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박마리아 본문
시계바늘을 거꾸로 휙 잡아돌려 일제시대로 가 보겠슴다.
1942년 5월 23일 "朝光"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인텔리 조선 여성이 이따우 발언을 하며 설쳐 대는 꼴이 보임다.
"조선청년 징병은 천황폐하께옵서 내리신 큰 은사니라.....
따라서 전장에 나가 皇恩에 으그러짐 없는 황국신민 됨이 마땅하니라....
사람 태어나 어차피 한번 죽는 목숨인데 무에 그리 무서우랴....."
이 여자.....박마리아.
식민지 조선 땅에서 손꼽히는 여성 지식인일 뿐만 아니라
미국유학 전력과 기독교 여성운동가로서 물방구 꽤나 뀌는 여인임다.
그 잘나고 등 따뜻한 여인이 조선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있는 검다.
어린 시절을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하게 보냈던 박마리아는
기독교신자였던 덕에 힘입어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어지간히 활달했는지 4년간 반장을 도맡아 했었고
타고난 영리함과 집념으로 영문과를 수석 졸업했슴다.
박마리아는 졸업시 기자와의 대담에서
"공창폐지, 금주, 금연등 사회운동에 몸 바칠 것"을 밝힐만큼 도덕적이었슴다.
그러던 이 여자가 미국유학후 귀국해서 YWCA 총무로 활동하며
슬슬 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정신이 휘까닥 돌게 돼 버리게 되죠.
조선 YWCA는 창설과정부터 일본 YWCA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드랬슴다.
즉 세계 YWCA에 당당한 독립 회원국으로 가맹했다는 얘기임다.
그런데 일제 말기 황국신민화 정책이 점점 강도를 높여 가는 과정에서
박마리아와 일부 지도자들은 다른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타협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일본 YWCA 산하로 들어 가게 됨다.
이때의 조선 YWCA 회장이 우리덜이 넘넘 잘아는 친일파 여두목 김활란이올시다.
그뒤 조선 YWCA는 내선일체의 깃발아래 친일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한편
박마리아는 김활란, 유각경,노천명,모윤숙등과 함께 쿵짝짝 죽을 맞춰
친일 시국 강연회의 단골 강사로 활약하며 설치기 시작했던 검다.
이런 박마리아에게 날개를 달아 준게 바로 "이기붕"임다.
강원 강릉 출신인 박마리아와 충북 괴산 출신인 이기붕의 결혼은
요즘의 정치권 판도로 말하자믄 중부권대연합같은 성공사례죠......
이기붕.....훗날 자유당 말기의 부통령이 된 이 사내.
이넘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운좋게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놈임다
(이때 미국에서 이승만을 만난게 인연이 돼 해방 후 2인자의 자리에 오르죠.....
거...그러보이까니....요즘의 그 누군가와 딥따 비슷하네요....)
암튼....이 두년놈이 결혼은 했으나 그리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슴다.
이기붕은 사업에는 젬병인지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서 맨날 빌빌대더니
나중에는 국일관 지배인 노릇도 하고, 다방도 차려보고, 광산도 경영해보고......
그렇게 깨작거리다가 쨍하고 해 뜰 날이 터진 검다.
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이기붕은 서무담당 비서로 등극함다.
미국에서부터 이승만을 보필하던 측근세력들을 제치고 이기붕이 2인자가 된것은
이기붕의 행정적인 자질과 충성심이 워낙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박마리아와 프란체스카의 아주 각별한 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때문임다.
이승만보다 한국에 늦게 들어온 프란체스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때까지 이승만을 극진하게 수발하던 "임영신"을 돈암장에서 방출하고
뭐든 착착 알아서 기는 박마리아를 가까이하기 시작한 검다.
이승만과 임영신의 야리꾸리한 관계를 곱지않게 바라봤던 프란체스카에게
비서 이기붕의 부인이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박마리아야말로
아주아주 죽이 척척 맞는 말상대로는 최적이었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과는 일체 접촉을 안했던 프란체스카였으니 오죽했겠슴까......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들을 제거하지 않고(아니...제거하지 못하고)
정권유지를 위해 이딴 식으로 각계각층에 중용을 하게 된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는 결코 씻을 수 없는 먹칠과 똥칠로 점철됐슴다.
예술과 낭만이란 이미지로 나긋나긋하게 알려진 프랑스지만
이 나라가 나치협력자들을 숙청한 기록을 보면 무시무시함다.
200만명 체포, 16만명 형선고, 6763명 사형, 3천명 종신강제노동.....
그래서 드골은 이렇게 큰소리치기도 했슴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언정
민족반역자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중국도 이에 지지 않슴다.
