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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오늘도 떠나신대요” 본문
“선생님은 오늘도 떠나신대요”
국민일보 | 입력 2009.12.10 17:45
전남 섬마을 순회교사 정병연
11월 하순의 어느 화창한 화요일 오전. 카페리 '5호 청해진'이 둔중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전남 완도군 노화도 동천항을 출발했다. 배가 움직이자 갑판에 서 있던 파래 트럭에서 '후드둑' 짠물이 떨어졌다.
1600원짜리 승선 티켓을 들고 2층 갑판에 올라선 보길중학교(보길도) 도덕 교사 정병연(50)씨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댔다. "지난주엔 엄청시리 추웠는데 오늘은 왜 이리 따숩디야. 경치 멋있지라. 근데 나는 바다가 별로라."
배가 도착한 소안도 소안항에서 목적지 소안중학교까지는 정 교사 걸음으로 20분쯤 걸린다. 운 좋게 우체국 배달 차량을 만나면 2~3분 만에 학교에 도착한다. 물론 그런 행운은 드물다. "바닷바람 맞으며 걷는 게 쉽진 않다고. 하도 추운께 한동안은 혼자 등산복 입고 다녔제." 정 교사가 웃었다.
화요일, 오늘은 정 교사가 1주일에 한 번 이웃 섬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는 날이다.
보따리 교사 3년… "아이들이 천사지라"
정씨는 순회교사다. 1주일이면 보길중에서 나흘, 소안중에서 하루를 가르친다. 섬마을 순회교사는 올해로 3년째. 보따리 싸들고 학교를 옮겨 다니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교사 경력 20년을 넘긴 그는 2007년 3월 완도군 생일도와 금일도를 오가며 생애 첫 순회교사 생활을 경험했다.
정씨는 생일도 금일중 생일분교를 처음 방문한 날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했다. 생일도는 인구 1000명 남짓의 소도(小島). 운동장에는 잡초가, 교문에는 억새가 무성해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았다. 밤마다 학교 관사는 지네 놀이터로 변했다.
뱃길 적응도 지독히 힘겨웠다. 생일도와 금일도는 배로 10분 거리. 하지만 하루 2회 배편이 수업시간과 엇갈려 인근 약산도(조약도)를 경유하는 최소 2시간 코스를 선택해야 했다. 생일도에서 약산도 당목항까지 30분, 당목항 1∼2시간 대기, 다시 금일도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태풍 예보라도 있는 날에는 전날 오후에 미리 배를 타야 했다. 배가 묶여 수업을 건너뛰지 않기 위해서였다. 1주일에 이틀을 금일도 금일중에서 가르쳤던 정씨는 그렇게 매주 8∼12시간씩 뱃길에 흔들리며 2년을 보냈다.
막막하던 정씨의 마음을 녹인 건 아이들이었다. "거가 암것도 없어라우. 학원이고 피시방이고 자장면집이고 뭐시고 암것도 없어요. 그래 그런가. 전교생 19명이었는데 아들이(아이들이) 꼭 천사 같았지라우. 우리야 그라면 맘이 그냥 풀링께. 거그만 아니고 섬 학교선 왕따 같은 게 없어라. 동네 나가면 다 아는 얼굴이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인데 누굴 따돌리게. 여그선 그런 게 없다고." 화요일, 보길도와 소안도가 부산해지는 날
오전 9시. 소안중 소속의 음악 교사 정권수(56)씨가 도덕 교사 정씨의 여정을 거꾸로 짚어 보길도 보길중에 도착했다. 피아노 학원 한 곳 없는 보길도에서 학생들이 1주일에 하루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후 1시. 이번에는 소안중 체육 교사 박주희(37)씨가 가방을 쌌다. 박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배 타고 이동하는 도덕·음악 교사와 달리 그는 걸어서 5분이면 순회학교에 도착한다. 이날도 학교 뒤편 유자나무 동백나무가 늘어선 돌담길을 100m쯤 걸어 소안고등학교에 갔다.
박씨가 이동한 그 시간, 또 한 명의 교사가 움직였다. 소안고 미술 교사 이돈희(56)씨. 보길도와 소안도의 순회교사 4명 중 스케줄이 가장 복잡한 건 이씨였다. 두 섬을 통틀어 유일한 미술 교사인 이씨는 월·수요일 소안고, 화·목요일 소안중, 금요일 보길중에서 수업한다. 옮겨 다니기 바쁘다 보니 특기적성이나 방과 후 활동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미술부가 있으면 잘하는 애들이 저절로 모여들 텐데. 그런 게 예체능 교사가 존재하는 의미잖아요. 재능과 관심 있는 아이들을 찾는 것 말이에요. 수업하고 사라지니까 그런 활동할 틈이 없어요."
고민은 체육 교사 박씨에게도 있었다. 그는 "수업만 하고 오는 옆집 아저씨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도 '끝나고 갈 사람' 그런 느낌을 갖는다"며 "칭찬하고 야단도 치면서 부대껴야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파악하는 데 순회교사에겐 그런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교사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보길중 2학년 단짝 친구 고지호 임승경 이현정(14) 양. 악기를 배우고 싶은 현정이, 만화가가 꿈인 승경이,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는 지호는 상주하는 예능 교사가 없는 게 답답하다.
