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강원의 육담 <25> 기생과 건달 본문
강원의 육담 <25> 기생과 건달
옛날에 어떤 건달이 오입하고 화대를 안 주자 기생이 "꽃값을 주시오." 하고 손을 내밀었대요. 그러자 건달이 역정을 내며“귀후비개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나, 귀후비개가 시원하나? 내가 니를 시원하게 해 줬으니 니가 나한테 돈을 줘야지." 그러니 기생이 "꿀단지에 혀를 대면 단지가 다오, 혀가 다오? 당신이 내 꿀단지 맛을 봤으니 꿀값을 내야지요." 그랬대요.
할 말이 없어진 건달이 꼬리를 내리며 "그러면 당신은 귀가 시원했고, 나는 단맛을 봐 좋았으니, 돈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네." 그러면서 "숫돌에 낫을 갈면 숫돌과 낫이 둘 다 닳으니, 그만 없던 일로 하세." 이러 말하니, "낫 좋으라고 갈지, 숫돌 좋으라고 가나?" 이러 기생이 대꾸하니, 건달은 그예 오입 값을 줬대요.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비교할 명확한 자료는 없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는 가위 섹스 천국이라 이를 만하다. 마스터베이션으로 끝날 수 없는 사내들은 약간의 돈을 준비하고 마음만 먹으면 여자와 밤새도록 할 수 있다. 향락산업이 번성 번창한 이런 나라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데,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이런 따위의 이분법적 시각은 곤란하다고?
점차 사라질 기미가 보이나, 아직은 여전히 섹스 제공 장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 룸살롱으로 들어가 보라. 붉은 조명 아래 시쳇말로 쭉쭉 빵빵한 여자애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던가. 그러나 자주 가지 마라. 자주 가면 중독되기 쉽다는 게 필자가 얻은 경험칙이다. 성을 파는 젊은 여자애들이 바글거리는 단란주점이나 안마시술소도 마찬가지다. 이름도 아름다운 러브호텔을 비롯하여 장급 여관, 여인숙, 청량리 588, 영등포 역전, 미아리 텍사스촌 그리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술집, 술집들도.
당장 도시의 거리로 들어가 보라. 붉고 야한 섹스가 미치게 할 것이다.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이게 현대의 도시다. 돈이 문제이지 어디 여자가 문제이던가. 그리고 당장 섹스해도 좋다는 여자애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으로 성을 사려는 남자애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은 어찌하여 동물들에겐 없는 이런 따위의 매매춘(賣買春)을 역사가 수 없이 변전했음에도 지치지 않고 하고 또 하는가? 어찌하여 인간은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인간, 아니 남자들은 왜 그놈의 '구멍'에 그렇게도 집착한단 말인가?
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주위 여건과 관계없이 순전히 환상에 의해 마음속에 자폐적으로 성욕이 형성되고, 자위행위로 어느 정도 만족되지만, 곧이어 마침내 성욕 대상으로 여자를 찾게 된다. 중요한 것은 '여자'를 찾는 것이지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여자면 족하지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단적으로 남자는 섹스를 원하지 섹스 감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자'란 곧 '여성 성기(性器)'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일본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바보야, 여자의 배꼽 한 뼘 아래만 노리니." 남자는 오직 여자 성기가 필요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동물에겐 암컷과 암컷의 성기를 분리하여 보지 않지만, 인간 남성에겐 여자의 성기를 여자의 인격체와 별개로 보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격과 분리된 여자 성기'라는 관점이 매매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 학자 기시다 슈의 이런 식의 주장은 다는 아니나 사태의 진상을 어느 정도 설명했다 할 것이다.
항상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측면이 늘 존재해 왔다는 관점 아래, 우리의 경우 옛날에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그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도 따라서 당연히 매매춘을 통한 성의 상품화가 존재했었다. 한량들이 만든 춘화전(春畵錢)엔 남녀 섹스 자세가 사실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도 그러하고, 예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란 책은 아예 '갈보종류총괄(蝎甫種類總括)'이란 장을 독립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여기서 '갈보'란 두 말할 나위 없이 '몸 파는 여자'를 뜻한다.
