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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육담 <24> - 사돈끼리 본문

.....古典(고전)

강원의 육담 <24> - 사돈끼리

AziMong 2008. 2. 2. 19:46
강원의 육담 <24> - 사돈끼리 
    
  "사돈끼리 그만 장난을 쳤군요" 원시적 욕망이 진실에 가까워 
 
 오막살이에 과부가 혼자 살았는데, 어느 겨울날 바깥사둔이 댕기러 왔대요. 둘이 어쩔 수 없이 한 이불 밑에 자다 보니, 그만 사둔끼리 장난을 쳤던 모양이야. 아침에 과부사둔이 무안해하며 "사둔, 우리가 장난을 쳤군요." 하며 망신스러워 마당으로 나가 맷돌에 앉아 있었는데, 맷돌이 너무 차가워 맨 엉덩이가 척 들러붙었지 뭐.
 바깥사둔은 눈치 알아차리고 다가가서는 맷돌과 엉덩이 사이에 입을 대고 후후 불었네. 그런데 자꾸 불다 보니까 과부사둔의 거기 털마저 얼어붙었네. 그러니 더 못 일어나게 됐어. 바깥사둔은 아무리 불어 봐도 안 되고, 남이 보면 큰일이거든. 그러니 "사둔, 내년 삼월 봄 나거든 봅시다. 해동 전에는 안 되겠소." 하고는 가 버리더래요.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국문학 전공자인 필자의 머리 속에 척 떠오른 생각은 '만전춘별사'라는 옛 노래다. 이 육담처럼 '얼음'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육담 속 과부의 엉덩이와 그 속 거웃까지 얼어붙게 만든 이 야릇하고 얄궂은 섹스의 원형은 고려속요 '만전춘별사'에 이미 리얼하게 언급돼 있다.
 첫 연은 이렇다. "얼음 위에 댓닢 자리보아 임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情) 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무슨 얘기인가? "얼음 위에서 사랑하는 임과 섹스를 하다가 얼어 죽어도 좋으니 밤이여, 부디 더디 새시오." 하는 내용이다. 이 어찌 간절하고 절절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 혹은 섹스를 노래함에 왜 이렇게 하필 '얼음'인가? 다시 물으면 '얼음'이 어떻다는 말인가? 그 답은, 얼음의 인류 공통 상징이 겨울, 차가움, 죽음, 추상, 고체와 액체 사이, 형벌, 의식과 무의식 사이 등이라는 것으로 족할 것 같다. 즉, 뭔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시에서 얼음 이미지를 표현한 것은 결국 사랑 또는 섹스하게 된 이 두 남녀 사이의 관계가 영원할 수 없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육담 속 과부와 그 바깥사돈의 관계 역시 차가운 얼음 위에다가 서늘한 대나무 잎으로 깔아 놓은 잠자리만큼의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가.
 4 연에선 "올하 올하 비올하/ 여울이란 어디 두고 소(沼)에 자러 오느냐/ 소가 곧 얼면 여울도 좋으니 여울도 좋으니." 하고 노래한다. 이는 또 무슨 뜻인고? 오리에게 여울물에서 놀아도 좋을 것인데, 왜 굳이 연못으로 놀러 오느냐 하고 물으니, 오리가 연못이 얼면 그 때 여울물도 다시 가도 좋으리라 대답한다는 얘기다. 뭔가 사연(邪戀)의 분위기다.
 학자들은 4 연에 다양한 해석을 가하고 있으나, 일단 상기 육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해가 좋을 것 같다. 즉, 여자가 "남자(오리)여, 본처(여울)는 어디 두고 다른 여자(소)에게 자러 오느냐?" 하고 묻자 남자가 대답한다. "다른 여자인 당신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본처에게 가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식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외도하는 남자를 나무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화자를 '다른 여자'로 볼 경우 본처 있는 남자를 유혹했다는 득의(得意) 또는 빈정거림의 표현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자유스러운 연애와 즐거운 섹스가 어느 시대나 있었듯 이렇게 우리 고려시대 생활 속에도 뻔뻔하다 할 정도의 비정상적 남녀 관계가 만연돼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즐겨 불렀던 고려를 혹평할 만큼 예컨대 조선시대가 정상적 남녀 관계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앞장에서 보았다.
 조선 중기 사림파(士林派)의 비교적 점잖은 시가(詩歌)를 건너뛰어 사설시조가 성했던 조선 후기로 넘어가 보면, 사설시조의 본령이라 할 범속하고 용렬한 인물들의 세속적 삶이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작품이 무진장이다. 몇 작품 감상해 볼까나.
 "반(半) 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죽을번 살번 하다가 와당탕 드리다라 이리저리 하니/ 노(老)도령 이 재미 아는지 그 때부터 할 것이다." 나이 40에 맛 본 첫 여자와의 '와당탕 드리다라' 하는 섹스가 재미있다고 고백하는 노래다. "각시내 옥 같은 가슴 어리구러 다혀 볼고/ 면유(綿維) 자지(紫芝) 작저구리 속에 깁적삼 안섭에 되여 존득존득 대해지고/ 인다감 땀나 보닐 제 떠질 뉘를 모르리라." 각시 적삼 안 유방의 그 존득한 촉감이 정말 즐거워 떨어질 줄 모르겠다 하고 있다.
 장르를 바꿔 가사(歌辭)를 살펴보자. "져 너머 막덕(莫德)의 어마네 막덕이 쟈랑 마라/ 내 품에 드러셔 돌곗잠 자다가/ 이 갈고 코 골고 오좀 싸고 방귀 뀌니/ 맹서(盟誓) 개지 모진 내 맛기 하 즈즐하다/ 어서 다려 가거라 막덕의 어마/ 막덕의 어미년 내다라 발명(發明)하야 니르되/ 우리의 아기딸이 고림병(病) 배아리와 잇다감 제병(病) 밖에/ 여나믄 잡병은 어려셔부터 없나니." 이를 갈고, 코를 골고, 오줌을 싸고, 방귀까지 뀌는 심한 잠버릇과, 임질과 같은 성병에 걸린 막덕이의 저열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경우 '추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들추어 추악한 현실을 풍자하려 한다.'는 식의, 옛 문학 작품에 대한 정치·사회적 접근 따위의 오래된 버릇은 재고돼야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서민의 삶을 이해함에 있어서 '위선을 벗어 던진 원시적·성적 욕망의 창'으로 보는 편이 보다 사실과 진실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