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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송경령

AziMong 2007. 4. 18. 21:19
"인류문명속에 이탈리아의 보르지아家 이래로
이처럼 혼돈스롭고 엄청난 역할을 했던 가문은 없었다" 는 평을 받는
근대중국의 "宋씨 훼밀리"의 면면을 디벼 보면......

父 찰리宋 : 비천한 신분을 딛고 미국 공부 후, 귀국해서 거부가 된 뒤 손문을 후원한 마당발.
딸 송애령 : 巨富 공상희와 결혼하여 축재귀신이 됨...돈이라면 살인 납치도 마다않던 뇨자.
딸 송경령 : 혁명가 손문의 마눌로서, 훗날 중공 명예주석의 자리까지 오른 여걸.
子 송자문 : 국민당 재무장관으로 장개석의 자금을 요리하며 세계최고의 부를 축적했던 넘.
딸 송미령 : 장개석의 마눌로서 30 여년동안 미국 對中 외교정책을 막후에서 움직인 여인.
그외 다수 : 송자량, 송자안....둘 다 은행가로서 송씨가문의 돈줄을 관리했던 넘덜.

"첫딸은 돈(공상희)과, 둘째는 중국(손문)과, 셋째는 권력(장개석)과 결혼했다"는 말처럼
이들 세자매의 운명은 "송씨 가족사 + 중국(대만포함)근대사" 인 것임다.

오늘은 둘째딸 "송경령"에 관한 얘기를 하겠슴다.
송경령의 남편은 중국의 국부라 일컫는 그 유명한 "손문"선생인데
경령이 손문의 비서로 일하던중 그만 쩔꺽 눈이 맞아 결혼한 검다.

손문의 후원자이자 혁명동지인 아버지 찰리송은
애시당초 그 결혼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반대했슴다........그 이유로는
1. 손문은 경령의 애비인 찰리송과 나이가 갑장이다......도둑넘이다
2. 손문은 경령의 언니인 애령에게도 결혼하자고 깝삭댄 적이 있다.....혼인빙자 상습범이다.
3. 손문에게는 이미 부인과 자식이 있다......철판 깔은 넘이다.

그러나 손문의 혁명이상에 눈멀고 마음 뻑간 경령은
아버지의 감금을 탈출하여 야반도주를 감행,
일본에 망명해있는 손문과 만나 그길로 냉수 떠놓고 결혼해 버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속담에 똥칠을 함다.

뚜껑이 열린 아버지 찰리송은 손문을 만나 대판 싸우면서
"혁명동지적 관계, 후원자적 관계"를 모두 끊겠노라고 선언했으나
이미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돼 버렸슴다.

나이 오십 가까운 손문과 스물이 채 안된 경령과의 결혼생활은
결혼 10년만에 손문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막을 내림다.

손문이 죽은 뒤.... 손문이 만든 국민당을 후루룩 건식한 넘이
굼바리 출신 장개석임다......588 단골멤버인 천하의 망나니죠.
그런데 장개석 이넘은 당권을 잡은 뒤로 슬슬 맴이 변하더니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당을 활용해 버림다.

특히 상해에서의 노동자및 공산당 봉기 때
장개석의 군대가 이들을 5.18 광주학살처럼 제압을 하자
분노한 경령은 장개석을 규탄하며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함다.

이 학살이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했던지
장개석의 아들조차 모스크바 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함다.
"장개석은 나의 아버지이자 혁명 동지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나의 적이 되었다.
혁명가로서의 그는 이제 반혁명가가 되었다.
장개석을 타도하자, 타도하자!!!"
이 글을 쓴 장개석이 아들이 바로....."장경국" 임다.
훗날 장개석의 뒤를 이어 대만총통이 된 바로 그넘이죠......우끼는 집안이죠?

비록 공산당원은 아니었지만 손문의 유지를 받들어 혁명을 신봉한 그녀는
중국의 민중혁명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장개석에게 분노했던 검다.
장개석이 "때려잡자 공산당"을 빌미로 반대파들을 잡아 족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그녀는 러시아로 피신을 하게 됨다.

그녀의 러시아에서의 피신생활은 비참 곤궁 그 자체였슴다.
중국 최고 끗발 가문의 일원이자 중국국부의 아내가 생고생을 자처한검다.
당시 그녀를 묘사한 전기를 보면 그 고매한 자세가 한눈에 들어 옴다.

"눈보라 속에서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고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중국에서 오는 수입이 중단된데다 ...
모르는 사람의 도움도 받지않는 강한 자존심으로
겨울옷이라고는 아예 없이 러시아의 추위를 견뎌냈다....."
아무한테나 덥석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 울나라 시민단체덜과는 질이 다름다.......