"플루트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싶어요. 근데 여긴 학원이 없잖아요. 음악 선생님이라도 계시면 좋은데. 여기선 수업만 하고 가시니까…."(현정)
"만화 캐릭터랑 애니메이션 같은 데 관심이 많거든요. 만화 학원이야 대도시에 있는 거니까 여기선 포기했어요. 미술부라도 있으면 그림을 그려볼 텐데."(승경)
"순회 선생님은 뭘 물어보려고 해도 힘들어요. 1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뿐이고. 게다가 금방 가셔야 하잖아요. 배 시간 때문에."(지호) 비상 걸린 전남 완도의 섬마을 학교
보길중 전교생은 71명이다. 대도시라면 교사 2∼3명이 담당해도 충분한 숫자지만 섬마을 작은 학교의 셈법은 다르다. 학생 수가 적다고 영어 교사가 수학을 가르칠 순 없다. 과목별로 1명씩 한 학교에 최소한 교사 10∼11명은 있어야 수업이 가능하다. 이 최소 인원이 부족해 나온 고육책이 바로 순회교사제. 순회교사가 해당 과목 교원이 없는 학교를 돌며 수업하는 방식이다.
보길중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8개 교과목 8명의 교사가 있다. 상주 교사가 없는 음악·미술은 소안중·소안고 교사가 순회수업을 한다. 소안중은 보길중·소안고에서 도덕·미술 교사를, 소안고는 소안중에서 체육 교사를 지원 받는다. 2개 섬 3개 학교에 형성된 일종의 '교사 풀'인 셈이다.
현재 전국 순회교사는 7008명. 2007년 5557명에서 2년 만에 1500명 가까이 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사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작은 학교의 교원 수를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순회교사는 증가하고 있다. 내년에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교과부가 학교별 최소 교원 숫자를 무시하고 학생 수만으로 교사 정원을 배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섬마을 작은 학교가 많은 전남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다. 올해도 1102명으로 전국에서 순회교사가 가장 많았던 전남은 교과부로부터 이미 788명 교사 정원 감축을 통보 받았다.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섬마을 학교. 전교생 58명인 소안중의 경우, 올해 교사 8명을 배정 받았지만 개정법이 통과되면 적은 학생 수만큼 교원 정원도 감축된다. 폐교를 막기 위해 순회교사를 늘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게 됐다.
당장 보길중에서는 체육과 기술가정 과목이 위태로워졌다. "체육 선생님이라도 있는 게 고맙다"던 보길중 세 친구. 그 말도 조만간 좋은 시절 얘기가 될 터였다.보길도·
11월 하순의 어느 화창한 화요일 오전. 카페리 '5호 청해진'이 둔중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전남 완도군 노화도 동천항을 출발했다. 배가 움직이자 갑판에 서 있던 파래 트럭에서 '후드둑' 짠물이 떨어졌다.
1600원짜리 승선 티켓을 들고 2층 갑판에 올라선 보길중학교(보길도) 도덕 교사 정병연(50)씨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댔다. "지난주엔 엄청시리 추웠는데 오늘은 왜 이리 따숩디야. 경치 멋있지라. 근데 나는 바다가 별로라."
화요일, 오늘은 정 교사가 1주일에 한 번 이웃 섬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는 날이다.
보따리 교사 3년… "아이들이 천사지라"
정씨는 순회교사다. 1주일이면 보길중에서 나흘, 소안중에서 하루를 가르친다. 섬마을 순회교사는 올해로 3년째. 보따리 싸들고 학교를 옮겨 다니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교사 경력 20년을 넘긴 그는 2007년 3월 완도군 생일도와 금일도를 오가며 생애 첫 순회교사 생활을 경험했다.
정씨는 생일도 금일중 생일분교를 처음 방문한 날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했다. 생일도는 인구 1000명 남짓의 소도(小島). 운동장에는 잡초가, 교문에는 억새가 무성해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았다. 밤마다 학교 관사는 지네 놀이터로 변했다.
뱃길 적응도 지독히 힘겨웠다. 생일도와 금일도는 배로 10분 거리. 하지만 하루 2회 배편이 수업시간과 엇갈려 인근 약산도(조약도)를 경유하는 최소 2시간 코스를 선택해야 했다. 생일도에서 약산도 당목항까지 30분, 당목항 1∼2시간 대기, 다시 금일도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태풍 예보라도 있는 날에는 전날 오후에 미리 배를 타야 했다. 배가 묶여 수업을 건너뛰지 않기 위해서였다. 1주일에 이틀을 금일도 금일중에서 가르쳤던 정씨는 그렇게 매주 8∼12시간씩 뱃길에 흔들리며 2년을 보냈다.
