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반야 본문
역사상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했던 징키스칸의 元제국.
이 나라 수도인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신년하례식이 열리던 1345년의 일임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하례객들이 황제 앞에 차례로 나아가 선물을 바치며
"황제폐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라고 인사를 올립니다.
단, 이때 반드시 몽고말로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윽고 고려국 차례가 됐는데.....이게 웬일임까?
몽고말로 하질 않고 고려어로 또렷이 말하는게 아님까?
원나라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니
세상에.....원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는 고려국 왕자임다.
고려는 당시 원나라의 속국으로서 왕자를 인질로 보내는 처량한 신세였슴다.
당차고 똑 부러지게 인사를 마친 고려왕자를 보고
원나라 대신들이 방방뜨며 역정을 냈으나
황제는 너그럽게 웃음을 지으며 고려왕자와 신년 덕담을 나눔다.
이때 황실의 가족석에서 고려왕자를 보고 뿅 간 元나라 공주가 있었으니
이 뿅간 공주가 훗날의 노국공주.....
이 고려 왕자가 훗날의 공민왕......
울나라 왕실사상 최고의 닭살 커플인 이들 부부의 로맨스는 이렇게 출발된검다.
그러자 중국황실에서는 난리가 났슴다.
아니....중국 국산품도 좋은게 쌔고 쌨는데 왜 수입품을 쓰느냐.....
고려왕자 그 넘이 韓流 주인공인 장동건이나 안재욱이라도 되느냐....
허지만 고려왕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워버린 노국공주는
고려왕자를 줄기차게 스토킹해서 기어코 결혼하고야 맘다.
고려왕자가 16년간의 인질생활을 끝내고 공주와 함께 귀국해서
정식 고려왕으로 등극 한 때가 1351년의 일임다.
공민왕 이전의 고려왕들도 원나라 공주들을 마누라로 맞았었는데
이 공주덜은 허울만 마누라지....완전히 왕의 상전이나 다름없었슴다.
고려왕 하는 일마다 미주알 고주알 참견을 해대면서
뻑하면 원나라를 들먹이며 약코 죽이기 일쑤였슴다.
이에 비하면 노국공주는 참으로 지고지순한 여인이었슴다.
공민왕이 이런 노국공주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은 당근빠따.......
역사기록에도 이들의 사랑은 "완전" 그 자체였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이들의 사랑을 시샘이라도 했는지
노국공주가 낳은 아기는 출산하자마자 숨을 거두고
그 충격으로 노국공주 역시 며칠 후 세상을 떠나게 됨다.
원나라 공주중 유일하게 고려 백성들의 신망을 받던 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의 총기와 의욕을 일시에 흐리게 만들었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인이 바로 "반야"임다.
반야....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절에서 자라났던 그녀....
고려를 쑥대밭으로 만든 홍건적의 난 때
거의 죽기 일보직전에 떠돌이 땡초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지자
일생을 그 땡초에게 바치리라 작정하고 그를 따라 다님다.
그 땡초의 이름이 바로......
울나라 사상 최대의 요승이라는 "신돈" 이올시다.
당시 민초들로부터 異人이니 聖人이니 하는 칭호를 들으며
재야의 추앙을 받는 혁명가로 부상하고 있던 신돈.....
공민왕은 신돈을 만나자 마자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함다.
꿈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중과 너무 똑 같았기 때문인데다
몇마디 말을 나눠보니 능력 있고 신념 강한 혁명가였기 때문임다.
원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한 정책을 꿈꿨던 공민왕은
이후 신돈의 개혁정책을 적극 받아들여 국정을 꾸려갔고
신돈은 자기를 사랑하는 반야를 공민왕에게 바치면서 충성을 하게 됨다.
이러던 차에 노국공주가 죽게 되고
반야는 왕자를 출산하게 되니 신돈의 끗발은 천하무적이 됨다.
공민왕은 신돈을 사부라고 부르며 국정전반의 지휘권을 주었고
신돈은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백성위주의 개혁정책을 펼쳤슴다.
관료의 수탈과 핍박에 지친 백성들은 환호를 불렀으나,
졸지에 손발 묶인 기득권세력은 비명을 질러 댔슴다.
이 수구세력들...... 신돈을 꺼꾸러뜨리려 혈안이었는데......
