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강원의 육담 - '아랫입은 아기처럼 젖만 받아먹어' 본문
강원의 육담 - '아랫입은 아기처럼 젖만 받아먹어'
옛날 양반 집 외아들이 장가 갈려고 하니 처녀 셋이 서로 시집오겠다 하더래.
처녀들의 집안, 용모, 예절이 모두 비슷해 며느릿감 가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더라나. 그래서 양반은 처녀 셋을 불러놓고 "여자는 남자와 달리 입이 둘인데,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다. 그런데 윗입과 아랫입 중 어느 게 더 어른인가?" 하고 물었대요.
첫째 처녀가 대답하는데, "이가 난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하자, 둘째 처녀가 "수염이 무성한 아랫입이 더 어른이지요." 하고 대답하더래. 셋째 처녀가 "다 옳은 말이나 아랫입은 평생 아기처럼 물려주는 젖만 받아먹는데 윗입은 밥 술 등 못 먹는 게 없으니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양반은 "옳거니, 음양의 이치를 아는 걸 보니 한 지아비를 섬길 만하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더래.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남자 경험은 없지만 나이가 차면 여자 또한 알 만한 것은 아는 게 음양 이치요 자연 법칙이다. 이야기 속의 특히 셋째 처녀는 체험 않고도 성에 관해 나름대로 꿰뚫고 있는 여자다. 이에 총명한 여자의 성에 관해 얘기 좀 해 보자.
과거 우리나라엔 여왕이 셋 있었다. 신라시대의 선덕여왕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가장 총명한 선덕여왕은 공주 시절에 당나라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을 받아든 진평왕 앞에서 이렇게 종알거린다. "아버지, 아름다운 꽃이긴 하나 향기가 없을 겁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지 않습니까?" 과연 모란은 향기라곤 없는 꽃이었다.
여왕 5 년 어느 봄날. 대궐 서문(西門) 밖 옥문지(玉門池)에 난데없이 개구리 떼가 몰려들어 밤낮으로 울어대자 선덕여왕이 명을 내린다. "대장군 알천은 날쌘 군사 2천을 뽑아 서쪽 교외 여근곡(女根谷)에 잠복해 있는 적병을 잡으시오!" 이에 과연 여근곡에 숨어 있던 500여 백제 군사가 몽땅 잡혔다는 것 아닌가.
"어찌 알았습니까?" 하고 묻자 선덕여왕 왈 "개구리의 불거진 눈은 병사의 모양이요, 옥문이란 여자의 음부로, 여자는 음에 속하고 그 빛이 흰데, 흰색은 서쪽이 아니겠소. 따라서 내가 일찍이 그 이름을 들은 적 있는 서쪽 변방 여근곡에 적병이 있음을 알았소. 남근(男根)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니, 이에 그들을 쉽게 잡을 줄 안 것이오." 놀라워라, 섹시한 선덕여왕의 총명함이여.
공식적으로 선덕여왕은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가짜가 아니라는 쪽으로 굳어지는 책 '화랑세기'는 여왕이 실제론 세 번이나 결혼 생활을 했다고 폭로한다. 왕 등극 전에 이미 용수·용춘 형제가 번갈아 남편 노릇을 했는데 아들이 없어서 둘 다 물러났으며, 즉위 뒤엔 삼서제(三胥制)에 따라 흠반과 을제를 남편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세 번이 아니라 네 번씩이나 섹스 파트너를 체인징해 살았다는 얘기다.
공주나 여왕이 남편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던 신라 왕실 분위기를 알겠거니와 즉위시 나이 쉰 가까웠다고 계산해 보면 당시로선 시들어가는 꽃이었음에도 여러 남자와 정열적인 섹스를 즐겼으니, 선덕여왕은 그야말로 '즐거운 사라'였던 셈이다.
신라 땅에 이런 유행가가 퍼졌다. "맛둥방이 남몰래 선화공주를 끌어내, 밤마다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네." '삼국유사'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있는 '서동요'다. 백제 왕자이지만 현실적으론 마를 팔던 장돌뱅이와 밤마다 궁을 빠져나가 정을 통했다는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셋째 딸이다. 그렇다면 방만한 섹스를 즐겼던 그 선덕여왕 바로 아래 동생이 아닌가. 그야말로 끼 많은 집안이었음을 알겠도다.
'섹스 특구'인 신라 서울에 이런 노래가 또 유행한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나. 하늘 버틸 기둥을 찍어내려네." 좀 야한 상상을 하게 되지 않는가? '자루 없는 도끼'는 여자의 음부를 은유한 것이다. '여자 그것의 생긴 모양이 도끼에 찍힌 것 같다'와 연결되는 비유다. '하늘 버틸 기둥'에 발기한 남자 성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원효대사가 지었는데, 그야말로 역사적 명곡이다. 요석공주를 '꼬시기' 위해 유행시킨 이 노래로 운우지정을 나누고 싶은 자신의 속내를 무열왕에게 알리는데 성공한 원효는 요석궁과 가까운 문천교에서 궁리(宮吏)와 부딪혀 물에 빠뜨려지고, 옷을 말린다며 요석궁에 옮겨져, 혼자 몸이 돼 홀로 지내던 요석공주와 자연스럽게 살을 섞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설총이라는 대 문장가를 탄생시키게 되나니--. 세상사 이렇게 그저 음양 조화다. 육담 속에서 총명한 세 번째 처녀가 이미 이를 짚어내지 않았더냐
옛날 양반 집 외아들이 장가 갈려고 하니 처녀 셋이 서로 시집오겠다 하더래.
