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생애와 사랑
(1) 黃眞伊의 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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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진이요, 별명이 진랑이며 기명이 명월인 황진이는 중종때 송도의 이름 높은 명기로서 출생에서부터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그의 부친인 황진사가 길을 가던 도중 병부교 아래 맑은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름다운 처녀인 진현금에게 물을 청하고 서로 나누어 마실 때 마주치던 눈길이 인연이 되고 한 쪽박의 물이 합한주가 되어 당대의 절세가인 황진이를 낳았다고 하는 '황진사서녀'라는 설과 '장님의 딸'이라는 설이 있다. 황진이의 확실한 생몰년대는 미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중종(1506∼1544)대와 명종(1544∼1567)대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당대 사적 인물 중 화담 서경덕(1489∼1544)선생과 백호 임제(1549∼1587)의 작품상의 연대 배경으로 볼 때 절정의 기녀 생활은 명종대까지로 보나 출신과 기녀 생활은 중종대이므로 중종조 사람으로 기록되어야 옳을 것이다.
(2) 黃眞伊가 妓女가 된 動機
황진이가 기녀가 된 이유에는 구구한 전설이 많은데, 그녀의 용모가 너무나 아름답고 일거일동이 예절바름에 감탄해서 연정을 품었던 이웃에 사는 '홍윤보'라는 총각이 있엇다. |
가난한 살림에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으나 어려서부터 같은 이웃에서 자라온 진이의 모습이 그의 마음 속에 큰 비중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커서 정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그녀는 자기가 생각할 수 없는 먼 곳으로 자꾸자꾸 멀어져 갔다. 이 총각은 매일매일의 하는 일에 기쁨이 없었고, 진이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져 갔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 기회도 영영 오지 않았다. 마침내 상사병으로 몸져 눕게 되고 안타까움을 하소연도 못한 채 아지랑이가 운무처럼 내리는 이른 봄 어느 날 눈을 감고 말았다. 그후 사체를 장례 지내러 가는 도중 진이의 문앞에 이르러선 움직이지 않아 평소에 즐겨 입던 속적삼과 꽃신을 주어 운구를 덮게 하니 비로소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러한 계기로 감각이 예민한 진이는 항상 마음이 괴로웠고, 날이면 날마다 자기를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다가 죽어간 넋을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미모로 인하여 또다른 총각을 죽일까 염려하여 호화롭고 귀염받는 생활의 행복을 버리고 스스로 명월이라 하며 기생이 되었다고 하는 설, 또한 자신이 서출임을 비관하여 기생이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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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黃眞伊의 로맨스
황진이는 38세라는 짧은 일생을 두고 세상의 풍류남아와 영웅호걸은 원근을 불문하고 모두가 자기의 임이요, 사랑이라고 했다. 항상 정남을 장담하던 벽계수 이창곤을 달밤에 만월대로 유혹하여 색에 지조를 뽐내던 자존심을 한 수의 시조로 여지없이 무너뜨린 일, 한양에서 내려온 양곡 소세양과 더불어 생갑사 치마자락을 끌고 천수원 허물어진 누대 위에서 가는 세월 원망하며 같이 즐기고는 자기 곁을 떠난 후 영영 찾아 오지 않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생각하다 그리워하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이별의 서러움을 괴로워하는 심정, 산좋고 물좋은 명산대천을 찾아 금강산에서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명문 재상가의 |
이석도령과 팔도강산을 유람하던 시절, 다시 송도땅으로 돌아와 지난날의 남가일몽을 생각하며 허무감을 느꼈고 30년을 두고 면벽참선한 지족암의 만석선사를 파계시킨일, 부귀영화도 싫을세라 선전관이었던 명창 이사종과의 동거생활, 이럴 때면 황진이도 아주 평범한 필부로 돌아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생각하며 여자로서의 운명을 다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을 것이다.
속세를 멀리하고 성거산 화담에 집짓고 도통하는 서경덕 선생을 유혹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일생동안 흠모하여 가르침을 받은 황진이는 송도삼절로 박연폭포(절승), 서경덕(절윤), 황진이(절색)을 자칭하였으니 얼마나 대담하고 자신감을 가진 존재였는가를 알 수 있다.
(4) 花譚과 李士宗에게로 향했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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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한평생 서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늘 거문고와 녹주를 가지고 화담이 사는 초야에 가서 즐기다가 가곤 하였다.
