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장이와 요정들 ♥
글 : 아지몽
내 마음 속에는 다락방이 있습니다.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 위에 낙서장이 놓여지고
아주 서툰 솜씨지만 동그라미도 그려보고
네모며 세모며 굴뚝이며,
지붕을 그려봅니다.
내가 그리려고 했던 것은 분명 이것은 아니었습니다.
속이 텅비어 있는 내가 그려놓은 형체들은
무언가 채워달라고 자꾸 조르기 시작합니다.
채워 놓어야할 것이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어느새 팔베개를 하고 잠이들고
나는 구두장이가 됩니다.
내가 잘라놓은 가죽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고
언제 왔는지,
화사한 분홍빛 봄옷을 입은 사람이
신발을 벗고 있습니다.
낡은 신발을 벗고 있습니다.
하얀 낙서장 위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꽃잎같은 발자국이 찍혀져 있습니다.
그 아래 이렇게 메모가 쓰여져 있습니다.
이 꽃잎에 꼭 어울리는 집을 예쁘게 지어주실거죠?
진땀을 흘리며 열심히 바늘을 움직여 보지만
어찌된건지 매번 울상을 짓고 맙니다.
밤이오고 카바이트 등에 불이 붙여집니다.
어두침침한 등불 아래서 나는
바보처럼 계속 그 일을 번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꿈 속에서도 나는 잠이 듭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요정들이 나타나
내가 잘라놓은
구두 가죽들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쫓아내려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럴수록 요정들은 더 짖굳게 훼방을 놓습니다.
꿈 속에서도 나는 그만 울다 깨었습니다.
다락방 안의 사물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내 안에 있던 생각들도 그처럼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낙서장 위에는 예쁜 구두 한켤레가 놓여져 있습니다.
다락방에는 내 마음을 닮은 물건들이
언제나 그렇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예쁜 발자국을 찍어놓은 인형이며,
노랗게 바랜 책표지며,잠들면서 찾아왔던 요정,
내가 만들고 싶었던 구두까지.....
어쩌면 신이 처음으로 내려주었던
그러한 꿈이란 선물이 예쁘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작가노트:
내가 시적인 형태로 짜맞춘 주제를 저녁때
곰곰이 생각하면 아침에는 펜을 들어
자연히 흘러나오는 시구를 쓰기만 하면 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후에 나는 다만 회고만 하면 되었다.
- V. 베크테레프