그런데.....그토록 쪼들리고 힘든 그녀에게
타이슨급 핵펀치같은 충격적 소식이 날라 들어옴다.
경령이 그토록이나 못마땅해 했던 장개석과 동생 송미령이 결혼을 하는 검다.
이후로 두자매....경령과 미령은 평생을 원수처럼 으르렁대며 지내게 되죠..

장개석 그 껄떡쇠는 전형적 출세지향주의자임다.
총각 장교때 부터 588을 내집처럼 드나들던 색골인 그넘은
손문이 죽자 미망인 경령에게도 결혼하자고 추근댔던 싸가지 없는 넘임다.
이넘은 집안 빵빵하고 방귀깨나 뀌는 여자라면 무조건 결혼신청하는 넘임다.
이혼후 두번째 결혼(창녀 출신)했고, 첩까지 있는 그넘이
가문이 막강한 미령에게 접근해서 결혼에 골인했던 검다.

러시아에 머물고 있던 경령은 세계언론을 상대로
장개석 정부의 악행과 실정을 수시로 폭로하며 투쟁함다.
이런 송경령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장개석은
어카면 그녀를 자신의 진영으로 포섭할 수 있을까......짱구를 굴리다가
코리아의 유명정치가들에게서 힌트를 얻어서 작전을 구사함다.
이름하여...풍수지리 명당 이장 작전!!
울나라의 정치인들도 때로는 써먹을 곳이 있다 이검다 !!!

장개석은 손문선생의 유해를 명당자리에 거창하게 이장하면서
그 미망인인 송경령에게 이장식 참석 초청장을 보낸 검다.
그녀는 이장식 참석차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장개석 정부는 여전히 개차반이다....
민중을 억압하고 핍박하고 있으며,
손문 기본정신을 위배하고 있다"고 대갈일성 함다.

또한 장개석과 결탁하여 중국의 재산을 착취하고 있는 송씨가문에게도
"송씨 일가를 위해 중국이 있는게 아니라
송씨 일가가 중국을 위해 있는 것이다"라고 똥침을 가함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돼 버린 장개석은 밀사를 파견해서
"손문 부인이 아니었다면 당장 목을 잘랐을 것"이라는 극언을 해댐다.
또한 경령의 언니인 애령도 공공연하게 으름장 놓기를
"동생 경령아...너...밤길 조심해라" 하며 암살을 암시하기도 함다.
경령의 언니 애령은 장개석 군대및 지하조직과 손 잡고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 모으며 콧노래 흥얼거릴 때 였거든요.

중국정부의 최고 실권자 장개석(부인은 송미령),
중국의 최대 막강한 송씨가문(가문 우두머리는 송애령),
중국의 가장 겁없는 지하조직 녹방(대빵은 송애령과 동업자 관계)......
이들을 상대로 송경령 혼자 고군분투했던 검다.

장개석 알기를 콧구멍에 코딱지 만큼이나 같잖게 알았던 경령이
장개석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슴다.
그녀의 정신적 혁명적 동지인 "등연달"이 국민당에게 체포됐을 때
장개석에게 찾아가 장시간 애원하며 구명을 요청했던 검다.
장개석은 그녀가 지칠때 까지 기다렸다가 흘끔 한번 째려보고는
"사형 명령 내렸소"라고 매몰차게 말함다.
둘사이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되돌아 감다.

그녀가 장개석을 극도로 반대했던 이유는
일본의 침략에는 타협적이고 굴욕적이면서도
공산당과 인민은 철저히 탄압하는 장개석의 이중적 자세 때문임다.
그녀가 비록 공산당에 가입을 안하면서도
공산당의 노선을 적극 지지했던 까닭 또한
장개석보다는 공산당이 손문의 이상을 실천했기 때문이기도 함다.

그녀는 일생을 중국의 사회복지및 항일 운동, 아동 부녀사업등에 헌신,
중국 근대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여성혁명가로 자리매김 함다.

우리들이 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듯이
무능과 부패의 대명사인 장개석 정부는
공산당에게 줄창 깨져서 대만으로 쫓겨가고, 중국에는 공산당이 들어섬다.

1949년 천안문에서 거행된 북경 해방 기념식에
그녀는 모택동 옆자리에서 그 행사를 지켜보게 됨다.
비록 공산당원은 아니었으나 평생을 혁명에 몸 바친 그녀를
공산당 정권은 모택동 다음의 서열인 "국가부주석"에 추대했던 검다.

"중국혁명이 난파돼 모든 정치인, 관료, 장군들이
항복, 망명, 분열, 침묵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을 단 한사람의 혁명주의자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녀 뿐이다"라는 평을 받았던 송경령은
1981년 중국 명예주석에 추대됐고, 그해 5월에 사망하였슴다.

동생 송미령은 장례식에 초청 받았으나 가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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