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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육담 <26> 목탁 때문에 본문

.....古典(고전)

강원의 육담 <26> 목탁 때문에

AziMong 2008. 2. 2. 19:47
강원의 육담 <26> 목탁 때문에 
 
  
 시집간 딸이 보고 싶어 딸의 집으로 갔더니, 딸의 시아버지가 "사돈, 오랜만에 왔는데, 마침 오늘이 아버지 기고요. 제 큰댁에서 제사 보고 올 테니 행랑방에서 혼자 쉬시오." 하더래. 방안에 목탁이 있기에 한번 탁 치고, 그래 이불 펴고 잘려구 하는데, 사돈댁이 고쟁이를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온단 말이야. 목탁이 사돈 부부의 그거 하자는 신호였던 모양이지.
 한밤 내내 하고, 딸의 시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상대가 남편이 아니란 걸 알고, 급한 김에 자기 고쟁이를 놔두고, 사돈의 바지를 입고 방에서 나갔네. 입을 바지가 없어진 사돈이 아랫도리를 벗은 채 앉아 있는데, 돌아온 바깥사돈이 "지난밤에 잘 잤소?" 하니, 불편하단 말이야. "잘 잤소만, 집에 볼일이 있어 가야 하오." 하고, 냅다 도망오고 말았대요. 그러니 목탁 때문에 그만 안사돈과 그 짓만 하고 온 거지.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무지하게 자극적인 성 관계로 무엇이 있을까? 사디즘적 마조히즘적 성행위도 무척 자극적이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밀하게 섹스에 탐닉하는 것도 성적 쾌감을 북돋우는 것이라 한다. 심지어 시체를 애무하는 네크로필리아도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파트너를 바꿔서 하는 것이 최고라고들 얘기한다.
 그래서 생긴 특별한 성행위가 부부 간에 배우자를 맞바꾸어 하는 섹스다. 얼마 전에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거나 혹은 엄청난 호기심을 자극한 '스와핑'이 그것이다. 이 스와핑이라는 것이 허망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자극제라고 주장하는 작자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육담 속의 사돈 간이야 이런 심정으로 한번 한 게 아니라 어쩌다가, 아니 목탁소리라는 자극에 대한 연습된 반응의 한 행위일 따름이었다고 보지만 말이다.
 과연 그런가? 안사돈이 목탁소리에 끌려가는 척하며 딸 아버지의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간 게 아닐까?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에이, 아니겠지…. 하지만 우좌지간 일단 이런 가정 아래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어 가 보자. 그러니까 말하자면, 다른 한 쪽은 몰랐으나 일종의 스와핑 형태로 한쪽 편 두 사돈이 한 밤 내내 자극적인 섹스를 즐긴 셈이다.
 이런 부부 스와핑이란 아주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는 분명한 성적 도착의 하나다. 즉, 남의 성을 엿보는 관음증이나 자기 것을 상대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노출증 요소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특히 배우자의 몸을 거쳐 간 상대가 있어야만 성적 흥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와핑은 오이디푸스적인 경쟁 상태로 퇴행하는 현상도 보이는 성행위다.
 퇴행적임에도 이러한 기이한 성행위가 은밀하게 선택돼 행해진다는 점에서 특권의식도 충족시켜 주고, 또 나만 혼자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도 시켜 준다. 그만 멈춰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이유로 현대인들은 날로 매우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한 이 스와핑에 빠져 가는 중이다.
 원뜻으로 '물건을 교환한다'는 스와핑은 1970년대 초 미국 지하 신문들이 상업성 광고를 내보내면서 본격적으로 '부부 성 교환'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권태와 욕망의 갈등 속에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병리적 심리가 이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일찍이 삶의 허무함을 가르쳐 준 쇼펜하우어의 주장처럼 우리의 삶은 정말 권태와 욕망의 갈등 속에 갇혀 있는 듯 보이므로 그렇다.
 이제 성은 사창가 상거래 차원을 넘어 우리의 가정 내부에서 부부들 사이에 서로 즐김의 대상이 됐다. '짜릿한 경험을 추구하는 모임'인 '짜경모'가 활동하고, 여기에 동참하는 회원수가 6천 쌍에 이르며, 사회 상류층까지 포함하고 있다니 그렇지 아니한가. 비난받아 마땅한 이 변태적 판타지!
 이렇게 논고하므로, 비록 성 담론을 계속 펼치며 성적 관심을 확장해 가고 있지만 필자는 아직 건강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구나. 생각건대, 다른 것은 다 해 보아도 스와핑일랑 그만 두어라.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 에상지스트가 유행이라 한다. 에상지스트란 스와핑의 프랑스 버전이다. 세 사람이 혼음을 즐기는 트리올리즘도 퍼져 나간다고 한다. 이 '부부 교환'과 '3인 혼음'이 일반화되는 추세라니, 아아, 인간 리비도의 끝 없음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도다.
 철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100 년 전의 인간들이 죽음을 화두 삼았음에 비해 현대인들이 섹스에 관심 많은 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죽음을 뜻하는 타나토스와 성을 뜻하는 에로스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런 일들도 있다. 마사이족 남자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 하는 것을 알아도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또 이들은 2 년 이상 섹스 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 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로 보면 성적 관계로 질투하는 것이 인간 본성 중 하나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형의 아내와 잠자리 한다는 얘기는 바이블에도 나온다. 한 여자를 여러 남자가 공유해 '구멍동서'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 한국 남자들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르겠도다. "합의하여 서로의 성을 공정하고도 공개적으로 교환함으로써 싸움을 줄이고 생활에 활력을 얻었다"는 스와핑에 참여한 부부들의 강변은 과연 강변, 괴변인가 혹은 아닌가. 아아, 모르겠도다 모르겠도다. 알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의 건강한 의식은 아직 여기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