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내사랑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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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에 있어 여류문학은 기녀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으며, 시조문학이 양반귀족들에게 국한된 듯한 감을 주나 차차 대중화되면서 명실상부한 평민문학으로 폭이 넓어졌다. 기녀는 남존여비의 사회체제하에서 남성이 느낄 수 없는 한을 안고 살아야 했던 여성인 동시에 그 본질이 사치노예인 천인계급에 속하는 존재였다. 여필종부가 여성의 당연한 도리로 강요되고 칠거지악이란 일방적인 벌칙이 행해지던 사회에서 대체로 여성의 생활은 겹겹이 씌워지는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었으며, 윤리적 당위성을 앞세운 잡다한 구속 때문에 그들의 생활반경은 한없이 위축되어 많은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다른 부류의 여성들과는 달리 남녀간의 접촉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존재였다. 기녀는 남성들의 노리개로서 아무렇게나 이용당하는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으면서도 위로는 왕후장상으로부터 아래로는 기부인 천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폭넓은 남성편력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남성들의 합법적인 외도의 대상으로서 기녀들은 각종 연회에 나가 가무를 제공하고 사대부, 문인, 묵객의 주석과 시회에서 높은 풍류와 접하는가 하면 여체를 갈망하는 숱한 남성들 틈에서 인생의 밑바닥을 체험하며 다른 부류의 여성과는 달리 비련과 자한에 울어야 했으나 그들은 천부적인 재능과 남성들과의 접촉과정에서 얻어진 풍류와 낭만의 분위기로 해서 숙명적인 한과 고독을 문학에로 승화시킬 수가 있었다. 현존하는 기녀 작품은 60여 수에 불과하며 모든 가집에 나타나 있는 기녀작가는 28명에 이르고 있다. |
그 중에는 숱한 남성들을 정복했고, 또한 뭇 남성들의 연인이었던 황진이의 주옥같은 시조와 가신 임 그리워 밤마다 베개를 적셨던 홍장의 박신에 대한 애모의 시조, 또 군왕을 향한 천기의 애절한 순애보인 소춘풍의 비애의 시조, 버들가지에다 사랑의 하소연을 의탁했던 최경창에 대한 홍랑의 애별의 시조, 정철과 시로 주고 받으며 차원높은 애정을 노래했던 진옥의 시조, 촛불 속으로 녹아드는 가야금 선율로 멋쟁이 한량인 임제를 쟁취했던 한우의 시조, 기약없이 떠나는 유희경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흐느낀 열아홉 계랑의 상사의 별한시조, 홍시유의 사랑에 여인의 그칠 줄 모르는 정한을 죽음으로 승화시켰던 매화의 애절의 시조, 박준한의 한마디를 믿고 그리움과 원망으로 살다가 중이 되어 버린 송이의 비연의 시조 등 작품 하나하나에 나타난 애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회한과 원망, 그리움을 유발시키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듯 여러 기녀들과 그들의 알뜰한 사랑이 담겨진 주옥같은 작품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절창의 작가요, 다정다한한 여운을 남긴 작가는 황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본고에서는 고대 여성문학의 대변자 구실을 해온 황진이의 생애와 작품 속에 나타난 애정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
황진이 내사랑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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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은 남성과의 접촉이 자유로왔던 관계로 이성애에 굶주린 남성들의 좋은 사랑의 대상물이 되기도 했으나 그들의 신분이 천인계급이었던 관계로 사랑은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아 숙명적인 비연의 주인공이 되어 고독과 상사고 속에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렇지만 기녀들이 읊은 별리, 고독, 상사로 이어지는 비련의 작품에서 원사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서 기녀의 비련의 생활이 훌륭한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고 본다. |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황진이의 생애와 그 문학에 나타난 애정관을 살펴 보았는데 한마디로 황진이 문학은 이별의 한과 그리움으로 일관된 문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로 한국문학에 있어 이별의 한을 노래한 작가는 많지만 황진이처럼 절실하게 세인의 가슴을 울렸던 작가는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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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 '가시리'에서 이어지는 이별의 한은 이렇듯 황진이 시조에서 정제되어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이어진다. 고려가요 '가시리'에서의 여자의 한은 임이 떠나는 것을 자기가 보내는 것처럼 승화시키는 동양적인 여인의 체념을 나타내어 행여 떠나는 임을 붙잡으면 |
서운히 생각하여 영영 오지 않을까 잡지 못하는 연약한 여인의 소극적인 자세로 진상을 확인하고 싶지 않는 감정과 비극을 은폐하고 보류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생에 대한 가냘픈 꿈과 그 꿈조차 오히려 체념한 바람같이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으로 보내는 것으로써 스스로 충만하게 하는 허전한 심정과 애달픔을 노래했던 것이다.
'진달래꽃'에서도 내곁을 떠나실 때에는 많은 하소연이 있을지라도 슬픔을 삼키며 곱게 보내드려서 자기희생을 다짐하며 임의 앞길을 축복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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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장면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은 한국녀성 특유의 자제와 인고가 나타난 애이불비라 할 수 있겠다. 죽어도 보내서는 안될 임을 눈물없이 보내야 하는 슬픔이 극도에 다다른 극한 상황의 표현이다. 황진이의 작품에는 그녀의 진실한 인간의 숨결과 몸부림이 스며 있다. 작품 내용도 기녀였기에 겪어야 했던 고독, 실연, 체념, 상사, 별리의 아픔이며 뭇 남성들과의 로맨스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절의, 연회석에서 남성들의 요구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읊은 기지는 황진이 문학의 체념할 줄 모르는 사랑의 갈구에서 보여준 끈기며 기녀다운 독특한 멋의 추구로서 전통적인 민족의 리듬으로 고대 여성의 정한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으로 한국 여성 문학의 계승자이며 한국적 애정관의 선구자로서 그녀가 간 지 수백 년이 흘렀지만 남긴 주옥같은 작품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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