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송미령 본문
인류문명속에 이탈리아의 보르지아家 이래로
이처럼 혼돈스롭고 엄청난 역할을 했던 가문은 없었다" 는 평을 받는
근대중국의 "宋씨 훼밀리"의 면면을 디벼 보면......
父 찰리宋 : 비천한 신분을 딛고 미국 공부 후, 귀국해서 거부가 된 뒤 손문을 후원한 마당발.
딸 송애령 : 巨富 공상희와 결혼하여 축재귀신이 됨...돈이라면 살인 납치도 마다않던 뇨자.
딸 송경령 : 혁명가 손문의 마눌로서, 훗날 중공 명예주석의 자리까지 오른 여걸.
子 송자문 : 국민당 재무장관으로 장개석의 자금을 요리하며 세계최고의 부를 축적했던 넘.
딸 송미령 : 장개석의 마눌로서 30 여년동안 미국 對中 외교정책을 막후에서 움직인 여인.
"첫딸은 돈(공상희)과, 둘째는 중국(손문)과, 셋째는 권력(장개석)과 결혼했다"는 말처럼
이들 세자매의 운명은 "송씨 가족사 + 중국(대만포함)근대사" 인 것임다.
오늘은 그 셋째딸 송미령에 관한 얘기임다.
냉전시대 미국을 움직인 대표적 로비스트 국가는 이스라엘,영국,대만......
이 대만의 로비를 총지휘한 여걸이 바로 송미령이라는 뇨자로서
대만 총통 장개석의 마눌이기도 함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 송미령.....
어려서부터 잘난 체 잘하고, 고집불통이며, 오만불손한 송미령은
사교에도 능란했고, 대단히 활동적이었으며, 상대를 매혹시키는 말솜씨가 일품!
송미령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장개석을 알아야 함다.
아시아 부흥기의 대표적 독재자 3인방(박통, 이광요, 장개석)인 이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180도 틀린 치사빤쓰 똥빤쓰 그 자체임다.
일본 군사학교를 다니던 이넘은 방학때면 중국에 돌아와 깽판을 쳐서
당시 경찰 기록에 살인, 공갈, 강도, 주색등 각종 범죄자로 기록 돼 있슴다.
게다가 상해의 서방파인 "녹방"에도 가입해 녹방두목인 "투"와 어울리며
허구헌날을 과음, 오입, 방탕, 광폭등으로 젊은 날을 보낸 양아치였슴다.
결혼 생활 역시도 추잡하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넘임다.
열네살 때 시골처녀와 첫 결혼 하고 나서도,
나중에 588 출신 쭉빵걸을 첩으로 들여 앉히고,
얼마후 이 첩을 내쫓고 또 다른 창녀를 둘째 부인으로 들임다.
이것두 모자라 가문빵빵한 송미령을 보자 개거품 물고 뎀벼들어
끝끝내 결혼에 골인하고야 마는 출세지향적 카사노바임다.
참고로...... 장개석과 박정희는 여러모로 닮은 꼴이 많슴다.
둘다 일본군사학교를 졸업했고, 포병장교 출신이며,
부잣집 딸과 재혼했으며 (박통은 충청도 거부 육종관씨의 딸과 결혼)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으며 (이 두사람은 서로 직접 대치하지는 않았음)
장기간 독재자로 있으며, 국가경제의 부흥을 이룩한 점이 그거죠.
손문이 세운 국민당軍의 참모총장으로 승격한 장개석의 특기는
오로지 출세를 향한 광폭, 흉폭, 난폭 그 자체임다.
당시 중국의 사회분위기는 열강의 침락과 공산주의 혁명에 휩싸여 있을 때 임다.
그런데 장개석 군대는 열강의 침략에는 팔짱만 끼고 불구경 하듯 한 반면
공산주의 혁명에는 "밥값좀 하자"며 백골단처럼 진압하여 인민들의 원성을 샀슴다.
장개석 군대가 왜 그랬느냐구요?
구미열강들은 군벌과 깡패, 관료들에게 각종 이권을 듬뿍 주면서
그들이 눈감아 주는 틈을 타서 중국 땅덩어리를 야금야금 식민지화 한검다.,
나라야 망하던 말던 윗대가리덜은 제 배때지 터지는 즐거움으로 째지는데
공산주의자들이 사사껀껀 초치고 나서니 얼마나 씅질 나겠슴까?