반면 중국은 물론 거란과 여진족에게 홍등가가 있었음에도 일부일처제가 엄격했던 발해의 경우 의외로 매매춘의 예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귀족과 일반인들이 첩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발해 사람들은 매매춘은 커녕 첩도 두지 않았다. 남송 시대 문헌 '송막기문'은 발해에서는 "비록 첩을 두었다 하더라도 남편이 외출하면 부인이 독살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발해 이웃 신라 역시 방만한 섹스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 말할 것 없고, 발해가 그 역사성을 계승한 고구려에도 이미 유녀(遊女) 문화가 성행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발해가 어느 나라보다도 여권(女權)이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매매춘의 예를 잠깐 살피면, 18 세기 말부터 19 세기 초까지 파리엔 '세라이유(後宮)'라는 유명한 창녀촌이 있었다. 값비싼 가구, 아름다운 정원, 대리석 욕실, 실크 침대. 어느 것 하나 호화롭지 않은 것이 없는 곳이었다. 전라의 차림으로 엷은 비단을 걸친 젊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성들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창부를 부러워한 나머지 심지어 유부녀들까지 하룻밤에 막대한 돈을 벌며 신선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 남편 아닌 남자와 성을 즐길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유부녀들을 위해 마침내 '메존 드 랑데부(만남의 집)'란 비밀 창가도 출현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결국 매매춘은 인간만이 가진 자폐적 성욕의 실천 행위요, 하나의 문화요, 프랑스의 18, 19 세기처럼 유행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런 층위에서 우리의 육담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꽃값'을 내지 않으려고 한 육담 속의 치사한 건달은 다만 재미있게 얘기하려는 장치일 뿐이다. 아니,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는 남자 당신도 똑같이 치사한 작자라고?
옛날에 어떤 건달이 오입하고 화대를 안 주자 기생이 "꽃값을 주시오." 하고 손을 내밀었대요. 그러자 건달이 역정을 내며“귀후비개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나, 귀후비개가 시원하나? 내가 니를 시원하게 해 줬으니 니가 나한테 돈을 줘야지." 그러니 기생이 "꿀단지에 혀를 대면 단지가 다오, 혀가 다오? 당신이 내 꿀단지 맛을 봤으니 꿀값을 내야지요." 그랬대요.
할 말이 없어진 건달이 꼬리를 내리며 "그러면 당신은 귀가 시원했고, 나는 단맛을 봐 좋았으니, 돈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네." 그러면서 "숫돌에 낫을 갈면 숫돌과 낫이 둘 다 닳으니, 그만 없던 일로 하세." 이러 말하니, "낫 좋으라고 갈지, 숫돌 좋으라고 가나?" 이러 기생이 대꾸하니, 건달은 그예 오입 값을 줬대요.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비교할 명확한 자료는 없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는 가위 섹스 천국이라 이를 만하다. 마스터베이션으로 끝날 수 없는 사내들은 약간의 돈을 준비하고 마음만 먹으면 여자와 밤새도록 할 수 있다. 향락산업이 번성 번창한 이런 나라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데,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이런 따위의 이분법적 시각은 곤란하다고?
점차 사라질 기미가 보이나, 아직은 여전히 섹스 제공 장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 룸살롱으로 들어가 보라. 붉은 조명 아래 시쳇말로 쭉쭉 빵빵한 여자애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던가. 그러나 자주 가지 마라. 자주 가면 중독되기 쉽다는 게 필자가 얻은 경험칙이다. 성을 파는 젊은 여자애들이 바글거리는 단란주점이나 안마시술소도 마찬가지다. 이름도 아름다운 러브호텔을 비롯하여 장급 여관, 여인숙, 청량리 588, 영등포 역전, 미아리 텍사스촌 그리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술집, 술집들도.