하루 이틀 만남이 깊어짐에 따라 화담과 황진이는 스승과 제자로서의 정이 이성으로서의 정으로 변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 높은 화담은 글을 배우러 오는 그녀를 허심탄회하게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요, 그녀 역시 스승으로서의 존경을 넘어서는 마음의 흔들림을 붙잡으려고 고심했을 것은 인지상정이다. |
이런 감정의 갈등 속에서 진이가 화담을 찾는 날이 뜸해지자 서경덕은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밤은 깊고 적막한데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 놀라 영창을 열고 혹시나 그녀가 올까 기다려 보다가 화담 자신의 모습에 고소를 머금으며 다시 문을 닫고 불은 껏으나 잠이 오지 않아,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라고 어둠 속에 홀로 앉아 기다려지는 심정을 읊었다. 그렇게 고고한 화담도 인간인지라 사랑에 대한 순결하고 겸허한 인품이 솔직히 나타나 있고, 그의 고독한 심정이 눈물겹도록 여실히 나타나 있다.
산마루에 잎이 지고 낙엽이 떨어질 때는 독수공방의 외로움이 더욱 적적하고 자기 곁을 떠난 님(진이)을 찾는 담백한 정이 넘치는 시상이라 할 수 있겠다.
황진이는 모든 남성을 자기에게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벽계수의 근엄함을 쉽게 꺾은 마음 뒤에 오는 허전함을 메울 길이 없었다. 믿음직한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가정을 가진 주부로서의 생활을 갖고 싶어했다. 남달리 다정다감한 그녀였기에 허전함은 그녀에게 불면의 밤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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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당대의 명창 이사종을 만난 것은 27세 때였다. 화담이 생전에 거쳐하던 서사정 초당을 찾아 보고 오던 길에 마침 박연폭포와 송악산을 구경하고 오던 이사종을 만났던 것이다.
황진이는 자신이 정복할 수 있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자신이 사랑을 바쳤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곁을 떠났다. 진이에게 있어서 첫남자였던 부운거사 김경원이 그랬고, 화담선생이 그랬으며, 양곡 소세양이 그랬다. 그래서 너무 깊은 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사종과는 약속하에 사랑을 속삭였다. 이사종에게서 3년, 황진이 집에서 3년 도합 6년간의 애정생활을 마치고 깨끗이 이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대판 계약결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유감없이 정열을 불태웠던 이사종과 헤어진 황진이는 떠난 이사종이 그리워 삭풍이 휘몰아치는 엄동설한 긴긴 밤이면 이사종의 따뜻한 품을 그리는 마음에 그 옛날 부운거사 김경원을 사모하며 읊었던 시조를 새삼스레 떠올린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의 긴긴 밤'이라는 시간을 공간화하여 내가 그리는 임이 오시는 날 긴긴 밤에 쌓이고 쌓였던 정을 풀겠다는 허전한 마음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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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黃眞伊의 臨終과 白湖 林悌
그녀의 출생이 신비 속에 쌓여있듯이 그녀의 임종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으나 몇 군데 그녀의 유언에 관한 이야기가 성옹직소록에 보인다.
죽음을 앞둔 진이는 지나온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후회도 원망도 없는 고요한 체념관이 가슴에 가득한 채 '내가 죽거든 울지도 말고 고악으로서 상여를 전송해 달라'고 한 말은 일세의 명기다운 얘기이나 '생전에 업보로 관도 쓰지 말고 동문밖에 자기의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고 한 것을 보면 너무도 자신을 잘 알고 있었던 한 여인의 가혹한 자학의 채찍이기도 했다.
어쨋든 진이는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재질이 너무 뛰어나서 오히려 그녀 한 인간으로서는 불행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여인이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황진이가 죽고 난 뒤의 이야기로는 자유활달한 호남아였고, 당대의 한량이었던 |
백호 임제가 평안감사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평소에 보고 싶었던 황진이를 찾았는데 이미 고인이 된 뒤라 백호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술을 권하며,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을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슳허 하노라.
하며 노래했고, 그렇게 사모하며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한 번 죽으면 잡초가 우거진 무덤에 백골만 묻혔는가 하는 덧없는 인생을 한탄하는 애끓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으니 생전에 명성을 떨쳐 세인의 심금을 울리던 사람도 죽음이 가련하다는 허무감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어 관직을 떠나 사림에 묻히게 된 표상이 고금을 두고 더욱 짙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