출세와 안위에 눈멀은 장개석이 어느 편이겠슴까?
장개석 자신이 최대깡패조직인 "녹방"과 두터운 관계에 있고,
마눌인 송미령의 가문 또한 대표적 부르조아로 돈독이 올라 있으니,
자신의 돈벌이에 걸그적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좀 티껍겠슴까?
장개석이가 혁명분자들을 복날 개패듯 조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장개석은 공산주의자들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벼라별 추잡한 짓거리를 다 했슴다.
졸부들과 상공인들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보호한다는 핑계로 돈을 뜯거나.
군자금을 비축한다는 미명하에 정부 공채를 사도록 강요하기도 함다.
이를 어기면 부자들의 자식을 유괴해 몸값을 받고 풀어 준적도 있슴다.
그런 장개석과 결혼한 송미령의 호화호식도 도찐개찐 임다.
당시 상해에 나 돌던 불온 찌라시의 내용을 보면
송미령의 프랑스제 화장실 용품에 4백만 달러,
다이아몬드 구두 80만 달러, 옷 한 벌에 50만 달러나 썼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눈 뒤집어지는 호화판이 아닐수 없슴다.
당근....장개석의 이런 짓거리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수두룩 많았는데
그중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阿Q정전"의 저자 "노신"도 포함됐슴다.
소설가가 정치에 웬 참견이야?......니가 이문열이야?
뚜껑열린 장개석은 노신 패거리 6명을 체포하여
그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한뒤 생매장 시키는 악행도 마다 않슴다.
(다행히 노신은 체포 직전 도피에 성공해서 목숨은 건짐다)
손문 사후 국민당 총통이 된 장개석은 깡패 3인방을 명예고문으로 추대함다.
그 3인방 중..... 특히 녹방의 두목 "투"의 끗발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카포네와 록펠러의 합성품"이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슴다.
울나라 정권의 고문자리에 서방파, 양은이파, 김상사파가 있다고 보시믄 됨다.
이러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 가겠슴까?
급기야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서안사건"이 발생함다.
국민당과 공산당....서로 같은 짱꿰덜끼리 싸우지 말고
우선은 쪽바리부터 물리쳐야 하지 않겠냐 하며
중국군벌이 장개석을 납치해서 가둬 버린 사건임다.
"국민당 공산당이 협력하여 일본군과 싸우면 살려 준다....하지만
거절하면 걍 죽여 뿐진다...." 하는 일종의 협박이죠.
송미령은 인질로 있는 남편 장개석을 찾아가
국공합작을 권유해 성사시키고 장개석을 구출해 냄다.
이 일로 장개석과 송미령은 타임지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고
송미령의 외교역량이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됨다.
송미령은 뻑하면 이국에 건너가 미모와 세치 혀로 의원들을 구워 삶아
각종 군수품, 보급품, 지원금을 어마어마하게 뜯어 옴다.
그러나 그게 올바로 씌여진 경우는 거의 없었고,
윗대가리부터 순서대로 몽조리 해 처먹다보니
정작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암것두 없었던 검다.
장개석 군대가 일본과의 전투, 모택동과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비행기, 탱크, 대포가 전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기름, 옷, 식량등이 도중에 증발돼 군인들이 얼어 죽어 버리고,
중국국민들을 등쳐서 울궈낸 국방비는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는 둥
관료, 정치인, 재벌, 군인간부들은 치부에 눈이 뻘개져 있었슴다.
이 과정에서 송씨가문이 빼돌려 은닉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함다.
송씨가문의 장남 "송자문"의 재산만으로도 세계최고 부자였다고 하니
송씨가문의 재산을 다 합치면 아마 웬만한 국가재정을 능가했을 검다.
이를 감지한 미국의 언론들이 "장개석에게 손 떼라"고 폭로하자
송씨가문의 본격적인 대미로비가 융단폭격을 가하게 됨다.
1946년~49년 동안에만 물경 6억 5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살포,
장개석이 반공투쟁에 앞장서는 의로운 인물이며
정의로움과 미덕으로 가득찬 지도자라고 속이는데 성공함다.
미당이 5공의 전통을 찬양했던 시의 내용과 비슷하지 않슴까?
