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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Room

숲이 나에게

AziMong 2004. 9. 13. 20:30

 

숲이 나에게

  

                             글 아지몽


 

들어오렴,피곤한 몸 떨어지는 잎사귀에 내려놓고
입은 꼭 다물고, 그리고 천천히 내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아보렴. 내 몸에서 나오는 가을향기는 봄처럼 화려하진 않지.
그렇지. 은은한 바람 속에 그윽한 이 향기가 무슨 향기인지 맞춰보렴.
조심스럽지 않아도 괜쟎아. 그럼 괜쟎구말구.
떨어지면서도 소리가 많은 것은 부끄런 일이지.
그러니 여기 내려놓은 이 수많은 세상의 껍질들을 천천히 밟아보렴.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소리를 내는구나.

그러니 천천히 이 소리를 네 발로 느껴보렴.
도토리도 상수리도, 네가 흔드는 작은 손에 놀라는구나.
머리를 쳐박고 숨는 꼴을 보렴.
숲은 외로움이란다. 태어나면서 부터 그런 숙명을 가졌지.
누구든 내게 들어서는 순간 그 외로움에게 말을 걸어보려 하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쟎아.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해도 좋아.
그러면 나도 들을 수 있어. 너도 잘 들어보렴.
눈을 감고 잘 들어보렴.
그러면 저기 산등 아래 마을에서 나온 덧없는 소리가,
초가지붕 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인지, 뚝심이 센 총각인지,
버들가지처럼 휘청거리는 아가씨인지.....
너도 알 수 있을거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게
바로 외로움이란다. 그 외로움이 내게 풀꽃을 피우고
그 외로움이 내게 향기를 피우고, 그 외로움이 내게
바람을 만든단다. 계절이라는 것은 그 외로움이 만드는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단다.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먹고 살지.
천천히 야금야금 몰래 그 계절을 다 먹어치우고 말지.
그러고 나서 세상을 원망하며 외로움으로 울게 된단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야.
세상은 사람과 외로움이 사는거야.
그러니 어서 오렴,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아직 이슬이 내리지 않은 조용한 숲 길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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