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1 본문

.....古典(고전)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1

AziMong 2007. 2. 24. 21:06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1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뭇 사내의 가슴을 숯덩이로 만든 시기(詩妓) 김부용(金芙蓉)이라 해요. 고향은 평안도 성천이고요, 시명(詩名)은 운초(雲楚)여요. 저는 송도의 황진이(黃眞伊)와 부안의 이매창(李梅窓)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털어 시 잘 짓고 노래 잘 부르는 명기라고 세상에서 이야기해요. 사랑의 기쁨을 아세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인 저는 하는 수 없이 어느 늙은 기생에게 몸을 의탁해 기생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겨우 제 나이 열 두 살 때지요. 재능이 총명하고 기예에 탁월했던 저는 시면 시,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높은 기량을 보였어요. 곧 천하의 명기로 소문나 술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어요. 얼굴까지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빰 때릴 정도로 예뻐서 머리를 얹어 주겠다고 추근대는 한량들이 몇 트럭이나 되었지요. 저는 미모를 뽐내며 오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 때문에 사또의 수청을 놓쳐버린 다른 기생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가졌어요.

하지만 부임하는 사또마다 저만 수청을 들라하니 동료 기생들의 시샘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관청에 얽매인 가련한 신세이고, 또 사또의 사랑을 받아야만 먹고 사는 노류장화들이여요. 냉정한 세상이지요. 그래서 모두들 사또의 사랑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을 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뭔지 마음이 허전하고 외롭기만 하였어요. 모두 지나가는 나그네들 뿐으로 제 몸뚱이만 탐하는 이리에 불과했어요. 진정코 제가 마음을 기댈 남자는 어디에도 없는 거여요.

그래요. 젊고 뜨거운 가슴을 꼭 껴안아 줄 내 낭군은 언제까지도 나타나지를 않을 지 몰라요. 인생을 한탄하기도 해 보았어요. 사랑은 인간의 의지와는 가장 동떨어진 먼 킬리만자로의 늙은 표범처럼 고독한 혼령의 투쟁이라 하지만은 가슴에 타오르는 ‘사랑하고픈 마음’을 정박시킬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돛대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니는 신세로 하루 하루를 안 운 날이 없어요.

차츰 나이까지 먹자 어떤 절박감이 다가 왔어요. 아마도 나만이 낙오되어 추락할 지 모른다는 본능적 직감에서 나온 반발 음이었을 거여요. 속절없이 세월만 가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어요. 여자로 태어나 사랑도 없는 늙은 남자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았어요. 저의 이 고독과 절망감을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마침내 기회가 왔어요. 열 아홉 살이 되었을 때지요. 새로 부임한 사또가 평양 감사에게 인사 차 가면서 저를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저의 마음을 꽁꽁 붙잡아 매는 멋있는 남자가 있었어요. 일찍이 시문을 통해 인품을 사모해 오던 분이었고 또 도골선풍형으로 인자한 분이였어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그 분은 평양 감사를 지낸던 김이양(金履陽, 1755~1845) 대감으로 그 때 대감의 연세는 자그만치 77세였어요. 19살의 꽃다운 저와 인생의 황혼기를 넘긴 노객이 서로 눈이 맞춘 겁니다.

황당하고 기가 막히다고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분이거나 아니면 사랑이 대하여 모르는 분일거여요. 사랑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는 없어요. 내 스스로 살아갈 인생을 선택하는 절대절명의 기회이니 타인이 관여할 몫도 아니지요. 사랑을 삶을 지탱하는 의미로 볼 때 제가 원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체적인 욕구라고요. 따라서 사랑이 타인의 삶과 정신을 황폐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랑에 따른 행위나 판단에 대하여 도덕과 이성을 들먹이며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사랑은 도덕이나 냉철한 이성보다는 분명히 더 양심적이고 따뜻한 그 무엇이여요.