이러한 무차별적인 "차이나로비"에 대해서 어느 미국 정치인은
"외교사상 이같은 초강도 로비를 행사한 유례가 없었다"고 평할 정도였슴다.
아무리 바깥단속만 잘 하면 뭐 함까?
텃밭은 이미 안에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걸요.
썩어빠진 장개석에게 중국인민들이 철저히 등을 돌리자
자연 모택동은 중국을 늙은 호박 침 놓듯 쉽게 손안에 넣게 됨다.
궁지에 몰린 장개석은 대만으로 급히 토끼고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대만인들을 국민당의 통치하에 두려 함다.
울 나라 육지와 제주도만 해도 상당히 이질적이죠...
쭝국이라는 넓은 나라는 더합니다.
중국본토와 대만....이거 완전히 별개 국가나 다름 없었슴다.
그러니 대만인들로 봐서는 장개석이 침공을 해온거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검다.
종속을 거부하는 대만인들은 장개석 군대에게 처절한 항쟁을 하고
이 과정에서 장개석은 3만여명의 대만인들을 살육하면서 평정을 함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광주학살처럼 만큼이나
대만인들의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사건으로 기록됨다.
본토를 뺏기고 뒤늦게 정신차린 장개석은
"울면서 후회하네"라는 노래를 국민가요로 삼아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밀수에 간여된 며느리에게 차라리 자결하라고 권총을 선물하고,
횡령에 연루된 자들을 비행기에 실어 바닷가에 떨어뜨려 죽이는 등
철저한 내부단속을 펼쳐 기록적인 경제부흥을 이뤄냄다.
마누라 송미령 또한 대미외교의 선봉을 서서 원조를 얻어냄다.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자는 정신병자"라고 연설하고,
일본의 상해 폭격을 "철로 위에서 우는 아이" 사진 한장으로 격퇴해 버리고,
항일전쟁과 중공과의 대립에 미국이란 방패를 끌어들인 그녀의 외교수완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로비스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슴다.
송애령, 송경령의 뒤를 이어 중국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송미령......
그녀는 날건달 장개석이 사망한 75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고
비록 건강하지는 않으나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함다.
이처럼 혼돈스롭고 엄청난 역할을 했던 가문은 없었다" 는 평을 받는
근대중국의 "宋씨 훼밀리"의 면면을 디벼 보면......
父 찰리宋 : 비천한 신분을 딛고 미국 공부 후, 귀국해서 거부가 된 뒤 손문을 후원한 마당발.
딸 송애령 : 巨富 공상희와 결혼하여 축재귀신이 됨...돈이라면 살인 납치도 마다않던 뇨자.
딸 송경령 : 혁명가 손문의 마눌로서, 훗날 중공 명예주석의 자리까지 오른 여걸.
子 송자문 : 국민당 재무장관으로 장개석의 자금을 요리하며 세계최고의 부를 축적했던 넘.
딸 송미령 : 장개석의 마눌로서 30 여년동안 미국 對中 외교정책을 막후에서 움직인 여인.
"첫딸은 돈(공상희)과, 둘째는 중국(손문)과, 셋째는 권력(장개석)과 결혼했다"는 말처럼
이들 세자매의 운명은 "송씨 가족사 + 중국(대만포함)근대사" 인 것임다.
오늘은 그 셋째딸 송미령에 관한 얘기임다.
냉전시대 미국을 움직인 대표적 로비스트 국가는 이스라엘,영국,대만......
이 대만의 로비를 총지휘한 여걸이 바로 송미령이라는 뇨자로서
대만 총통 장개석의 마눌이기도 함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 송미령.....
어려서부터 잘난 체 잘하고, 고집불통이며, 오만불손한 송미령은
사교에도 능란했고, 대단히 활동적이었으며, 상대를 매혹시키는 말솜씨가 일품!
송미령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장개석을 알아야 함다.
아시아 부흥기의 대표적 독재자 3인방(박통, 이광요, 장개석)인 이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180도 틀린 치사빤쓰 똥빤쓰 그 자체임다.
일본 군사학교를 다니던 이넘은 방학때면 중국에 돌아와 깽판을 쳐서
당시 경찰 기록에 살인, 공갈, 강도, 주색등 각종 범죄자로 기록 돼 있슴다.