당장 도시의 거리로 들어가 보라. 붉고 야한 섹스가 미치게 할 것이다.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이게 현대의 도시다. 돈이 문제이지 어디 여자가 문제이던가. 그리고 당장 섹스해도 좋다는 여자애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으로 성을 사려는 남자애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은 어찌하여 동물들에겐 없는 이런 따위의 매매춘(賣買春)을 역사가 수 없이 변전했음에도 지치지 않고 하고 또 하는가? 어찌하여 인간은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인간, 아니 남자들은 왜 그놈의 '구멍'에 그렇게도 집착한단 말인가?
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주위 여건과 관계없이 순전히 환상에 의해 마음속에 자폐적으로 성욕이 형성되고, 자위행위로 어느 정도 만족되지만, 곧이어 마침내 성욕 대상으로 여자를 찾게 된다. 중요한 것은 '여자'를 찾는 것이지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여자면 족하지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단적으로 남자는 섹스를 원하지 섹스 감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자'란 곧 '여성 성기(性器)'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일본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바보야, 여자의 배꼽 한 뼘 아래만 노리니." 남자는 오직 여자 성기가 필요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동물에겐 암컷과 암컷의 성기를 분리하여 보지 않지만, 인간 남성에겐 여자의 성기를 여자의 인격체와 별개로 보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격과 분리된 여자 성기'라는 관점이 매매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 학자 기시다 슈의 이런 식의 주장은 다는 아니나 사태의 진상을 어느 정도 설명했다 할 것이다.
항상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측면이 늘 존재해 왔다는 관점 아래, 우리의 경우 옛날에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그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도 따라서 당연히 매매춘을 통한 성의 상품화가 존재했었다. 한량들이 만든 춘화전(春畵錢)엔 남녀 섹스 자세가 사실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도 그러하고, 예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란 책은 아예 '갈보종류총괄(蝎甫種類總括)'이란 장을 독립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여기서 '갈보'란 두 말할 나위 없이 '몸 파는 여자'를 뜻한다.
반면 중국은 물론 거란과 여진족에게 홍등가가 있었음에도 일부일처제가 엄격했던 발해의 경우 의외로 매매춘의 예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귀족과 일반인들이 첩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발해 사람들은 매매춘은 커녕 첩도 두지 않았다. 남송 시대 문헌 '송막기문'은 발해에서는 "비록 첩을 두었다 하더라도 남편이 외출하면 부인이 독살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발해 이웃 신라 역시 방만한 섹스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 말할 것 없고, 발해가 그 역사성을 계승한 고구려에도 이미 유녀(遊女) 문화가 성행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발해가 어느 나라보다도 여권(女權)이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매매춘의 예를 잠깐 살피면, 18 세기 말부터 19 세기 초까지 파리엔 '세라이유(後宮)'라는 유명한 창녀촌이 있었다. 값비싼 가구, 아름다운 정원, 대리석 욕실, 실크 침대. 어느 것 하나 호화롭지 않은 것이 없는 곳이었다. 전라의 차림으로 엷은 비단을 걸친 젊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성들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창부를 부러워한 나머지 심지어 유부녀들까지 하룻밤에 막대한 돈을 벌며 신선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 남편 아닌 남자와 성을 즐길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유부녀들을 위해 마침내 '메존 드 랑데부(만남의 집)'란 비밀 창가도 출현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결국 매매춘은 인간만이 가진 자폐적 성욕의 실천 행위요, 하나의 문화요, 프랑스의 18, 19 세기처럼 유행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런 층위에서 우리의 육담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꽃값'을 내지 않으려고 한 육담 속의 치사한 건달은 다만 재미있게 얘기하려는 장치일 뿐이다. 아니,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는 남자 당신도 똑같이 치사한 작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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