드디어 내시 최만생 등의 수구세력들은 신돈의 약점을 알아냄다.
그것은 바로 반야와 신돈의 사랑이었슴다.
반야는 애시당초 자기 목숨을 구해준 신돈에게
몸도 주고 마음도 준.... 일편단심 민들레였던 검다.
그런데 신돈 그 노무시키가 자기를 공민왕에게 상납해버리자
남모를 원망과 앙심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거덩여.
게다가 공민왕은 닭살커플 노국공주 귀신이라도 씌웠는지
허구헌날을 죽은 노국공주 초상화 앞에 앉아 징징 짜기만 할 뿐
싱싱한 반야와는 잠자리를 안하려 하니 얼마나 열불 나겠습니까?
최만생 일파는 그런 반야에게 솔깃한 제의를 함다.
"이게 다...... 요승 신돈이 꾸민 짓인거 너 알어?"
"니가 짝사랑하는 신돈 그넘이 월매나 쌕골인데....."
"그넘이 건드린 귀족부인들만 해도 한 트럭이 넘어 야."
"그넘은 정력을 키운답시고 말 거시기를 고아 먹는대자너...."
"신돈 그넘이 죽어야만 나라가 안정이 되고,
너도 어엿한 왕비가 돼서 띵가딩뚱땅 노나는 거여...."
귀꾸녕이 얇은 닭대가리 반야는 최만생 일파가 시키는 대로
공민왕에게 찰싹 앵겨서 신돈이 역모를 꾀한다고 거짓 밀고를 함다.
공민왕은 깅가밍가 했었으나 수구세력들이 줄창 탄원서를 올리자
짜고 친 고스톱에 속아 신돈을 유배시켜 죽여 버리라고 명함다.
수탈에 찌들린 백성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추앙받던 사람이 죽은 검다.
최만생 일파......이번에는
신돈이 죽고나자 맥이 쑥 빠진 공민왕을 타켙으로 삼슴다.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반야가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면
조정을 우리덜 맘대로 휘두를 수 있다 ....이로케 생각한검다.
부랄 안달린 내시넘덜은 성욕이 빠샥 쫄아든 대신에
권력욕, 금전욕이 열라 발달한 족속들이죠.
최만생 일파는 공민왕을 타락시켜 폐위시키려는 음모로서
장안의 미소년들을 모아 子弟衛라는 호스트빠를 만들었슴다.
노국공주를 그리다가 맛이 헤까닥 가버린 공민왕이
밤낮으로 그 미소년들과 동성애에 빠지는 동안,
미소년들은.... 대궐안의 궁녀는 물론 왕의 비빈까지도 범하는 등
국회의사당은 청량리와 용주골 버금가는 환락가로 신장개업함다.
울나라 역사상 가장 음탕했었다고 하는 이 시기....
나라의 국사를 논하는 궁궐에선 신분고하가 따로 없었고
오직 색욕에 눈이 벌개진 수컷과 암컷만이 존재했었슴다.
그 정도가 얼마만큼 아사리 개판였는지
왕비인 익비(益妃) 조차 호빠와 놀아난 끝에 임신을 하게 됨다.
그 사실을 알게된 공민왕이 술에 취해 욕설을 퍼부으며
"최만생 네놈 무사히지 못하리라"....라고 호통치자
최만생은 자제위 호빠들과 합세해 왕을 죽여 버리고 맘다.
이래서....공민왕은 허무하게 죽어 버리고
반야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우왕(禑王)임다.
반야가... 드뎌 왕의 어머니인 "大妃" 자리에 오르는 순간임다....과연 그럴까요?
권력을 깡그리 틀어쥐려는 대신들이 가만 두지를 않슴다.
반야가 신돈의 애첩이었다는 사실을 끄집어내 제거계획을 세움다.
나이 어린 우왕은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하고
얼굴만 받쳐줬지 머리가 똘팍인 반야는 눈만 껌뻑대고.....
결국....반야는 경호원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다가
임진강속에 내버려져 살해되고 마는 신세가 됨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우왕을 공민왕의 아들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라 하여
고려왕조의 멸족을 합리화 하려고 했슴다만,
글쎄요.....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반야 밖에 없겠지요.
그녀가 짱구 잘못 굴린 탓에 신돈, 공민왕이 죽고, 고려마저 멸망하게 된검다.