게다가 상해의 서방파인 "녹방"에도 가입해 녹방두목인 "투"와 어울리며
허구헌날을 과음, 오입, 방탕, 광폭등으로 젊은 날을 보낸 양아치였슴다.
결혼 생활 역시도 추잡하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넘임다.
열네살 때 시골처녀와 첫 결혼 하고 나서도,
나중에 588 출신 쭉빵걸을 첩으로 들여 앉히고,
얼마후 이 첩을 내쫓고 또 다른 창녀를 둘째 부인으로 들임다.
이것두 모자라 가문빵빵한 송미령을 보자 개거품 물고 뎀벼들어
끝끝내 결혼에 골인하고야 마는 출세지향적 카사노바임다.
참고로...... 장개석과 박정희는 여러모로 닮은 꼴이 많슴다.
둘다 일본군사학교를 졸업했고, 포병장교 출신이며,
부잣집 딸과 재혼했으며 (박통은 충청도 거부 육종관씨의 딸과 결혼)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으며 (이 두사람은 서로 직접 대치하지는 않았음)
장기간 독재자로 있으며, 국가경제의 부흥을 이룩한 점이 그거죠.
손문이 세운 국민당軍의 참모총장으로 승격한 장개석의 특기는
오로지 출세를 향한 광폭, 흉폭, 난폭 그 자체임다.
당시 중국의 사회분위기는 열강의 침락과 공산주의 혁명에 휩싸여 있을 때 임다.
그런데 장개석 군대는 열강의 침략에는 팔짱만 끼고 불구경 하듯 한 반면
공산주의 혁명에는 "밥값좀 하자"며 백골단처럼 진압하여 인민들의 원성을 샀슴다.
장개석 군대가 왜 그랬느냐구요?
구미열강들은 군벌과 깡패, 관료들에게 각종 이권을 듬뿍 주면서
그들이 눈감아 주는 틈을 타서 중국 땅덩어리를 야금야금 식민지화 한검다.,
나라야 망하던 말던 윗대가리덜은 제 배때지 터지는 즐거움으로 째지는데
공산주의자들이 사사껀껀 초치고 나서니 얼마나 씅질 나겠슴까?
출세와 안위에 눈멀은 장개석이 어느 편이겠슴까?
장개석 자신이 최대깡패조직인 "녹방"과 두터운 관계에 있고,
마눌인 송미령의 가문 또한 대표적 부르조아로 돈독이 올라 있으니,
자신의 돈벌이에 걸그적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좀 티껍겠슴까?
장개석이가 혁명분자들을 복날 개패듯 조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장개석은 공산주의자들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벼라별 추잡한 짓거리를 다 했슴다.
졸부들과 상공인들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보호한다는 핑계로 돈을 뜯거나.
군자금을 비축한다는 미명하에 정부 공채를 사도록 강요하기도 함다.
이를 어기면 부자들의 자식을 유괴해 몸값을 받고 풀어 준적도 있슴다.
그런 장개석과 결혼한 송미령의 호화호식도 도찐개찐 임다.
당시 상해에 나 돌던 불온 찌라시의 내용을 보면
송미령의 프랑스제 화장실 용품에 4백만 달러,
다이아몬드 구두 80만 달러, 옷 한 벌에 50만 달러나 썼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눈 뒤집어지는 호화판이 아닐수 없슴다.
당근....장개석의 이런 짓거리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수두룩 많았는데
그중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阿Q정전"의 저자 "노신"도 포함됐슴다.
소설가가 정치에 웬 참견이야?......니가 이문열이야?
뚜껑열린 장개석은 노신 패거리 6명을 체포하여
그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한뒤 생매장 시키는 악행도 마다 않슴다.
(다행히 노신은 체포 직전 도피에 성공해서 목숨은 건짐다)
손문 사후 국민당 총통이 된 장개석은 깡패 3인방을 명예고문으로 추대함다.
그 3인방 중..... 특히 녹방의 두목 "투"의 끗발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카포네와 록펠러의 합성품"이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슴다.
울나라 정권의 고문자리에 서방파, 양은이파, 김상사파가 있다고 보시믄 됨다.
이러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 가겠슴까?
급기야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서안사건"이 발생함다.