처녀들의 집안, 용모, 예절이 모두 비슷해 며느릿감 가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더라나. 그래서 양반은 처녀 셋을 불러놓고 "여자는 남자와 달리 입이 둘인데,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다. 그런데 윗입과 아랫입 중 어느 게 더 어른인가?" 하고 물었대요.
첫째 처녀가 대답하는데, "이가 난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하자, 둘째 처녀가 "수염이 무성한 아랫입이 더 어른이지요." 하고 대답하더래. 셋째 처녀가 "다 옳은 말이나 아랫입은 평생 아기처럼 물려주는 젖만 받아먹는데 윗입은 밥 술 등 못 먹는 게 없으니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양반은 "옳거니, 음양의 이치를 아는 걸 보니 한 지아비를 섬길 만하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더래.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남자 경험은 없지만 나이가 차면 여자 또한 알 만한 것은 아는 게 음양 이치요 자연 법칙이다. 이야기 속의 특히 셋째 처녀는 체험 않고도 성에 관해 나름대로 꿰뚫고 있는 여자다. 이에 총명한 여자의 성에 관해 얘기 좀 해 보자.
과거 우리나라엔 여왕이 셋 있었다. 신라시대의 선덕여왕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가장 총명한 선덕여왕은 공주 시절에 당나라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을 받아든 진평왕 앞에서 이렇게 종알거린다. "아버지, 아름다운 꽃이긴 하나 향기가 없을 겁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지 않습니까?" 과연 모란은 향기라곤 없는 꽃이었다.
여왕 5 년 어느 봄날. 대궐 서문(西門) 밖 옥문지(玉門池)에 난데없이 개구리 떼가 몰려들어 밤낮으로 울어대자 선덕여왕이 명을 내린다. "대장군 알천은 날쌘 군사 2천을 뽑아 서쪽 교외 여근곡(女根谷)에 잠복해 있는 적병을 잡으시오!" 이에 과연 여근곡에 숨어 있던 500여 백제 군사가 몽땅 잡혔다는 것 아닌가.
"어찌 알았습니까?" 하고 묻자 선덕여왕 왈 "개구리의 불거진 눈은 병사의 모양이요, 옥문이란 여자의 음부로, 여자는 음에 속하고 그 빛이 흰데, 흰색은 서쪽이 아니겠소. 따라서 내가 일찍이 그 이름을 들은 적 있는 서쪽 변방 여근곡에 적병이 있음을 알았소. 남근(男根)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니, 이에 그들을 쉽게 잡을 줄 안 것이오." 놀라워라, 섹시한 선덕여왕의 총명함이여.
공식적으로 선덕여왕은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가짜가 아니라는 쪽으로 굳어지는 책 '화랑세기'는 여왕이 실제론 세 번이나 결혼 생활을 했다고 폭로한다. 왕 등극 전에 이미 용수·용춘 형제가 번갈아 남편 노릇을 했는데 아들이 없어서 둘 다 물러났으며, 즉위 뒤엔 삼서제(三胥制)에 따라 흠반과 을제를 남편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세 번이 아니라 네 번씩이나 섹스 파트너를 체인징해 살았다는 얘기다.
공주나 여왕이 남편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던 신라 왕실 분위기를 알겠거니와 즉위시 나이 쉰 가까웠다고 계산해 보면 당시로선 시들어가는 꽃이었음에도 여러 남자와 정열적인 섹스를 즐겼으니, 선덕여왕은 그야말로 '즐거운 사라'였던 셈이다.
신라 땅에 이런 유행가가 퍼졌다. "맛둥방이 남몰래 선화공주를 끌어내, 밤마다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네." '삼국유사'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있는 '서동요'다. 백제 왕자이지만 현실적으론 마를 팔던 장돌뱅이와 밤마다 궁을 빠져나가 정을 통했다는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셋째 딸이다. 그렇다면 방만한 섹스를 즐겼던 그 선덕여왕 바로 아래 동생이 아닌가. 그야말로 끼 많은 집안이었음을 알겠도다.
'섹스 특구'인 신라 서울에 이런 노래가 또 유행한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나. 하늘 버틸 기둥을 찍어내려네." 좀 야한 상상을 하게 되지 않는가? '자루 없는 도끼'는 여자의 음부를 은유한 것이다. '여자 그것의 생긴 모양이 도끼에 찍힌 것 같다'와 연결되는 비유다. '하늘 버틸 기둥'에 발기한 남자 성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원효대사가 지었는데, 그야말로 역사적 명곡이다. 요석공주를 '꼬시기' 위해 유행시킨 이 노래로 운우지정을 나누고 싶은 자신의 속내를 무열왕에게 알리는데 성공한 원효는 요석궁과 가까운 문천교에서 궁리(宮吏)와 부딪혀 물에 빠뜨려지고, 옷을 말린다며 요석궁에 옮겨져, 혼자 몸이 돼 홀로 지내던 요석공주와 자연스럽게 살을 섞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설총이라는 대 문장가를 탄생시키게 되나니--. 세상사 이렇게 그저 음양 조화다. 육담 속에서 총명한 세 번째 처녀가 이미 이를 짚어내지 않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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