아마 그녀는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신돈을 그리워 했을 검다.
이 나라 수도인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신년하례식이 열리던 1345년의 일임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하례객들이 황제 앞에 차례로 나아가 선물을 바치며
"황제폐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라고 인사를 올립니다.
단, 이때 반드시 몽고말로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윽고 고려국 차례가 됐는데.....이게 웬일임까?
몽고말로 하질 않고 고려어로 또렷이 말하는게 아님까?
원나라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니
세상에.....원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는 고려국 왕자임다.
고려는 당시 원나라의 속국으로서 왕자를 인질로 보내는 처량한 신세였슴다.
당차고 똑 부러지게 인사를 마친 고려왕자를 보고
원나라 대신들이 방방뜨며 역정을 냈으나
황제는 너그럽게 웃음을 지으며 고려왕자와 신년 덕담을 나눔다.
이때 황실의 가족석에서 고려왕자를 보고 뿅 간 元나라 공주가 있었으니
이 뿅간 공주가 훗날의 노국공주.....
이 고려 왕자가 훗날의 공민왕......
울나라 왕실사상 최고의 닭살 커플인 이들 부부의 로맨스는 이렇게 출발된검다.
그러자 중국황실에서는 난리가 났슴다.
아니....중국 국산품도 좋은게 쌔고 쌨는데 왜 수입품을 쓰느냐.....
고려왕자 그 넘이 韓流 주인공인 장동건이나 안재욱이라도 되느냐....
허지만 고려왕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워버린 노국공주는
고려왕자를 줄기차게 스토킹해서 기어코 결혼하고야 맘다.
고려왕자가 16년간의 인질생활을 끝내고 공주와 함께 귀국해서
정식 고려왕으로 등극 한 때가 1351년의 일임다.
공민왕 이전의 고려왕들도 원나라 공주들을 마누라로 맞았었는데
이 공주덜은 허울만 마누라지....완전히 왕의 상전이나 다름없었슴다.
고려왕 하는 일마다 미주알 고주알 참견을 해대면서
뻑하면 원나라를 들먹이며 약코 죽이기 일쑤였슴다.
이에 비하면 노국공주는 참으로 지고지순한 여인이었슴다.
공민왕이 이런 노국공주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은 당근빠따.......
역사기록에도 이들의 사랑은 "완전" 그 자체였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이들의 사랑을 시샘이라도 했는지
노국공주가 낳은 아기는 출산하자마자 숨을 거두고
그 충격으로 노국공주 역시 며칠 후 세상을 떠나게 됨다.
원나라 공주중 유일하게 고려 백성들의 신망을 받던 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의 총기와 의욕을 일시에 흐리게 만들었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인이 바로 "반야"임다.
반야....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절에서 자라났던 그녀....
고려를 쑥대밭으로 만든 홍건적의 난 때
거의 죽기 일보직전에 떠돌이 땡초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지자
일생을 그 땡초에게 바치리라 작정하고 그를 따라 다님다.
그 땡초의 이름이 바로......
울나라 사상 최대의 요승이라는 "신돈" 이올시다.
당시 민초들로부터 異人이니 聖人이니 하는 칭호를 들으며
재야의 추앙을 받는 혁명가로 부상하고 있던 신돈.....
공민왕은 신돈을 만나자 마자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함다.
꿈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중과 너무 똑 같았기 때문인데다
몇마디 말을 나눠보니 능력 있고 신념 강한 혁명가였기 때문임다.
원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한 정책을 꿈꿨던 공민왕은
이후 신돈의 개혁정책을 적극 받아들여 국정을 꾸려갔고
신돈은 자기를 사랑하는 반야를 공민왕에게 바치면서 충성을 하게 됨다.
이러던 차에 노국공주가 죽게 되고
반야는 왕자를 출산하게 되니 신돈의 끗발은 천하무적이 됨다.
공민왕은 신돈을 사부라고 부르며 국정전반의 지휘권을 주었고
신돈은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백성위주의 개혁정책을 펼쳤슴다.
관료의 수탈과 핍박에 지친 백성들은 환호를 불렀으나,
졸지에 손발 묶인 기득권세력은 비명을 질러 댔슴다.
이 수구세력들...... 신돈을 꺼꾸러뜨리려 혈안이었는데......
드디어 내시 최만생 등의 수구세력들은 신돈의 약점을 알아냄다.