국민당과 공산당....서로 같은 짱꿰덜끼리 싸우지 말고
우선은 쪽바리부터 물리쳐야 하지 않겠냐 하며
중국군벌이 장개석을 납치해서 가둬 버린 사건임다.
"국민당 공산당이 협력하여 일본군과 싸우면 살려 준다....하지만
거절하면 걍 죽여 뿐진다...." 하는 일종의 협박이죠.
송미령은 인질로 있는 남편 장개석을 찾아가
국공합작을 권유해 성사시키고 장개석을 구출해 냄다.
이 일로 장개석과 송미령은 타임지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고
송미령의 외교역량이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됨다.
송미령은 뻑하면 이국에 건너가 미모와 세치 혀로 의원들을 구워 삶아
각종 군수품, 보급품, 지원금을 어마어마하게 뜯어 옴다.
그러나 그게 올바로 씌여진 경우는 거의 없었고,
윗대가리부터 순서대로 몽조리 해 처먹다보니
정작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암것두 없었던 검다.
장개석 군대가 일본과의 전투, 모택동과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비행기, 탱크, 대포가 전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기름, 옷, 식량등이 도중에 증발돼 군인들이 얼어 죽어 버리고,
중국국민들을 등쳐서 울궈낸 국방비는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는 둥
관료, 정치인, 재벌, 군인간부들은 치부에 눈이 뻘개져 있었슴다.
이 과정에서 송씨가문이 빼돌려 은닉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함다.
송씨가문의 장남 "송자문"의 재산만으로도 세계최고 부자였다고 하니
송씨가문의 재산을 다 합치면 아마 웬만한 국가재정을 능가했을 검다.
이를 감지한 미국의 언론들이 "장개석에게 손 떼라"고 폭로하자
송씨가문의 본격적인 대미로비가 융단폭격을 가하게 됨다.
1946년~49년 동안에만 물경 6억 5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살포,
장개석이 반공투쟁에 앞장서는 의로운 인물이며
정의로움과 미덕으로 가득찬 지도자라고 속이는데 성공함다.
미당이 5공의 전통을 찬양했던 시의 내용과 비슷하지 않슴까?
이러한 무차별적인 "차이나로비"에 대해서 어느 미국 정치인은
"외교사상 이같은 초강도 로비를 행사한 유례가 없었다"고 평할 정도였슴다.
아무리 바깥단속만 잘 하면 뭐 함까?
텃밭은 이미 안에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걸요.
썩어빠진 장개석에게 중국인민들이 철저히 등을 돌리자
자연 모택동은 중국을 늙은 호박 침 놓듯 쉽게 손안에 넣게 됨다.
궁지에 몰린 장개석은 대만으로 급히 토끼고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대만인들을 국민당의 통치하에 두려 함다.
울 나라 육지와 제주도만 해도 상당히 이질적이죠...
쭝국이라는 넓은 나라는 더합니다.
중국본토와 대만....이거 완전히 별개 국가나 다름 없었슴다.
그러니 대만인들로 봐서는 장개석이 침공을 해온거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검다.
종속을 거부하는 대만인들은 장개석 군대에게 처절한 항쟁을 하고
이 과정에서 장개석은 3만여명의 대만인들을 살육하면서 평정을 함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광주학살처럼 만큼이나
대만인들의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사건으로 기록됨다.
본토를 뺏기고 뒤늦게 정신차린 장개석은
"울면서 후회하네"라는 노래를 국민가요로 삼아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밀수에 간여된 며느리에게 차라리 자결하라고 권총을 선물하고,
횡령에 연루된 자들을 비행기에 실어 바닷가에 떨어뜨려 죽이는 등
철저한 내부단속을 펼쳐 기록적인 경제부흥을 이뤄냄다.
마누라 송미령 또한 대미외교의 선봉을 서서 원조를 얻어냄다.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자는 정신병자"라고 연설하고,
일본의 상해 폭격을 "철로 위에서 우는 아이" 사진 한장으로 격퇴해 버리고,
항일전쟁과 중공과의 대립에 미국이란 방패를 끌어들인 그녀의 외교수완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로비스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슴다.
송애령, 송경령의 뒤를 이어 중국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송미령......
그녀는 날건달 장개석이 사망한 75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고
비록 건강하지는 않으나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