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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선생님 23년차, 또 한 번의 해직 본문
전교조 선생님 23년차, 또 한 번의 해직
시사INLive | 장일호 | 입력 2010.05.27 16:28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경기 시흥 하중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은 전날과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곤 밀물처럼 교실을 빠져 나갔다. 이제 열두 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녀석들의 하굣길은 빙글빙글 돌려 대는 실내화 가방 마냥 신났다. 학생들은 "선생님, 내일 또 만나요"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 밖으로 사라지곤 했다.
"아이들에게 이번 일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요…" 남궁경 선생(47)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 학생들에게 조만간 닥쳐올 '이별'을 설명해야만 한다. 지난 5월23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교사 183명에게 파면·해임 결정을 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남 선생은 그 183명 중 한 명이다. 굳이 징계가 아니어도 소송 때문에 심란한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남 선생은 귀를 의심해야 했다.
어느덧 교직 생활 23년차. 남 선생은 부임한지 1년 10개월만이던 1989년,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이미 한차례 해직을 경험한 바 있다. "1995년 특별채용으로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거리의 교사'로 보낸 4년 6개월의 시간이 다시 반복 되겠구나, 생각하니 참담했어요. 아침에 학교에 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20년 전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려야 한다는 게 비극이죠." 말을 잇던 남 선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교과부는 교사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당비를 납부한 것이 국가공무원법·정당법·정치자금법 위반 행위라고 했다. 그러나 남 선생은 "가입한 적도 없는 정당의 당원일리 만무하다"라고 주장했다. 남 선생이 받은 소장에도 '민주노동당 당원(또는 당우)'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소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을 당원이라고 보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남 선생은 민주노동당에 한 달에 1만원 정도씩 보냈던 후원금을 시민단체에 보낸 후원금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에게 몇 백만원씩 후원하곤 하는 교장들도 있었다. 다소 피곤하겠지만 법정에서 다투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 선생은 무죄를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기소만으로 징계를 결정한 교과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교과부는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나오면 '그 때 가서' 복직소송을 하라고 말해요. 길게는 2년여까지 걸릴지 모르는 소송 과정을 생각하면, 이번 징계 결정이 정부에 비판적인 전교조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상당히 정치적인 판단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징계 소식을 전해들은 교장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은 자기 일처럼 속상해 했다. "지지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힘이 나죠" 20대 중반의 막내 선생님도, 옆 반 선생님도, 남 선생의 교실을 찾아와 끌어안고 함께 울어줬다. 남 선생이 학년주임으로, 5학년 3반의 담임선생님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을 아는 탓이다.
'참여수업'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함께 꾸려 놓은 텃밭의 고구마도, 상추도, 아직 남 선생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상추가 잘 자랐기에 조만간 학부모를 초청해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남 선생은 그 자리가 이별을 고해야 하는 자리가 될까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숲이 있는데, 숲 체험 하면서 나뭇잎에 시를 써보기도 하고, 추석에는 함께 송편도 만들려고 했는데…. 가을 운동회는 어쩌죠?" 아직 학생들과 해보지 못한 계획 하나하나를 체크하던 남 선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여 수업 외에도 학교 업무와 수업을 병행하면서 따로 꾸려왔던 교과연구모임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에 징계 당한 선생들의 다수는 남 선생처럼 중년의 가장이다. 이번 징계 처분이 '대학살'이라는 전교조의 주장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남 선생은 첫 번째 해직을 당했던 1989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가족'이라고 했다. 남 선생이 결혼하기 이전 이십대 중반의 당시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긴 지금은 '해직교사'라는 이름의 무게가 다르다. 자영업을 하며 수입이 일정치 않아 상당 부분의 생활비를 남 선생에게 기대왔던 남편은 미안해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2 아들은 당장 한 군데 다니던 영어 학원을 끊겠다고 말하거나 부쩍 뉴스를 챙겨보며 질문이 많아졌다. 남 선생은 교사 이전에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남 선생에게 전교조는 여전히 '자부심'이다. "혹여나 나 하나가 잘못되면 전교조 전체에 영향을 줄까 싶어서 교사로서 좀 더, 좀 더 열심히 일하는 채찍질의 역할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교조의 건강성을 믿습니다." 그는 그동안 잘못된 교육방식, 학교운영 비리 같은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오고 변화를 이끌어 온 것이 전교조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수업'의 그 날이 곧 닥쳐올테지만, 남 선생은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증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이다. 빈 교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교실을 정돈하는 남 선생의 손길이 분주했다. "제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설명해줘야겠죠. 그래도 무엇보다 당장 내일 수업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밌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큽니다(웃음)"
"아이들에게 이번 일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요…" 남궁경 선생(47)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 학생들에게 조만간 닥쳐올 '이별'을 설명해야만 한다. 지난 5월23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교사 183명에게 파면·해임 결정을 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남 선생은 그 183명 중 한 명이다. 굳이 징계가 아니어도 소송 때문에 심란한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남 선생은 귀를 의심해야 했다.
