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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본 DJ의 삶과 철학

AziMong 2009. 8. 22. 07:21

일기를 통해 본 DJ의 삶과 철학

[머니투데이 2009-08-21 10:39]
 
일기를 통해 본 DJ의 삶과 철학
일기를 통해 본 DJ의 삶과 철학
[머니투데이 이승제기자][삶에 대한 낙관, 발전에 대한 확신, 이웃에 대한 사랑]
<아래 '관련기사' 첫번째 DJ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를 클릭하시면 일기 전문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 측이 21일 공개한 김 전 대통령의 일기(2009년분)에는 △삶과 사회에 대한 철학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 △이희호 여사에 대한 정 등이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민주화 투쟁을 펼친 이유가 진솔하게 묻어나 있다. 80세가 훌쩍 넘은 국가원로가 삶의 막바지에 쓴 일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표현이 깔끔하고 감정이 담백하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일기 내용 중 이 부분을 책자의 제목으로 뽑았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1월 7일)는 표현은 자부심과 함께 미래 역사발전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삶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을, '역사는 발전한다'는 사회에 대한 낙관론을 뜻한다.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5월 2일),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는 표현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나타낸다. 김 전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자세를 유지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1월 6일)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을 담았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는 말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란 테제를 연상시킨다. 토인비는 인류 문명도 생명체처럼 탄생과 소멸을 겪게 된다며 주어진 환경과 어려움(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응전) 창조적 진보를 주창했다.

삶과 역사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은 김 전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평생토록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발휘하는 원천이 된 셈이다.

◇"역사와 국민과 함께 하는 길"= 김 전 대통령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었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1월 14일)라고 말했다 .

김 전 대통령은 형식보다는 내용, 수단보다는 목적을 중요시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핵심을 꿰뚫는 남다른 능력으로 유명하다. 연설, 토론, 대화를 하면서 "첫째는, 둘째는, 셋째는, 마지막으로…"란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복잡한 사안과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의 능력은 형식보다는 핵심과 본질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1월 15일자 일기에는 '긴 인생이었다(중략)…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고 적혀 있다. 그가 말한 '길'은 역사와 국민과 더불어 함께 하는 길이었다.

그가 선택한 인생의 목표(핵심, 길)는 정의와 사랑이었고 이는 곧 민주화 투쟁을 위한 헌신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는 인식 뒤에는 강한 종교적 신념과 정의에 대한 확신이 놓여 있다.

◇"이웃을 사랑하다"= 김 전 대통령은 일기 곳곳에서 사회와 이웃,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 놓았다.

1월 20일자 일기에는 용산구 철거사태에 대해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적었다.

6일 뒤 일기에는 '오늘은 설날이다…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역사 옆에서"= 김 전 대통령은 투병 중에도 역사와 한국 사회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3월 18일자 일기는 그의 '열공모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고 적은 글 바로 다음에 딱딱한 역사발전단계론을 적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봉건시대, 자본주의 시대 분석)…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3월 18일)

뒤이어 적힌 글은 변하고 있는 시대흐름을 부단히 좇아가려는 노 정치인의 정성이 담겨 있다.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IT 혁명 등으로 21세기 정치지형과 참여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인식이다. 쌍방참여식 정치, 소통형 정치의 시대가 올 것이란 점을 적시하고 있다 .

김 전 대통령은 투병 중에도 국가를 위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4월 2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쁜다'(2월 7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5월 2일) 집에서 '방콕'하며 행복해 하던 노 정치인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담은 일기를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치열했던 삶과 열정, 그리고 이웃과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는 통합과 화해를 촉구하는 '전령사'로 길이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