무려 2년 5개월의 긴 기간에 걸쳐 친일파 색출을 벌였고
즉결심판, 공개처형, 화형등으로 아예 씨를 말렸슴다.
대만?...푸헐 ....장개석 무식한거 다 아시죠?
비밀리에 블랙리스트를 착착 만들어 놓은 뒤
군대를 동원해 일거에 잡아들여 화끈하게 형을 집행했슴다.
그런데 울나라 반민특위는 어땠슴까?
슬그머니 다 풀어주고 한 술 더 떠 요직에 다 앉히지 않았슴까?
그러니...무슨 놈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따위의 향기로운 단어가
우리나라에 남아 있겠으며 어느 누가 애국하겠슴까?
부시 전 대통령....
이 냥반 2차대전 당시 해군에서 가장 나이 어린 파일럿으로 활약하면서
4개의 무공훈장을 받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경험한 사람임다.
존 F. 케네디....
하버드, 졸업생 신분으로 허리디스크 판정으로 군입대 거부당하자
허리강화훈련 한 뒤 재 입대해서 2차 대전시 어뢰정을 지휘한 사람임다
조 주니어 케네디....
케네디 가문의 장남으로 가문에서 가장 촉망 받았던 사람으로
2차 대전시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전투중 사망했슴다.
존 F. 케네디 보다 더 대통령감이었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말임다.
영국의 앤드류 왕자....
포클랜드 전투 때 직접 헬기를 몰고 전선으로 떠 나서
대잠수함작전을 수행한 사람임다....폼으로 참가한게 아님다.
모택동의 아들(이름이 기억 안남다...죄송함다).....
6.25 전투 때 직접 참가해서 싸우다가 북한 땅에서 전사했슴다.
모택동의 측근들이 그 시체를 본국(중국)으로 가져오자고 하자
"다같이 싸운 중공군의 시체가 그곳에 아직도 있는데
내 아들의 시체만 가져올 수 없다"고 일축한 얘기는 유명함다.
나라꼴이 제대로 되려면 웃대가리덜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울나라의 유구한 전통은 정반대로 가니 ....원
암튼.......
미꾸라지같은 아부와 굴종으로 일제시대를 헤쳐온 박마리아에게
늙어빠진 이승만과 물정 깜깜인 프란체스카를 다루는 것은
호박에 침 놓기처럼 쉽디 쉬운 일이었슴다.
이 두년놈이 이승만 프란체스카를 월매나 주물럭거렸는지는
이기붕 박마리아의 경이적 출세 스토리를 보시면 잘 알 수 있슴다.
우선 이기붕......
1948년 대통령 비서실장 취임
1949년 서울특별시장 임명
1951년 국방부장관 임명
1953년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
1960년 부통령 당선
다음 박마리아....
1949년 대한부인회 부회장
1952년 이화여대 문리대 학장, YWCA 회장
1954년 대한부인회 회장
1956년 이화여대 부총장
박마리아가 살던 집은 이제 "서대문 경무대"로 불릴 정도로 끗발이 붙었는데
이 년놈들의 추잡한 권력욕 행태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선물 보낸 사건일 것임다.
들 다 재혼이었던 두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서 늘 적적했었슴다.
원래 이승만에게는 전처인 "박승선"사이에 "봉수"라는 아들이 있었으나
미국 체류중에 병사해서 이승만은 그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함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병처럼 깊었던 이승만과
평소 이기붕 아들 이강석을 끔찍히나 애꼈던 프란체스카.....
이런 대박 찬스를 동물적 배팅감각의 천재인 박마리아가 놓칠리 없슴다.
남편 이기붕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이강석을 때빼고 광내서
이승만 생일인 57년 3월 26일에 선물로 걍 줘 버림다.
박마리아의 짱구야 뭐 뻔할 뻔자임다.
"어차피 이승만 저 늙탱이는 얼마안가서 하직할거다......"
"그리되면 다음 대통령은 울 남편인 이기붕 부통령이 따논 당상이다....."
"이런 판국에 아들 하나 선물해서 환심 사두는게 무에 아까우랴....."
그러나....
그 뒤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의 장미빛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됨다.
다 아시다시피 3.15 마산항쟁을 필두로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고
박마리아 일가는 집단 자살로 일가족이 세상을 뜨게 됨다.
.
.
.
호가호위하던 여우 늑대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이제 좀 세상에 "바른 빛, 옳은 길"이 열리나 보다 했더니
웬걸......일본육사 출신의 "다카키 마사오"가 총칼 들고 일어나
이 나라에서의 일제잔재 청산은 영영 물 건너가 버리고 말게 됨다.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의 일본 이름임다.