김 대감께서 저에게 말했어요. “아리따운 젊은 시인이 나 같은 노객을 상대할 수가 있겠는가?” 저는 단호하게 진심을 말했어요. “뜻이 같고 마음만 통한다면 연세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세상에는 삼십 객 노인도 있는 방면에 팔십 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저의 사랑의 고백이 어때요? 요즘도 돼먹지 못한 애 늙은이보다 젊잖고 패기있는 기혼 남자가 더 멋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비록 제 낭군은 나이가 들어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시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맞추고 사니 사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기를 바랬고, 세월만 짧게 느껴졌어요.

남자는 아름다운 배입니다. 여자를 아주 먼 곳으로 데리고 가 새로운 세상을 싫토록 구경시켜 주는 신기한 배여요. 김 대감과의 생활은 너무도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매일 사뿐사뿐 구름 위로 걸어다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것은 제가 스스로 선택한 만족이며 또다른 자유였어요. 서로를 얽매지 않은 채 그가 있어 내 삶이 좀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정령코 그건 자유였어요. 여자는 그가 있어야할 자리에 제대로 있을 때에 가장 커다란 행복을 느끼지요.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2

그러나 꿈같은 세월은 덧없이 흘러 가 우리는 이별의 기로에 섰어요. 임기가 차자 대감은 호조판서에 제수되어 한양으로 가야만 했어요.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대감은 저를 기적(妓籍)에서 빼내 양인의 신분으로 만들어주더니 정실 부실(副室)로 삼았어요. 그리고는 곧 부르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떠나갔어요.

이별이란 누구에게나 눈물겹고 슬프지만 그 애탐은 전적으로 그가 겪은 사랑의 깊이에 좌우돼요. 사랑하면 욕심이 생겨 이별을 두려워하게 되지요. 사랑이 다가올 때도 한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선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오듯이 사랑을 보내야 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만남과 이별은 하늘이 만드는 운명임으로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가 없는 거여요. 그것은 생이 유한한 인간으로써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고요.

생 이별을 한 저는 재회의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다시 외롭고도 그리운 나날을 보냈어요. 그러나 한 번 떠난 김 대감은 몇 달이 가도 소식이 없었어요. 아마도 중책을 수행하느냐 짬이 없었나 봐요. 그래도 멀리 있는 대감을 생각하면 때로는 보고도 싶고 때론 잊지나 않았나 의심도 들고 원망도 많이 했어요. 때로는 격한 슬픔에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적도 있어요. 피골이 상접하고 눈까지 휑하니 들어가 파릿파릿한 젊음이 일시에 삭아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나 곧 부르겠다던 약속은 해를 넘기고 시절이 바뀌어도 편지 한 장이 없었어요.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피를 토하는 듯한 애절한 시를 써서 대감에게 보냈어요. 그 시가 제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부용 상사곡’이란 보탑시이여요. 한 번 읽어보시면 제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거여요.

