 좋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면 상당히 맛있을 거라는 것 등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들 대답은 일부 옳을지 모르나 매우 불충분한 대답이다.
좀더 효과적인 방법은? 좀더 '극적으로' 커피가 맛있어지는 방법은 없을까? 정답은 이거다.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일주일이나 이 주일 동안 계속해서 참은 다음 마시는 커피의 맛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금지함으로써 더욱 자극이 강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욕망'에 관한 본질적 통찰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 프로그램은 '참음' 또는 '금지'에 의해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해서는 안 돼."라는 말을 듣고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욕망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자 스위치, 이것이 바로 금지다. 이 경우, 금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오히려 깨뜨려짐으로써 그 존재의 의의가 있다. 따라서 다시 말하면, 인간 욕망의 본질은 '금지의 침범'이다.
이런 식으로 명료하게 설명했지만, 사실 이 '성 금기론'은 일본 철학자 고다 스미스의 이론이 아니라, 익히 알듯 20 세기 프랑스 사상가 조르쥬 바타이유(Geores Bataille ; 1897∼1962)의 소위 '금기와 위반의 에로티시즘' 이론이다. 에로티시즘을 '성적인 이미지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환기하는 일'이라는 식의 설명은 그야말로 사전적인 의미일 따름이다.
한 가지 물어 보자.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우리는 이에 이미 답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다음 물음 '인간이 팬티를 입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부끄럽기 때문에 팬티를 입게 됐는가?'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놓을 수 있다. 그 답은 '팬티를 입기 때문에 인간이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숨긴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숨긴다'가 바로 참음, 금지 또는 금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숨긴다'는 것에 의해 '숨겨진 것'이 특별한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금지 때문에 성기에 에로틱한 의미가 부여된다. 거듭 말하지만, 결국 인간 욕망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자 스위치는 바로 '금기'다.
따라서 인간의 에로티시즘은 사실 본능이 아니다.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체 자체로는 에로틱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금지와 '금지를 깨 달라.'는 유혹,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긴장감이야말로 에로틱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루주 바타이유는 말한다. "떳떳치 못함에 대한 감수성과 금지를 깨뜨리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한 감수성, 이것들이 욕망과 공포, 격렬함과 쾌락과 떳떳하지 못함을 긴밀하게 결합시킨다."
금기를 어기려는 충동과 금기를 지키려는 고뇌가 서로 격렬히 밀고 당기는 그 어느 지점에서 한 청춘이 마침내 죽고 말았다는 얘기가 바로 우리 '달래강 설화'다. 그리고 가장 강한 성적 금기가 '근친상간'임을 우리의 육담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확장된 또 한 가지 의미는, 우리 인간 특히 남자의 경우 이성인 여자에 흥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자기 환상에 흥분한다는 사실이다. 여자의 성기에다가 '기막힌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든가, '환락의 세계'라든가, '비밀의 화원'이라든가, 혹은 '금단의 성소'라든가, 아니면 '생명의 샘'이라든가 하는 식의 환상을 갖다 붙여 그 환상에 흥분하는 것이다. 흔히 남자들이 섹스를 실제로 하는 것보다 공상하는 데에서 더 자극을 받고 쾌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로맨티시즘 역시 이에 기초한다. 그리하여 결국 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성은 본능이 아니라 환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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