1942년 5월 23일 "朝光"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인텔리 조선 여성이 이따우 발언을 하며 설쳐 대는 꼴이 보임다.
"조선청년 징병은 천황폐하께옵서 내리신 큰 은사니라.....
따라서 전장에 나가 皇恩에 으그러짐 없는 황국신민 됨이 마땅하니라....
사람 태어나 어차피 한번 죽는 목숨인데 무에 그리 무서우랴....."
이 여자.....박마리아.
식민지 조선 땅에서 손꼽히는 여성 지식인일 뿐만 아니라
미국유학 전력과 기독교 여성운동가로서 물방구 꽤나 뀌는 여인임다.
그 잘나고 등 따뜻한 여인이 조선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있는 검다.
어린 시절을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하게 보냈던 박마리아는
기독교신자였던 덕에 힘입어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어지간히 활달했는지 4년간 반장을 도맡아 했었고
타고난 영리함과 집념으로 영문과를 수석 졸업했슴다.
박마리아는 졸업시 기자와의 대담에서
"공창폐지, 금주, 금연등 사회운동에 몸 바칠 것"을 밝힐만큼 도덕적이었슴다.
그러던 이 여자가 미국유학후 귀국해서 YWCA 총무로 활동하며
슬슬 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정신이 휘까닥 돌게 돼 버리게 되죠.
조선 YWCA는 창설과정부터 일본 YWCA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드랬슴다.
즉 세계 YWCA에 당당한 독립 회원국으로 가맹했다는 얘기임다.
그런데 일제 말기 황국신민화 정책이 점점 강도를 높여 가는 과정에서
박마리아와 일부 지도자들은 다른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타협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일본 YWCA 산하로 들어 가게 됨다.
이때의 조선 YWCA 회장이 우리덜이 넘넘 잘아는 친일파 여두목 김활란이올시다.
그뒤 조선 YWCA는 내선일체의 깃발아래 친일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한편
박마리아는 김활란, 유각경,노천명,모윤숙등과 함께 쿵짝짝 죽을 맞춰
친일 시국 강연회의 단골 강사로 활약하며 설치기 시작했던 검다.
이런 박마리아에게 날개를 달아 준게 바로 "이기붕"임다.
강원 강릉 출신인 박마리아와 충북 괴산 출신인 이기붕의 결혼은
요즘의 정치권 판도로 말하자믄 중부권대연합같은 성공사례죠......
이기붕.....훗날 자유당 말기의 부통령이 된 이 사내.
이넘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운좋게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놈임다
(이때 미국에서 이승만을 만난게 인연이 돼 해방 후 2인자의 자리에 오르죠.....
거...그러보이까니....요즘의 그 누군가와 딥따 비슷하네요....)
암튼....이 두년놈이 결혼은 했으나 그리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슴다.
이기붕은 사업에는 젬병인지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서 맨날 빌빌대더니
나중에는 국일관 지배인 노릇도 하고, 다방도 차려보고, 광산도 경영해보고......
그렇게 깨작거리다가 쨍하고 해 뜰 날이 터진 검다.
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이기붕은 서무담당 비서로 등극함다.
미국에서부터 이승만을 보필하던 측근세력들을 제치고 이기붕이 2인자가 된것은
이기붕의 행정적인 자질과 충성심이 워낙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박마리아와 프란체스카의 아주 각별한 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때문임다.
이승만보다 한국에 늦게 들어온 프란체스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때까지 이승만을 극진하게 수발하던 "임영신"을 돈암장에서 방출하고
뭐든 착착 알아서 기는 박마리아를 가까이하기 시작한 검다.
이승만과 임영신의 야리꾸리한 관계를 곱지않게 바라봤던 프란체스카에게
비서 이기붕의 부인이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박마리아야말로
아주아주 죽이 척척 맞는 말상대로는 최적이었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과는 일체 접촉을 안했던 프란체스카였으니 오죽했겠슴까......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들을 제거하지 않고(아니...제거하지 못하고)
정권유지를 위해 이딴 식으로 각계각층에 중용을 하게 된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는 결코 씻을 수 없는 먹칠과 똥칠로 점철됐슴다.
예술과 낭만이란 이미지로 나긋나긋하게 알려진 프랑스지만
이 나라가 나치협력자들을 숙청한 기록을 보면 무시무시함다.
200만명 체포, 16만명 형선고, 6763명 사형, 3천명 종신강제노동.....
그래서 드골은 이렇게 큰소리치기도 했슴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언정
민족반역자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중국도 이에 지지 않슴다.