이별하옵니다/ 그립습니다/ 길은 멀고/ 글월은 더디옵니다
생각은 님께 있으나/ 몸은 이 곳에 머뭅니다/비단 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향각서 종소리 들려 오는 이 밤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이 때/ 쓸쓸한 베게에 의지했다가
잔몽에 놀라 깨어 돌아오는 구름을 바라보니/ 멀리 떨어져 있음이 슬픔니다
만날 날 수심으로 날마다 손꼽아 기다리며/ 새벽이면 정다운 글월 펴 들고
턱을 괴고 우옵니다
용모는 초췌해져 거울을 대하니 눈물 뿐이고/ 목소리도 흐느끼니 사람 기다리기가 이다지도 슬픔니다
은장도로 장을 끊어 죽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의 심도 많읍니다
어제도 안 오시고 오늘도 안 오시니 낭군을 어찌 그리 신의가 없읍니까/ 아침에도 멀리 바라보고 저녘에도 멀리 바리 보니 첩만 홀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대동강이 평지가 된 뒤에나 말을 몰고 오시려 합니까/ 장림이 바다로 변한 뒤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오렵니까/ 이별은 많고 만남은 적으니 세상사를 누가 알 수 있으며/ 악연은 길고 호연은 짧으니 하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읍니까
운우무산에 행적이 끊기었으니 선녀의 꿈을 어느 여자와 즐기시나요/ 월하봉대에 피리 소리 끊기었으니 농옥의 정을 어떤 여자와 나누고 계십니까
잊고자해도 잊기가 어려워 억지로 부벽루에 오르니 안타깝게도 홍안만 늙어가고/
생각치 말자해도 절로 생각나 몸을 모란봉에 의지하니 슬프도다 검은 머리 자꾸 쇠해가고/ 홀로 빈 방에 누우니 눈물이 비오 듯하나 삼생의 가약이야 어찌 변할 수 있으며/ 혼자 잠자리에 누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백 년 정심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낮잠을 깨어 창을 열고 화류계년을 맞아들여 즐기기도 했으나 모두 정 없는 나그 네 뿐이고/ 베게를 밀고 향내 나는 옷으로 춤을 춰 보았으나 모두가 가증한 사내 뿐 입니다.
천리에 사람 기다리기 어렵고 사람 기다리기 이토록 어려우니 군자의 박정은 어찌 이다지도 심하십니까/ 삼시에 문을 나가 멀리 바라보니 문을 나가 바라보기 애처 로운 천첩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읍니까
오직 바라옵건데 관인하신 대장부께서는 강을 건너 오셔서 구연의 촛불 아래 흔연 히 대해 주시고/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가운데서 길이 울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한 번 떠난 님을 생각하면 시름은 하염이 없었어요. 처마 밑에서 까치 울음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하며 놀라 잠을 깨었어요. 그 때 한양에서 예조참판을 지내는 강순황 대감이 평양을 오셨어요. 그 분이 저를 만나자는 기별을 해 와 저는 행여나 대감의 소식이라도 듣고자 찾아갔지요. 그 분도 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계셨고, 저 또한 마음은 솔깃했으나 어떻게 고무신을 꺼꾸로 신어요?

저는 이미 한 남자의 여자로 비록 연정과 미더움이 두 가슴에 남았다해도 헤어져야할 인연이지요. 술상을 앞에 두고 저와 강 대감은 밤이 늦도록 인생의 덧없음과 애환을 이야기했을 뿐이여요.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오고 지나간 시간은 빨라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던가요. 사랑의 단절이 가져다 준 상실감은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었어요. 주렴이 봄 바람에 흔들여도 행여나 님이 온 것은 아닐까싶어 깜짝 깜짝 놀라고, 해가 서산에 저물어도 아쉬워 사립문을 못 닫았어요.

아! 그런데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대감이 저를 한양으로 불렀어요, 의심이 가시며 새 살이 돋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는 남산 중턱에 신방을 차리고는 그곳을 ‘녹천당’이라 불렀어요. 김 대감은 친구 분들을 불러 함께 즐기며 놀았고 친구분들도 저를 ‘초당마마’라 부르며 무척이나 아껴주었어요. 벼슬에서 물러난 대감은 과거에 급제한 지 60년이 되는 해에 회방 잔치를 벌렸어요. 그리고 대감은 저를 선영이 있는 천안 태화산으로 데리고 가 참배를 시켰어요. 정식으로 김씨 문중의 여자로 인정해 주셔 마음은 기쁘면서 뿌듯했어요.

아! 그런데 회자정리라고 했던가요.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봐요. 김 대감은 92세의 천수를 누리고는 제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았어요. 그 때 제 나이는 33세 이었어요. 대감을 잃은 저는 일체 바깥 출입을 금하고는 오직 집안에 제단을 차려놓고서 대감의 극락왕생만을 빌었어요. 오직 즐거움이 있다면 꿈에서 대감을 만나 즐겁게 지내는 순간 뿐이었어요. 저 역시 죽음이 가까워지자 저는 유언을 남겼어요. “저를 대감이 계신 태화산에 묻어 주세요.” 대감의 후손들은 유언을 뿌리치지 않고서 저를 대감과 가까이 있는 곳에 묻어주었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저의 무덤은 화려하거나 위엄스럽지 않아요. 그저 생전의 제 모습처럼 소박하고 정갈하지요. 저는 찾아오는 손님을 위하여 사시사철 패랭이 꽃을 피워놓아요. 패랭이꽃은 화려하거나 추하지 않아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꽃이여요. 태화산에는 광덕사가 있고, 그 경내로 들어서면 저의 무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서 있어요. 저는 술을 팔던 기생이여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울하거나 출출할 때면 부담없이 들려주세요. 기생의 집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변함없이 술집이니까요.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3