그것은 바로 반야와 신돈의 사랑이었슴다.
반야는 애시당초 자기 목숨을 구해준 신돈에게
몸도 주고 마음도 준.... 일편단심 민들레였던 검다.
그런데 신돈 그 노무시키가 자기를 공민왕에게 상납해버리자
남모를 원망과 앙심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거덩여.
게다가 공민왕은 닭살커플 노국공주 귀신이라도 씌웠는지
허구헌날을 죽은 노국공주 초상화 앞에 앉아 징징 짜기만 할 뿐
싱싱한 반야와는 잠자리를 안하려 하니 얼마나 열불 나겠습니까?
최만생 일파는 그런 반야에게 솔깃한 제의를 함다.
"이게 다...... 요승 신돈이 꾸민 짓인거 너 알어?"
"니가 짝사랑하는 신돈 그넘이 월매나 쌕골인데....."
"그넘이 건드린 귀족부인들만 해도 한 트럭이 넘어 야."
"그넘은 정력을 키운답시고 말 거시기를 고아 먹는대자너...."
"신돈 그넘이 죽어야만 나라가 안정이 되고,
너도 어엿한 왕비가 돼서 띵가딩뚱땅 노나는 거여...."
귀꾸녕이 얇은 닭대가리 반야는 최만생 일파가 시키는 대로
공민왕에게 찰싹 앵겨서 신돈이 역모를 꾀한다고 거짓 밀고를 함다.
공민왕은 깅가밍가 했었으나 수구세력들이 줄창 탄원서를 올리자
짜고 친 고스톱에 속아 신돈을 유배시켜 죽여 버리라고 명함다.
수탈에 찌들린 백성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추앙받던 사람이 죽은 검다.
최만생 일파......이번에는
신돈이 죽고나자 맥이 쑥 빠진 공민왕을 타켙으로 삼슴다.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반야가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면
조정을 우리덜 맘대로 휘두를 수 있다 ....이로케 생각한검다.
부랄 안달린 내시넘덜은 성욕이 빠샥 쫄아든 대신에
권력욕, 금전욕이 열라 발달한 족속들이죠.
최만생 일파는 공민왕을 타락시켜 폐위시키려는 음모로서
장안의 미소년들을 모아 子弟衛라는 호스트빠를 만들었슴다.
노국공주를 그리다가 맛이 헤까닥 가버린 공민왕이
밤낮으로 그 미소년들과 동성애에 빠지는 동안,
미소년들은.... 대궐안의 궁녀는 물론 왕의 비빈까지도 범하는 등
국회의사당은 청량리와 용주골 버금가는 환락가로 신장개업함다.
울나라 역사상 가장 음탕했었다고 하는 이 시기....
나라의 국사를 논하는 궁궐에선 신분고하가 따로 없었고
오직 색욕에 눈이 벌개진 수컷과 암컷만이 존재했었슴다.
그 정도가 얼마만큼 아사리 개판였는지
왕비인 익비(益妃) 조차 호빠와 놀아난 끝에 임신을 하게 됨다.
그 사실을 알게된 공민왕이 술에 취해 욕설을 퍼부으며
"최만생 네놈 무사히지 못하리라"....라고 호통치자
최만생은 자제위 호빠들과 합세해 왕을 죽여 버리고 맘다.
이래서....공민왕은 허무하게 죽어 버리고
반야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우왕(禑王)임다.
반야가... 드뎌 왕의 어머니인 "大妃" 자리에 오르는 순간임다....과연 그럴까요?
권력을 깡그리 틀어쥐려는 대신들이 가만 두지를 않슴다.
반야가 신돈의 애첩이었다는 사실을 끄집어내 제거계획을 세움다.
나이 어린 우왕은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하고
얼굴만 받쳐줬지 머리가 똘팍인 반야는 눈만 껌뻑대고.....
결국....반야는 경호원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다가
임진강속에 내버려져 살해되고 마는 신세가 됨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우왕을 공민왕의 아들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라 하여
고려왕조의 멸족을 합리화 하려고 했슴다만,
글쎄요.....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반야 밖에 없겠지요.
그녀가 짱구 잘못 굴린 탓에 신돈, 공민왕이 죽고, 고려마저 멸망하게 된검다.
아마 그녀는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신돈을 그리워 했을 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