어느덧 교직 생활 23년차. 남 선생은 부임한지 1년 10개월만이던 1989년,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이미 한차례 해직을 경험한 바 있다. "1995년 특별채용으로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거리의 교사'로 보낸 4년 6개월의 시간이 다시 반복 되겠구나, 생각하니 참담했어요. 아침에 학교에 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20년 전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려야 한다는 게 비극이죠." 말을 잇던 남 선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시사IN 장일호 말을 잇던 남궁경선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
남 선생은 무죄를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기소만으로 징계를 결정한 교과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교과부는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나오면 '그 때 가서' 복직소송을 하라고 말해요. 길게는 2년여까지 걸릴지 모르는 소송 과정을 생각하면, 이번 징계 결정이 정부에 비판적인 전교조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상당히 정치적인 판단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징계 소식을 전해들은 교장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은 자기 일처럼 속상해 했다. "지지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힘이 나죠" 20대 중반의 막내 선생님도, 옆 반 선생님도, 남 선생의 교실을 찾아와 끌어안고 함께 울어줬다. 남 선생이 학년주임으로, 5학년 3반의 담임선생님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을 아는 탓이다.
'참여수업'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함께 꾸려 놓은 텃밭의 고구마도, 상추도, 아직 남 선생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상추가 잘 자랐기에 조만간 학부모를 초청해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남 선생은 그 자리가 이별을 고해야 하는 자리가 될까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숲이 있는데, 숲 체험 하면서 나뭇잎에 시를 써보기도 하고, 추석에는 함께 송편도 만들려고 했는데…. 가을 운동회는 어쩌죠?" 아직 학생들과 해보지 못한 계획 하나하나를 체크하던 남 선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여 수업 외에도 학교 업무와 수업을 병행하면서 따로 꾸려왔던 교과연구모임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에 징계 당한 선생들의 다수는 남 선생처럼 중년의 가장이다. 이번 징계 처분이 '대학살'이라는 전교조의 주장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남 선생은 첫 번째 해직을 당했던 1989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가족'이라고 했다. 남 선생이 결혼하기 이전 이십대 중반의 당시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긴 지금은 '해직교사'라는 이름의 무게가 다르다. 자영업을 하며 수입이 일정치 않아 상당 부분의 생활비를 남 선생에게 기대왔던 남편은 미안해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2 아들은 당장 한 군데 다니던 영어 학원을 끊겠다고 말하거나 부쩍 뉴스를 챙겨보며 질문이 많아졌다. 남 선생은 교사 이전에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남 선생에게 전교조는 여전히 '자부심'이다. "혹여나 나 하나가 잘못되면 전교조 전체에 영향을 줄까 싶어서 교사로서 좀 더, 좀 더 열심히 일하는 채찍질의 역할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교조의 건강성을 믿습니다." 그는 그동안 잘못된 교육방식, 학교운영 비리 같은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오고 변화를 이끌어 온 것이 전교조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수업'의 그 날이 곧 닥쳐올테지만, 남 선생은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증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이다. 빈 교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교실을 정돈하는 남 선생의 손길이 분주했다. "제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설명해줘야겠죠. 그래도 무엇보다 당장 내일 수업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밌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큽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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