아, 운초야! 세월은 흘러 또 낙엽지고 눈 내리는 계절이 되었구나. 날씨조차 차가워지니 보고싶은 마음 간절하고, 네 모습을 그려보니, 구름 속의 달처럼 보였다 사라졌다하여 마음만 더욱 아프구나. 마음이야 항상 네 곁에 머물지만 몸만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하는 저승 길이 오늘 따라 더욱 야속하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밤은 너를 그리워하며 애절한 상사곡을 부른다.

사랑하는 운초야! 만남이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집착이 지나쳐 욕심이 생기면 만남의 의미도 송두리채 사라져 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좋은 만남인가 아니면 잘못된 만남이냐의 판단은 만남에 있지않고 헤어짐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세상이 변하여 남여가 서로 만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 만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헤어질 때에 가슴 가득히 고마움과 아쉬움을 간직하면 그건 좋은 만남이고, 더 이상 그리움이 없다면 아마 잘못된 만남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만남을 좋게 만들려면 과정을 성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어렵게 가꾼 사랑일수록 비록 고통은 크지만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사랑이 될 것이다.

생떽지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어느 혹성에 장미를 남겨둔 채 떠나왔는데, 항상 그 장미를 걱정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장미가 시들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몸은 떠나 있지만 어린 왕자가 늘 장미를 생각하는 이유는 장미에게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정성을 통해서만 사랑도 자라나고 만남의 의미도 커 나간다. 가꾸지 않은 채 젊음과 아름다움만 빼먹다보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부단한 정성만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것이며 끝내 귀하게 여길 것이다.

사랑하는 운초야! 젊음이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과정일 뿐이다. 패기와 야망이 번뜩이는 젊음도 세월을 두고는 어쩔 수 없이 늙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기의 의견이나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느리라. 되돌아 본 인생은 언제나 짧고 또 허망함 뿐이다. 막연히 앞만 바라보며 사는 네가 걱정스러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어 버렸다. 마치 전생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어야 할 사람,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단정하고, 그렇지 않을까 봐 항상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사랑은 자유여야 하고 그가 있음으로 내 삶이 더 풍부하고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자유여야 한다.

운초야! 백낙천(白樂天)이 지은 ‘태행로(太行路)’라는 시를 기억하느냐. 그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태행산의 험한 길과 무협의 뱃길에 비유하면서, 끝마무리에 ‘세상살이의 험난함은 산 때문도 아니요, 물 때문도 아니니 오직 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럽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자기가 처한 현실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도록 노력해 보거라. 행복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그러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찾고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신명나는 일일 수가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나 너무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최고의 가치로 삼을 경우에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세상이나 내 자신이 추구하는 선이나 가치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 간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야 한다. 그러니 정을 나눔에 있어서도 분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길이 우리의 만남을 영원히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는 진리의 길이다.

운초야! 아득한 견우성은 희고 밝은 은하수 옆 직녀성을 오매불망 그리지만 무(無)는 유(有)를 더욱 가치있게 함을 믿는다. 아! 고개드니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그 속에 운초의 얼굴이 가득 담겨 있구나. 달아 너는 본성이 변덕스러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항상(恒常)하지 못함을 알았도다. 하지만 비록 구름에 가리고, 태양에 눈 멀고,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 해도 너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만은 빼앗지 못하리라. 너는 실체가 아닌 허상(虛象)이기 때문이다. 달아, 너는 한 평생 시흥(詩興)을 돋을 나의 좋은 벗이니라.
사랑하는 운초야, 너 또한 달이거라.


'.....古典(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진이의 생애와 사랑  (0) 2007.02.24
황진이 내사랑  (0) 2007.02.24
율곡 선생의 연인, 유지  (0) 2007.02.24
심희수 정승의 출세기 일타홍  (0) 2007.02.24
매춘의 역사  (0) 2007.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