무려 2년 5개월의 긴 기간에 걸쳐 친일파 색출을 벌였고
즉결심판, 공개처형, 화형등으로 아예 씨를 말렸슴다.
대만?...푸헐 ....장개석 무식한거 다 아시죠?
비밀리에 블랙리스트를 착착 만들어 놓은 뒤
군대를 동원해 일거에 잡아들여 화끈하게 형을 집행했슴다.
그런데 울나라 반민특위는 어땠슴까?
슬그머니 다 풀어주고 한 술 더 떠 요직에 다 앉히지 않았슴까?
그러니...무슨 놈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따위의 향기로운 단어가
우리나라에 남아 있겠으며 어느 누가 애국하겠슴까?
부시 전 대통령....
이 냥반 2차대전 당시 해군에서 가장 나이 어린 파일럿으로 활약하면서
4개의 무공훈장을 받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경험한 사람임다.
존 F. 케네디....
하버드, 졸업생 신분으로 허리디스크 판정으로 군입대 거부당하자
허리강화훈련 한 뒤 재 입대해서 2차 대전시 어뢰정을 지휘한 사람임다
조 주니어 케네디....
케네디 가문의 장남으로 가문에서 가장 촉망 받았던 사람으로
2차 대전시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전투중 사망했슴다.
존 F. 케네디 보다 더 대통령감이었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말임다.
영국의 앤드류 왕자....
포클랜드 전투 때 직접 헬기를 몰고 전선으로 떠 나서
대잠수함작전을 수행한 사람임다....폼으로 참가한게 아님다.
모택동의 아들(이름이 기억 안남다...죄송함다).....
6.25 전투 때 직접 참가해서 싸우다가 북한 땅에서 전사했슴다.
모택동의 측근들이 그 시체를 본국(중국)으로 가져오자고 하자
"다같이 싸운 중공군의 시체가 그곳에 아직도 있는데
내 아들의 시체만 가져올 수 없다"고 일축한 얘기는 유명함다.
나라꼴이 제대로 되려면 웃대가리덜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울나라의 유구한 전통은 정반대로 가니 ....원
암튼.......
미꾸라지같은 아부와 굴종으로 일제시대를 헤쳐온 박마리아에게
늙어빠진 이승만과 물정 깜깜인 프란체스카를 다루는 것은
호박에 침 놓기처럼 쉽디 쉬운 일이었슴다.
이 두년놈이 이승만 프란체스카를 월매나 주물럭거렸는지는
이기붕 박마리아의 경이적 출세 스토리를 보시면 잘 알 수 있슴다.
우선 이기붕......
1948년 대통령 비서실장 취임
1949년 서울특별시장 임명
1951년 국방부장관 임명
1953년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
1960년 부통령 당선
다음 박마리아....
1949년 대한부인회 부회장
1952년 이화여대 문리대 학장, YWCA 회장
1954년 대한부인회 회장
1956년 이화여대 부총장
박마리아가 살던 집은 이제 "서대문 경무대"로 불릴 정도로 끗발이 붙었는데
이 년놈들의 추잡한 권력욕 행태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선물 보낸 사건일 것임다.
들 다 재혼이었던 두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서 늘 적적했었슴다.
원래 이승만에게는 전처인 "박승선"사이에 "봉수"라는 아들이 있었으나
미국 체류중에 병사해서 이승만은 그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함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병처럼 깊었던 이승만과
평소 이기붕 아들 이강석을 끔찍히나 애꼈던 프란체스카.....
이런 대박 찬스를 동물적 배팅감각의 천재인 박마리아가 놓칠리 없슴다.
남편 이기붕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이강석을 때빼고 광내서
이승만 생일인 57년 3월 26일에 선물로 걍 줘 버림다.
박마리아의 짱구야 뭐 뻔할 뻔자임다.
"어차피 이승만 저 늙탱이는 얼마안가서 하직할거다......"
"그리되면 다음 대통령은 울 남편인 이기붕 부통령이 따논 당상이다....."
"이런 판국에 아들 하나 선물해서 환심 사두는게 무에 아까우랴....."
그러나....
그 뒤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의 장미빛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됨다.
다 아시다시피 3.15 마산항쟁을 필두로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고
박마리아 일가는 집단 자살로 일가족이 세상을 뜨게 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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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하던 여우 늑대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이제 좀 세상에 "바른 빛, 옳은 길"이 열리나 보다 했더니
웬걸......일본육사 출신의 "다카키 마사오"가 총칼 들고 일어나
이 나라에서의 일제잔재 청산은 영영 물 건너가 버리고 말게 됨다.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의 일본 이름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