막막하던 정씨의 마음을 녹인 건 아이들이었다. "거가 암것도 없어라우. 학원이고 피시방이고 자장면집이고 뭐시고 암것도 없어요. 그래 그런가. 전교생 19명이었는데 아들이(아이들이) 꼭 천사 같았지라우. 우리야 그라면 맘이 그냥 풀링께. 거그만 아니고 섬 학교선 왕따 같은 게 없어라. 동네 나가면 다 아는 얼굴이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인데 누굴 따돌리게. 여그선 그런 게 없다고." 화요일, 보길도와 소안도가 부산해지는 날
오전 9시. 소안중 소속의 음악 교사 정권수(56)씨가 도덕 교사 정씨의 여정을 거꾸로 짚어 보길도 보길중에 도착했다. 피아노 학원 한 곳 없는 보길도에서 학생들이 1주일에 하루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후 1시. 이번에는 소안중 체육 교사 박주희(37)씨가 가방을 쌌다. 박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배 타고 이동하는 도덕·음악 교사와 달리 그는 걸어서 5분이면 순회학교에 도착한다. 이날도 학교 뒤편 유자나무 동백나무가 늘어선 돌담길을 100m쯤 걸어 소안고등학교에 갔다.
박씨가 이동한 그 시간, 또 한 명의 교사가 움직였다. 소안고 미술 교사 이돈희(56)씨. 보길도와 소안도의 순회교사 4명 중 스케줄이 가장 복잡한 건 이씨였다. 두 섬을 통틀어 유일한 미술 교사인 이씨는 월·수요일 소안고, 화·목요일 소안중, 금요일 보길중에서 수업한다. 옮겨 다니기 바쁘다 보니 특기적성이나 방과 후 활동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미술부가 있으면 잘하는 애들이 저절로 모여들 텐데. 그런 게 예체능 교사가 존재하는 의미잖아요. 재능과 관심 있는 아이들을 찾는 것 말이에요. 수업하고 사라지니까 그런 활동할 틈이 없어요."
고민은 체육 교사 박씨에게도 있었다. 그는 "수업만 하고 오는 옆집 아저씨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도 '끝나고 갈 사람' 그런 느낌을 갖는다"며 "칭찬하고 야단도 치면서 부대껴야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파악하는 데 순회교사에겐 그런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교사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보길중 2학년 단짝 친구 고지호 임승경 이현정(14) 양. 악기를 배우고 싶은 현정이, 만화가가 꿈인 승경이,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는 지호는 상주하는 예능 교사가 없는 게 답답하다.
"플루트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싶어요. 근데 여긴 학원이 없잖아요. 음악 선생님이라도 계시면 좋은데. 여기선 수업만 하고 가시니까…."(현정)
"만화 캐릭터랑 애니메이션 같은 데 관심이 많거든요. 만화 학원이야 대도시에 있는 거니까 여기선 포기했어요. 미술부라도 있으면 그림을 그려볼 텐데."(승경)
"순회 선생님은 뭘 물어보려고 해도 힘들어요. 1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뿐이고. 게다가 금방 가셔야 하잖아요. 배 시간 때문에."(지호) 비상 걸린 전남 완도의 섬마을 학교
보길중 전교생은 71명이다. 대도시라면 교사 2∼3명이 담당해도 충분한 숫자지만 섬마을 작은 학교의 셈법은 다르다. 학생 수가 적다고 영어 교사가 수학을 가르칠 순 없다. 과목별로 1명씩 한 학교에 최소한 교사 10∼11명은 있어야 수업이 가능하다. 이 최소 인원이 부족해 나온 고육책이 바로 순회교사제. 순회교사가 해당 과목 교원이 없는 학교를 돌며 수업하는 방식이다.
보길중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8개 교과목 8명의 교사가 있다. 상주 교사가 없는 음악·미술은 소안중·소안고 교사가 순회수업을 한다. 소안중은 보길중·소안고에서 도덕·미술 교사를, 소안고는 소안중에서 체육 교사를 지원 받는다. 2개 섬 3개 학교에 형성된 일종의 '교사 풀'인 셈이다.
현재 전국 순회교사는 7008명. 2007년 5557명에서 2년 만에 1500명 가까이 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사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작은 학교의 교원 수를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순회교사는 증가하고 있다. 내년에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교과부가 학교별 최소 교원 숫자를 무시하고 학생 수만으로 교사 정원을 배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섬마을 작은 학교가 많은 전남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다. 올해도 1102명으로 전국에서 순회교사가 가장 많았던 전남은 교과부로부터 이미 788명 교사 정원 감축을 통보 받았다.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섬마을 학교. 전교생 58명인 소안중의 경우, 올해 교사 8명을 배정 받았지만 개정법이 통과되면 적은 학생 수만큼 교원 정원도 감축된다. 폐교를 막기 위해 순회교사를 늘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게 됐다.
당장 보길중에서는 체육과 기술가정 과목이 위태로워졌다. "체육 선생님이라도 있는 게 고맙다"던 보길중 세 친구. 그 말도 조만간 좋은 시절 얘기가 될 터였다.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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